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진짜 나를 사랑하세요?”
오래 전 이야기입니다. 그 당시 두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모두 목사가 되어 한 아들은 미국에서 또 다른 아들은 영국에서 목회하며 주의 일에 힘쓰고 있습니다.
나는 어린 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서 내가 어렸을 적에 받지 못했던 정규 교육을 받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점심 시간이 되기도 전에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12시 30분이 되어야 집에 돌아오는 아이들이 11시 30분쯤 되었을 때, 그러니까 한 시간 일찍 돌아온 것입니다.
나는 그 애들이 학교에 가지 않고 딴 곳에서 놀다 왔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런 아이들을 `훜키'(hooky)라고 부르지만 영국에서는 `트루언트'(traunt)라고 부릅니다. 이는 모두 다 아무런 이유 없이 무단 결석한 채 엉뚱한 곳에서 노는 아이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당시 나는 나이 어린 아버지였습니다. 21살도 못되어 첫 애를 보았으니까 그럴 수 밖에 없었지요. 그러나 나는 자식에게 올바른 길을 가르쳐 주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시계를 꺼내어 보면서 “얘들아, 왜 이렇게 일찍 왔어? 무슨 일이라도 있었니?”하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사실은 학교에 안가고 딴 곳에서 놀다 왔어요!”하며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니! 이 아빠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어!”
이렇게 꾸짖자 큰 아이는 오히려 “아빠는 한 번도 학교에 다녀본 적이 없었잖아요!” 하면서 대꾸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이지! 아빠는 불행하게도 너희들처럼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단다. 집안이 너무나 가난했기 때문이었어. 하지만 너희들이 학교에 가지 않고 딴 곳에서 놀다 온 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야!”- 나는 이렇게 야단쳤습니다.
나는 잘못한 아이들에게 벌을 주며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할 텐데 어떻게 하여야 좋을지 알 수 없어 잠시 고민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나이도 적었을 뿐만 아니라 이런 면에 전혀 경험 없는 부모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대부분의 미국 부모들이 오래 전부터 사용했던 방법으로 반드시 벌을 주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막상 벌을 주려 하니 아이들 보다는 부모 된 내가 더 괴롭고 고통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너희들이 잘못했으니 벌을 받아야지?” 이렇게 야단친 후 큰 애를 이층 방으로 올려 보냈습니다. 물론 밖에 나가 놀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방안에만 머물게 하였습니다. 작은 애 역시 야단을 친 후 이층 다른 방으로 올려 보냈습니다. 그리고 저녁은 없고 그대신 간단한 빵과 물만 주겠다고 야단쳤습니다. 저녁 시간이 되었을 때 나는 빵과 물을 가지고 아이들이 있는 이층 방으로 직접 올라갔습니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에게도 그 일을 맡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큰 아들 `알바니’는 갖다 준 빵과 물을 모두 다 먹은 후 더 먹을 수 없느냐고 물어보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작은 아들 `헨리’는 갖다 준 빵과 물을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저녁을 먹을 수 있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아이들을 야단치며 벌을 주어야만 했던 나는 도저히 저녁을 먹을 수 없었습니다. 그날 나는 얼마나 자주 이층을 올라 다녔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너무나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그날 나는 평상시처럼 책을 읽거나 편지 쓸 수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을 정도로 내 마음은 무척 괴롭고 아팠습니다. 이와 같이 참 사랑은 때때로 참기 어려운 아픔과 고통을 안겨 줍니다.
밤이 깊어 잠잘 때가 되었습니다. 큰 아들 `알바니’는 벌써 코를 골며 잠을 잡니다. 그러나 작은 아들 `헨리’는 그때까지 잠자지 못한 채 깨어 있었습니다. 그는 잘못을 괴로워 하며 뉘우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의 발자국 소리를 들은 작은 아들은 ‘아빠’ 하고 조심스럽게 부른 후 “아빠!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다시는 안 그럴 게요.” 하며 눈물로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작은 아들과 함께 침대 이불과 베개 등 모든 것을 한꺼번에 끌어 안았습니다. 그리고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작은 아들의 뺨 위에 한없이 입을 맞추며 함께 울기 시작했습니다.
벌을 받으며 아픔을 당해야만 했던 아들의 심정과 벌을 주며 아픔을 당해야만 했던 애비의 심정이 하나가 되어 `사랑’으로 녹아지는 감격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나는 아들을 품에 안은 채 “헨리야, 걱정하지 말아! 나는 너를 벌써 용서했단다! 나는 그 일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을 테니 더 이상 염려하지 않아도 괜찮아!” 이렇게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작은 아들은 “아빠, 나를 진짜 사랑하세요? 내가 잘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잘못하기 전과 똑같이 나를 사랑하세요?” 하며 물어 보았습니다.
