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신학논점] 한반도 통일의 실크로드의 의미와 그 영적 중요성
최하영(유라시아선교전략연구소 소장)
들어가는 글
대한민국의 한반도를 통한 북방의 길은 반드시 열려야 한다. 그것은 한반도의 배달민족이 유목민 DNA을 가졌기 때문이다. 배달민족은 늘 북방의 광활한 지역을 넘어 옛 실크로드 따라 삶의 터전을 이루어 왔었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은 삼면의 바다로만 나갈 수 있다. 이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그 유목민 DNA를 ‘디지털 유목민’으로서 거듭났다. 이제 때가 되어 옛 실크로드 따라 새로운 관점으로 그것을 복원하고 있다. 이에 대한민국 대통령부터 한반도 통일을 “대박”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 옛 실크로드를 누가 지배하느냐 따라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이 옛 실크로드는 비즈니스의 길이요 종교문화의 길로 동서문명의 교류를 이어왔다. 그러나 이 옛 실크로드는 14세기부터 발생한 흑사병1)과 15세기 유럽의 르네상스와 신대륙 발견으로 그 효율성이 약화되었다. 더구나 공산이데올로기와 남북분단으로 이 옛 실크로드가 완전히 잊혀지는 듯했다. 그러나 최근 세계정세는 이 옛 실크로드를 오늘의 인적·물적· 자원의 길로 복원하려고 한다.
2014년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차지하고 우크라이나 동부의 내전에 관여하고 있다고 생각한 유럽과 미국의 경제제제와 원유가의 급락으로 경제의 어려움을 겪자 이에 돌파구로 그동안 계획했던 동북아를 통해 물꼬를 트려고 한다.
이런 기회에 한반도의 통일을 통해 한반도가 세계의 허브(Hub)가 되길 소망해 본다. 배달민족의 유목민 DNA를 실제로 활용했으면 한다. 그래서 다시 새 실크로드를 구축하여 디지털 유목민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보다 더 넓은 세계를 향해 나아가길 소원한다. 그래서 25년 전 독일통일을 교훈 삼아 한반도 통일을 점검해 보고자 한다. 2015년은 한반도 분단 70주년을 맞이한다. 이에 다시 한반도 통일을 내다보면서 새 실크로드의 그림을 그리면서 영적으로 교회가 해야 할 일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옛 실크로드와 배달민족의 유목민 DNA
남북한의 7천만 국민 대부분은 배달민족2)으로 유목민 DNA를 가지고 있다. 그 배달민족은 텐산산맥을 넘어 옛 실크로드를 따라 광활한 삶을 살아왔다. 그래서 배달민족의 대표적인 민요가 ‘아리랑’으로 2012년 12월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 아리랑3)에 대한 필자의 주관적인 해석은 다음과 같다. 아리랑의 ‘아리’는 ‘엘’(לא.Ēl)로 ‘하나님’이란 뜻이고 ‘랑’은 ‘누구와 함께’란 뜻으로 ‘아리랑’은 ‘하나님과 함께한다’란 뜻이다. 그리고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고 할 때 그 ‘고개’가 바로 텐산산맥이다. 그래서 2절의 ‘청천하늘에 별들이 많다’는 옛 실크로드 따라 펼쳐진 밤하늘을 말한다. 필자가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와 타쉬켄트를 오가면서(자동차로 4시간, 15년 200회 이상), 특히 밤에는 많은 별로 인해 우주공간을 달리는 것 같았다. 다음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는 것은 ‘님’이신 하나님을 버리??가면 안된다는 뜻이다.
옛 실크로드는 여러 갈래가 있었다. 첫째, 초원의 길로 가장 오래된 실크로드 길이다. 중국 한나라 이전부터 북방 초원 지대를 동서로 횡단하는 길이다. 이 길이 바로 한반도 배달민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둘째, 전통적인 옛 실크로드 길인 오아시스길이다. 이 길은 대개 장안을 출발하여 둔황, 투르판, 카쉬카르, 사마르칸트, 바그다드, 콘스탄티노플, 로마의 길이다. 셋째, 바닷길로 1세기 중엽에 로마의 항해사였던 히파루스(Hipalus)가 아테네로부터 홍해를 지나 인도양으로 향하는 직항로를 개척하면서 시작되었다.이 옛 실크로드는 동서 문명 교류의 길로서 비즈니스 길이요, 종교의 길이었다. 종교로는 동방기독교(페르시아, 시리아)와 마니교(위구르 제국), 조로아스터교(사산왕조), 불교(인도), 이슬람(압바스 왕조)이 이 옛 실크로드따라 전파되었다.
