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와 봉사
Fellowship & Serving
선교사소식 Missionary News
복음동산회지 Gospel Mountain News
온라인헌금 Online Offering
        선교사소식 Missionary News

중앙아시아에서의 선교사역

중앙아시아권 선교 25년 평가와 과제
김다니엘 선교사 (중앙아시아)

asia_map

 

들어가며 – 복음의 사각지대 사마리아
소연방의 해체는 70여 년 동안 갇혀 있던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세계무대에 올라오게 만들었다. 중앙아시아는 1989년까지 복음의 사각지대로 세계 선교계에서는 사마리아와 같은 지역으로 남아 있었다. 8세기부터 아랍에서 유입된 이슬람은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의 샤마니즘과 토테미즘의 민간신앙 위에 덧입혀져서 ‘튀르크인은 무슬림’이라는 외적 자기 정체성을 표방해왔다. 18세기부터 본격적으로 남하정책을 진행해온 러시아 제국은 1917년 볼세비키 혁명 이후, 광활한 스텝을 누비며 살고 있던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족들에 대한 식민지배를 공식화하였고, 양과 염소, 말 등 가축과 자유롭게 살던 이들을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안에 가두어 놓았다.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체제는 인종적으로 슬라브계를 비롯한 9개의 백인 공화국들과 문화적 배경이 전혀 다른 6개의 아시아계 공화국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카작, 우즈벡, 크르그즈, 투르크멘, 아제리, 타지크 등 아시아인들로 구성된 공화국이 공산 쿠테타 이후 차례로 독립했다. 지리적으로 중앙아시아에 속해 있는 아시아 공화국들 중에 타지크는 이란(페르시아)계이고, 나머지 카작, 우즈벡, 크르그즈, 투르크멘 공화국은 튀르크계(돌궐계) 민족들이다.

소비에트의 지난 70년 통치기간 동안 중앙아시의 튀르크인들은 가슴에 이슬람을 묻고, 얼굴에 소비에트라는 가면을 쓰고 철저하게 무신론 교육을 받으며 살아야 했다. ‘철의 장막(Iron Curtain)’ 속에 바벨론 포로와도 같은 유수기를 보냈던 튀르크인들은 외부 세계를 볼 수도 없었고, 세상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외부 세계의 서방 기독교 국가들은 15개 연방 국가인 소련을 들여다 볼 수도 없었고, 들어갈 수도 없는 금단의 구역으로 규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중앙아시아 지역은 세계 교회가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할 수밖에 없었다. 복음은 철저하게 차단되었고, 중앙아시아는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이 오랫동안 세계 선교의 밭 한가운데 깊이 박혀 숨겨져 있어야만했다.

I. 열강의 각축장
그 동안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튀르크 계열의 중앙아시아 민족들이 개방되자 세계의 강대국들은 지정학적(Geo-political), 지경학적(Geo-economical) 이해관계를 따라서 중앙아시아에 접근하면 관심을 표명하였다. 무엇보다도 강대국들은 중앙아시아 국가에 배치되어 있었던 핵무기에 관심이 많았다.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던 카자흐스탄은 가장 먼저 세계열강의 주목을 받았고, 동시에 카스피해를 중심으로 매장된 엄청난 양의 원유와 천연자원은 국제사회를 자극하고 유혹하기에 충분하였다. 카스피해를 공유하고 있는 아제르바이잔이나 투르크메니스탄이 동일하게 원유 생산국이라는 이유로 관심을 많이 얻었다. 중앙아시아 최대 인구를 가진 우즈베키스탄은 시장성과 그 정치적 중요성으로 인하여 열강의 국제 정치적 관심을 모았다.

중앙아시아를 관통하는 실크로드는 오랫동안 동서양 문명 교류의 산파 역할을 해왔다. 광활한 스텝과 사막의 한 가운데 존재하던 크고 작은 오아시스들은 점차로 도시로 발달되어 지난 2,500년간 대상들을 살리고 교류하는 생명샘 역할을 하였다. 21세기 신실크로드(New Silkroad)는 유라시아 네트웍을 이루는 대동맥으로 선교적인 측면에서 뿐 아니라, 학술 연구, 역사, 문화와 문명교류, 정치 경제적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중앙아시아는 서구 열강의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종교적 각축장이 되어가고 신거대게임(New Great Game)의 중심부가 되어가고 있다. 또한 1937년 스탈린의 정책에 의해 극동지역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했던 한인들이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을 중심으로 인근국가들에 집단농장을 이루어 살고 있다. 중앙아시아의 약 40만명의 고려인들은 소련 최대의 고려인 집단으로 한국정부와 한국교회는 이 지역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990년도 이전까지 중앙아시아는 세계선교계에서 잊혀진 곳이었고 여러 미전도 민족들 중에 인구 비례면에서 가장 복음화율이 낮은 지역으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로 소비에트의 사회주의는 붕괴되었고, 중앙아시아는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에 주신 추수할 땅이요, 영적 기업이다.

II. 종교 및 교회상황
1. 이슬람의 부상
중앙아시아가 이슬람권이며, 이곳 주민인 튀르크인들이 스스로 무슬림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이들이 이슬람화되기 이전에 이들의 정신적, 현실적 문제를 지배했던 과거의 신앙과 종교들이 복합적이고도 다양한 형태로 여전히 큰 영향을 행사하고 있다. 특별히 중앙아시아의 고대 종교였던 샤머니즘은 이들의 문화와 관습에 여전히 남아있으며, 사실상 중앙아시아의 이슬람은‘무속적 이슬람’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중앙아시아인들의 이슬람 신앙은 신비주의와 미신에 의해 강한 영향을 받아왔다. 러시아에 의한 1세기 이상의 정복과 70여년의 소련 공산주의 지배하에서의 현대화와 교육화, 이데올로기화로 이슬람은 수난을 겪었으나, 소연방이 와해되고 민족주의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최근 몇 년 사이에 이슬람 사원이 재건축되고, 이슬람 학교들이 계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며,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슬람 모자를 쓰는 사람이 늘어가고 쿠란과 하디스 등 이슬람 서적의 보급과 판매량도 날로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중동 이슬람국가들에서 파견된 이슬람 포교사들의 적극적인 포교활동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슬람의 활동은 기독교 선교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포교사들이 중앙아시아 전역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훨씬 더 활발하고 적극적으로, 그리고 헌신적으로 일하고 있다. 최신식의 거대한 이슬람 사원, 문화원, 특수 전문학교설립, 병원설립, 대학 및 이슬람 대학 설립 등을 통하여 친중동과 이슬람 전문가들을 양성하면서 이슬람으로 회귀를 강조하고 있다.

2. 기독교 상황
1989년 구소련의 개방과 개혁정책 이후 한국교회와 선교단체들의 북방사역은 시작되었고,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독립과 함께 ‘포로된 자에게 자유가 선포되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 중앙아시아가 문이 열리자 마자, 한국과 미국의 한인 선교사들은 중앙아시아의 우리 동포들인 ‘고려인 Koreyskiy’을 대상으로 활발하게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초기 선교사들은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하는 고려인과 러시아인들을 주 사역대상으로 삼았고, 기본적인 러시아어를 습득하여 고려인 중에서 한국어를 아는 통역자를 세워 사역을 시작하였다. 선교사역 초기 5년 동안 수많은 한인 선교사들이 고려인 마을 마을마다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개척하였다. 1996년 미국남침례교 선교부는 중앙아시아는 더 이상 고려인들을 대상으로 한 선교사역은 필요지 않다고 판단하여 소속 선교사들을 재배치하였다. 이는 당시 천명 이상 고려인들이 거주하는 마을에는 1~2개 이상의 등록된 고려인 교회가 세워졌기 때문이었다. 당시 우즈베키스탄에만 60여개가 넘는 등록된 고려인 교회가 존재하고 있었다. 또한 복음의 수용성이 놓은 민족들을 대상으로 러시아어로 공개 사역을 하면서 다민족 교회들을 개척하였다. 초기 10년 동안 러시아인과 고려인들에 대한 사역은 충분한 열매를 거두었고, 역동적인 사역이 이루어져 크고 작은 많은 교회들이 등록되어졌다. 사랑의교회, 은혜교회, 소망교회, 믿음교회, 살렘교회, 중앙교회, 주님의교회, 복음교회, 샘물교회, 영광교회…

하지만 중앙아시아의 다수를 차지하는 현지 튀르크인들을 위한 사역기반은 매우 미약하였다. 선교사역이 시작될 당시 대부분의 민족들에게는 완역된 성경이 부재하였다. 누가복음, 마가복음 등 부분적으로 번역된 성경을 가지고 있었고, 후에 창세기, 시편이 번역되었다. 지금은 카자흐스탄, 크르그즈스탄에서만 완역된 성경이 배포되어 사용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완역이 되었다고 하지만 아직 출판되지 않은 상태로 신약만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비록 완역된 성경은 부재하였지만, 국제CCC의 ‘마케도니아프로젝트’를 통하여 ‘예수’ 영화가 영화필름과 비디오로 제작되어 각 민족어로 많은 사람들에게 배포되었으며, 전도용으로 사용되어 예수 영화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며 돌아오는 역사가 있었다.
2000년도까지 기독교인들은 대부분 도시와 수도에 집중적으로 모여 있었고, 그나마 소수의  기독교인은 거의 러시아인이나 고려인들이었다. 그러므로 정작 현지인들로 구성된 교회는 수적으로도 극히 소수이었으며, 정부는 현지인에 대한 복음전파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며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였고, 그로 인해 현지인들의 교회등록은 쉽지 않았다.

