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2년 아편전쟁에서 영국의 현대식 함대에 참패를 당한 청나라는 서구의 현대문명과 과학 기술을 배우기 위해 한 선교사에 의해 예일대학을 졸업하고 조국으로 돌아온 중국인 용광의 제안으로 120명 국비장학생 중국의 청소년들을 커네티컷의 주도인 하트포드(Hartford)로 유학을 보내게 됩니다. 이들이 각 가정에 홈스테이 하면서 미국문화를 접하고 급속도로 서구화 되었고 후에 미국내의 반중국계데모로 결국 1881년 중국땅으로 되돌아오게 되지만 후에 중국땅에 해군 철도국, 경영, 전신외교국등 중요한 분야마다 기술과 관리 경영시스템을 뿌리내리게 한 결정적인 주역들이 됩니다. 미래를 바라보고 사람에게 투자했던 뜻깊은 결과였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가치있고 보람있는 일은 ‘사람을 키우는 일’입니다. 그러나 가장 힘들고 지치게 만드는 일 또한 ‘사람을 키우는 일’입니다. 사람으로 인해 속상하고 시달리고 갈등하고 고통당하다보면 삶의 기쁨과 보람, 목적과 사명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신약성경 고린도후서에서 보면 사람을 세우기 위해 지불한 사도 바울의 댓가가 얼마나 컸던지를 짐작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바울은 사람 때문에 겪었던 특별히 믿음의 사람들을 섬기면서 당하는 심리적 고통과 압박감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고후11:23-29)”
감사한 것은 바울은 사람에 의해 시달리고 갈등하면서도 자신의 사역가운데 더욱 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사람 키우는 사명을 계속적으로 감당했습니다. 분열과 분쟁, 교만과 질시, 도덕적 타락, 영적 미성숙, 법적 투쟁, 우상숭배등 숱한 문제에 짓눌려 자기 정체성과 은혜를 상실하고 영적으로 자라지 못했던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바라보면서 큰 실망이나 쓴 마음, 미움이나 불평하는 마음에 사로잡히지도 않았습니다. 아울러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문제아, 미성숙한 사람들, 육적 그리스도인’과 같은 레이블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딱지가 그들에게 어울릴지 모르지만 바울은 그들을 향해 오히여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2절)이라고 불렀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요?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바울이 가졌던 간절한 기대와 소망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붙드실 것이라는 ‘기대’와 더불어 지금 고통과 실망을 안겨주던 자들이 현재와는 달리 미쁘신 하나님께서 훗날 영광스럽게‘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히 세우실 것'(고전1:8-9)이라는 ‘소망’을 가졌습니다.
여러 문제로 잡음이 끊이지 않았고 세속에 물든 교회였지만 바울은 그들을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로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연약하지만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요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성별하신 성도’인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문제와 상황보다는 하나님이 베푸신 풍성하신 은혜와 은사를 통해 드러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을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이집트에서 갓 나온 노예근성에 익숙해져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불신앙적이고 이기적인 오합지졸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은 그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기대와 소망의 말씀을 주십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으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19:5-6)”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란 교육심리학 용어가 있습니다. 심리적 행동의 하나로 교사의 기대에 따라 학습자의 성적이 향상되는 것을 말합니다. 피그말리온’이란 조각가가 자기가 조각한 상아 여인상을 얼마나 살아있는 여인처럼 사랑하였던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그 상아 여인상에게 생명을 주었다는 그리스신화에서 따온 이야기입니다. 사람은 누군가가 그에게 거는 기대와 소망만큼 자라남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사람을 키우는 일에 그들의 현재의 상황이 아니라 미래의 가능성을 바라보며 항상 최상의 기대와 소망을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1778년에 세워진 미국의 사립명문 기숙학교중의 하나인 필립스 아카데미 앤도버(Phillips Academy Andover)의 설립자인 사무엘 필립스 주니어와 조카인 존 필립이 함께 학교의 건학이념을 정하면서 인용한 성경말씀 두 군데가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받을 것이니라”(눅 6:38).
필립스의 건학이념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 즉 하나님의 기대와 소망이 무엇인지를 알려줍니다.
사람으로 인해 기뻐하기도 하고 시달리며 갈등하며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혼탁하고 휘청거리는 세상속에서도 원망이 아닌 감사를, 포기가 아닌 기대를, 회의가 아닌 확신을, 절망이 아닌 소망을 견지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사람을 키우는 일에 지쳐 주저하거나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포기하고 싶고 버리고 떠나고 싶은 유혹속에서도 다시 하나님과 사람을 향한 기대와 소망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고전3:6)”라는 말씀과 같이 공의로 이 세상을 다스리시고 경영하시는 분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우리들이 변함없이 해야할 일은 신실하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그 분을 온전히 신뢰하며 사람들을 긍정하고 키우고 세우는 일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사 그로 말미암아 기뻐 외치며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하시고 사람에게 그의 공의를 회복시키시느니라”(욥33:26)’
He prays to God and finds favor with him, he sees God’s face and shouts for joy; he is restored by God to his righteous state(Job 3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