특히 북방 유목민족은 지난 2천년 이상 옛 실크로드를 따라 인류 문명사에 큰 자국을 남겼다. 이 옛 실크로드 중심에 6-7세기 투르키스탄 제국((Turkestan, 돌궐, 552-734)과 8-9세기 위구르 제국(Uighur, 744-840), 10-12세기 압바스 이슬람 왕조, 13-14세기 몽골 제국, 15세기 티무르 제국(Timur)이 지배하였었다. 그리스 로마 역사가 프리에(Frye)는 이 실크로드 따라 기원전 1,000년은 스키타이인(Scythians)이, 기원후 500년은 훈족이, 그 다음 500년은 투르크족(Truks)과 몽골족(Mongols)이 통치한 기간이라고 하였다.4)이 옛 실크로드따라 중개한 민족(Caravan, 隊商)이 1세기부터 국제상인으로 명성을 떨쳤던이란계 소그드인(Sogdian)이다. 이렇게 15세기까지 북방 유목민이 옛 실크로드 따라 세계의 문명을 리드하였던 것이다. 그 한 예로, 11세기 서방 십자군이 예루살렘에 들어 왔을 때 당시 시리아 원주민들은 유럽 기독교 문화, 특히 과학과 의학이 압바시드의 아랍 페르시아 문화보다 더 열등하고 다소 야만적인 것에 충격을 받았다고 하였다,5)
이 옛 실크로드 따라 특이한 것은 기독교 공동체가 왕성하였고 이들 기독교인들이 천 년간 북방 유목민 제국의 교사로 문명을 일깨워주었던 것이다. 이미 1000년에 바그다드의 네스토리안 총대주교는 아시아 약 250명 주교와 20개의 대주교구(archbishoprics)와 인도와 중국까지 관할하였고, 전 세계 2억 7천만 인구와 5천만 기독교인들 중에 1,200만을 주관하였었다.6) 특히 현재 이슬람화 된 중동이 한때 기독교 르네상스 시대가 있었다는 것이다.1251년 칭기즈칸(Genghis-Khan)의 손자 몽케가 몽골제국의 4대 대칸이 되었을 때, 그의 첫째 동생 쿠빌라이에게 중국을, 그의 셋째 동생 훌라구(Hulaku, 대략 1217-1265)에게 페르시아 지역을 맡겼다. 훌라구는 일칸국(IL khan)을 세워 45년간(1251-1295년)의 기독교 르네상스를 이루었다.이 시기를 일컬어 옛 로마제국의 로마의 평화(Pax Romana)와 견줄 타타르의 평화(the Peace of Tartan)라 부른다. 이 시기에 동서간의 여행과 교역이 자유로웠다.7)이로 보건대, 배달민족 유목민도 일찍이 복음을 들었을 것이다. 이 옛 실크로드를 오늘에 복원하려고 한다. 그로 통해 한반도 통일이 점점 가시화된다는 것이다.