현지인 사역은 공개사역이 제한되어 이 민족에 맞는 총체적 선교를 할 전문인 사역자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현지인을 대상으로 사역하는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종교비자가 아닌 전문인의 신분으로 비자를 얻어 국가가 인정하는 일을 해야 했다. NGO 및 기관, 비즈니스 회사를 설립하여 국가 및 지방정부에 법적으로 등록하여 비자 및 신분의 안정을 얻어, 교회개척에 필요한 사역과 사회활동을 하였다. 특별히 현지인들은 무슬림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서, 복음에 배타적이고 적대적이었다. 그래서 직접적 전도가 어렵고 공개적인 기독교활동이 허용되지 않는 보안지역에서의 NGO 및 기관 활동은 국가의 신임을 받았고 국민들의 마음을 열게 하는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선교사들의 대부분은 NGO 사역을 단순히 사회봉사 차원에만 머물지 않고 복음전도의 기회로 삼아 교회개척이라는 사역적인 열매를 맺으려고 시도하였다.

무료급식, 빈민구제, 장학금지급, 고아원, 양로원, 교도소, 장애인, 의료진료 및 이동진료, 지역 주민봉사, 지역 어린이를 위한 탁아소 운영, 방과 후 공부방 운영, 미용실, 직업기술 및 훈련, 어학원, 컴퓨터 학원, 음악교실, 미술교실, 유치원, 스포츠, 학교, 병원, 문화센터, 연구소 설립 등을 통하여 사회와 문화 전반에 총체적인 사역이 진행되었다.

전문인 사역자들 중에는 학교와 대학교에서 학생신분이나 교수사역을 통하여 현지 학생들과 접촉할 기회를 가지면서 전도를 통한 제자를 세워갔다. 회계학이나 경영학, 법학을 강의하는 경우도 있고, 컴퓨터나 한국어 영어 등을 가르치며 학생들에게 지식은 물론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바른 사고와 세계관을 가질 수 있도록 시도하였다.

3. 튀르크인들의 교회개척 상황
현지인 교회는 대부분 지하교회 형태로 존재하고 있고 카자흐스탄과 크르그즈스탄 등 몇 국가에서는 제한적으로 현지인 교회를 등록시켜 주었다. 수년 전부터 우즈벡 현지인들을 중심으로 국가에 정식교회로 등록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국가가 허락하지 않아 지하 가정교회의 형태로 어렵게 모임을 하고 있다. 특별히 중앙아시아 국가들 중에 투르크메니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의 종교탄압이 가장 강하게 나타났다.

3.1 우즈벡인교회
우즈베키스탄의 러시아교회에서 믿음을 갖게 된 극소수의 현지 그리스도인들을 중심으로 강력한 기적과 병고침의 능력으로 개척된 H교회는 전국적으로 전도활동을 통하여 많은 지교회 모임을 개척하였다. 초기부터 우즈벡어를 배우며 현지인을 대상으로 사역했던 젊은 전문인 선교사들이 개척한 S교회와 많은 가정교회들이 핍박 가운데서도 어둠의 권세를 대적하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고 있다. 중앙아시아 튀르크민족들 가운데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고, 인구 대비면에서 가장 복음화율이 낮은 우즈베키스탄은 초기 전문인 선교사들이 대거 추방되고, 새로운 세대의 선교사들이 감시와 통제 속에서 개인전도를 통한 제자양육 사역에 힘쓰고 있다.

대부분의 한인 선교사들이 추방된 이후, 심한 핍박 가운데 있던 S교회의 몇몇 형제들이 모여 기도하면서, ‘이제는 선교사들이 아닌 선교사를 보낸 하나님만 의지하자’는 결단 아래 개인전도와 순회사역을 시작하였다. 소수의 형제들의 헌신과 결단으로 시작된 전도와 제자양육, 그리고 전도된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한 지하 성경학교를 운영하면서, 선교사들의 추방 이후 5년 동안 전국에 15개의 교회가 개척되어 약 천여 명이 넘는 성도로 부흥되어 우즈벡민족에 소망이 되고 있다. 90년대 말 믿는 우즈벡인들을 약 2만명까지 추산했지만, 극심한 핍박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이탈율이 매우 심각하여 현재는 약 5~6천명 정도가 남아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대통령의 장기독재체제로 인해 극심한 감시와 통제 속에서 교회가 핍박과 재판을 받아 감옥에 갇히기도 하지만 성도들은 ‘무릇 경건하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말씀으로 고난을 극복해 가고 있다. 문제는 많은 한인 선교사들이 추방되었고, 현재는 약 70여명 정도 사역하고 있는데, 그 중에 반 정도는 직간접적으로 개인전도 및 제자양육 사역을 하고 있지만 나머지 반 종도의 선교사들은 감시와 통제로 활동범위가 매우 위축되어 있고 두려움이 많아 교회개척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지 못한 안타까운 상황이다.

3.2 카작인교회
카자흐스탄은 침례교 선교사들을 통해 개척되어 수백 명의 성도로 성장한 S교회가 대표적인 교회로써 몇몇 지교회를 개척하였고 고려인교회 지도자들과 함께 침례교단을 만들어 연합사역을 통하여 활발하게 사역하고 있다. 또한 초기 선교사들의 헌신적인 사역으로 카작인들로 구성된 크고 작은 가정교회들이 개척되었다. 그리고 약 30만 우이그르 디아스포라들을 대상으로 한 우이그르인들의 교회가 성장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 본토의 약 천만 명의 위그르 자치주의 그리스도인들보다도 많은 숫자이다. 중앙아시아 다른 튀르크 민족들에 비해 가장 많은 카자흐인들이 주께로 돌아왔지만 아직 복음화율은 1% 미만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 카작 그리스도인의 비율은 매우 낮은데, 약 1만에서 1만3천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또한 현지인들과 현지 지도자들을 영향력 있는 영적 지도자로 교육하고 양육하기 위한 신학교들도 카자흐스탄에서 중요한 영적 기둥이 되고 있다.
특별히 지난 2000년 실크로드 페스티발을 계기로 고려인교회와 러시아안교회는 급격한 성장을 이루었고, 그 이후 몇 년간 수천명 규모의 선교운동이 지속되면서 다른 튀르크 민족들을 위한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하며 중앙아시아의 영적 부흥을 도모해 왔다. 카작인들로 구성된 교회들 중에는 2012년 전까지는 약 100여개의 교회가 등록되어 있었지만, 새로운 종교법 발효이후 등록교회의 수는 약 30% 정도로 감소하였다고 한다.

