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주고 사는 김수태 목사가 말하는 성경적 재물관
“저는 수중에 돈이 없지만 아직 부족해 본 적이 없다.”
“돈이 필요하면 항상 온다.”
“나는 평생 가난이 없다. 평생 주고 산다.”
수중에 돈이 없으면서, 가난하지 않으며, 부족하지 않으며, 가난도 없으며, 오히려 주고 산다고 말하는 목사가 있다. 뉴욕어린양교회 김수태 목사이다. 4월 24일 열린 할렐루야대회가 1차 준비기도회에서 김 목사는 고린도후서 9장 1-8절을 본문으로 “풍성함에 이르는 삶”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전했다. 김 목사는 설교를 통해 오늘날 교회가 목회자가 성도가 가난하지 않고 풍족한 삶을 누리는 성경적 비결을 전했다. 다음은 그 내용이다.
▲설교하는 김수태 목사
교협과 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이 고생을 많이 하는데 안타까운 것은 교회가 세상보다 가난해서는 일을 못한다. 예수님의 사람들이 세상사람들 보다 가난하면 일을 할 수 없다. 성경은 은혜가 넘치도록 준다고 했다. 복음과 주는 것은 같이 가야 한다. 복음과 주는 것을 나눌수 없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할때 가난한 사람들을 잊지말라고 했다. 복음과 주는 것은 항상 같이 갔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가 왜 이렇게 가난한가. 간단하다. 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나누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복음의 한 쪽만 있지 다른 한 쪽은 없기에 그렇다. 그것이 오늘날 교회가 가난한 이유이다. 나누지 않아서 그렇다. 그래서 성경을 믿는 사람에게 풍성한 삶은 나누고 사는 것이다. 성경은 나누는 것이 생명이라고 되어 있는데 우리는 그것이 없다. 그 이유는 세상이 힘들어 지면서 세태가 험악해졌기 때문이다.
요즘 교계에서 선교에 대해 많이 이야기 하는데 선교는 내 교회를 먼저 생각하면 못한다. 이유는 복음은 나누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에 교회가 세워지고 교인들이 건축헌금 다 한 다음에 이방땅으로 복음을 전하러 간 것이 아니다. 교회가 세워지자 말자 복음을 가지고 갔다. 그때 그들이 복음과 함께 가지고 간 또 하나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었다.
성도를 섬기는 일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이는 내가 너희의 원함을 앎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마게도냐인들에게 아가야에서는 일 년 전부터 준비하였다는 것을 자랑하였는데 과연 너희의 열심이 퍽 많은 사람들을 분발하게 하였느니라.(고린도후서 9:1-2)
본문에 1-2절에 바울은 성도들의 섬기는 일, 주는 일, 나누는 일에 대하여 불만이 없다고 한다. 이미 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대교회가 돌아가는 것은 이것때문이다. 뜨거운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뜨거워서 뭐하는가. 옆에서는 굶어 가고 있는데. 그래서 바울은 본문에서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너희들이 섬기는 일을 잘하고 있기에 내가 할말이 없다고 했다.
사회에서 교회가 목회자가 성도가 과연 나눔을 잘한다고 인식을 받고 있는가. 중요한 것은 복음을 나누는 것과 물질을 나누는 것은 하나이다. 분리를 할 수 없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 사람의 육체도 사랑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복음과 나눔을 분리하기에 점점 교회가 힘들어 진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오면서 부터 하나님의 주신 율법의 절기는 전부 ‘네가 받은 은혜를 잊지말라’는 것이다. 그 은혜를 잊지 않는 것은 나누는 것이다. 항상 영혼의 구원과 육체를 사랑하는 것은 같이 가는 것이다. 분리되면 문제가 된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나눔의 공동체이다. 서로 도왔다. 과연 여러분의 교회의 십일조가 얼마나 가난한 다른 사람에게 가는가. 내가 잘살기에 가난한 사람에게 가서 도와주는 차원이 아니다. 마태복음 7:7-12을 보면 하나님이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런데 조건이 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하셨다. 내가 남에게 대접을 받는 것, 내가 물질의 축복을 누리는 것, 내가 남을 도와주는 것은 하나이다. 구하기 위해 문을 두드리는 목적이 남을 돕기 위한 것이다. 나 혼자 잘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원리로 가면 왜 교회에 물질이 부족한가. 절대 그렇게 될 수 없다.