새 실크로드의 복원과 그 미래
최근 러시아는 ‘신동방정책(New East Asia Policy)’을 통해 시베리아횡단철도(TSR)라는 유라시아 철도를 기반으로 동북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2013년 ‘새 실크로드(New Silk Road)’라는 ‘일대일로 (一帶一路: One Belt, One Road)’ 전략구상에서 옛 실크로드의 화려한 부활을 통해 유라시아 경제의 중심국으로 도약하려고 한다.이 두 나라의 계획에 북한과 긴밀한 연관이 있게 되면서 한반도 통일에 한 줄기 빛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대한민국도 ‘유라시아 이니셔티브(Eurasia Initiative)’의 추진을 통해 러시아와 중국, 중앙아시아, 유럽의 대륙경제권을 하나의 통합된 시장으로 유인하고 있다.8)이에 북한과 러시아의 나진-하산 프로젝트와 북한과 중국의 나진-훈춘 프로젝트를 통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구체화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남·북·중·러 4자구도로 협력해 나가야 할 것이다. 2014년 10월에는 제10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평화통일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음을 밝혔다. 이렇게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에 따른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 구상은 한반도종?報떫?TKR)를 시베리아횡단철도(TSR, 9,288Km) 및 중국횡단철도(TCR, 4,018km)와 연결하여 한국이 북한과 중국, 러시아, 중앙아시아, 유럽까지 관통하는 복합물류 네트워크이다.9)
우리는 곧 서울에서 신의주(486㎞)까지 2시간, 베이징까지 4시간만에 갈 날을 기대해 본다. 다시 베이징에서 TMGR(몽골 횡단 철도)을 통해 울란바토르를 거쳐 울라우데에서 TSR(시베리아 횡단 철도)과 합류한다. TSR은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해 모스크바와 바르샤바·베를린·브뤼셀을 거쳐 파리까지 갈 수 있다. 서울에서 기차 타고 유럽 여행하는 일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10) 이것이 바로 새 실크로드로 한반도 통일을 촉진케 할 것이다.
독일통일을 통한 한반도 통일의 자세
독일통일은 결과적으로 보면 이미 다양한 방법으로 열망과 준비가 있었다. 한반도의 배달민족도 마찬가지라 생각된다. 이에 독일통일을 통한 교훈을 얻어 그에 따라 새 실크로드 따라 경제통통합을 이뤄 자연스럽게 한반도 통일이 이루어지리라 생각된다.
독일통일의 계기는 1983년 가을라이프찌히(Leipzig)에서 오십 여명의 청년들이 반핵시위를 하다가 니콜라이교회(Nikolei-Kirche)로 도망쳤는데, 그곳에서 매주 월요일 기도회로 이어져 오다 급기야 1989년 9월 11일에 목사와 재야 민주 운동가들이 새 포럼(NeuseForum)을 결성하였다. 이 새 포럼 중심으로 60만까지 모이더니 11월 4일에 동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에 백만 명이나 모여 언론의 자유와 민주화, 여행의 자유를 위한 시위를 하게 되었다. 이에 11월 9일에 여행 자유화 법안이 발표되면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1961년 8월 13일 장벽이 세워진 이후 28년 만에, 동서독이 갈라진 지 44년 만의 통일인 것이다.
이미 독일통일의 몇 가지 요인이 있었다.그 중에 동서독교회의 강단교류와 중보기도, 후원 등 활발한 교류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65세 이상은 서로 교차방문이 1년에 한 달간 가능했었다. 또한 동서독간 국민들이 서로 상대방의 TV 방송과 Radio 청취가 자유로웠다. 때 맞춰 당시 소련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개방정책도 큰 역할을 했었다. 더구나 서독정부가 “지나친 경제적 차이는 통일을 방해한다”는 인식하에 인내하며 동독을 도왔던 것이다.11)
오늘날 통일독일은 동독의 유산을 많이 받았다. 그 중에 유능한 정치인을 배출하였다. 3번째 연임 중인 메르켈 총리와 요아힘 가우크(Joachim Gauck) 대통령, 그레고어 기지(Gregor Gysi) 좌파당(Die Linke) 원내총무 등이다. 또한 1,700만명에 이르는 동독 국민이 서독기업의 매출을 높여주었고 동독 젊은이들이 서독의 경제활성화에 도움을 주었다. 벤델린 스트루벨트(Strubelt) 전 독일 연방건설청 부청장은 “통일 전 서독의 동독 인프라 건설 지원은 통일 비용을 줄이고 (통일 이후) 해외 투자를 촉진시키는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12) 독일 베르기슈 글라트바흐대 슈테판 브라첼(Bratzel) 교수는 “독일 자동차산업 종사자 수는 통일 후 2배 이상 급증했다”며 “서독 자동차 기업은 동독 지역의 저렴한 부동산 가격과 동독 출신의 값싼 노동력을 적극 활용했다”고 말했다.13) 한편, 통일후 동독의 상품브랜드 700개 중 120여 개가 살아 남았다.14) 그 외 보행자 신호등의 보행자 형상인 모자 쓴 암펠만(Ampelmann)이 채택이 되고 그 암펠만 디자인 사용한 티셔츠. 가방. 시계 등 수많은 상품에 활용되고 있다.