3.3 투르크멘인교회
투르크메니스탄은 한인선교사가 1995년부터 사역을 시작하였지만, 1996년 O단체 소속의 단기 S선교사가 순직한 곳으로 “투르크메니스탄을 사랑한 S선교사 이곳에 잠들다”라는 비문이 수도 인근에 있는 곳이다. 이로 인해 단기로 방문하는 많은 한국교회 성도들이 기도하게 되었고 소수의 사람들이 헌신하여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투르크멘 현지인 교회 생명의말씀교회는 현지인 J형제가 주님을 영접한 후, 외부의 도움 없이 개척하여 정식 등록한 유일한 교회이다. 한인 선교사들은 2000~2007년 사이에 8가정으로 가장 많았고 사역적으로 가장 전성기였다고 할 수 있는데, 크고 작은 5개 미만의 가정교회를 개척하여 현지인 중심으로 모임이 진행되고 있다. 대부분의 한인 선교사들이 추방되었고, 현재는 한인 선교사가 한 가정만이 비즈니스 사역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투르크멘 그리스도인은 전체 인구 500만명 가운데 약 1500여명으로 추산된다. 투르크메니스탄이 중앙아시아 국가들 중에서는 가장 강력한 영적 여리고로 반드시 복음이 통과해야 할 영적관문(Spiritual Gate)이다.

3.4 크르그즈인교회
크르그즈스탄은 중앙아시아연구소를 중심으로 조사와 지역연구를 통해 지역적 전문성과 함께 사역적 전문성이 발휘되었다. J교회와 E교회는 처음부터 크르그즈 민족교회로 시작하여 다른 지역으로도 개척을 시도하였다. 또한 ‘둘로스미션’이라는 초교파 교회개척팀을 자발적으로 조직하여 크르그즈인들을 대상으로 전국 주요도시를 대상으로 교회개척을 하였다. 이들은 미국 남침례교해외선교부(IMB)에서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교회개척배가운동(Church Planting Movement)전략을 교회개척에 활용하여 많은 성과를 얻었다.

CPM 전략을 활용하여 8~15명 정도의 셀교회를 O시에 13개, T시에 4개, I지역에 3개, K지역에 6개, B지역에 2개 등 총 28개의 셀 형태의 교회가 개척되었다. 2013년 한국 선교사들이 개척한 교회는 민족과는 상관 없이 약 87개로 추정하고 있다(20주년 백서 참조).

하지만 개척된 교회들 가운데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하는 교회가 훨씬 많은 점을 감안한다면 크르그즈인들을 대상으로 한 교회개척은 앞으로 더 활발하게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2008년 신 종교법 발효이후 교회등록과 공개사역이 위축되어 있는 상황인데 새로운 돌파가 필요하다.

III. 앞으로의 전망과 과제
1. 사역 페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난 25년간 이슬람권에 파송된 선교사들 중 최단기간에 가장 많은 한국인 선교사가 중앙아시아에 파송되었다. 이들 중 70% 전후가 고려인 사역과 러시아인, 일부 종족에만 국한되어 있고, 정작 다수 종족인 현지인 튀르크 민족들을 위한 사역에 연관된 사역자는 소수에 불과했다.

중앙아시아는 약 6천만에 달하는 인구에 200여 종족이 살고 있다. 중앙아시아 인구의 1%도 안되는 약40만의 고려인과 전체 30%를 전후한 기독교 배경을 가진 러시아인을 포함한 슬라브족 사역, 그리고 일부 종족의 사역에 많은 한국인선교사가 불균형 배치되어 있다는 것은 앞으로 중앙아시아 선교전략에 있어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일부 한인선교사들은 고려인 교회를 징검다리로 해서 현지인들에게 나아간다는 사역적 정당성을 제기하긴 하지만, 그 동안 고려인 교회의 사역이 얼마나 현지인을 위한 진척이 있었나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중앙아시아선교의 사역 방향이 현지인들을 향하는 사역으로, 그 전략이 수정되지 않는다면 얼마 안 가서 한국선교사들은 정체성의 혼란과 사역의 한계에 직면할 것이며, 큰 난관에 부딪힐 것이 분명하다.

또한 중앙아시아에서 한국인 선교사에게서 볼 수 있는 아쉬운 점은 선교와 목회의 구분이 없다는 것이다. 선교는 시간이 지나면 적절한 때에 현지인이 리더쉽을 가지도록 기회를 주어 세워 가야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선교지 목회를 하는 한인선교사들이 있는데, 선교사가 계속 리더쉽을 가지고 현지인에게는 기회를 주지 않고 주도해 가고 있다. 1990년 초부터 시작된 중앙아시아 선교 역사에서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 현지인에게 리더쉽을 이양하고 현지인 교회가 삼자원리에 입각하여 정착한 교회의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현지인에게로의 리더쉽 이양이 늦어지거나 혹은 이양되지 않고 선교사가 계속 주도권을 가진다면 중앙아시아에서의 선교사역은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기 어려울 것이다.

2. 고려인, 러시아인교회와 미전도 종족들간의 연결이 필요하다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은 다른 어떤 소수민족보다도 빠르게 복음을 접할 수 있었다.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은 이제는 더 이상 미전도 종족으로서의 사역대상 민족이 아니다. 이제는 고려인과 러시아인 교회들을 통하여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이방민족인 중앙아시아 민족인 튀르크 민족을 향해 복음으로 빚을 갚아야 할 것이다. 러시아인, 고려인들이 튀르크인들을 향한 사역의 전환이 마치 유대인이 이방인을 향해 가는 것처럼 어렵지만,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이 일은 정치적, 역사적, 문화적인 상황을 볼 때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민족과 족속과 백성과 방언 가운데서 영광받으실 하나님의 복음은 능력이기에, 이 일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며 그로인해 중앙아시아의 복음화는 신속하게 이루어 질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일을 위해 최대한의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2010년 크르그즈에서 우즈벡인들과 크르그즈인들의 민족유혈혁명으로 약탈과 방화, 살인과 보복으로 수천명의 사상자와  수십만의 난민이 발생하였다. 이후 오쉬 지역의 사람들을 돕기 위한 구호활동에 고려인들이 주축이 된 알마티중앙교회는 2톤이 넘는 구호물품을 보내와 난민을 돕는 좋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최근에는 고려인 교회에서 선교사를 타직스탄과 아프카니스탄으로 파송하였고, 아직은 미약하지만 튀르크인들의 교회도 중국의 카작족과 크르그즈족을 위해, 카프카즈의 소수민족을 위해 선교사를 파송하여 선교를 하고 있는 사례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 여겨진다.

3. 또 다른 변방민족들을 향하여
중앙아시아 전역에는 약 200여 민족들이 살고 있다. 주민족인 우즈벡, 카작, 크르그즈, 투르크멘 민족 이외에도 중앙아시아 곳곳에는 수 많은 미전도 종족들이 섞여 살고 있다.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에는 120여 민족이, 크르즈즈스탄에는 80여 종족이 섞여 살고 있고 중앙아시아 곳곳에 수 많은 제 4세계 미전도 종족들이 어두움 가운데 있다. 중앙아시아 전역에 거주하는 약자로서의 소수 미전도 종족들을 위한 사역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한 예로 여호수아프로젝트2000 운동본부에서 발표한 카자흐스탄 내의 카작, 우즈벡, 크르그즈 투르크멘 등 주요 미전도 종족 이외의 소수 미전도종족은 다음과 같다.
북 아제리족 – 거주 인구 9만 명(그리스도인 약 50명), 바쉬키르 족 – 거주 인구 2만 2천명(그리스도인 약 150명), 체첸 족 – 거주 인구 5만 2천명(알려진 그리스도인 없음), 북 쿠르드 족 – 인구 2만 7천명(알려진 그리스도인 없음), 이란계 파르시 족 – 인구 11만 명(알려진 그리스도인 없음), 타타르 족 – 인구 34만 3천명(알려진 그리스도인 310명), 위구르 족 – 인구 35만 명(알려진 그리스도인 350명…

이 외에도 우즈베키스탄 자치 카라칼팍공화국에는 카작인, 크르그즈인들과 유사한 큽착계열의 카라칼팍(검은 모자를 쓴 사람들)인들이 약 45만명 정도 살고 있다. 북부 카프카즈의 관문민족 체첸과 다게스탄 지역의 수 많은 미전도 종족들, 소외된 아프카니스탄의 우즈벡족, 중국의 신장 자치주의 최대 소수민족 우이구르족, 크르그즈족, 카작족, 그리고 거대한 튀르크족 집단인 타타르족 등 많은 민족들이 있다.

