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제자를 부르신 주님(막3: 13-19)
예수님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사람을 세우는 전략을 사용하셨습니다. 사람을 통해서 세상을 변화시키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공생애의 시작은 그가 쓰실 제자들을 선택하시는 것으로 시작되어집니다. 먼저 12명의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세우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 12라는 숫자는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또 하늘과 땅을 대표하는 숫자를 곱하여 얻은 완전수이기도 합니다. 12제자의 부르심(Calling)은 새 이스라엘의 탄생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을 통해 이루고자 하신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망각하고 거역함으로 말미암아 이제 주님은 그 분앞에서 새로인 탄생할 영적 이스라엘을 통해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성취시켜 나아가고자 하신 것입니다.
12라는 숫자의 신학적 의의를 생각한다면 구약의 이스라엘백성들이 12지파이기에 새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상징한다는 사실이 보다 명확해집니다. 야곱의 아들이 12명이었고(창 49장) 엘림의 샘물도 열 둘이었으며(출 15:27), 아론의 흉배에 붙어있는 보석과 성막안의 진설병도 열 둘입니다.(출 28: 10, 레 24:5,9) 요한계시록 21장에서 완성되어진 천국의 문은 모두 12개입니다. 각각의 문에는 12개의 보석 기초석이 있고 각 보석마다 12지파와 12사도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계 21: 14, 21) 12명의 모든 시대를 대표하는 하나님의 백성 또는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제자들을 부르신 주님은 우리들을 제자로 부르시고 계십니다.
왜 주님은 제자들을 부르시고 계십니까?
첫째, 주님이 제자들을 부르신 이유는 예수님이 그들을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본문 1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를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예수님이 ‘원하시는 자들’을 부르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원하는 자들의 자격이 본문에 열거되어 있지 않고 그저 ‘원하셨던 자들’만 부르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제자들을 선택하신 것은 그 분의 주권적인 선택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적으로 내세울 것이 있는 자들이 아닌 어부들이나, 세리들과 같이 평범한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평범한 자들을 택하셔서 비범한 주님의 사역을 이루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들 중 4명은 어부였고 1명은 사회적 멸시와 비난의 대상이었던 세리였고 다른 한 명은 극단적인 열심당원(Zealot)이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전문지식을 가졌거나 탁월한 은사를 가진 자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공생애 기간가운데 제자들은 현장교육과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오순절 성령 강림 체험을 거치면서 교회의 터를 다시고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로 자라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인간의 재능이나 지식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아니며 오직 주님의 부르심에 온전히 순종하는 자들에게 역사하시는 성령의 지혜와 능력으로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그들과 함께 하시며 제자로 훈련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
14절을 보시길 바랍니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시고 세우신 이유는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을 일꾼으로 부르신 이유는 함께 인격적인 교제와 사귐의 대상으로 함께 있기를 원하셔서 부르셨습니다. 함께 한다는 의미는 우리를 훈련하시기를 원하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함께 하심으로 우리를 향한 주님의 기대를 전달하고 자신의 삶을 보여 주심으로 우리도 주님처럼 살아가시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
예수님은 12제자를 훈련시켜 주님이 부활하신 후 주님의 몸된 교회의 터를 견고히 세울 일꾼으로 사용하시길 위해 특별한 관심을 갖고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고난과 시련으로 인해 자칫하면 믿음의 길을 떠날 수 있기에 집중적인 교육이 필요하셨던 것입니다. 아울러 예수님의 부활과 오순절 성령 강림이후에는 세상 만민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하기에 그들을 부르셔서 주님의 사역에 동참케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주님과 함께 하기 위해선 가장 중요한 훈련은 말씀과 기도 훈련입니다.
말씀을 펼칠 때 나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기도할 때 주님앞에 나아갑니다. 그래서 주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훈련을 통해서 주님과 함께 하는 기회를 만들게 되고 주님이 나에게 기대하시는 일체의 교훈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제자를 부르신 마지막 이유는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사 전도하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14절입니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막3:14)”
함께 있는 기회를 통해서 우리는 주님과 더불어 친교합니다. 또 함께 하는 동안 훈련을 받습니다. 우리가 순종하면 주님은 전도할 수 있는 능력도 공급하십니다.
“귀신을 내어 쫒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라(3:15)”
전도하고자 하는 자에게 전도할 수 있는 능력도 환경도 주십니다. 하나님이 제자들을 세우신 궁극적인 목적인 전도하게 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2차 대전이 끝났을 때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라는 도시의 한 교회에 마을 대표들이 모였습니다. 이유는 그 교회 마당에 있는 예수님상 때문이었습니다. 폭격을 맞아 예수님의 두 팔만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떨어진 두 팔만 복원시킬 것인가 아니면 아예 다시 만들 것인가를 두고 토의하는 중에 누군가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우리 폭격 맞아서 두 팔이 없는 그대로 놔두도록 합시다. 그리고 그 안에 우리 교회를 위해서 이렇게 써넣으십시다. 예수님은 당신과 나의 팔을 필요로 하십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들의 팔을 필요로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통해서 일하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고통받는 이웃들의 상처와 아픔을 느끼며 그들에게 찾아가는 주님의 손이 내 손이 되어야 합니다. 내 손이 그들의 아픔을 짊어지고 기도하는 중보 기도의 손이 되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전해줄 메시지를 위해 말씀을 붙드는 손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의 소식을 들고 찾아가는 손이 되어야 합니다. 그 때 비로서 주님은 우리를 통해서 일하시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손이 예수의 손이 될 때 주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입니다 세상은 변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바로 이 목적을 위해서 주님은 12제자들을 불러 세우셨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들을 끊임없이 부르시고 계십니다. 주님의 부르심앞에 오늘도 이 새벽에 믿음으로 응답하며 나아가 때 하나님의 일하심과 기적이 시작될 것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