나는 작은 아들을 바라보면서 “물론이지! 나는 너를 전과 똑같이 사랑하고 있어!”-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아들은 “아빠, 진짜 나를 용서하고 사랑하시는 거예요?” 하며 또 다시 물었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용서와 사랑을 거듭 확인하기 원하는 작은 아들을 향하여 “헨리야, 걱정하지 말아!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 이렇게 말하며 또 다시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작은 아들은 “아빠, 아빠가 진짜 나를 용서하고 사랑하신다면 나를 데리고 아랫층으로 내려가서 저녁 좀 먹게 해주세요” 하고 부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 속에는 `아빠가 진짜 나를 사랑하신다면 그 사랑을 나에게 보여주며 증명해 달라’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자비하시도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사랑)하는 자에게 `양식’을 주시며 그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시리로다!”(시114:4-5)는 말씀과 같이 나의 아들도 부모 된 나의 용서와 사랑을 확증하기 위하여 저녁 식사를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 빌리 썬데이 – (*Tony Salerno, Life in Christ, p. 114)
I want to tell you a little story. Many years ago my two boys, then small, were going to school.
Both of them are now preachers. One is in this country, an American citizen, doing evangelistic work, the other son is in England, a minister.
Well— my two boys, when they were young, were sent to school. They had what I didn’t. I gave them the opportunity to get what I missed in my childhood. One day they came home unusually early for lunch. They came at 11:30, when they should not have been at home until 12:30. They had not been to school, I knew. They had played, as you say in America, hooky. In England, we call it playing truant. I was a very young father. My first boy was born before I was twenty-one. I felt it my duty to do something about the matter. I took my watch out and said, “Boys, why are you home so soon? Where have you been?”
“We have been playing,” they said.
“Yes, playing truant.”
They admitted it.
“I have never played truant in my life,” I said.
“You never went to school,” the elder boy said.
“No,” I said, “I did not. I did not have your chance. My not having attended school was a
misfortune; your not having attended is a sin.”
I knew they must be punished, but I didn’t know how to go about it. I was a very young and inexperienced father. I was up against it, to use one of your American “classic” phrases. I had to do something. I shrank from the idea of punishing them. It was harder for me in truth than for them.
“You will have to be punished,” I said. I sent the elder boy upstairs to the back room and told him to stay there all day. Then I sent the other boy to another room, and bade him do likewise.
“You will have bread and water for dinner and for supper and nothing else,” I told them.
When dinner-time came, I took them up their bread and water. I couldn’t trust anyone else.
Albany, the elder, ate his and asked for more. Hanley did not touch his, and I need not tell you who are parents that I did not eat that day. No food would have tempted me. And I cannot tell you how often I climbed those stairs to see what the boys were doing. I could not read, or write, or see people. It was the first time in my life that anything had come between my boys and myself. And my young father-heart suffered far more than the boys. I was punished most, because love suffers.
At night-fall I was listening on the landing, and found Albany had entered into rest and was snoring. Hanley could not sleep. He was already penitent. Hearing my footsteps, he called me: “Daddy! Will you forgive me just this once and I will never play truant any more!” I grabbed him, bedclothes and all, and hugged him to my heart. I tried to kiss back his tears, and mine got mingled with his. I told him it was all forgiven and passed. Then he said, “Daddy, do you love me just as much as before?” I answered, “You know I do.” Then he asked, ”Are you very sure?” and I answered, ”Yes, Hanley dear, I am very sure.” Then the child said, “Take me down to supper.” In plain English the child meant, if you love me, prove it.
The Bible says, “The works of the Lord are great… His work is honorable and gracious: and His righteousness endureth forever. He hath made his wonderful works to be remembered: the Lord is gracious and full of compassion. He hath given meat unto them that fear him: he will ever be mindful of his covenant. He that shewed his people the power of his works …”
“The works of his hands are verity and judgment; all his commandments are sure. They stand fast for ever and ever, and are done in truth and uprightness. He sent redemption unto his people: he hath commanded his covenant for ever: holy and reverend is his name. The fear of the Lord is the beginning of wisdom: a good understanding have all they that do his commandments: his praise endureth for ever.”
Billy Sunday
* Tony Salerno, Life in Christ- A Manual for Disciples, Bethany House Publishers, 1983, p.114
Provided by Rev Sungchan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