독일 베를린-브란덴부르크 사회과학연구센터가 지난 2010년 서독 지역 주민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독일통일 후 20여년이 지나면서 구(舊)서독 지역 주민들의 70%가량은 ‘통일 후유증을 별로 느끼지 못하며 더 행복해졌다’고 하였다.15) 독일의 세계적 광학 기업 카를 차이스(Carl Zeiss)의 마이클 카슈케(Kaschke) CEO는 “통일은 잠자고 있던 서독 기업의 잠재력을 일깨운 자명종이었다”고 했다. 그는 “동독을 통해 동유럽 등 세계시장으로 뻗어 나갈 수 있었고, 동독의 특화된 기술력도 흡수할 수 있었다”고 했다.16)
이렇게 우리는 독일통일 과정과 그 후의 통일독일 상황을 보면서 한반도 통일은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사실, 분단 독일과 분단 한반도 상황은 여러 면에 확연히 다르다. 즉, 북한은 전형적인 폐쇄·독재국가이다. 그러기에 대중들의 시위는 엄두도 못 낸다. 또한 교회의 교류도 아주 제한적이다. 방송 청취는 더더구나 통제되어 있다. 그리고 한반도는 분단과 함께 전쟁을 치러 적대적 감정도 있다. 독일 분단 40년보다 더 긴 한반도 분단 70년이 되었다. 이로 통해 문화적 이질감은 더 커졌다. 그러나 독일통일 후 경제가 ?苡틂ぐ?서로의 장점을 활용함으로 시너지 효과를 누리고 있듯이 한반도 통일도 여러 면에 장점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가장 큰 장점은 한반도를 넘어 배달민족의 유목민 DNA을 펼칠 수 있는 유라시아가 열린다는 것이다.
맺는 글
한반도 통일을 위한 분위기가 달아 오르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DMZ 세계생태평화공원 건설과 평화통일헌장 제정 및 북한 주민의 삶의 질 개선방안 마련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한반도 통일을 준비하고 있다. 남북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과 나진-하산 프로젝트, 한국과 중국, 러시아, 몽골이 참여하는 광역 두만강 개발계획(GTI, 2016년)이 잘 수행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국제사회와 공동으로 북한 민생인프라 개선과 경제개발발전전략 수립 등 북한지역 개발을 위한 협력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한반도 통일은 하나의 아시아를 완성하고, 태평양과 유라시아를 연결하여 21세기 새 실크로드를 완성하는 평화와 번영의 상징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해 보자. 독일의 헬무트 디펜바흐(Helmut Diefenbach) 목사는 “독일의 통일은 하나님의 은혜”((Der Mauerfall war ein Gnadenakt Gottes)고 하였다. 그러면서 “북한 땅에 숨겨져 있는 보물들을 찾아라”(Die Schätze des Landes finden)고 한다.17)
한국교회도 오랫동안 한반도 통일을 위해 노력을 해 왔었다. 특히 필자가 대학생일 때(1981~85) 영적도전을 준 김준곤 목사(1925~2009)는 “한 손에는 복음을, 한 손에는 사랑을”라는 모토를 걸고 북한 구원과 북녘 동포를 돕는 일에 앞장섰다. 이에 매일(1) 오후 1시에 1분간 북한 구원을 위해 기도운동을 일으켰다. 특히 “생존권이 소유권보다 우선한다”는 성경의 가르침과 “밥을 같이 먹으면 식구”라는 동포애를 역설하면서 북한 동포 돕기에 앞장서 왔었다.18) 오늘도 이 운동은 계속되어 하나님 때를 기다려야 한다. 우리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다. 그분께서 한반도 통일의 길을 여실 것이다.