교회는 하늘과 땅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그 권세와 능력을 교회에 주고 가셨다. 만물을 충만케 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제는 충만케 하는 통로로 교회를 삼으셨다. 우리를 통해 세상을 채우게 되어 있다. 그 주관자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저는 아직 부족해 본 적이 없다. 내가 돈이 있는 것이 아니다. 무슨일을 할때면 일을 하는 도중에 돈이 오든가 끝나고 오든가 항상 온다. 누구에게 달라고 한 적이 없다. 그때 제가 잡은 것이 바로 이 말씀이다. 나로 하여금 하나님 은혜의 통로가 되기를 원한다. 영적인 것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이 내 안에 살아계신다면 영혼에 생명의 생수가 전해진다.
각박한 현대교회의 모습이 있다. 주기도문의 일용한 양식을 달라는 것도 내가 다른 사람하고 같이 살기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주기위해서 기도하는 것이다. 나는 평생 가난이 없다. 평생 주고 산다. 성령의 생수는 그 사람의 삶도 책임지는 것이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령의 역사하심 속에서 두가지가 같이 역사를 했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린도후서 9:6-7)
교회는 법이 문제가 아니다. 교협에 들어가보니 헌법개정을 다루는데 머리가 아팠다. 법과 조직이 절대 먼저 아니다. 은혜를 유지하기 위해 법과 조직이 필요한 것이다. 완벽한 회칙이 어디있는가. 자원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은혜가 먼저 오면 교회는 메마르지 않는다. 성령충만하면 100불과 20불짜리 지폐가 구분이 안된다. 은혜가 안되니 차이가 보인다. 재정적자가 안나는 비결이다. 은혜가 먼저이다. 은혜는 영원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기도를 많이해서 지혜받고 능력받고 은사를 받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능력이다. 그 분이 은사이고 지혜이고 지식이다. 전에는 기도해서 능력을 받으려고 했다. 아니다. 이 단추만 풀면 다 풀린다. 내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전부이다. 그분이 바로 지혜이다. 능력충만하고 인격까지 갖춘 목회자를 만나기 쉽지 않다. 이유는 우리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은 것이 아니라 자기힘으로 기도를 많이 해서 은사를 받았지만 경건은 아니다. 우리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안에는 두가지가 다 있다.
마지막 결론이다. 목회자에게 가장 중요한것은 물질을 나누기전에 마음을 나누어야 한다. 그것이 신앙이다. 어느 대학식당에서 서빙하는 아줌마가 그릇을 나르다가 떨어뜨려 깨뜨렸다. 학생들은 막 웃기 시작했다. 그때 아줌마는 어제 밤에 아들이 전사했다는 통지를 받았기에 손에 눈물이 떨어져 미끄러졌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숙연해 졌다.
마음을 먼저 나눈다는 것은 무엇인가. 여러분들의 주위에 눈물을 흘리면서 목회를 힘들게 하고 그릇을 깨는 실수를 하는 분들이 있다. 그분들의 마음을 느낄수 있어야 한다. 눈물을 흘리면서 그릇을 떨어뜨리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너무나 많다. 우리가 마음을 나누려면 그들이 먼저 우리의 마음에 들어와야 한다. 그러한 교협이 되기를 원한다. 수많은 교회 목사들이 어려운 환경속에 있다. 그분들을 붙잡아 주어야 한다. 그것이 교협이 할 일이고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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