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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회수상 Pator's Column

최선의 복수(?)

빌레몬서는 바울의 옥중서신가운데서 유일하게 개인에게 보낸 서신으로서 매우 실제적이고 실천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특별히 서로 용서하면서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빌레몬서에는 용서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정의 실제적인 문제를 통해서 빌레몬서는 용서의 문제를 너무나도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다루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바울이 로마감옥에 자유로운 상태로 셋집에 유하고 있을때(행28:30-31)한 사람이 찾아오는데 오네시모였습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으로서 로마로부터 도망쳐온 상태였습니다. 빌레몬은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네시모는 자유를 누리겠다고 빌레몬에게서 도망쳤습니다. 심지어 빌레몬의 소유까지 훔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당시 세계 수도였던 로마로 간 것입니다. 그 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니까 거기에 숨어살면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곳에서 오네시모는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바울을 만나게 되고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완전히 새 사람이 됩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다시 그의 주인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면서 오네시모를 위해 편지를 한 장 써주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빌레몬서입니다.

그 당시에는 도망친 노예가 잡힐 경우 그의 생사는 순전히 주인의 손에 달려 있었습니다. 노예는 십자가형에 처해지거나 살리더라도 그의 이마에 도망자(Fugitive)라는 라틴어 단어의 첫 문자인 F자가 낙인으로 찍혔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새롭게 변화된 오네시모를 그의 주인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면서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그를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한 형제로 따뜻하게 맞이할 것을 부탁하기 위해서 두기고(골4:9)를 통해서 빌레몬서를 전달하게 된 것입니다.

용서(Forgive)는 3가지 단계를 거칩니다.

1. Forbear(참으라)  2. Forget(잊으라)  3. Forever(영원히)입니다. 영원토록 잊는 것입니다.

원수를 갚는 자는 그 원수와 별 차이가 없습니다. 복수는 잠간의 위로는 되어도 완전한 치유는 되지 않습니다. 최선의 복수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용서하는 것입니다.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다리를 파괴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도 강을 건널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복수는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용서하는 것입니다. 용서는 이해하고 잊어버리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은 훌륭합니다. 깨끗이 잊을 수 있는 사람은 더 훌륭합니다. 그리고 용서할 수 없었던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자는 최고로 훌륭합니다. 살아가면서 받은 마음의 상처는 용서와 사랑의 약으로만 치료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용서할 수 없었던 오네시모가 있다면 용서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미움과 보복이 아닌 용서와 사랑으로 변화된 삶을 살아가십시요. 오늘이 마지막처럼 최선을 다해 사십시요. 그것이 최선의 복수입니다. 사랑하며 살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함과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고”

지금 이 순간도 우리의 가슴을 두드리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용서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내가 너를 위하여 화목 제물이 되었다. 너도 가서 화해의 사명을 다하라”

그리스도인들은 상처받은 치유자(Wounded Healer)입니다. 기독교의 구원의 의미인 ‘소테르(Soteriology, σωτὴρ)’라는 말은 구원과 치유를 의미합니다. 즉 상처가 치유받고 영광이 되게 하는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무너뜨리며 스스로의 분노와 원한의 감옥에 갇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상처받은 치유자(Wounded Healer)로 작은 예수로 살아갈 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가운데 사랑과 용서의 강물이 흘러 축복의 열매가 곳곳에 맺히고 진정한 변화의 물결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힘과 보복의 논리가 아닌 ‘살며 사랑하며 용서하는’ 작은 희망의 씨앗들이 이민의 삶 곳곳에 뿌려져 우리가 발딛고 살아가는 이 땅가운데 작은 천국이 이루어지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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