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주님의 권능과 인도하심이 늘 함께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결실 이루길 기도합니다.
말레이시아 북부 선교기지-선교현장 방문기 입니다.
“페낭 섬”은 1989년부터 선교방문, 개척 착수하여 북부 이슬람권 선교센타를 세웠습니다.
“페낭한인교회”와 “한인학교”를 설립하고(1994년)
1993년부터 동역한 박종돈 선교사를 “페낭”르로 파송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한인자 목사(목양교회 전도사)와 결혼하여, 1남3녀를 두고 있으며,
온 가족이 선교헌신하며 충실히 사역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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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벽두에 북부 페낭 -“선교현장”을 찾아서 선교사 노 종 해 목사 (동남아선교센타-CMRC원장)
* 박종돈 목사와 함께-페낭비치에서(1.5.) *박종돈/한인자 목사 가족과 함께(1.6.) 1월 5일(토) 아침 9:30분, KL 잘란 암방(Jalan Ampang, 암방로)의 “코러스호텔”Corus Ht)에서 출발하는 “애로라인”(Aeroline) 2층버스에 올라타고 앞 자리에 앉으니 전망이 훤하였고, 럭셔리 버스는 9시반, 정시에 출발 할 때 이미 마음은 설레임에 젖어있었다. 13년 동안 병치례 건강문제로 먼길 여행을 생각지도 못했는데 2013년 새해벽두에 잔잔한 염려 속에서도 용기를 내어 버스여행을 감행한 것이다.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 비포장도로로 9시간 운전하며 선교여행 길에 올랐던 상념에 곧 젖어 들었다. Kuala Lumpur의 빌딩 숲을 헤치고 40Km 지점 “라왕”(Rawang)을 지나가니 도로변은 빌딩, 주택단지로 번화하게 이어졌고, “셀랑오”(Selangor)와 “페락”(Perak) 주 경계지역인 70Km지점의 “단종말림”(Tanjong Malim)에 다가가니 말레이시아 국민차 “프론톤”(Proton)을 생산하는 “Proton City”가 눈에 들어 온다. “”슬림리버-비도르-타파-이포”(Slim River-Bidor-Tapa-Ipoh)를 지나가면서 펼쳐지는 전경은 “정글원주민 오랑아슬리(Orang Asli)선교 현장을 개척하던 일, 몇몇 한인교포들을 를 방문하여 “기도회” 시작하고 교회 세우던 일들이 떠오르며 가슴이 벅차올라왔다. 높은 산 “카메론”(Camoron) 꼬불꼬불 급경사 좁은 길을 오르며 펼쳤던 “원주민 선교”들이 파노라마 필름 처럼 펼쳐졌다. “쿠알라강사-타이핑(Kuala Kangsa-Taping)의 터널과 다리길 지나며, 쿠알라강사의 “말레이 무슬림 왕도”가 보였고, 강가 휴게처에서 “아삼락사”(Asam Lasa)을 즐기던 일, 왕도에서 “민물생선 요리”를 맛 보았던 일, 중국식 “자장면”을 잘한다하여 찾아가 즐겼던 일들이 떠올라 입 맛을 되살렸다. 상념에 젖어있는 동안 어느덧 버스는 육지와 페낭섬을 연결하는 14Km의 “페낭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1970년 대 한국인들이 바다를 가로질러 다리를 놓는 대 역사를 이루었고, 그 투지와 열정을 가슴에 담으며, “해낼 수 있다”는용기가 솟아오르던 때가 생강났다. 바다의 물결과 정박해 있는 외항선들은 추억을 일으키고 있었다. * 페낭한인교회-설교하는 노목사 * 한인교회-성도들과 함께(1.6.) KL에서 9시간 비포장 도로를 곡예하듯 운전하며 선교했던 “동지”를 만난 . 1993년 KL에서 한인교회 전도사로, 동남아선교센타에서 협력하여 “페낭선교처”개척하고, “페낭한인교회”와 “한인학교”를 창립하여(1994년) 북부지역 담당으로 파송한 박복사는 만난 것이다. 