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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하디(Robert Hardie)불꽃의 사람(신간소개)

한 권으로 읽는 선교사 하디의 모든 것 


이덕주 교수의 인물탐구 2
로버트 하디 불꽃의 사람

이덕주 지음 / 신국판 변형 / 208쪽
하디에 대하여

로버트 알렉산더 하디는 토론토대학교 의과대학 재학 시절,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던 대학 선배 게일 선교사로부터 “한국에 의사가 필요하다.”는 호소를 듣고 한국 선교를 지원하였다. 토론토의과대학 기독청년회(YMCA)의 파송을 받아 1890년 10월 갓 결혼한 부인과 함께 내한한 하디는 초교파 평신도 선교사로서 서울과 부산, 원산 등지에서 선교활동을 전개하였다. 1차 안식년을 마치고 돌아온 후 소속을 바꾸어 1898년 9월 남감리회 한국선교회 제2차 연회에서 ‘남감리회 최초 의료 선교사’에 임명되었고, 1900년 11월 중국 상해에서 개최된 중국선교연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01년 10월부터 하디는 원산을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전개하였지만 기대했던 결과를 얻지 못하여 자괴감과 실망감에 사로잡혔다. 1903년 8월 24일부터 30일까지 원산 산제동의 남감리회 선교부에서 열린 선교사 연합사경회에서 성경공부를 인도하게 된 하디는 자신에게 영적 능력이 부족했음을 깨닫게 되었고, 그리스도 구속에 대한 믿음의 확신, 마음의 평안과 ‘성령 충만’을 체험하였다. 그리고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자신의 실수와 한계, 잘못과 오류를 동료 선교사는 물론 토착 교인들 앞에서 ‘수치와 고통’ 속에 공개 자복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시작된 ‘원산 부흥운동’은 교회지도자들, 일반 교인들의 회개로 이어지며 전국으로 확산되어 마침내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으로 폭발하게 되었다.

영적 각성운동의 한복판에서 주역으로 활약했던 하디는 1907년 6월 원산지방 사역 외에 협성신학교 교수로 파송을 받았고 1909년부터는 서울로 임지를 바꾸어 신학교 사역에 주력하였다. 1913년 협성신학교 3대 교장에 취임하였으며, 이 무렵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부 연합으로 설립한 피어선기념성경학원 교장과 교수직도 겸임하였다. 1924년 조선예수교서회(현 대한기독교서회) 편집부장으로 자리를 옮겨 기독교문서 출판과 보급에 힘쓰다가 1935년 5월, 정년(70세)을 맞아 연회에서 은퇴하고 한국 선교 45년을 마감하였다.

은퇴 후 하디는 미국 미시건주 랜싱에 머물다가 1949년 6월 30일 별세하였다. 그의 유해는 랜싱의 딥데일 공동묘지 아내 마가렛의 무덤 곁에 안장되었다. 하디는 부인과 사이에 모두 여덟 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중 넷은 어려서 죽었다. 그들 가운데 한국에서 죽은 넷째 딸 마리와 막내딸 마가렛은 서울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안장되었는데 한국 감리교회는 2007년 8월 영적각성운동 1백주년을 기념하여 이들의 묘지에 아버지 하디의 이름을 새긴 기념비를 세웠다.

저자 소개
이덕주

감리교신학대학교 및 동 대학원 졸업(신학박사)
감리교 목사로 서울 신암교회와 광서교회에서 목회하였고 기독교문사 편찬실장을 역임했다.
현재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로 한국교회사와 아시아교회사 강의를 담당하고 있으며,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소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지금까지 쓴 책으로는 한국 초대교회사 관련 저술로 〈초기 한국기독교사 연구〉, 〈한국 토착교회 형성사 연구〉,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개종 이야기〉,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고백〉, 〈신석구〉, 〈사랑의 순교자 주기철 목사 연구〉, 〈한국교회 처음 이야기〉, 〈한국 교회 처음 여성들〉, 〈기독교 사회주의 산책〉, 〈한국 영성 새로 보기〉 등이 있으며, 통사 성격의 〈쉽게 쓴 한국 교회 이야기〉, 한국 교회사 유적 답사기를 정리한 〈눈물의 섬 강화 이야기〉, 〈개화와 선교 요람 정동 이야기〉, 〈충청도 선비들의 믿음 이야기〉, 〈남도 영성과 광주 선교 이야기〉 등이 있다.


추천의 말

감리교 창시자인 존 웨슬리도 강한 성령의 역사 가운데서 영적인 각성(회개)과 체험을 통해 신앙의 본질을 발견하였습니다. 1903년 하디 선교사는 원산에서 강한 성령의 임재를 체험했고, 이는 1904년 강원도, 1905년 강화, 1906년 전주로 퍼져나갔고,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의 사경회로 이어졌습니다. 원산에서부터 그 부흥의 역사가 이미 시작됐던 것입니다. 한국의 ‘올더스게잇 사건’입니다.
―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 전용재

하디의 삶을 들여다볼 때 의사로서 선교활동을 하며 공부하고, 공부한 것을 선교현장에서 실천한 모범적인 선교사이자 신학교 교장까지 지낸 분이기에 우리의 가슴을 예수의 사랑으로 적셔주기에 충분하리라 믿습니다. 나아가 선교, 교육, 의료, 복지 모든 분야에서 한국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감리교회의 위상을 회복하고 다시금 크게 헌신하는 감리교회가 되기 위하여 하디와 함께 성령의 시대를 열어가기를 소망합니다.
― 서울연회 감독 김영헌

우리가 하디를 통해서 무엇인가를 얻고자 하는 것인가? 하디에 대한 관심이 우리의 영적인 내면의 궁핍함을 채우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그저 기독교문화유산에 대한 갈증인가? 이를테면 하디라는 한국감리교 초기 선교사의 업적과 인물에 대한 재조명을 위한 것인가? 그 어느 것도 “왜 하디인가?”라는 물음에 답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하디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것은 21세기 한국교회의 출구를 찾고자 하는 진지한 고민과 맥이 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 동부연회 감독 이 철

하나님은 이 순진무구한 한 영혼을 통하여 조선의 상처받은 영혼을 깨우셨고,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셨습니다. 이 바람이 평양을 거쳐 온 나라에 불어 놀라운 선교의 역사를 만드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만이 가지고 있는 새벽기도와 통성기도와 같은 순수한 열정이 하디가 우리에게 남겨준 유산입니다.
― 충북연회 감독 안병수

(* 당당뉴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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