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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전쟁과 십자군전쟁(시85:9-13)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직후 “평강이 있을찌어다”(요 20:19,21,26)라고 인사하셨습니다. 주님의 따뜻한 짧은 문안에는 한 인간의 평안과 우리 가정의 평안과 온 사회와, 나라와 민족의 평화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 시편 본문말씀 9절은 “당신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구원이 정녕 가까우니 그의 영광이 우리 땅에 깃들이시리라(시85:9)” 이 말씀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온 땅에 가득하고 사람의 삶과 공동체의 평화로운 삶에 대한 약속을 통해 하나님의 소원과 의지를 드라마틱하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인애(사랑)와 진리(실)가 같이 만나고(눈을 맞추고) 의와 화평(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리라 땅에서는 진실(리)이 돋아 나오고 하늘에선 의(정의)가 굽어보리라. 여호와(야훼)께서 좋은 것(복)을 내리시리니 우리 땅이 그 산물(열매)를 맺어 주리라 의가 주의 앞에 앞서가며(걸어 나가고) 주의 길을 닦으리로다(평화가 그 발자취를 따라가리라.)”(시85:9-14)

계속 이어지는 본문말씀에서 흥미로운 것은 사랑과 진실이 눈을 맞추고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춘다는 표현입니다. 남녀간의 애정을 의인화한 것처럼 보입니다. 눈이 맞은 젊은 남녀가 입을 맟추는 관계로 발전하는 것을 연상시킵니다. 사랑, 진실, 정의 평화는 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삶의 가까운 일상안에 존재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인애와 진리(사랑과 진실), 의와 화평으로 살아가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사랑과 진실, 의와 화평보다는 미움과 거짓, 불의와 전쟁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미가서 6장 8절에는 하나님의 소원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6:8)

평화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성경을 통하여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평화, 샬롬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샬롬은 단지 문제가 없는 상태라는 소극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예언자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차고 넘치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살아갈 때’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평강, 평화는 이 세상이 추구했던 도피의 평화, 문제로부터 도망치고 도피함으로서 오는 평화가 아니라 문제를 극복하는 평화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여전히 고난과 아픔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선한 것을 주셨는데 그것은 공의를 구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평화의 삶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평화는 힘이 센사람이나 배부름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역사의 경험을 통해서 보면 힘이 있는 사람이 저지른 전쟁이 그쳤다고 평화가 오지는 않았습니다. 평화는 힘에 의한 산물이 아닙니다. 아울러 어떤 이들은 물질적 풍요만이 인간의 고통과 억압을 해소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들은 가난하면 범죄의 가능성이 있고 가난은 반사회적이고 평화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평화는 빵의 크기에 의해 좌우되지 않습니다. 굶주리신 예수를 빵으로 유혹하고 굴복시키려고 했던 마귀는 지금도 힘과 빵의 유혹으로 우리의 평화를 흔들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여전히 참 평화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을 평화를 얻기 위한 도상에 서 있음이 분명합니다. 평화를 모색하는 것은 단지 인간의 불안을 극복하는 소극적인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향해 적극적인 데로 나서는 것임을 믿는 것입니다.

시편 34편 14절에서 다윗왕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어떤 분이 러시아의 모스크바에 있는 동물원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안내원의 지시를 받으며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방문객이 한 우리 앞에 섰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사자와 양이 함께 있는 우리였습니다. 방문객이 여행 안내원에게 물었습니다. “사자와 양을 한 우리 속에 넣어 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안내원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우리는 사자와 양을 한 우리 속에 넣어둠으로서 평화로운 공존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렇게 했습니다. 물론 우리는 매일 마다 새 양을 우리 속에 넣어야 하지만 말이지요.”

여러분, 이 동물원은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사자와 양이 함께 평화롭게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하여 두 짐승을 한 우리 속에 넣었지만 매일마다 양은 사자에게 잡혀먹습니다. 사자는 그대로 있지만 양은 매일마다 새 양을 집어넣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경우에 평화는 댓가를 치러야만 합니다. 평화는 그냥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힘이 있을 때 보장됩니다. 국가 간에도 힘의 균형이 깨져서 한 국가가 갑자기 군사적으로 강해질 때 이웃 나라를 침략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평화로운 국가를 이루기 위하여 군사력이나 경제력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평화는 이와 같이 힘을 바탕으로 한 평화가 아닙니다. 강함이 아닌 연약함으로, 힘이 아닌 사랑과 섬김(정의)의 정신으로 평화를 만들어나가기  원하신 것입니다.

역사가의 연구에 따르면 지난 4천년 동안 인류가 전쟁 없이 평화로웠던 시기는 겨우 3백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구촌 인류의 역사는 바로 전쟁의 역사였습니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과학과 기술이 발전해도 제1, 2차 세계대전, 또 한국전, 월남전, 중동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전쟁, 발칸전쟁등 각종 테러, 폭력이 끊이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기독교는 2 가지 대표적인 전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십자가 전쟁’이었고 또 하나는 ‘십자군 전쟁’이었습니다. 십자가 전쟁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에 의해서 2천년 골고다 언덕에서 일어났습니다. 십자가 전쟁은 다리 놓는 전쟁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인간과 인간 사이에 도저히 자기 힘으로 건널 수 없는 절벽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였습니다. 자기를 죽이고 이웃을 살리는 전쟁이 십자가 전쟁이었습니다. 선으로 악을 이긴 전쟁이었습니다. 이 십자가 전쟁으로 인류는 비로소 평화와 소망을 보게 된 것입니다.

또 하나의 전쟁은 중세에 있었던 십자군 전쟁이었습니다. 십자군 전쟁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에 의해서 일어난 전쟁이었으며 남을 죽이고 평화를 얻겠다는 전쟁이었습니다. 결국 십자군 전쟁은 인류 역사에 있어서 큰 오점을 남기고 실패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법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평화는 인간 스스로 만들 수 없습니다. 힘으로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셔야만 합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증오와 분열과 갈등을 정복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선물인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8절에서 사도 바울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과 인간을 화목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세상을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만나 성령안에서 변화된 삶을 통해서 전쟁과 테러가 끊이지 않는 세상속에서 평화의 다리를 놓아 가는 화목대사로, 평화의 도구로 쓰임받는 삶 되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아들 딸이라 일컫음을 받을 것이요(마5:9)”

기도) 하나님! 저희들을 예수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고 날마다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시켜주셔서 이 땅에 진정한 하나님나라, 샬롬의 평화를 일구어가는 평화의 도구로, 화목대사로 쓰임받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평화를 일구기 위해 먼저 화목제물이 되신 주님을 본받아 이웃과 화목하게 하시고 평화가 고갈된 세상에 평화의 씨를 뿌리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께서 십자가 사랑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세상이 알 수없는 평강을 선물해주셨사오니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평화의 다리를 놓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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