각주
1) 옛 실크로드의 쇠퇴 원인 중 하나가 흑사병 때문이다. 이 흑사병은 옛 실크로드를 따라 중앙아시아 초원지역(Issyk-Kul 부근)에서 최초로 발생하여(1337년경), 킵차크(금호르드) 영내로 들어갔다가(1345년경), 거기에서 유럽과 서아시아(1347년경)로 퍼졌다. 최하영, 실크로드를 따라 유목민에게 나타난 천 년의 교회역사(서울: 학술정보, 2007)을 참조.,
2) 지금 대한민국은 100만 명이 넘는 다문화민족이 살고 있다. 그들도 배달민족과 동화되어 산다면 또한 배달민족이라 생각된다.:‘배달’은 순수한 한국말이다. 배달의 어원은 ‘밝달’로 ‘빛의 근원’ 이란 뜻이다. 조선(朝鮮)·한(韓)과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오늘날 개념이 확대되어 한국, 특히 한민족을 가리키는 순 한국어 표현이다. http://ko.wikipedia.org/wiki/배달, 2014.11.09 입력; 배달겨레에서 갈라져 나간 민족들은 말을 아주 잘 타고 활을 잘 쏘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기마종족이라고도 한다. 몽골과 여진, 돌궐(Turkestan), 거란, 선비, 흉노(Huns) 등이 바로 그들이다.배달민족은 우랄 알타이 언어 계통의 퉁구스 몽골인종에 속하므로, 서방의 헝가리까지 동족개념에 포함된다고 볼 수도 있다.http://blog.sina.com.cn/s/blog_7ac9040001019mk5.html, 2012.09.16 입력.
3) 가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여기에 경기아리랑 2절을 추가하면, 청천 하늘엔 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엔 꿈도 많다; 여기에 아리랑 찬송가를 소개한다. 하나님 아버지 사랑해요 하나님 아버지 고마워요. 나를 위하여 독생자 주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해요/ 예수님 예수님 사랑해요 예수님 예수님 고마워요. 나를 위하여 십자가 지신 예수님 예수님 감사해요/ 성령님 성령님 사랑해요성령님 성령님 고마워요. 나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성령님 성령님 감사해요/ 할?섭聆念섭?할렐루야 할렐루할렐루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할렐루 할렐루야. 김정복 목사 작사, http://wmcprayer.org/xe/index.php?document_srl=1016&mid=Pastor_Kim_Column_Articles, 2013.04.17 입력.
4 ) R. N. Frye, The Heritage of Persia: 2nd ed(London, Cardinal, 1976), 255.
5) F. Gabrielli, Arab Historians of the Crusades(Berkeley: Univ. of California Press, 1969), 76.
6) A. R. Vine, The Nestorian Churches. A Concise History of Nestorian Christianity in Asia From the Pesrian Schism to the Modern Assyrians( London: Independent Press, 1937), 112-124; 옛 실크로드 따라 로마 가톨릭과 분리되어 나온 동방교회(네스토리안) 대주교구가 이미 497년에 Kaskar, Khurasan(Merv), Nisibis, Teredon(Basra), Adiabene(Erbil, Arbela), Garamaea(Karkha), Atropatene(Taurisium)에 세워졌고 1000년까지 세워진 곳은 Gundishapur(834 설립), Mosul(651), Holwan(754, 나중에 Hamadan을 포함함), Fars(아마 650??전 Rewardashir에 설립), Herat(7세기), Arran(약 900년 Bardaa에 설립), Teheran 부근 Rai(약 778), 카스피해 부근 Dalian(약 780년 Mukar에 설립), China(약 636년 Chang’an에 설립), Damascus(약 7세기 말 설립), Trukestan(약 781년 Samarkand에 설립), India(약 800년), Jerusalem(1065년에 설립, 순례 가능).
7) A. C. Moule and P. Pelliot. eds. Marco Polo: The Description of the World. 2 vols(London: Routledge & Sons, 1938), 121.
8) 원동욱,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한반도 평화통일』: “일대일로(一帶一路)’와의 정합성을 중심으로”(2014), 1.
9) 원동욱, Ibid., 2, 13.
10) 황대진, “서울~베이징 고속鐵로 4시간”, 조선닷컴, 2014.01.08 입력.
*선교타임즈 2015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