최근에 크르그즈스탄 비쉬켁에서 중앙아시아 5개국 현지인 지도자들이 모여 선교훈련과 전도여행을 하면서, 선교의 비전과 헌신을 다짐하는 시간이 있었다. 많은 현지인 지도자들이 우리 민족만 아니라, 소외된 민족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선교비전을 품는 계기가 있었는데 이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4. 연합적인 팀사역의 필요
현대 선교의 가장 큰 문제는 경쟁과 중복이라는 것이 선교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현재 중앙아시아에는 많은 교단과 선교단체에서 파송된 목회자와 평신도 선교사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사역하고 있다. 한국선교사들은 많은 열매들을 맺고 있고 역동적인 사역을 하고 있지만, 목회자와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 교단과 선교단체, NGO 단체와의 협력과 연합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중앙아시아 선교에서의 큰 장애요인이라 할 수 있다.

한 민족과 한 국가를 경영하고 복음화하는 거시적인 차원에서의 연합사역은 매우 중요하다. 한국교회가 교단과 단체를 초월하여 중앙아시아 미전도 종족 선교를 향한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선교전략과 정보들을 함께 공유하고 함께 대안들을 모색해가는 성숙한 모습이 절실히 요구된다.

우즈베키스탄에서 평신도 전문인 사역자들로 이루어졌던 NGO는 국적과 교단에 상관없이 협력하며 국가와 사회전반에서 총체적인 선교를 하였다. 한 단체 안에서 교육, 의료, 스포츠, 사회개발 등 다양한 분야를 개척하며 약 80여명의 서로 다른 배경의 선교사들이 협력하며 사역할 때 가장 많은 영적 열매가 있었음은 매우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나가며 – New Silkroad is Mission Road !
70년대부터 일어난 한국교회의 부흥과 한국 경제의 부상은 분명히 21세기를 준비하시게 한 하나님의 역사였다. 현재 한국교회는 가장 풍부한 인적 자원을 가진 나라이고 가장 부요한 교회를 가진 나라가 되었다. 세계의 주요한 교단의 가장 큰 교회를 가진 나라, 세계 대형교회 50개 중에 절반이 한국교회라는 것은 주지한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중앙아시아의 미전도 종족들을 특별히 한국교회에 맡기셨다. 1995년 우리나라에서 개최됐던 세계선교대회(GCOWE 95)에서 세계선교지도자 4천여 명은 한국교회의 우선선교 대상종족으로 중앙아시아 튀르크민족을 위탁하였다.

우리는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해본다. “맡긴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이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위대한 기회이요 축복이다. 한국교회가 하나님께 최고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한국교회는 중앙아시아의 미전도 종족들을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인도할 영광의 직분을 맡았으며 이 일을 위해 섬길 수 있는 놀라운 자격을 부여받은 것이다. 실크로드를 통한 동서양의 문명교류는 이제 신실크로드 미션로드(Mission Road)가 되어 복음의 서진은 계속될 것이고, 하나님의 축복과 영광은 물이 바다를 덮음과 같이 중앙아시아 땅을 충만하게 덮을 것이다.

 

*선교타임즈 2014년 3월호.

 

중앙아시아에서의 선교사역
– 재소련(在蘇聯) 한인, 고려인 선교사역과 교회개척

김경일 선교사1)

들어가는 말

한국교회는 2012년 말(2013년도 1월 7일) 기준으로 24,742명의 선교사를 전 세계 5대양
6대주 169개국에 파송한 것으로 조사됐다. 즉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에 의하면 ‘2013년 선교사 파송 현황’에 따르면 169개국에 24,742명의 선교사를 파송했다고 밝혔다.2) 이는 2011년에 비해 1,411명이 증가한 것이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subprime mortgage crisis)와 유로존의 경제위기 상황으로 말미암은 전세계적 경제 침체상황 속 영향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선교사 파송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본 한국교회의 세계선교를 위한 열정과 헌신은 그 질적인 면에서 세계 최고라 할 수있다. 왜냐하면 선교사 파송 세계 1위(46,381명)인 미국은3) 파송된 대부분 선교사들이 평신도 선교사들로서, 특히 단기선교사4) 비중이 많다. 복음의 최전선 사역(교회개척, 신학교,…)보다는, 주로 NGO 비자로 의료, 학교, 구제 등, 복음 선포 보다는 간접 사회 사업에 대부분 집중하고 있다. 이에 비하여, 대한민국은 세계 2위 파송국이지만, 인구 비례(per capita)와 기독교 인구 대비, 그리고 목회자와 평신도 선교사 비율과 사역, 그리고 복음의 효율성5)으로 볼 때, 비 복음화율이 높은 전방개척지역(F3~F1)에 전체 선교사 수의 약 51%인 11, 256명이 배치. 면으로 볼 때, 선교학자 탐 스톨트(Thomas M. Stallter) 박사의 평가처럼, 실질적으로 세계 1위라고 자부 할 수 있다.
“세계 기독교는 지금까지 2천년 동안 없던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글로벌 기독교(Global Christianity), 세계기독교(World Christianity) 맥락에서 “남기독교”(Southern Christianity, or Global South)라고 불리기도 하는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에서 폭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Majority Christianity”(다수기독교, 2004년 로잔대회에서 채택된 공식명칭)에 속하게 된 것이 한국 교회이다.” 6)
종말론적 선교관으로 볼 때, 참으로 고무적이며 확실한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라 말할 수 있다. 특히 앞으로 2030년까지 10만 명 정병 선교사를, 2020년까지 100만 명의 평신도를 파송하겠다는 원대한 비전과 꿈이 있는 대한민국의 교회(선교단체)는 세기 말에 강권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보호와 역사하심에 적극 동참과 더불어 죽도록 충성하고자 하는 열정에 더욱 더 사로 잡혀야 할 것이다.
그 동안 이슬람 선교에 관련하여 많은 한국 지도자들이, 중앙아시아 지역이 구 소련에서 독립한 초기(1991년도)에 비하면, 비약적으로 관심도가 증가한 것 같으나 그것은 외형적인 많은 관심이지, 선교 역사적, 전략적 측면에서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7)   “중앙아시아를 부정적인 관념에서 논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다시 말하면 현대의 문명 세계에 인접해 있으면서도 문명권 바깥에 위치한 고립 지대로 인식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세계의 강대국들은 중앙아시아의 전략적인 중요성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오늘의 국제 정세 역시 중앙아시아에 대한 영유권과 전략적 이익의 중요성 때문에 유럽과 미국과 러시아와 중국 간의 긴장과 대결이 가장 격심한 지역이다. 이제 중앙아시아는 세계의 변방이 아니라 <실크로드> 시대와 같은 정치, 경제 군사, 문화, 그리고 종교의 이해관계가 얽힌 21세기 세계 문제의 중심 루트가 되고 있다.” 중앙아시아 각국이 구 소련에서 독립한 후 약 22년이 흐른 현재, 기독교 선교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과거 8세기에 중앙아시아 탈라스(Battle of Talas)에서8) 아바스왕조는 이 전투의 승리로 중앙아시아에서 이슬람세력의 기반을 굳히게 되었고, 유목민족들 사이에서 이슬람교가 퍼지기 시작했다(위키백과, 2013).  이슬람과 불교가 충돌하여 불교가 패한 역사처럼, 현대 기독교 선교도 당시와 유사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특히 기독교 전방개척 선교 운동으로서의 중국에서 주창하는 “Back to Jerusalem”과 선교사적 땅끝 복음 운동의 집중 대상인 10/40창, 그리고 이슬람 과격 원리주의자들에 의한 고토 회복의 동진 운동이 다시 강하게 조우하는 곳으로서 중앙아시아 지역은 너무도 중요하다.
따라서 필자는 실크로드 중앙아시아에서의 재소 고려인 중심의 선교사역 중요성과 더불어 세계 선교의 완성(마24:14)을 위한 주체로서, 한국교회가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이며 역동성 있는 선교사역의 대안을 논하고자 한다.9)

