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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목회의 20가지 원리

부흥 목회의 20가지 원리/ 김우영목사(만나교회)

저는 목회자의 기도에 대해 생각하면서 사도 바울을 생각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나를 날마다 쳐서 복종시킨다”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복음을 전파한 후 자신이 버림받을까 봐 두려워서라고 했습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 9장 27절)
목회자는 스스로 자기 관리를 잘못하면 전파한 후에 버림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날마다 자기가 자기를 쳐서 복종시킨 후 전파한 자가 버림받지 않도록 자기 관리를 잘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목회의 방향

1. 인격적인 목회

인격적인 목회는 대단히 중요한 우리의 기도제목이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잘한다고 칭찬을 해도 하나님께서 아니라고 하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많다고 하면 많은 것이고, 하나님이 크다고 하면 큰 것이고 하나님이 된다고 하면 되는 것입니다.
과부의 두 렙돈(눅 21장 2~4절)이 분량적으로 볼 때에는 아주 작은 것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연보궤 속에 헌금하는 그 과부의 헌금을 보고 가장 많은 것을 드렸다고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돈이 있는 가운데 드렸지만 이 과부는 저녁 먹을 끼니가 없으면서도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드렸기 때문에 가장 많이 드렸습니다.
사람들이 세례 요한을 어떻게 보았든지 그것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세례 요한을 보실 때 여인에게 난 자 중에 제일 큰 자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을 그대로 믿습니다. 이 땅에 주님말고 육을 입고 온 사람 가운데 세례 요한이 제일 크다고 저는 믿습니다. 주님이 크다면 큰 것입니다. 주님이 많다면 많은 것입니다. 주님이 잘한다면 잘한 것입니다.
우리는 인기 때문에 목회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인 목회를 해야겠다는 기도를 늘 간직하고 있어야 합니다. 인기에 부응하다 보면 사람들이 목회를 잘 한다고 할 때는 교만해지고, 잘못한다고 하면 낙심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어떠한 사람으로 목회하느냐 하는 인격적인 목회를 할 때는 사람들의 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따라서 목회의 초점은 인기 목회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2. 소명감에 불타는 목회
흔히 목회를 ‘성직’이라고 합니다. 저는 목회가 직업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목회를 할 때 직업적인 목회가 아니라 소명감에 불타는 목회를 하기 위해 일평생 기도해야 합니다.
저는 신학교를 지망하는 학생들에게 절대로 타의에 의해서 신학교에 가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만일 소명감을 가지고 자기가 신학교에 들어간 경우가 아니라, 어머니와 아버지에 의해 억지로 신학교에 보내진 경우 졸업하고 목회 현장에 나와 목회를 한다고 하면, 목회를 하는 자신도 불행하고 그 교인들도 불행해집니다. 소명감 없는 목회가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목회가 될 수 있겠습니까?
사실 편하게 목회하자면 교회 건축 안 해도 됩니다. 그러나 저는 소명감 때문에 늘 대교회를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왜냐, 교회는 생명체이므로 구원받는 수가 날마다 늘어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구원받는 무리가 늘어나는 일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사명이 뭡니까? 교회는 선교, 교육, 봉사, 이 세 가지가 하부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선교 때문에 교회가 존재합니다. 에밀 브루너는 “불이 타는 곳에 불이 있는 것처럼 선교하는 곳에 교회가 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목회를 해 보니까 선교는 힘으로 합니다. 힘이 없으면 M1 선교에서 M4 선교까지, 지역 선교에 특수 선교까지 못 합니다. 그런데 이 힘이 어디에서 생깁니까? 교인이 500명, 1,000명 모일 때의 힘과 2,000명 모일 때의 힘은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누가 뭐라고 해도 영혼 구원이 하나님의 뜻이므로 구원받는 수가 늘어나야 되고, 또 구원받은 사람들이 많아야 힘을 모아 선교할 수 있기 때문에, 교회는 성장하고 커야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만약 우리가 밥이나 먹자고 직업적인 목회를 한다면 우리 자신들은 얼마나 불쌍한 사람들이겠습니까?

