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선생은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평생을 몸 바쳐 싸우는 중에서도 기독교 신앙을 지킨 신앙인이었다. 1945년 해방 이후 상해임시정부의 주석자격으로 귀국한 이후 선생이 머물었던 집이 경교장이다. 경교장에 도착한 날 다음 날부터 안두희에게 암살당하기 전날까지 선생은 하루도 새벽기도를 쉬는 날이 없었다. 매일 아침 새벽기도회를 드린 후에 국사에 임하곤 하였다.
김구선생께서 1945년 중국에서 귀국한 이후 청중들 앞에서 강연한 내용들이 책으로 나와 있다. 서점에 가면 김구전집 12권이 있다. 교회들이 이런 전집은 한질씩 구입하여 교회도서실에 비치하여 두고, 청년들이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 한국교회 교인들은 미국이나 유럽의 신앙 인물들의 이야기는 익숙하게 들어왔으나, 이 나라에서 앞서 간 선배들이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았으며 무슨 꿈과 비전을 품고 살았는지에 대하여는 듣지 못하였다. 설교자들이 들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설교자들은 교회 안의 젊은이들에게 김구선생, 이승만 박사, 안창호 선생, 이승훈 장로, 이상재 장로, 김교신 선생, 조만식 장로 같은 교회와 민족의 선각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 그런 선배들은 예수사랑과 겨레사랑, 교회 사랑과 조국사랑을 한 가슴에 품고 살았던 선배들이었다. 그들은 교회와 겨레에 유익한 일이라면 목숨조차 기꺼이 바치겠다는 마음을 품고 살았던 선배들이었다. 김구선생께서 1945년 해방 되던 해 11월 어느 날 대중 앞에서 연설한 내용이 앞에서 말한 김구전집에 실려 있다. 그 중에 다음 같은 부분이 있다. 읽는 우리들의 가슴에 뜨겁게 닿는 내용이다. “이제 세워질 신생독립국가 대한민국은 기독교 진리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이제 세워질 나라에서는 경찰서 열 개를 세우는 것보다 예배당 하나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다른 선각자들과 마찬가지였지만 김구 선생은 새 나라를 세워나감에 교회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았던 분이었다. 제대로 된 교회 하나가 나라를 바로 세우는 일에 기초가 됨을 김구 선생은 알고 있었다. 우리 후배들이 이런 선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후배들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특히 설교하는 목사라면 이런 선배들의 신앙과 경륜, 꿈과 비전을 계승하여 나갈 수 있는 일꾼들이 되어야 하지 않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김진홍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