재소 고려인은 과연 누구인가?10)
재소 한인인 고려인들의 이주 동기의 주된 원인은 1890년대 후반에 발생한 기근11)과 어려운 경제 사정이 이민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원인되었다. 국내 사정의 불안이었다. 즉 세도 정치로 인한 삼정의 문란12), 홍경래의 난과 같은 민란과 3대 사옥을 통한 천주교 탄압과 계속되는 흉작 등이 이주의 주된 원인이었다. 또한 1900년대에 들어서는 일본의 침략에 반대해 국외로 도피하는 대상지로 만주와 연해주가13) 가장 적합하였다.
그런데 고려인들은 1937년에 있었던 스탈린의 소수 민족 정책의 최대의 희생자들이었다.14) 마치 유대인들이 히틀러가 저지른 인종 청소라는 프로젝트의 희생자들로서, 현대사에 있어서 가장 충격적이며 잔인한 일이었지만, 우리의 동족이요 한 핏줄인 고려인들의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 역시 피 눈물 나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 했다.
당시 스탈린이 한인들을 불신하고, 한인들을 간첩의 소지가 있다고 하여,15)  일본인과 상접을 할 수 없게 하는 정책, 즉 강제이주 정책을 편 것이다. 결국 1937년 8월에 하바로프스크에서 스탈린의 지령을 받고,16) 강제 이주 후, 처음에는 언어의 장벽(공용어인 러시아어와 이주국인 우즈베키스탄의 우즈벡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사람이 없기에…)과 이산가족의  아픔, 그리고 삶의 터전인 집과 직장이 없이 황무지에서, 갈대밭에서, 토굴 속에서 살수 밖에 없는 인간으로서는 상상 할 수 없는 가장 치욕적인 삶이 시작 되었으나,  그 환경에 가장 확실히 적응(?) 하였고, 뿌리를 내렸다. 결과적으로 중앙아시아를 개발시키기 위하여 스탈린이 강제 이주를 명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중 언어(러시아어와 한국어)를 사용하는 재소 고려인들을 통하여, 구 소련 권 붕괴 후 복음 전파의 도구로 한민족을 크게 사용하셨다.

재소 고려인들이 진짜 공산주의자였다(?)

재소 한인 고려인들은1937년에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당할 당시 대부분 고려인들은 무신론자였거나, 아니면 우리 민족의 종교라고 여겼던 불교를 자신의 종교라고 무의식적 생각을 하였으나, `중앙아시아로의 강제 이주 후 처절한 삶의 경쟁 속에 가장 소망하는 꿈과 비전은 단 하나로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산 당원이 되는 것이었다.  오직 그것만이 유일하고 확실한 신분 상승을 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비에트 공산 당원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배 민족의 공용어이며 관용어인 러시아어를 빨리 습득하는 것과 철저한 공산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즉, 이러한 현실적 배경으로 말미암아 고려인들은 종교는 아편으로서 “하나님 없다. 예수님 없다”라고 하는 유물주의 사관에 입각한 무신론자들인 공산주의자들의 교육으로 인하여, 불신앙이 가장 확실히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생각 할 때, 철저한 공산주의자들은 공산주의의 종주국이요, 지배 민족인 러시아 인이라 생각 할 수 있으나, 사실 내부적으로 살펴보면, 재정 러시아 당시로부터 전 국민의 절대 다수가 러시아 정교인(약 91%이상)으로서 그들의 문화는 기독교적인 역사적 뿌리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첫째. 언어적으로 살펴보면, 주일을 “바스크례셰-니예(부활)”라고 하고 토요일을 “수보-따(안식일)”이라고 한다. 둘째. 최대의 명절은 볼셰비키혁명일과17) 각종 공산당 기념일, 그리고 러시아 정교회의 영향과 신앙적 배경의 역사 속에 민족적 명절로서 뿌리내린 성탄절, 부활절 등이 있다. 셋째. 그들의 이름을 보면 성경에서 따온 이름들이 대부분 이며, 그 예로 류봅(사랑), 나제-즈다(소망), 볘-라(믿음), 요한나, 마리아, 지모페이(디모데), 펠릭스(필립), 요셉, 베드로, 알렉산드로, 엘리야와 같은 이름들이다.
이상과 같이 러시아 인들은 기독교적인 문화와 역사적 배경 가운데 약간의 믿음이 있는 환경인 것을 1992년 우즈베키스탄(이하 우즈벡)에서 선교 사역 초기에 발견한 필자는 굉장한 문화 충격을 받았다.  또한 우즈베키스탄 본토인들은 이슬람교의 역사와 문화, 배경과, 환경 속에 뿌리 깊은 무슬림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과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필자가 전술한 바와 같이 고려인들이 진짜 공산주의자였음을 알 수 있고, 그들을 개종하고 하나님 백성으로 인도하는데 있어, 선교사들이 참으로 많은 아픔과 저항, 그리고 핍박과 고난도 있었다.