3. 최선의 목회

다섯 달란트 받은 자가 다섯 달란트 남긴 것이나 두 달란트 받은 자가 두 달란트 남겼을 때 주님은 글자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이 칭찬하셨습니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마 25장 21절)
여러분이나 제가 사도 바울이나 성 어거스틴처럼, 또 칼빈이나 웨슬레처럼 큰 일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목회자들이 최고 최대의 목표가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목회를 할 때 상급은 같은 줄로 믿습니다.

4. 성실한 목회

제가 최근에 교회를 짓고 있는데 우리 감리교 목사님들은 저를 볼 때 열이면 아홉은 “광림교회보다 큽니까? 작습니까?”하고 묻습니다. 감리교에서 제일 큰 교회니까, 비교해 교회를 크게 지었다고 소문난 모양인데 광림교회보다 크냐 작으냐는 문제가 아닙니다. 제 중심 속에 목회란 경쟁적인 관계가 아니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시는 대로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커진 것이지 크게 하기 위해서 커진 게 아닙니다.
지금 제가 20일 작정 특별 새벽 기도회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장부터 계속해서 20일로 나누어서 초대교회를 바라보면서 교회관을 확립하기 위해서 매일 새벽 사도행전 공부를 합니다.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 새 성전 입당을 하고 20일 동안 어떤 것을 시리즈로 이야기할까 기도하다가 현재 한국 교회가 퇴색하고 희석되어 가고 있으므로 초대교회로 돌아가서 초대교회의 모습을 본받고, 일꾼은 어떤 사람들이며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해 전부 이야기하라는 감동이 있어서 사도행전을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교회를 크게 지었다고 큰 교회입니까? 크게 짓는 것이 목적입니까? 큰 교회는 큰 선교를 하고 큰 일을 해야 큰 교회입니다. 교회를 대리석으로 붙이고 실내를 웅장하게 잘 지었다고 해서 좋은 교회입니까? 아닙니다. 여기 모인 우리들의 교인들이 좋은 교인이 되어야 좋은 교회입니다.
교회관에서 우리는 두 가지의 교회 요소를 알고 있습니다. 하나는 신적인 요소요, 다른 하나는 인간적인 요소입니다. 신적인 요소는 불가결적인 요소, 신령한 요소입니다.
“저 사람 형편없이 병들어 왔는데 교회에 나와 신앙 생활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신유의 역사로 고침 받았네. 저 사람 저질이고 악질인데 예수 믿고 새 사람이 되었네. 저 사람 가난하고 재기할 가능성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던 사람인데 교회에서 신앙생활하며 하나님의 축복으로 물질 축복을 받았네. 처음에 이 성전을 올라올 때는 저 할머니 무릎을 떼어 놓지 못하고 뭐든지 붙들지 않고는 올라오지 못하던 분이 하나님의 역사로 고침받아 자기 발로 그냥 걸어 올라오고 있네.” 이 모든 것이 분명히 신적인 요소입니다.
비록 우리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분명히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신령한 요소가 교회 요소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요소는 보이는 건물이나 모이는 사람들처럼 눈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쉽게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교회라고 말하지만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목회를 할 때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경쟁적인, 외형적인 목회가 아니라 내적으로 성실한 목회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고 “알았다. 잘했다”라며 인정하실 수 있는 목회가 되어야 합니다.

5. 겸손한 목회

겸손한 목회는 쉬운 것 같으면서도 참 어렵습니다. 심리학자들은 사람의 호주머니에 송곳을 넣으면 반드시 뚫고 나가려 한다고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기회만 있으면 자기를 자랑하려는 심리적인 본능이 있어서, 우리도 목회를 하지만 사람이기 때문에, 때때로 유혹을 받으면 자랑하기 쉽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자랑이 아닌 겸손한 목회를 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6. 알곡을 키우는 질적인 목회