우리는 당시 “평생선교사”가 요긴 함을 깨달았고, 헌신하여 나갔다. 박선교사는 한인자 선교사(목사)와 결혼하고 페낭을 담당하고 오늘까지 북부지역 선교를 충실히 맡고 있다. 승용차에 올라 “페낭” 시내 길을 달리며, 선교여행하던 20년 전 이야기부터 쉽이 없었다. 가로수 하나, 건물과 길거리 마다 추억이 솟아 올랐고 정겨웠다. 8층 한인교회 건물을 지나서, 도심 해변 길가에 있는 특급호텔이 여장을 풀고, 지체없이 개척선교의 숨결이 있는 현장으로 나갔다. “뻐린기” 비치를 달리며 유럽풍 주택단지, 건물, “달랏스쿨”, 모스크 등을 보며 선교의 열정이 깃들어 있는 비치 중심으로 나갔다. “골든샌”, “라사싸양” 등 1980년 대 특급호텔로 해변 중심에 있는 유명한 호텔들 이지만 값이 비싸 이용할 염두를 못내고, 그 옆에 경제적인 “롱파인호텔” 이용했고, 그 때 그 일을 추념하며, 호탤 앞 비치 길가 식당에 앉았다. 석양을 등지로 붉게 젖어 있는 바다를 보며 저녁식사를 나누었고, 그 때나 지금이나 간단한 식사이지만 우리는 성찬으로 즐겼다. 해변가 관광객들이 붐비는 “무슬림 수련장” 울타리에는 “이슬람 포교(다와) 글 귀 간판”이 요란하게 제시되어 있었다. 1월 6일, 새해 첫 주일, “페낭한인교회” 예배 인도하였다. 평균 200여 명 집회하는 교회는 8층에 있었고, 100평 공간에 교회와 학교 공간으로 나누어 있었다. 교육공간은 중간 홀에 주변 8개 교실로 나누어 아담하고 훌륭한 “한인학교”를 이루고 있었고, 예배시간 전에 찬양과 기도로 새해 첫 예배를 준비하고 있었다. 새해 첫 주일 찬양은 청소년 “학생 찬양팀”이 인도하고 있었다. 인도자들이 인사하는데 그 학생들도 KL에서 협력하던 선교사들의 자녀인 것이였다. 키타와 피아노, 키보드, 드럼, 크라리넷 등 연주자, 인도자들이 그 때 유치원생이나 되었나, 그런데 벌써 고등학셍들이 되어 찬양을 인도하고 있었다. 놀랍고도 감사한 일이다. 감격 속에 새해 첫 설교, 예배 인도하고, 성도들과 점심도 나누고 기념촬영도하며 교제를 나누었다. 저녁식사는 페낭에 주재하는 선교사들과 함께 하며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기쁨과 즐거움을 만끽하였다. 선교사들의 고달픔과 시련도 잊고, 아픔상처들도 어루만지며 얘기 꼿을 피우는 동안에 녹아내리고, 찬양과 비젼, 사명감으로 벅차 올랐다. * 페낭 주재 선교사들과 함께(1.6.) *페낭선교센타-코이노니아 훈련센타”에서(1.7.) 페낭선교센타, “코이노니아 훈련센타”를 방문하였다. “페낭선교센타”는 페낭바다가 보이는 3층 건물 70평을 사용하고 있었고, 예배실, 숙소, 주방, 교육실 등 갖추어 있었다. 숙소는 합숙 훈련할 수 있도록 40명이 사용할 수 있고, 다른 공간들도 임시 숙소로 사용한다면 100명도 가능한 공간을 마련하고, 한국은 물론 싱가폴, 대만, 중국, 태국 등 인근 국가 뿐아니라, 미국, 영국, 호주 등등 미주 유럽 팀들도 선교훈련장소로 사용하여 세계선교에 기여함을 보았다. “페낭선교센타” 1-2층에는 말레이시아 현지인들의 “챠이니스감리교회”와 인도계 “타밀교회”가 들어서 ‘중국어, 영어, 인도말” 등으로 예배드리며 성격공부 등 집회하고 있었다. 선교센타 방문을 끝으로 오후 3시반 “애로라인” 2층버스로 4시간을 달리는 귀가 길에 올랐다. 되돌아 오는 길에서도 9시간 운전하며 다녔던 “선교여행 길”의 회상에 젖었다. 석양 길에서 어느덧 어두움을 밝히는 빛이 가득한 KL 도심에 도착하였다. KL선교센타에 도착하니 오후 8시 반이었다. 감사하고 즐겁고, 행복한 여행이었다. 먼 여행을 감당하도록 건강 주심 감사합니다. 우리의 선교여정에는 쉽이 없고, 더욱 힘써 사명을 향해 굽힘없이 나갈 것을 다짐하며 두 손을 모았다. 할렐루야! 감사합니다.(rch) *아름다운 페낭 해변 길가 모스크와 비치 수련장 울타리의 “이슬람 포교(다와)” 글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