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에디슨(1847년 2월 11일~1931년 10월 8일).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호기심이 왕성해서 늘 ‘왜?’라는 질문을 달고 다녔다는 사실, 엉뚱한 생각과 특이한 행동으로 친구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다는 사실, 흑인을 하얗게 만들겠다고 친구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가 선생님에게 ‘얼간이’, ‘구제불능’이라고 꾸지람을 받았다는 사실 등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이야기들이다.
결국 에디슨은 학교생활에 적응할 수 없다는 판단을 받았고, 낙제를 했으며, 마침내 약 3개월 정도로 그의 정규 교육을 마쳤다. 에디슨 전기를 조금 더 자세히 읽었다면 그가 청년 시절에 청각 장애를 겪었음을 알 수 있다. 에디슨의 발명품은 미국에서 받은 특허의 개수만 해도 무려 1,300개 이상이나 된다. 1874년 자동 발신기, 1877년 축음기, 1879년 전화 송신기, 1880년 신식 발전기와 전등 부속품, 1881년 전차의 실험, 1882년 발전소 건설,1888년 영화, 1895년 광물을 가려내는 법, 1900년 시멘트 공업의 개량, 1909년 엔진형 축전지 등 수없이 많다. 그 가운데 최초의 실용적인 백열전구의 발명(1879년)은 인류의 역사를 바꿀 만한 일이었다. 더욱이 “천재는 99퍼센트의 땀과 1퍼센트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는 그의 말은 앞으로도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에디슨을 기억하지만, 정작 그의 어머니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더욱이 그녀의 인내심과 희망 가득한 자녀 교육에 대하여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는 아마도 그녀가 일찍 죽었기 때문일 것이다(그녀는 에디슨이 스물네 살 때, 즉 에디슨이 유명해지기 이전에 죽었다.).
에디슨의 어머니는 낸시 엘리엇(Nancy Matthews Elliott, 1810~1871)이다. 우리는 종종 에디슨의 전기(傳記)를 읽을 때마다 ‘한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많은 것을 발명할 수 있었을까?’라는 궁금증을 품게 되는데, 그에 대한 해답은 사실 그의 어머니 낸시에게 있다. 에디슨의 어머니 낸시는 인내하는 어머니였다. 그녀는 아들이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따돌림 받는 것을 인내해야 했다. 에디슨이 학교에서 쫓겨난 후 그녀는 아들의 친구이자 선생님이 되었다. 그녀는 아들의 엉뚱한 질문들을 인내심으로 받아 주었다. 아들에게서 ‘왜?’라는 질문이 나올 때마다 아들과 함께 백과사전을 찾으며 인내로 가르쳤다. 에디슨이 스물네 살이 될 때까지 인내로 아들을 대하였다. 에디슨이 일기 가운데서 “나는 내가 막힐 때면 언제나 나의 어머니를 생각한다.”라고 쓴 것은 그의 어머니 낸시의 인내심을 가름케 한다. 그렇게 수많은 실패에도 에디슨이 끝까지 노력하여 발명왕이 될 수 있던 것은 그의 어머니 낸시의 인내 어린 가르침 때문이었음이 분명하다. 에디슨의 어머니 낸시는 희망을 말하는 어머니였다.
‘왕따’요, ‘학습 부진아’요, ‘열등생’이던 에디슨이 세계인의 롤모델(role model)이 될 수 있던 것은 그의 어머니 낸시의 희망 가득한 말과 긍정적인 표현 때문이었다. 에디슨은 이러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나를 믿어 주는 어머니를 실망시켜 드리지 않기 위해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한 가지 발명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 무려 일만 번의 실패를 거듭한 에디슨.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실패하지 않았다. 다만 일만 가지의 틀린 방식을 발견했을 뿐이다.” 아들의 무모함과 호기심 가득한 말과 행동에 언제나 희망을 말하던 낸시, 그녀의 긍정과 희망이 위대한 발명왕 에디슨을 만든 것이다. “내 아이는 분명 훌륭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나는 그를 믿고 기다리는 중입니다.” 자녀의 미래는 부모의 인내와 희망이라는 두 날개를 타고 높이 날아오른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는 감동적인 말이다.(지상훈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