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의 후반부에 나오는 여러 간구의 순서를 보면 우리에게는 일용할 양식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며 매일의 용서도 필요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용서의 필요성도 양식의 필요성처럼 보편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빵을 필요로 하는 존재로 만드셨고, 우리는 우리 자신을 용서를 필요로 하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초대교회당시 크리소스톰이 목회하던 교회 성도들은 주기도문을 외우다가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긍휼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형제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들의 입을 다물게 했던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중의 하나가 사랑하고 용서하는 일입니다. 토마스 제퍼슨 대통령의 서재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습니다. “화가 나면 열을 세라 남을 죽이고 싶으면 백을 세라”
영어의 화(anger)는 위험(danger)에서 한 글자가 빠진 것입니다.
오늘도 성경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참음으로 옷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로새서 3: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