재소 고려인들을 대상으로 한 중앙아시아에서의 교회개척 사역(우즈벡, 카자흐스탄을 중심으로)
구 소련에서 독립한 중앙아시아 5개 국가(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키즈스탄, 타지크스탄, 투르크메니스탄)는 대외적으로는 종교의 자유를 표방하지만, 자국민 우월주의와 민족주의의 영향, 그리고 전통적 종교와 삶의 방식으로서 이슬람을 신봉하기에 직접 중앙아시아 각국의 현지인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 사역에 큰 어려움이 따르게 되어있다. 특히 필자가 초기(1991년 이후) 사역을 했던 우즈벡은 선교의 황금어장이라 할 정도로 큰 결실이 있었는데, 2001년 미국 9.11테러 사태 이후로 점점 악화되더니, 언론 탄압국 3위가 되었고,18) 기독교 박해지수가 심각하여 제한 지역에 해당되는 순위로서 2013년도에 16위를 차지헸다.19) 중앙아시아 각국은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대외적으로는 헌법에 종교의 자유를 표방하고 있으나, 대내적으로는 자국민의 개종을 매우 불쾌하게 생각하며 모든 수단 방법을 최대한으로 동원하여, 자국민 단속과 교묘한 종교법을 적용하고 있다. 따라서 전도 대상에 대한 선정과 방법을 지혜롭게 적용하여야 할 안목이 너무도 필요하다. 즉 필자는 과거 우즈벡에서나, 마찬가지로 추방 후 카자흐스탄에서도 아래와 같이 선교 사역을 하였다.
1차적인 사역의 대상으로는 다민족 즉 고려인과 러시아인을 선정하여 시작하였다. 그 이유는 이슬람교를 민족적 화합과 통합의 종교로 삼고 있는 우즈벡(카자흐스탄)은 정부의 내부 방침에 의한 자국민의 기독교화를 강력히 거부하고 유사시 매우 엄격한 종교법을 적용하여, 종교성에서 교회 등록을 취소, 해산 할 수 있는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약 24%의 외국인 중 약 1%를 차지하는 이중 언어를 구사 할 수 있는 고려인들은 우즈베키스탄 아니 구 소련권 전역을 복음화하기 위하여 준비된 자들로서, 선교지 복음화를 위한 제자양육의 최상의 자원임을 알 수 있다.
1991년도 구 소련 해체 이후, 대한민국을 깡통찬 거지들이 가득한 미국의 속국이라고 하는 왜곡된 정보로 가득 차 있었던 소련 인들과 특별히 고려인(대부분 친 북한 계열임)들은 서울의 빌딩 군, 현대, 삼성, LG, 대우 등 공업생산 단지 등을 TV를 통하여 시청하고, 그 엄청난 경제 발전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선교사들에게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이 자신의 조국임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또한 반미 감정에 편승한 대한민국 국민들의 구 소련팀을 응원하면서 호의를 보였고, 그리고 세계 4위라는 스포츠 강국의 위상이 선교적 첨병 역할을 하였다. 그리하여 그 누구도 감히 생각하지 못 했던 1991년 구 소련 해체 후, 우즈벡 선교를 위한 초기 교회 사역에 있어, 재소 고려인들과 우즈벡을 비롯한 전 소련권 현지인들이 적극적으로 선교사들을 환영하며, 협조하는 배경으로 자리함을 필자를 비롯한 당시 모든 구 소련권 한인선교사들이 몸소 직접 체험했다.
더욱이 1991-92년에 한국 선교사들에 의해 세운 현지 교회와 한국어 교실을 통한, 한국 문화와 전통 교육을 통하여, 1-2년 만에 그 동안 친 북한 계열의 대부분 고려인들이 친 남한 계열로 탈바꿈하는 외교적으로 혁혁한 공로, 즉 “한국 정부가 10년을 투자해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외교적 성과를 선교사들로 말미암아 이룩할 수 있었다”고 인정한 서건이 초대 우즈벡 대사와 한국 교육원 원장들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분명하다.
사역적으로는, 초기로부터 우즈벡 대학교에 개설된 한국어학과의 학생 대부분이 교회학교 출신이었음을 잘 알 수 있고, 졸업자 중 많은 현지인들이, 주의 종으로 헌신하여, 현재 교회 지도자가 되어있다. 또한 2차적으로는 훈련된 제자인 고려인과 러시아인 지도자가 우즈벡(카자흐)인을 포함한 현지인을 대상으로 교회 개척 사역을 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3차적으로는 제자 양육을 받은 헌신 된 현지 지도자들을 통하여 우즈벡과 주변 이슬람 국가로의 선교사를 양성 배출하는, 1차, 2차, 3차 단계적 프로그램을 준비하여 시작했다. 이러한 선교 방식은 재소 고려인을 포함한 다민족 사역을 한 중앙아시아 선교사들의 전형적인 방식, 특히 우즈벡(카자흐스탄)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그러므로 중앙아시아에서의 선교사역은 초기 황금어장의 상황에서 시작하였다. 그러나 2013년 현재는 최악의 종교적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따라서 외국인 선교사가 새로 선교사역을 시작을 할 경우, 직접적으로 각국의 국민을 대상으로 공격적으로 선교하기 보다는, 재소 한인인 고려인과 러시아인 그리고 타민족들을 대상으로 사역을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즈베키스탄을 예로 들어 설명하면, 우즈벡에 거주하는 현지 우즈벡인을 제외한 고려인들과 러시아인, 그리고 카자흐인, 타지흐인, 키르키즈인을 대상으로 선교하는 것이 가장 무난하며, 우즈벡인들을 대상으로 지하 사역을 할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환경에 대한 민감성을 가지고, 조심스럽고 지혜롭게 하되 자신의 신분은 일반적인 신분으로 확실히 하고 선교사역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외국 선교사들은 현지인들에게 지도력을 이양하고, 대신 신학교와 현지 지도자 재교육 사역에 집중해야…
필자의 21년 동안의 중앙아시아 선교사역(우즈베키스탄 14년, 카자흐스탄 7년)을 회고 정리하면서, 2013년 현재의 시점에서 외국인 신분으로서의 지금 새로이 현지 교회를 공개적으로 개척하여 시무하는 것은 무모하고, 선교의 효율성을 제한시키는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약 22년 동안 많은 현지인 지도자가 발굴 양성되었으며, 현지 선교사역의 단계가 2단계 이상으로 진행되었고 특히 가장 심각한 원인으로 독재 정권 유지 차원에서의 외국인 선교사들에 대한 탄압과 감시가 노골화되었기 때문이다.
중앙아시아 지역은 1991년 처음 구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약 22년 동안 필자를 포함한 약 2천명 이상의 한인 선교사들이 오고 가며 공개적으로 사역을 한 곳이고, 최근까지도 알찬 열매를 맺고 있는 지역이다.  그런데 지금은 선교사 신분으로, 공개적으로 사역을 할 수가 없다. 또한 그 동안 주변 국가와는 달리 선교사 비자를 주었던 카자흐스탄에서도 선교사비자를 제한하고 있으며,20) 특히 우즈벡은 공식적으로 등록된 현지 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까지 자국 헌법으로 보장된 종교의 자유와 활동을 제한하며,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무차별 핍박을 가하고 있는 상태이다. 21)
필자가 카자흐스탄에서 사역 중, 2009년 2월에 아스타나 종교성 책임자가 “ 이곳에는 현지인 목사와 전도사가 많이 있는데, 왜! 외국인 선교사들이 교회를 담임을 하는가? 이제는 현지인들에게 교회를 맡기고,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곳, 즉 다른 나라에 가서 사역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문제 제기를 필자에게 하였다. 그러면서 “더 현명한 방법은 현지인 목사에게 교회의 지도력을 이양하고, 외국인 선교사들은 신학생 양성과 현지인 목회자 재교육을 시키는 쪽으로 사역의 방향을 잡아야 한다”라고 했다. 참으로 지당하고 합당한 말이다. 정확히 중앙아시아 권에서의 선교의 방향과 목표를 제시해준 충언으로 필자는 받아들였다. 이제 중앙아시아 각 국가와 국민들의 심성이, 참으로 안타깝게도 역사적, 문화적, 전통적 삶의 양식이 자리한 이슬람 종교로 무섭게 유/무의식적으로 자리 매김 하고 있다.
그러나 독자들이 오해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중앙아시아 각 국가 정권이 헌법적으로나 삶의 방식이 중동국가와 같은 근본 이슬람으로의 회귀되었기 때문에, 기독 교회의 현지 지도자과 성도들이, 그리고 선교사들이 핍박과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22) 즉, 그 이유는 독재 정권이 장기집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통치 수단으로서, 종교 탄압을 무차별적으로 자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우즈베키스탄(이슬람 까리모프 대통령)과 카자흐스탄(나자르브에프 대통령)은 독립 초기부터 현재까지 약 22년 동안, 소수의 친인척과 측근들이 권좌를 철옹성같이 지키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종신대통령 위상과 권세를 누리기 위하여, 현 정부의 정적인 근본이슬람 원리주의자들과 서방의 선교사와 NGO 단체,23) 그리고 교회 지도자들을 계속 억압하고 탄압을 할 것이란 사실이다.
그러므로 중앙아시아 지역에서의 외국인 선교사인 한인 선교사들은, 사도바울과 같이 현재 시무하던 교회의 목회 리더쉽을 빨리 현지인 지도자들에게 공개적으로 이양하고, 그들로 하여금 교회의 지도력을 발휘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교회를 개척하도록 후원하고, 지하(비 공개적)에서 지도자 양육과 재 교육을 통한 영적 성숙의 소프트웨어 제공과 지도에 집중, 전념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나가는 말
지금까지 필자는 다음과 같이 실크로드 중앙아시아 지역과 재소 한인 고려인 사역을 정리하였다.
첫째, 재소 고려인은 과연누구인가를 설명하고, 둘째, 재소 고려인들이야말로 진짜 공산주의자였다는 것과, 셋째, 재소 고려인들을 대상으로 한 중앙아시아에서의 교회 개척 사역(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을 중심으로)에 대한 설명과 함께, 마지막으로 외국 선교사들은 “현지인들에게 지도력을 이양하고, 대신 신학교와 현지지도자 재교육 사역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제시하였다.
따라서 필자의 논고를 통한 제안(네 번째 소제목)에 대하여 한국교회와 선교단체, 그리고 파송 받아 선교사역 전념하는 구소련 독립국가 연합(CIS) 현장의 선교 동역자들이 적극 동참하여 줄 것을 호소한다. 그 이유는 필자가 전술한 바와 같이 중앙아시아 각국의 독재 정권이 장기집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통치 수단으로서, 종교 탄압을 무차별적으로 자행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종신대통령 위상과 권세를 누리기 위하여, 서방의 선교사와 NGO 단체, 그리고 교회 지도자들을 노골적으로 계속 억압하고 탄압을 할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 하기 때문이다.
이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선교사역을 제안 하면, 첫째. 현장에서 사역하고 있는 모든 사역자들이 이전 보다 더 야성 있는 복음 안에서의 희생과 복음 전파의 사명자로서의 선교사적 정체성 회복(사도행전 4:17-20)을 해야 할 것이다.
둘째, 처음 선교 사역은 반드시 소그룹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즉 지하사역(가정 모임, 소그룹 제자 훈련) 형식이 9.11테러 이후의 이곳 우즈베키스탄의 선교 사역의 모텔이라 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현지 문화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요하고 한국적인 문화 상황을 심지 말아야 한다.
셋째. 모임이 어느 정도 부흥이 된다면, 현지 교회 등록을 위하여 현지인 지도자를 반드시 내세워야 하며, 그들에게 신학 교육과 더불어 순교자적 야성이 있는 영성 교육이 너무도 필요 하다.
넷째. 위에서 언급한 선교 현장의 상황을 무마할 수 있는 즉, 그들의 필요를 채워 줄 수 있는 지역 사회 계발 (구제, 의료, 장학, 문화 센터, 컴퓨터 센터, 장애인 사역, 언어 센터, 간이 어린이 병원 사역, 직업 훈련사역(미용, 이용), 스포츠 사역 등등)을 위한 NGO 사역이 반드시 전제 되어야만 하며, 이전보다 더 지원이 확대 되어야만 한다.
다섯째. 가장 중요한 것은 당장 눈앞의 열매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순교를 각오한 복음의 확장성과 선포성, 그리고 선교의 획일성이 아닌 다양성을 인정함으로,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24:14) 말씀하신 주님의 음성에귀 기울여 모든 선교 사역이 총력 집중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12제자를 파송하시며 “너희는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 하라(마10:16)” 라는 교훈을 주신 것을, 우리 모두 명심해야 할 것이다. 즉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정신으로, 다가올 종말의 어둠을 대비하고, 효율적 선교를 실천, 실행을 통한 영혼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위하여, 더욱 전심 전력 할 것을 염원하며 본 논고를 맺는다.

