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미국은 트레이본 마틴을 죽인 조지 짐머만이 무죄로 판결되어 자유의 몸이 된 것에 대한 분노로 뜨겁습니다.
현존하는 미국 최고 시인으로 존경받는 마야 안젤루(Maya Angelou)가 이번 사건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It really makes me see how far we have to go, that one man armed with a gun can actually profile a young man because he is black and end up shooting him dead. It is so painful.”(우리가 얼마나 앞으로도 먼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총을 가진 한 사람이 한 젊은이가 흑인이라는 것 때문에 의심을 하고 결국 총으로 쏴서 죽게 했다. 참으로 가슴 아프다.)
지난주일 흑인 목회자들의 설교에 가장 많이 나온 말이 “I am angry.”(나는 분노한다.)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결론은 “Pray, march and demand change from every corner of your government.”(기도하자. 행진하자. 우리가 소속된 모든 정부기관에 변화를 요구하자.)였습니다.
트레이본 마틴은 17세 청소년이었습니다. 그리고 흑인이었습니다. 총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아무 잘못을 한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로리다주의 ‘stand your ground’라는 법은 자기 동네에 모르는 사람이 나타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 총으로 쏴서 죽이는 것이 정당방위로 인정되어서 조지 짐머만이 총으로 트레이본 마틴을 쏴 죽인 것이 정당방위로 되어 무죄 석방이 되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도 왜 흑인커뮤니티가 이번 사건에 대해 분노하는지 자기 경험을 말하면서 엘리베이터에 타면 백인여성이 가방을 움켜쥐면서 마치 자기를 강도질할 가능성이 있는 인간 취급을 하던 일, 백화점을 가면 점원이 계속 자기를 바라보며 따라 다니던 일을 포함하여 흑인 젊은이들이 살면서 당하는 불쾌한 경험들만이 아니라 억울한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시카고에서 목회할 때 여러 종교단체들이 연합하여 시카고 북부 부자동네 경찰들의 ‘racial profiling’(인종 차별적 수색) 중단을 요구하는 일을 오랫동안 했었습니다.
경찰들이 부자 동네를 지나가는 흑인들과 히스패닉 운전자들을 집중적으로 단속하는 것을 상례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답답했던 것은 한인들 가운데 그런 인종차별적 정책을 당연한 것인 양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인종차별적 수색을 금지하도록 하는 일에 관여하는 저를 오히려 목사가 정치적인 일에 관심이 많다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가끔 흑인이나 히스패닉 때로는 동양인이 경찰에게 잡힌 것을 보면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경찰이 내가 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합니다. 어떤 때 경찰이 화를 내면서 나에게 뭐라 하길래 “내가 당신 업무를 방해하는 것도 아니고 멀리서 쳐다보는 것도 못하냐?”고 했다가 나도 구속당할 뻔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몇 년 전에 우리 교회에서 둘루스시 경찰서에 경찰자녀들을 위한 장학금을 수천불 낸 적이 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교회로 오는 길에 보니 큰 사고가 났습니다. 내려서 보니 우리 교회 아이들이었습니다. 너무 빨리 달리다가 길을 넘어 사고가 난 것인데 경찰이 차에 마약이 있는지 여부를 조사한다고 아이들을 병원에 보내지 않고 시간을 끌고 있었습니다.
제가 몇 번이고 부탁을 했는데도 들은 척도 하지 않기에 “내가 이 아이들 책임질 테니 먼저 병원에 가서 치료받게 하라!”고 참다못해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랬더니 젊은 경찰이 저를 업무방해로 수갑을 채우려고 하는데 고참 경찰이 저에게 뭐하는 인간이냐고 묻기에 바로 옆에 있는 교회 목사라고 했더니 젊은 경찰을 나무라면서 우리 아이들을 보내주었습니다.
그때 제가 생각한 것은 이 동네가 문제를 해결할 때 분노하는 것으로 해결되기 어려운 동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둘루스시에서 진행하던 경찰과 소방관들을 위한 모금에 참여했던 것입니다. 저의 바람은 우리 아이들을 동양인이라고 경찰들이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올해가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의 ‘I Have a Dream’ 연설 50주년입니다. 킹 목사님의 어린 시절 소원은 교회에서 존경받는 목사인 자기 아버지를 젊은 백인경찰이 “Hey Boy!”(야 이놈아!)라고 함부로 부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을 사람의 피부색(color of skin)으로 판단하지 않고 인격의 내용(content of character)으로 평가하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워싱턴에 가면 더굿 마샬(Thurgood Marshall)이라는 이름을 붙인 연방건물이 있습니다. 그는 최초의 흑인
연방대법관입니다. 그가 대학생 때 풋볼선수였는데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던 중 소변을 보려고 다운타운에 있는 식당들에 들어가려고 했더니 모두 ‘백인전용 화장실’이라 결국 참다못해 바지에 오줌을 싸는 망신스러운 경험을 했습니다. 그때 그는 다짐하기를 절대로 자기와 같은 흑인 청년이 여자 친구 앞에서 이런 망신당하지 않는 세상 만들겠다고 결단하고 결국 연방대법관이 되었던 것입니다.
분노할 것에 분노할 줄 알아야 하는데 저만 해도 이제 인생사는 자세가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비겁한 마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주일 설교본문에 보니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시면서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로 행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 트레이본 마틴의 부모는 물론 모든 억울함에 분노하는 이들을 위로하시고 미국땅이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고 공의로 행하는 나라 되게 하시옵소서!!!
김정호 목사 (아틀란타한인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