저의 딸이 명성훈 목사님이 하시는 교회성장연구소의 간사로 몇 년 동안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컨설팅을 하고 다니면서 일을 했는데 한번은 저에게 “아빠, 아빠, 목사님들은 뻥이 많아요”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그게 무슨 소리냐고 했더니 “1,000명이 모인다고 해서 가보면 500명 모이고, 500명 모인다고 해서 가 보면 300명도 안 되고, 1,500명이 모인다고 해서 가 보면 한 700명밖에 안 돼요. 다녀보니까 목사님들 말은 믿을 수가 없어요. 절반으로 접어 들으면 맞아요”하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무엇 때문에 수를 늘려서 말합니까? 수를 늘려 말하면 그것을 감추려고 얼마나 목사님이 피곤하겠습니까? 아니 늘려서 말한다고 교인이 많아집니까? 또 교인 수가 많아야만 그 목사가 훌륭합니까? 목회는 성서적으로 구원받는 수가 늘어나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에 하는 일입니다. 힘이 있어야 선교할 수 있다는 이론은 절대적인 사실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우리가 수와 양에 치중하는 유혹에 빠져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알곡을 키우는 질적인 목회를 해야 합니다.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은 교인이 한 2천여 명 모이는 교회를 담임하고 계십니다. 한번은 만나서 대화하는 도중에 “김 목사님, 저는 목회에 실패한 사람입니다”하기에 깜짝 놀랐습니다. 누가 봐도 목회에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분이 그런 말을 하니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니, 목사님이 실패를 하시다니요. 아닙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어느 날 기도를 하는데 ‘너는 숫자만 많다고 자랑했지 이 수많은 교인들 가운데 키질을 해서 까불렸을 때 알곡으로 남아 있을 사람이 몇 명이 되겠느냐’하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 순간부터 저는 목회를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하고 회개했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후 저는 그 목사님이 배나 더 존경스러웠습니다. 얼마나 훌륭한 목사님입니까? 수를 자랑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질적으로 알곡을 만드는 목회를 해야 합니다.

7. 주님 중심의 목회

어떤 목사님이 회개를 했다고 하면서 간증을 하는데 새벽 기도를 할 때면 항상 교인들보다 늦게까지 엎드려서 기도를 하곤 했답니다. 그런데 늦게까지 기도를 한 것은 교인들에 대해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가 아니라 교인들이 볼 때 우리 목사님이 최고로 오래 기도하신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 교인들이 다 나갈 때까지 시간 채우는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제 자신을 돌아보니 저한테도 그런 요소가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진심으로 기도하다가 시간이 흘러서 평신도보다 오래 기도하는 목회자가 아니라, 의식적으로 교인들이 남았나 안 남았나를 생각하다가 시간이 늘어난다고 할 때, 그런 기도가 과연 목회자적인 기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 중심의 기도, 자기 중심의 목회는 지양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아무렇게나 살아도 저 세상 가서 하나님 앞에 서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떻게 목회하든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땅을 떠나서 분명히 하나님 앞에 설 것이므로 내 자신을 내가 관리하지 않고서는 올바르게 목회를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저 자신과 더불어 여러분도 함께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8. 영혼을 위한 기도

