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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회수상 Pator's Column

희망의 공동체(The community of Hope)

미국의 철강 재벌인 앤드류 카네기는 그의 어머니가 임종할 때 마지막 유언으로 쪽지에 남긴 글을 마음 판에 새겨서 늘 실천했습니다.
“너의 평생에 하나님의 창고를 부하게 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는 항상 넘치게 될 것이다”

그는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작은 수입을 벌때부터 십일조를 씨앗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사업의 지혜를 주셔서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는 1890년대에 자선 기부 캠페인을 시작했고 1918년 죽을때까지 자기 재산의 90퍼센트를 자선사업에 바칩니다. 그는 재산을 남기고 죽는 것을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죽을때까지 씨앗을 뿌리고 심는 생활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세상가운데 희망의 씨앗으로 두셨습니다. 씨앗은 모든 것의 근본입니다. 씨앗은 생명체이기에 흙을 만나 싹을 튀웁니다. 죽으면서 전혀 다른 세상을 살게 됩니다. 씨앗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삶입니다. 인류를 구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이 찢기고 부서진 예수 그리스도는 씨앗과 같이 낮아짐과 부서짐의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분신인 교회를 해산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인지라 질그릇과 같이 깨어지기 쉽고 약하지만 그 안에는 ‘생명되신 예수 그리스도’ 보배를 담고 있기에 상상할 수 없는 신비함과 구원의 능력이 숨어있습니다.

독일의 개신교 신학자인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은 두 종류의 희망을 말했습니다. 하나는 유한적 희망이요 다른 하나는 초월적인 희망입니다. 유한적인 희망은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이 세상에 거는 세속적인 희망이요 초월적인 희망은 흘러가는 시간 저 건너편의 희망의 지평선을 향하여 갖게되는 희망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기쁨과 사랑을 목말라하며 삶의 의미와 목적을 상실하고 살아가는 수많은 이민자들에게 생수의 근원되시고 산 소망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특별히 세속적 희망에 의미를 두고 찾는 이들에게 시간 저 건너편의 희망에로 인도해야 할 책임적인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독일의 철학자인 에른스트 블로호(Ernst Bloch, 1885-1977)는 교회를 세상에 소망을 주는‘희망의 공동체’라고 불렀습니다.

교회의 영광과 회복을 위해 씨를 뿌리는 일은 단순하고 쉽지만은 않습니다. ‘땀과 피, 눈물’ 3가지 액체를 요구합니다. 행복(happy)은 우연(happen)이 올 수도 있지만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축복(bless)은 온전한 희생(blood)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위해서 자신을 내려놓고 모든 어려움을 참고 견디며 말씀대로 행한 사람에게는 성경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기쁨과 열매, 영광스러운 미래를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위해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시122:6)”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수고하며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일을 중단하지 마십시오. 평생의 삶을 통해 계속하십시요. 이 일은 우리의 생애에 가장 가장 가치있는 일이며 형통의 고리가 되어 우리의 삶가운데 자손대대로 이어지는 축복의 유산이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의 교회안에는 많은 모순과 연약함이 존재하지만 그래도 교회만이 희망이고 하나님의 꿈입니다. 주님의 꿈인 교회를 위해 일하다가 받는 상처와 아픔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요. 그것은 훗날 ‘영광의 상흔’이 됩니다. 사도바울은 교회를 세우며 평생 복음을 전하다가 받은 자신의 영광스런 상흔(the stigma of glory)을 자랑스럽게 선포합니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갈6:17)”

Finally, let no one cause me trouble, for I bear on my body the marks of Jesus(Galatians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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