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들의 이동은 대체로 상승기류를 타고 날아갑니다. 밑에서 올라오는 더운 공기를 탈 때 힘들이지 않고 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그 장거리를 자기 힘으로 날아간다면 지치고 힘이 들어 불가능한 것입니다.
조류학자들에 의하면 날아가는 기러기를 통하여 몇가지 교훈을 얻을 있다고 합니다.
첫째, 기러기는 혼자 나는 것보다 떼를 지어 날 때 71%나 더 오래 날 수 있다고 합니다. 혼자가 아닌 함께 하는 힘이 강하다는 교훈입니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은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서 4장 11절에 의하면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신명기 32장 30절에는 “한 사람이 천을 쫒으며 두 사람이 만을 도망케 한다”고 했습니다. 협력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둘째. 기러기들은 날면서 계속 웁니다.
이것은 힘든 비명이 아니라 자신의 위치를 알리고 서로를 격려하는 나팔소리와 같은 것입니다. 힙겹게 먼 길을 날면서도 가족과 동료를 격려하는 기러기의 울음소리는 함께 모여 마음을 합해 중보기도하는 모습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현실을 바라보며 탄식하며 울며 부르짖어 기도할때 하늘문이 열리고 사람들의 인정을 불러옵니다. 중보기도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격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성도의 삶에 있어서 최고의 격려입니다.
셋째, 기러기 한 마리가 부상을 당하여 함께 여행을 계속하지 못할 경우 반드시 서너마리의 동료가 낙오자와 더불어 머문다는 것입니다. 동료의 아픔과 어려움을 함께 짊어지는 모습입니다. 공동체가 어려울때 함께하는 모습이 얼마나 귀한 지 알 수 없습니다. 서로의 짊을 나누어지는 삶의 지혜를 기러기를 통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 주변에는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런 사람을 가리켜 “나와 멍에를 같이한 자(빌4:3)”라고 말했습니다. 멍에를 같이하면 고독하지 않습니다. 불안하지도 않습니다. 멍에를 같이하면 피차 힘이되고 도움이 됩니다.
멍에는 수레나 쟁기를 끌게 하기 위하여 마소의 목에 얹는 기구입니다. 그래서 멍에를 맨다고 하는 것은 어떤 고역을 함께 짊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멍에를 같이한다는 것은 자기 주장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며 이기적인 마음들을 극복하고 서로 돕고 협력하는 동역자로 일하며 함께하는 것을 뜻합니다.
사도 바울은 멍에를 같이한 자들을 도우라고 권면하면서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다고(빌4:3) 했습니다.
멍에를 같이하는 자는 서로 사랑하는 자입니다.
멍에를 같이하는 자는 서로 마음을 같이하여 협력하는 자입니다.
멍에를 같이하는 자는 서로를 위해 중보기도하는 자입니다.
힘들어도 함께 멍에를 매시길 바랍니다.
멍에를 같이하는 자는 그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된 발자취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