자기 이름을 드러내기 위한 목회가 아니라 불쌍한 영혼을 건져 내기 위한 목회를 해야 됩니다.
저는 15년 전에 갑자기 입이 돌아갔습니다. 고혈압으로 입이 돌아간 것이 아니라 안면 신경 마비 때문이었는데, 아주 심각했습니다. 입만 돌아간 것이 아니라 눈까지 안 감겼습니다. 침도 맞고 약도 먹어보고 전기 마사지도 하고 별짓 다 해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누가 말하기를, 대추나무 가지를 꺾어서 얼굴에 꿰어 밤새 꽂아 두었다가 아침에 빼면 돌아온다고 해서 해 보았지만 헛수고 였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짐을 챙겨 기도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기도원에서는 목사라고 해서 방을 따로 하나 내주었습니다. 방에다 짐을 놓고 산으로 기도하러 올라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하나님께서 책망을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네가 목사냐, 이 위선자, 거짓말쟁이, 사랑이 없는 목사, 그런데도 네가 목사냐!” 숨도 못 쉬게 하나님이 마구 몰아붙이셨습니다.
그 순간 저의 입에서는 회개의 기도가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우리 교인들이 어디가 아프다고 하면 영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이 육신이 좀 아프다고 뭘 그렇게 신경 쓰냐면서 우습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걸 꼬집으셨습니다. “너는 몸이 아픈 것도 아니고 입이 조금 돌아갔는데도 그 난리냐? 설교할 때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해놓고 교인이 아플 때는 등한히 여기면서 네 입 돌아갔다고 그렇게 신경을 쓰냐? 그러고도 네가 목사냐? 사랑이 없는 목사, 위선자, 거짓말쟁이!” 얼마나 뒹굴고 몸부림을 쳤는지 모릅니다. 나중에 시간을 알았습니다만, 세 시간 반 동안 혼자 독방에서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채 기도했습니다. 저는 입 돌아간 것 때문에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회개하고 뒹굴고 몸부림치면서 기도한 후 일어나 얼굴을 닦고 거울을 보니까 입이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얼마나 회개를 했는지 모릅니다. 작년에는 새벽에 조지 뮐러 목사이야기를 하며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조지 뮐러 목사는 일평생 천 번의 응답을 받았다는데 하나님 제 기도도 응답해 주세요. 이렇게 교회는 크게 벌여 놓고 짓는 중인데 저로 하여금 잘 감당할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제게 뭐라고 하신지 아십니까? “네가 조지 뮐러 목사를 말해? 그 사람은 평생 기도하느라고 방석이 세 개나 구멍났다. 너는 방석 하나도 구멍 뚫을 생각을 못 하고 있지 않느냐?” 그 날 아침 저는 크게 깨닫고 참회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는 목회하면서 이렇게 기도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의미에서 제가 회개하고 깨달은 것, 저의 목회 생활을 여러분 앞에 내어 놓고 함께 생각하자는 취지로 말씀드립니다.
누가 우리에게 기도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합니까? 아무도 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목사가 기도하지 않으면서 교인에게 기도하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막내가 어렸을 때 우리 아이는 저쪽 방에서 자고 저는 이쪽 방에서 자는데 아침이 되어 아이를 깨웠습니다. “은하야, 일어나.” 자기 방에서 눈을 비비고 부시시 일어나 제 방으로 오더니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에이, 아빠는 일어나지도 않고 나만 깨우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벌떡 일어났습니다. 막내딸 앞에 얼마나 부끄러운 아빠입니까? 그 때 제가 만든 이야기가 “누워서는 깨울 수 없다”라는 고백이었습니다.
제 목회 철학 중의 하나 “나는 하지 않으면서 남에게 하라고 할 수는 없다”입니다. 하라고 강요하면 저는 위선자입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란 말입니다.

9. 하나님께 인정받는 목회

사람들에게 칭찬받았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아야 합니다. 흔히 우리가 목회를 하다 보면 칭찬이라는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사람들이 잘 한다고 하면 굉장한 줄 아는데 그게 아니잖습니까? 주님이 인정을 해야 인정받는 목회자입니다.

10. 정직한 목회

말은 언제나 효과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누구든지 말을 할 때에는 과장을 하고 거짓말도 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복음을 전하는 우리들은 언제나 설교를 해도 과장된 이야기가 아니라 양심적이고 정직한 말을 해야 합니다. 그럴 때 교인들이 따라올 수 있습니다. 수단과 방법만으로는 교인들을 끌고 갈 수 없습니다.

11. 성령의 능력으로 하는 목회

목회를 하다 보면 다 된 것 같은데 안 될 때가 있고, 어떤 때는 정말로 안 된다고 포기했는데 되는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자기 힘으로 되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되게 하셔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자기가 앞서고,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번번이 문제가 생깁니다.
목사님들의 설교집 제목 가운데 「기도가 방법이다」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저 역시 기도가 방법인 줄로 믿고 목회합니다. 인간의 힘이 방법이 아니라 기도가 방법이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12. 희생적인 목회

