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에서 열린 PGA 월드골프챔피언십(WGC)에서 백전노장 필 미켈슨이 선두다툼을 벌이다 결국은 마지막 날 페어웨이를 벗어나 나무 울타리 등으로 볼이 날아가는 티샷 난조 때문에 결국은 승리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가 몇 차례의 티샷 실수로 잃어버린 공을 찾으러 다니는 모습을 지켜보는 시청자들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보통 20대 선수들과 기량을 겨루는 그의 나이는 금년 47세. 그래서 그를 격려하는 골프팬들이 많기는 하지만 잃어버린 공을 찾아다니는 그의 모습이 지루한건 사실이었다. 이처럼 골프장에서 ‘슬로 플레이(slow play)’로 한번 찍히면 그 선수의 인기도 금방 날아가 버린다.
프로골퍼들만이 아니다. 주말골퍼들도 드라이버 샷을 날리기 전에 3-4회씩 가라스윙을 하거나 어드레스를 한 후 오금이 저려오는 듯 사지를 뒤틀며 난리치는 골퍼들의 슬로 플레이를 보면 다시는 저 사람하고 골프 안친다고 벼르는 사람도 생긴다.
지금 스포츠계에선 시간단축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왜일까? 너무 긴 경기시간 때문에 젊은이들이 떠난 다는 것이 이유다. 골프장에 가면 노인들만 북적댄다. 젊은이들은 그 긴 시간을 왜 골프공을 쫓아다니며 헛고생을 하느냐는 눈치다. PGA에서도 축축 늘어지는 이 경기 시간 때문에 시청자를 잃고 있다며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골프협회(USGA)등은 큰 폭의 개정을 추진 중에 있다. 이전에는 티샷 이후, 홀에서 멀리 떨어진 선수부터 공을 쳐냈지만, 이제는 홀과의 거리와 상관없이 준비된 선수부터 공을 바로 치게 한다는 것이다. 어드레스를 하고 공을 치는 시간도 40초로 단축하고 분실구를 찾는 시간도 종전 5분에서 3분으로 줄어든다. 모두 게임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스피드 업 아이디어들이다. 물론 지금은 논의단계이기 때문에 실행될지는 미지수다.
골프만이 아니다. 미국프로야구(MLB)는 비교적 빨리 끝나는 풋볼이나 농구에 젊은이들을 모두 빼앗기는 신세가 됐다고 걱정이 태산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끝으로 야구는 올림픽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3시간이 넘는 경기시간이 너무 길다는 게 이유였다. 그래서 현행 9이닝을 7이닝으로 줄이자는 말까지 나온다. 야구인기 저하는 결국 느린 경기 속도라고 결론을 내리고 야구계도 궁리를 거듭하는 모습이다.
중계권료가 주 수입원인 프로 스포츠에서 시청자수의 감소는 곧 수입의 감소요, 그리되면 느려터진 스포츠는 결국 올림픽에서 퇴장당한 야구 꼴을 면치 못할 것이다. 탁구는 아예 세트당 점수를 21점에서 11점으로 줄였고 태권도마저 10초 동안 공격을 하지 않으면 경고를 주는 룰도 만들었다. 모두 시간 때문이다.
골프와 야구를 비롯 프로 스포츠가 이렇게 시간단축에 머리를 싸매는 이유는 떠나가는 젊은이들을 잡아두기 위해서다. TV를 보면서 광고 10초를 참지 못해 미친 듯이 채널을 바꿔버리는 방정맞은 젊은이들을 보라! 그들이 갈지자행보의 야구나 골프경기에 흥미를 갖겠는가?
그런 참을성 없는 젊은이들을 예배당에 앉혀놓고 1시간을 초과하여 2시간 정도 예배를 드리자고 하면 아마 기절하겠다고 엄살을 부릴 것이다.
주일예배를 기피하고 교회를 떠나는 젊은이들을 다시 교회로 불러들여야 한다고 걱정은 하면서도 별 대안이 없는 게 한인교회의 딜레마다. 그래도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며 시대와 환경을 탓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젊은이들을 불러내기 위해서라면 우선 예배시간을 단축해 보는 것도 별의별 궁리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실제로 마이애미 지역의 한 앵글리칸 처치가 90분짜리 전통 예배 대신 아동부터 4학년까지 학생들과 이들 부모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패밀리 유카리스트(Family Eucharist)란 30분짜리 가족 예배 프로그램을 시작했더니 반응은 놀라웠다. 40여 명의 어른들과 아이들이 즉시 참여하기 시작했고 아이가 없는 성인들도 짧은 예배시간 때문에 참석률이 수직 상승했다는 뉴스를 읽었다.
젊은이들은 만리장성처럼 길게 늘어지는 대표기도, 설교보다 길어도 좋다는 광고말씀, 4절도 길다고 느꼈는데 그 찬송을 곱빼기로 재탕하는 찬송시간, 출석체크를 하듯 헌금봉투의 이름을 불러주는 기나긴 봉헌시간 등등을 모두 골프의 슬로 플레이로 느낄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예배가 시간으로 제약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깔아뭉개자는 말은 아니다. 동방정교회는 물론이고 개신교중에서도 아예 예배 순서도 없이 성령의 인도하심에 맡긴다며 예배드리는 교회들도 있기는 하다. 예배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 끝나야 끝나는 것이다. 그런 교회들로 젊은이들을 인도하기란 아마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예배의 본질을 변질시키지 않는 한도 내에서 예배시간을 1시간, 아니 그 이상 단축시켜서라도 젊은이들을 예배당으로 불러낼 수만 있다면 그 흔한 말로 “Why not?”이다.
젊은이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야구와 골프계가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데 오늘날의 교회들은 그들을 잡아놓기 위해 무슨 몸부림을 치고 있는가? 몸부림은 고사하고 그냥 체념한 듯 구경만 하고 있다면 우리들의 이민교회가 노인정으로 변하는 것은 시간문제다.(조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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