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감신대의 윤성범학장의 일화집에 보면 그 분이 이런 말을 잘 하셨다고 합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잘 하시려면 좀 두리둥실, 원만해야 합니다.” 바울이 비난을 받고 있을 때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사람은 성경의 바나바란 인물이었습니다. 바나바는 사실 편협한 유대주의적인 고정관념을 가진 자가 아니었습니다. 물이 낮은 곳으로 흘러 빈 구덩이를 메우듯이 자신의 전 재산을 바치면서까지 헌신적인 자세로 교회의 어려움을 메꾼 자였습니다.(행4:37) 아울러 바나바는 보자기와 같이 바울의 과거 실수를 덮어줍니다. 결국 바울은 바나바의 격려와 사랑에 힘입어 다시 일어서게 됩니다. 남의 허물을 덮어주면 사람이 주변에 모이게 됩니다. 물이 낮은 곳으로 흘러 빈구덩이를 메우듯 상대방의 부족한 면을 발견하더라도 조용히 메꾸어 주고 보자기와 같이 남의 허물을 덮어주면 사람이 주변에 모이게 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랑이란 사실 상대방의 힘겨운 삶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비록 이해가 안되어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를 더 잘 알기위해 과거에 그가 입은 상처를 들여다보고 덮어주고 보듬어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기꺼이 상대방을 위해 바닥을 기며 오물을 묻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셔서 제자들의 발을 친히 씻기시는 섬김의 본을 보이신 것처럼 사랑은 이웃을 위해 자신을 낮추고 떼어내는 아픔과 겸손에서부터 시작되어집니다. 사랑하기 힘겨운 ‘나 중심적(ME Generation)’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은 흥하고 우리는 쇠하여야하리’는 세례 요한의 말처럼 우리 인생의 가장 위대한 전성기는 내가 낮아지고 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드러나는 때임을 기억하며 처음 사랑이 시작될때의 초심으로 돌아갈 때입니다. ‘우리가 늘 하는 선행과 사랑이 내일이면 잊혀질지라도 사랑을 베푸십시요. 사람들은 약자에게 동정을 베풀면서도 강한 자를 따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외되고 고통받는 자들, 약한 자를 섬기고 사랑하십시요. 이웃을 볼 때, 남편과 아내를 볼 때, 자녀들을 볼 때, 성도를 볼 때 모든 자들이 사랑받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인간을 사랑으로 보는 눈이 바로 하나님의 눈입니다. 그 하나님의 눈으로 우리는 가장 풍요로운 시대같지만 가장 힘들고 어려운 고난의 시대를 살아가며 소망의 ‘닻’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바라보며 사랑의 삶을 일구어가십시요. 그리고 논쟁으로 상대방을 설득하려고 하기보다는 사랑의 길을 택하십시요. 그 곳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그러한 노력들가운데 사랑과 희망의 씨앗들이 움트고 자라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주소는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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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보다는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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