이 부분은 우리 모두 같이 기도해야 할 제목입니다. 어느 사이에 우리는 교인들의 사랑만 받아서 늘 받아야 되는 줄 알고 받는 것이 정상인 줄 압니다. 그러다 보니 목회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 후배 목사 중 하나는 별명이 샤일록입니다. 단돈 만 원이라도 그 목사 호주머니에 들어가면 절대 안 나옵니다. 커피 한 잔 사 본 적 없고 친구들한테 밥 한 끼 사 본 적이 없습니다. 사모님도 똑같아서 둘이 열심히 돈을 모아 시골에다 논을 몇 마지기 사 놓았답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그 목사님이 가는 곳마다 교회가 그를 싫어한다는 사실입니다. 목사님을 붙드는 교회는 한 군데도 없습니다. 지금 60이 되었는데도 이리저리 밀려 다닙니다.
논 몇 마지기로 목회에 성공한 것입니까?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이런 걸 깨달았습니다. 주머니 끈을 꽁꽁 묶어 놓고 안 나가게 붙잡아 놓으면 안 나가겠지만 안 나가는 것만 생각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주머니 끈을 꽁꽁 붙잡고 있으면 하나님이 주시려고 해도 못 주십니다. 꽁꽁 매어 놓았는데 어떻게 주십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도 그건 못하신다는 말입니다. 목회자는 주머니를 열어서 복을 나누어 주어야 하는데 받는 목회만 생각하고 주는 목회를 하지 아니하니 그 목회가 되겠습니까?
옛날에는 강남 지역에 십자가만 걸어 놓아도 교인이 막 몰려들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제가 분당에서 목회를 합니다만 아무리 많은 어항을 놓아도 고기들이 안 들어옵니다. 고기들이 어항 앞에 와서는 구경만 하고 안 들어옵니다. 어항을 놓아도 헛일입니다. 그물을 던져야 겨우 잡힐까 말까 할 정도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서울의 강남에서 목회를 할 때 개발 초창기라 누가 돕기도 하고 많이 모이기도 해서 교회가 크게 부흥했습니다. 주택을 사게 되었는데 교회가 이만큼 커졌으니 내 이름으로 해도 되지 않겠는가 싶어 목사님 이름으로 주택을 사 놓았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아무 문제가 없을 때는 목사님 이름으로 주택 산 것이 문제가 안 됐는데 교회에 문제가 생기자 그것이 결국 큰 문제가 되어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개척해서 큰 교회를 만들어 놓았는데 그 목사님은 밀려나고 다른 분이 와서 그 교회를 맡아 목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밀려난 목사님에게 “너는 자장면이나 먹어라. 어디든 발 벗고 자면 그게 내 집이지. 아니 꼭 등기를 내 이름으로 해야만 내 것이냐”했습니다.
저는 입당을 하고 우리 장로님들이 “목사님, 자꾸 여기저기 옮겨 다니시니까 우리가 뵙기도 민망하니 교회를 짓는 김에 아예 9층 꼭대기에다 사택을 만드시지요” 하길래 “안 돼요. 지금 교육관도 모자라는데 사택은 무슨 사택입니까?”했더니 장로님들이 “모자라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목사님이 자주 여기저기 이사 다니는 걸 보겠습니까? 그래서 개척한지 14년 만에 교회 맨 꼭대기 위에 사택을 꾸몄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사한 날 저녁에 기도를 하고 누워서 잠을 청하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 세상에 너보다 더 큰 부자가 어디 있느냐? 네가 최고로 큰 부자다.” 마음이 마구 부풀어 오르면서 “내가 최고 부자라구요? 하나님, 제가 무슨 부자입니까?”했더니 “아무리 아파트 평수가 커 봤자 70평, 90평 정도인데 너는 지금 5,700평짜리 집에서 자니 부자 아니냐?”하셨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 말이 맞는 말이었습니다. 비록 5,700평이 내 집은 아니지만 거기서 발뻗고 편안히 자면 내 집 아닙니까? 제가 세상에서 최고 부자입니다.
저는 우리 교인들에게 그렇게 훈련시킵니다. “여러분, 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신발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발을 주셨는데 신발 안 주십니까? 여기 혹시 맨발로 오신 분 있으면 손들어 보십시오.” 그러면 손드는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발을 주셨으면 신발도 주시는 하나님이므로 등기 문서 따위는 따지지 말자는 이야기입니다. 논 몇 마지기 사 놓았다고 목회에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기적인 목회가 아니라 생명까지도 주는 희생적인 목회를 해야 합니다.

