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식 목사 핵심 특강, ‘2030년 한국 사회 변화와 한국교회의 미래’
성장의 한계를 못 넘게 만드는 6가지 걸림돌
첫째는 ‘만들어 낸 은혜’다.
교회는 떠나가는 교인들을 붙잡기 위해,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끌어모으기 위해 언제부턴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은혜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삶의 변화와 마음의 깊은 찔림보다는 억지스런 감동에 치중하기 시작했다. 감성을 자극하는 쇼를 통해서라도 사람들의 눈에서 억지눈물을 만들어내고자 했다.
은혜로 말미암은 평화와 감사보다는 코미디를 해서라도 한바탕 재미를 선사하려고 했다. 거룩한 갈등, 거룩한 도전, 찔림이 있는 회개, 삶의 변화를 위한 몸부림보다는 눈물과 웃음이 우선이었다. 변화 없는 눈물과 웃음이 은혜로 둔갑했다. 설교는 교인들의 감성과 타협했다.
교회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감동은 인위적인 감성 자극이 아니다. 은혜를 통해 오는 감동, 회개와 용서를 통한 감동, 사랑과 섬김을 실천함으로 흘러 나오는 감동이어야 한다. 슬프게도 현대의 예배에서는 경건이 사라졌다. 하나님을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존경하고 두려워하고 복종하는 경배는 사라지고, 찬양 노래방만 남았다.
대중문화의 쇼와 스포츠 경기의 관객 같은 교인들로 넘쳐난다. 감성적인 모임과 축제만 남았다. 거듭남 대신 ‘적극적 사고방식’이, 회개 대신 ‘기분전환’이, 신유 대신 ‘마인드 컨트롤’이, 십자가의 비전 대신 ‘인간 지도자의 제국주의적 야망’이 강단에서 선포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를 따라 삶으로 얻어지는 영적 승리와 전리품을 가지고 축제를 열어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빠지고 자기 충족과 자기 만족의 축제만 넘쳐나고 있다. 흥분과 열이 오르는 것이 은혜의 표지가 되었다. 기도가 시작되면 눈물을 흘리고, 소리를 지르고, 손을 흔들어야 한다는 묘한 압박감이 작동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먹고 마시고 뛰놀았던 그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인간의 축제를 참다운 예배로 착각하고 있다. 예배의 본질이 변했다.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경배가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내기 위한 이방 종교의 제의가 되었다.
둘째는 ‘권징의 사라짐’이다.
권징은 말씀의 순결함과 성도의 성화의 생활을 보존하는 아주 중요한 수단이다. 말씀의 순결함과 성도의 삶의 변화는 예배 이후에, 설교 이후에 시행되는 권징에 의해서 판가름난다. 칼뱅은 교회에 권징이 없으면 죄악된 본성을 가지고 있는 아담의 후손인 교인들이 악한 사람과의 교제로 말미암아 타락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고 생각했다.
권징이 엄격해야만 교인들이 자신의 추악함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고 스스로 회개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했다. 칼뱅은 권징이 교회의 안녕과 질서 유지에도 절대적이라고 생각했다. 교회 공동체 가운데 기독교의 이름에 불명예를 초래하는 자들을 엄격한 권징을 통해 교회의 가족으로부터 추방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 사람은 신성한 하나님의 이름에 치욕의 낙인을 찍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권징이 사라진 지 오래다. 권징을 엄격히 실시하면 교인들이 떨어져 나갈까봐 두려워한다. 하나님보다 교인을 무서워하는 것이 지금 한국교회의 모습이다. 이러니 목사나 장로나 교인들이 교회 안팎에서 기독교의 이름에 불명예를 초래하더라도 권징은 고사하고 잘못했다고 지적하기도 어려운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셋째는 ‘교회 일치에 대한 잘못된 방법’이다.
교회의 순결을 포기하면서까지 교회를 일치하고 연합하려는 태도다. 교회의 일치와 연합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교회의 순결을 유지하면서 진행되어야 한다.
넷째는 ‘위기감의 상실’이다.
한국교회의 쇠퇴가 시작되고 있음에도 한국교회 교인과 지도자의 68%는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가 성장하고 있다고 믿는다. 82%는 앞으로 반드시 성장할 것으로 생각한다. 긴장감 결여, 위기감 결여는 교회 내부에 존재하는 암적 요소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경고했을 때 아무도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던 상황과 같다.
막연한 낙관주의는 심판의 임박성과 복음의 긴급성을 잃어버리게 하는 근본적인 이유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해 자발적으로 전도의 열정이 불타오르는 것을 기대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자기 교회의 교인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염려하는 동기에서라도 전도가 시작되어야 한다. 그런데 위기감조차 없으니 전도의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한 조사기관이 자신이 다니는 교회가 반드시 부흥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교인들에게 이유를 물었다. 28%가 ‘전도를 열심히 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17%는 ‘설교가 좋아서’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조사에 참여한 교인 대부분은 전도를 하지 않고 있었고, 설교가 아무리 좋더라도 교회 안에서 목회자나 다른 교인과의 관계가 나빠지면 교회를 옮길 것이라고 대답했다.
세속화나 상대주의, 경제적 위기 등은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는 문제다. 하지만 정신적, 심리적, 영적 문제는 차원이 다르다. 개혁의 시기에는 자신감, 믿음, 용기 같은 정신적 능력이 개혁의 흐름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변화의 시기에는 거부, 소외, 두려움, 혼동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혼란 속에서도 지도자와 구성원이 자신감, 믿음, 용기, 소망을 잃지 않으면 개혁과 갱신은 반드시 성공한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개혁과 각성은커녕 교회 안팎을 둘러싼 심각한 현실과 위기를 객관적으로 인식하지 않으려는 자세로 가득 차 있다. 무조건 잘 될 것이라는 막연한 낙관주의에 빠져 있다. 교회의 부흥은 주님이 알아서 하시는 것이라는 무책임에 빠져 있다.
다섯째는 ‘변화의 거부’다.
경제 상황이 불안하거나 자신의 삶이 혼란스러울수록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유보다 안정, 변화보다 현상 유지에 대한 욕구가 강해진다. 이런 인간의 본성이 현재 변화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한국교회와 교인에게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갱신과 변화를 더디게 한다.
곳곳에서 일어나는 개혁에 대한 의심과 걱정은 갱신과 변화에 대한 반발 작용이다. 많은 사람이 갱신이나 개혁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만 막상 갱신과 개혁의 행동을 취해야 할 때는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갱신을 위한 위험 부담과 치러야 할 직접적인 대가들 때문에 주저하는 것이다.
여섯째는 ‘잘못된 변화의 강요’이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많지만 변화를 시도하는 교회와 교인도 많다. 변화를 시도하지만 실패하거나 바람직한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것은 잘못된 변화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변화에 대한 철저한 준비와 안목 없이, 많은 교회와 교인들이 본질을 버리고 비본질을 강요하는 잘못된 변화를 시도했다. 변화해야 할 것과 변화하면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 구별하는 안목이 필요하다.
-최윤식 목사(아시마미래인재연구소장, 소망과사랑의교회 담임), ‘2020-2040 한국교회 미래지도’(생명의말씀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