참고 문헌
극동문제연구소 편, 소련 동유럽 총람, 서울: 극동문화, 1989.
고무송, 쏘련의 한인들 고려사람, 서울: 이론과 실천, 1990.
김경일, 2005중앙아시아 컨퍼런스: 911테러 이전과 이후의 우즈베키스탄에서의 선교현황 및 전망, 서울: KWMF 중앙아시아 회, 2005.
블라지미르 김, 러시아 한인 강제 이주사, 김현택역, 서울: 도서출판경당, 2000.
이미생, 미주한인연합감리교회역사, 네쉬빌: 섬기는사람들, 2010년 1-2월호.
사무엘 헌팅톤, 문명의 충돌과 21세기 일본의 선택, 소 순창. 김 창동 역, 서울: 김영사.  2001.
전호진, 이슬람 종교인가? 이데올로기인가?,  서울: SFC, 2002.
조동진, 2005중앙아시아 컨퍼런스: 북방 선교의 실크로드 중앙아시아의 의미, 서울: KWMF 중앙아시아 회, 2005.
최한우, 중앙아시아학 입문, 서울: 도서출판 펴내기, 1997.
경향신문1995년 8월 8일자, “日帝下 해외희생자 발자취를 찾아서 <5>러시아편”,
미션라이프 2010년 5월 19일자, 2010년 국가별 선교사 파송 현황,
미션투데이 김경일컬럼, http://www.missiontoday.co.kr/colum/columnRead.php?num
=177&code=p028&PHPSESSID=af623bbadbc666c84efa0f7baf983ced
사)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2013년 1월 7일, 2012년 12월 말 기준으로 한국 선교사는 169개국 24,742명으로,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2011년 1월 31일, 언론에서 본 KWMA,
한국오픈도어선교회, 2013 기독교 박해지수와 박해국가 50개국 순위와 정보
(http://www.opendoors.or.kr/world-watch-list/country-profile-overview/uzbekistan/)
크리스천투데이 2011년 1월 .27일자, 세계 선교 무게중심, ‘선교단체’에서 ‘교단선교부’로?
크리스천투데이2012년 5월 3일자, 북한, 32년째 ‘최악의 언론 탄압국’에 뽑혀
푸른섬선교정보/매일선교소식2697호-2012.8.27(월) 카자흐스탄-김**선교사
__________________ 2675호-2012.7.24(화),우즈베키스탄, 불법 종교교육 혐의로 3년형 위기,
__________________ 2639호-2012.5.22(화), 우즈베키스탄, 신고 안된 성경압수 파쇄
_________________ 2488호-2011.9.23(금), 카자흐스탄, 선교사 신고제, 공공기관 기도실 폐지,
위키사전, 탈라스 전투(Battle of Talas), 삼정의 문란(三政-紊亂), 볼세비키 혁명, 고려인(高麗人), 또는 고려사람(러시아어: Корё сарам), 2013.
각주)—————–
김경일 선교사는,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 Div)과 미국 인디아나 그레이스대학 신학대학원에서 “크리스천 사업가들 의 재물관 의식 개혁을 통한 21세기 세계선교 활성화 연구” 논문으로 선교학 박사(D. Miss)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에서 가이오 세계선교회(GWM) 총무 7년, GMS중앙아시아 주재선교사 21년(우즈베키스탄 14년, 카자흐스탄 7년), 선교 경력 28년째인 그는 현재 세계한인선교사 회(KWMF) 사무차장, 뉴마게도나아 월드미션(NMWM) 대표로 섬기고 있다.
사)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2013년 1월 7일, 2012년 12월 말 기준으로 한국 선교사는 169개국 24,742명으로 2011년에 비해 1,411명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만4742명의 선교사 중 교단 선교부 파송은 43%이며, 선교단체 파송은 57%로 조사됐다.
미션라이프 2010년 5월 19일자, 2010년 국가별 선교사 파송 현황, 1위 미국 4만6381, 2위 한국 2만1000, 3위 영국 5666, 4위, 캐나다 5337, 5위 독일 3228, 6위 오스트레일리아 2019, 7위 브라질 1912, 8위 남아프리카공화국 1465, 9위 뉴질랜드 1275, 10위 핀란드 1260로잔국제 복음화 운동(2007 ? 2010) 통계
사)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2011년 1월 31일, 언론에서 본 KWMA, 한정국 KWMA 사무총장은 “개별 교회나 단체가 파송한 선교사까지 파악할 수는 없었다”며 “파악된 선교사 수보다 30% 많게 활동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현재 세계 최대 선교사 파송국은 미국으로 4만 여명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한국 선교사들이 모두4년 이상 장기선교사인 데 반해 미국은 단기선교사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장기 선교사의 경우 2∼3년 이내에 미국과 같은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크리스천투데이 2011년 1월 .27일자, 세계 선교 무게중심, ‘선교단체’에서 ‘교단선교부’로?  “개척 지수별 선교사 현황
이미생, 미주한인연합감리교회역사, 네쉬빌: 섬기는사람들, 2010년 1-2월호, 25.
조동진, 2005중앙아시아 컨퍼런스: 북방 선교의 실크로드 중앙아시아의 의미, 서울: KWMF 중앙아시아회, 2005.
탈라스 전투(Battle of Talas)는 751년 7월 ~ 8월 사이에 고구려 출신 당나라 장수 고선지 장군이 지휘하는 당나라군과 동맹군 티베트가 아바스 왕조, 카르룩 연합군을 상대로 지금의 타쉬겐트 부근 탈라스 강 유역에서 중앙아시아의 패권을 두고 싸운 전투였다.
김경일, 2005중앙아시아 컨퍼런스: 911테러 이전과 이후의 우즈베키스탄에서의 선교현황 및 전망, , 위 필자의 연구 발제안을 바탕으로 2013년에 맞게 최신 정보자료를 첨가 하였음을 밝힌다(필자 주).
고려인(高麗人), 또는 고려사람(러시아어: Корё сарам)은 구 소련 붕괴 후의 독립국가연합 전체에 거주하는 한민족을 이르는 말이다. 한반도 일대를 지배하던 옛 국가인 고려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으며, 한국인과 조선인을 절충하기 위해 고려인이라 부른다. 이들 국가에는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스탄, 우크라이나, 몰도바 등이 포함된다(위키백과, 2013). .
극동문제연구소 편, 소련 동유럽 총람, 서울: 극동문화, 1989, 574. 1896년 북한 함경도 지방에 흉작과 기근이 들어 이 지역으로 520명의 한국인이 대거 이주 했다.
삼정의 문란(三政-紊亂)이란 조선시대 국가 재정의 3대 요소인 전정(田政 토지세)·군정(軍政-16세~60세의 농민이 국가에 바치는 군포), ·환정(還政: 정부 보유 미곡의 대여 제도)이 문란해졌음을 말한다(위키백과, 2013).
극동문제연구소 편, 소련 동유럽 총람, 575. 최후의 이민 물결은 1917년과 1923년 사이에 일어났다 1923년의 한국인 총수는10만 6817명에 달했으며, 이때 이주민 대다수는 연해주에 정착했다.
블라지미르 김, 러시아 한인 강제 이주사, 김현택역, 서울: 도서출판경당,2000, 37-38. “소연방 인민위원회의 명령 No 16747-377ss 1937sus  9월 28일, 모스크바, 크렘린 극동지역으로부터의 한인이주에 대해 소연방 인민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명령한다”. 라는 명령에 의하여 강제 이주가 집행되었다(필자 주).
경향신문1995년 8월 8일자, “日帝下 해외희생자 발자취를 찾아서 <5>러시아편”, 소련당국은 1935년부터 3년 동안 2,500명의 고려인을 “일본 간첩”이란 혐의로 총살하기도 했다.
블라지미르 김, 러시아 한인 강제 이주사, 33.“구 소련 인민위원회의와 전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1937년 8월 21일자 명령 No. 1428-326ss ‘극동 국경지역에서의 한인 이주’”. 몰로토프와 스탈린 서명. 그 해 9월부터 12월까지 약 17만 명의 한인(우즈베키스탄에 약 74,500명, 나머지 카자흐스탄과 그 외 지역으로 이주)들을 강제 이주를 시켰다.
볼셰비키혁명일 1917년 11월 7일(러시아력 10월 25일) 10시 볼셰비키 1,000여명의 적위대의 급습으로 임시정부 타도에 성공한다. 여기에서 당시 민심은 볼셰비키를 향한 지지도는 어느 정도 있었어도 케렌스키 임시정부에 대해서는 지지하는 자가 거의 없었다. 좌파, 우파 등 그 누구도 임시정부를 지지하지 않았고, 정부는 공허 속에 있었다. 그렇게 됨으로써 볼셰비키의 적위대가 주도한 혁명은 무혈혁명으로 성공을 거뒀다. 이어서 레닌은 ‘모든 권세가 소비에트로 넘어왔음’을 선포함으로써 10월 혁명이 이루어진다.(위키사전, 2013)
크리스천투데이2012년 5월 3일자, 북한, 32년째 ‘최악의 언론 탄압국’에 뽑혀, 국제인권감시단체 프리덤하우스가 1일 발표한 2012 국제 언론자유 보고서에서 전세계 197개국 중 북한의 언론자유 상황이 최악이라고 발표했다. 북한 다음으로는 투르크메니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이 96점과 95점으로 2, 3위를 기록했으며…,
한국오픈도어선교회, 2013 기독교 박해지수와 박해국가 50개국 순위와 정보, 박해지수 61…,2011년 보다 3.5점 증가, 7년 연속 우즈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 국가 중 기독교박해지수 최상위 국가로 평가 받고 있으며, 박해지수가 작년보다 상당히 올랐다. 현 정권이 여러 가지 이슬람 운동과 싸우고 있다고는 하지만 우선적으로 권력을 유지하는 데에 급급해 있다. 미등록교회의 모든 활동은 교회안과 밖에서 엄격하게 금지되고 있으며, 청소년 사역과 봉사활동, 세미나와 훈련 또한 금지되고 있다 2010년에도 우즈벡 크리스챤들에 대한 박해가 심했다. 교회 습격의 건수가 늘었고 그 때문에 재판 건수도 늘었다. 불법 종교활동의 벌금은 최소 급여의 백배에 달했으며 단기 구금형 (3-15일)이 선고된 사례가 빈번해졌다.
(http://www.opendoors.or.kr/world-watch-list/country-profile-overview/uzbekistan/)
푸른섬선교정보/매일선교소식 2697호-2012.8.27(월) 카자흐스탄-김**선교사, 지난 해 10월 이 나라에 신종교법이 발효된 후 6개월씩 받아오던 선교사 비자를 받지 못하는 저희는 법망을 피하여 쫓고 쫓기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현실에, 당황과 혼란, 그리고 두려움으로 살아오고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제 삼국에 나가서 1개월 혹은 2개월의 관광 비자를 받아 살아가는 일은 그야말로 살얼음을 걷고 있는 느낌입니다. 그러나 전국 ‘교회재등록’이라는 현실적 과제 앞에 마냥 숨죽이고 숨어있을 수만 없는 실정이기 때문에 이런 저런 방법으로 서류를 갖추어 제출하고 또 정부기관의 답을 받아내기를 추구하고 있습니다(http://kcm.kr/mio_view.php?nid=38323&kword=).
2675호-2012.7.24(화), 우즈베키스탄, 불법 종교교육 혐의로 3년 형 위기, 6월에 다시 관리들이 수색영장을 들고 교회에 들이닥쳐 다시 모인 모든 교인들을 교회 밖으로 좇아내고 교회 내의 유인물과 악기, 악보, CD, 복사기, 성경 등을 압수했다. 압수 수색이 진행 되는 동안 교인들은 교회 밖에서 모여 기도하며 찬송을 불렀다고 한다. 이에 관리들은 교인들에게 체포와 기소 협박을 하고 이들의 모습을 비디오로 채증 했다. 2639호-2012.5.22(화), 우즈베키스탄, 신고 안된 성경압수 파쇄 최근 우즈베키스탄에서 경찰이 기독교인들이 모임을 갖던 한 가정집을 덮쳤다. 경찰이 들이닥친 명목상의 이유는 폭발물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첩보가 입수되어 수색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수색 과정에서 기독교 관련 서적과 랩톱컴퓨터 등을 압수했고, 현장에 있던 14명의 기독교인들은 가정집에서 허가되지 않은 종교모임을 가졌다는 이유로 벌금을 부과 받았다. 또 집 주인인 나탈리야 킴은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의 평균 월수입의 60배에 이르는 거액의 벌금을 부과 받았다. 또 로시프 스카예프의 집도 수색을 당했고, 성경 150권과 여권, 그리고 몇몇 개인소지품을 압수 당했다. 또 다른 곳에서는 카자흐스탄에서 국경을 거쳐 우즈베키스탄으로 들어가던 기독교인 3명이 소지품 가운데 성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벌금을 부과 받고 성경을 압수 당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2488호-2011.9.23(금), 카자흐스탄, 선교사 신고제, 공공기관 기도실 폐지, …,이처럼 기독교 뿐 아니라 이슬람에 대한 견제도 강화하는 것은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의지에 따른 것이다. 그는 키르기즈스탄과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과 카자흐스탄이 함께 걸쳐 있는 인구밀집 빈민거주지역인 페르가나 계곡 지대를 중심으로 이슬람 강경주의가 세를 얻고 있는 것에 대한 견제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구소련 권 전역에 불어 닥친 민주화 열풍의 배후가 NGO 단체라는 오해와 피해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구 소련 연방에서 분리된 그루지아의 장미혁명(2003년 11월),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혁명(2004년 12월), 키르기스스탄의 레몬 혁명(2005년3월)등 등이 우즈베키스탄 주변에서 강하게 좁혀왔는데, 결국 그 여파로 말미암은 2005. 5. 13 우즈베키스탄 안지쟌 시에서 벌어진 시위가 벌어지게 되었고, 키르기스스탄 레몬 혁명의 무서움을 체험한(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의 해외망명) 우즈베키스탄 카리모프 대통령에 의한 안지쟌 대학살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전 그루지아 대통령이었던 독재자 세바르드나제가 중앙아시아 각국을 방문하여 “자신이 정권에서 축출된 것은 NGO 활동(2003년 오픈 소사이어티연구소(OSI)가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타지크스탄, 투르크메니스탄등 5개국에 2억 달러를 투입했으며, 또한 공정선거 촉구 빌미로 우크라이나, 그루지야 등지에서 치밀한 선거 개입을 했다고 주장)을 통제 못했기에…,”(미션투데이 김경일 컬럼, 2006)
http://www.missiontoday.co.kr/colum/columnRead.php?num=177&code=p028&PHPSESSID=af623bbadbc666c84efa0f7baf983ced