13. 희생과 사랑의 목회

목회자는 반드시 사랑의 목회를 해야 됩니다. 예를 들어 잠 좀 자려고 했더니 밤 11시에 교인에게서 위급하니 빨리 오라는 전화가 걸려 옵니다. “에이, 이 밤중에 잠도 못 자게 난리야”하면서 갈 수도 있지만 이왕에 가야 한다면 “주여! 11시가 되었는데도 저를 잠 안 재우고 쓰시겠다니 감사합니다”하고 나선다면 얼마나 좋습니까?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나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제가 받는 시험입니다만, 잠깐 쉬었으면 좋겠다 싶어 잠들면 꼭 전화가 옵니다. 그 때는 저도 목사 이전에 사람이니까 짜증이 앞섭니다. 그러나 “주여, 짜증나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목사를 필요로 하는 전화를 주셨으니 감사합니다”하고 기도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필요한 사람이기에,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기에 감사해야 합니다. 희생적인 목회, 사랑의 목회가 우리의 기도 제목이 되어야 합니다.

14. 이해와 관용의 목회

어느 처녀가 우리 교회에 등록을 했는데 두 달쯤 지나자 담임 목사님과 면담을 하고 싶다고 해서 만났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자꾸 불안하고 두렵고 떨린다고 말하였습니다. 다른 교회에 다니다가 우리 교회에 새로 등록한 사람인데, 저쪽 교회에서는 새 신자로 등록 할 때 “나는 이 교회에 등록한 이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이 교회의 교인이 되겠음을 서약합니다. 행여 내가 이 교회를 떠나게 된다면 저주를 받아도 좋습니다”라는 선서를 한답니다. 이렇게 서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회로 왔습니다. 그런데 자꾸 그 생각이 나서 불안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무 걱정하지 말고 편안하게 신앙 생활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정죄하는 목회를 하면 안 됩니다. 어째서 다른 교인이 자기 교회에 오는 것을 환영하고 자기 교인이 다른 교회에 가면 저주를 받습니까? “너 다른 교회 가서 잘 되나 봐라.” 도대체 이런 말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면 다른 교인이 와도 “너 여기 와서 잘 되나 봐라.” 이렇게 말해야 하지 않습니까? 교역자들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 교역자들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제가 있는 분당에는 원래 150개 교회가 있었는데 요새 60개 교회가 새로 생겼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만 잘 되어야 한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모든 교회가 똑같이 잘 되어야 좋은 것 아닙니까? 모든 개척교회가 다같이 잘 되어도 40만 인구를 수용할 길이 없는데 이단이 아니면 다 잘 되어야지 어째서 내 교회만 잘 되어야 합니까? 정죄가 아니라 이해와 관용의 목회를 하시기 바랍니다.