각주)—————–

전방개척선교 KJFM 2013년07~08월호

 

This entry was posted in 선교사소식 Missionary News, 자료실 Reference Board. Bookmark the permalink.
No.TitleWriterDateHit
73 에콰도르(EQUADOR)선교편지-장다슬, 전수미선교사 webmaster 2015.11.19 1257
72 중앙아시아에서의 선교사역 webmaster 2015.11.09 6731
71 몽골의 상황과 선교전략 webmaster 2015.11.09 4584
70 Pray for Mongolia Mission webmaster 2015.11.07 1721
69 콰테말라 선교소식(최상현선교사) webmaster 2015.10.09 1422
68 파라구와이 전승천선교사 소식 webmaster 2015.09.18 1901
67 남미 에콰도르 선교소식(Mission Ecuador) webmaster 2015.07.18 2845
66 65th Anniversary of the beginning of the Korean War webmaster 2015.06.20 2566
65 Yard Sale webmaster 2015.06.14 2411
64 뉴욕연회 선교금상 NYAC Mission Glocal Award webmaster 2015.06.13 3486
< Prev ... 1 2 3 4 5 6 7 8 9 10 12 ... Next > 

롱아일랜드연합감리교회 Long Island Korean United Methodist Church
486 Town Line Rd., Commack, NY 11725 | Tel (631) 508-9135
COPYRIGHT © 2012 Long Island Korean United Methdist Church. All Rights Reserved. Powered by Long Island Korean United Methodist 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