15. 권면과 칭찬의 목회

목회를 하다 보면 정죄하다가 서로 상처만 받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어떤 집사님이 저에게 “목사님, 뭐든지 잘못한 것 있으면 언제든지 꾸짖어 주세요. 제가 잘못한 것 있으면 다 이야기해 주세요. 달게 받겠습니다”하길래 저는 액면 그대로 그분 말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분이 잘못했을 때 이것저것 따지며 지적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돌아다니면서 저를 비난하고 다녔습니다. 목사님이 별것도 아닌 일로 혈기 부리고 자기를 야단친다며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마침 그분을 만났는데 그 순간 저는 그분의 머리채를 붙들고 발로 차며 “네가 무슨 집사냐, 무슨 일이든 잘못한 일 있으면 꾸짖으라 해 놓고, 내가 꾸짖었다고 해서 나를 비난하고 다녀?”하는 말이 입 안에서 맴돌았지만 참았습니다.
목회하면서 교인들이 책망하라고 해도 책망하면 안 됩니다. 교인들이 미워합니다. 그리고 “목사님, 저 권사 안 해요. 제가 무슨 권사를 해요. 다른 분 시키세요”해 놓고 진짜 권사 명단에서 빼놓으면 그 사람들이 시험에 듭니다. 그래서 저는 목회하면서 책망보다는 권면과 위로와 칭찬하는 쪽을 훨씬 더 좋아합니다.
지방에 집회를 갔더니 그 교회 장로님들이 성가대 석에 앉아 성가대를 했습니다. 끝난 뒤 전부 앉으려고 하기에 장로님들 일어나 계시라고 했습니다. 한 50여명 됐는데 교인들에게 “여러분, 이 장로님들이 개척교회에서 얼마나 수고가 많으시겠습니까? 우리를 잘 다스리는 장로를 배나 존경하라고 했으니 이런 때 장로님들을 위해서 박수를 보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립시다”했더니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또 앉으려고 해서 “장로님들 서 계십시오”하고 교인들에게 “여러분, 장로님들 하는 대로 하십시오. 장로님들이 저녁 예배에 나오면 여러분도 나오고 장로님들이 저녁 예배 안 나오면 여러분도 나오지 마세요. 장로님들이 새벽 기도하면 여러분도 하시고, 안 하면 여러분도 하지 말고 장로님들이 헌금 많이 하면 여러분도 따라 하세요.” 그러니까 또 하나 둘씩 앉으려고 하기에 “서 계세요”하고 “여러분, 장로님들이 전도하면 여러분들도 전도하고, 장로님들이 전도하지 않으면 여러분도 하지 마세요”하고 앉혔습니다.
부흥회가 끝나고 난 뒤 어느 장로님이 와서 하는 이야기가 “목사님은 참 희한한 부흥 강사입니다. 다른 분들은 드러내고 장로들을 때리는데 처음에는 장로들을 칭찬하는 줄 알았더니 나중에는 얼굴을 들 수 없게 만듭니다.” 드러내고 때리는 것보다 더 창피해서 그냥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라고 하였습니다.
요새는 부흥회를 다녀도 함부로 마구 욕하면 안 됩니다. 때리고 욕하는 것보다 슬슬 올려 놓으면서 할 말 다 하면 그 사람들이 다 알아듣습니다.
교인들을 자꾸 칭찬해 주어야 됩니다. 또 권면을 해야지, 책망을 해서는 안 됩니다. 엄마가 아이에게 젖을 먹이면서 아이한테 화를 내고 신경질을 부리면 그 아이는 분명히 그 젖 먹고 설사합니다.

16. 실천 목회

어떤 목사님들은 이 강단이 분풀이 센터인 줄 알고 마구 감정을 섞어 설교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교인들이 설사합니다. 상처 받습니다. 여러분 강대상은 분풀이 센터가 아닙니다. 복음을 복음대로 전하고 문제가 있을 때는 기도해야 됩니다. 목회해 보면 교인들 책망한다고 목회가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책망하면 할수록 더 안 됩니다. 설교를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하는 대로 실천하며 사는 사람이 목회를 잘 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뉴욕의 어느 부흥 집회에 갔는데, 그 담임 목사님의 생긴 모습과 말하는 것이 어눌하고 별로 잘난 구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개척한 지 4년 되었다는데 400~500명 되는 교인들이 목사님이라면 꼼짝 못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이 목사님이 말도 시원치 않고 키도 자그마하여 볼품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하기에 교인들이 이렇게 존경하고 또 소문이 나서 그 교회로 모이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만히 관찰해 보니 그분에게 두 가지 특징이 있었습니다.
교회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교인들 불러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엎드려서 하나님께 기도만 합니다. 그러니 목사님한테 아무리 어려운 일이 생겨도 교인들은 전혀 모릅니다. 그는 문제가 생기면 그저 기도만 합니다.
또 하나 존경 받는 이유는 목사님이 말로만 설교하는 분이 아니고 생활로 하는 분입니다. 설교하는 그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 교회 교인들이 “목사님, 우리 목사님은 설교하는 것 이상으로 사시는 분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 목사님을 존경해요”라고 말하였습니다. 제가 그 모습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17. 무릎으로 기도하는 목회

발이 빠르다고 선착하는 것은 아닙니다. 뛰기만 한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닙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합니다.

18. 순종적인 목회

십자가는 지고 가는 것이지 타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우리의 기도가 부족한 탓인지 교역자 가운데 십자가를 타고 가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십자가를 타고 가는 교만의 목회가 아니라 십자가를 지고 가는 순종의 목회를 해야 합니다.

19. 성경 중심적인 목회

인간의 지혜로 하는 목회가 아니라 성경 말씀 중심의 생명있는 목회를 해야 합니다.

20. 진실한 목회

교인을 외모로 보는 계산적인 목회가 아니라 외롭고 괴로운 자의 편에 서는 진실한 목회를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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