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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데우스 모짜르트 – 짤스부르그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짤트. . . 그대가 태어난 도시, 짤스부르그
[조명환의 문화기행/오스트리아]

 

▲ 멀리 보이는 호엔 짤스부르그 성의 모습. 대주교가 거주하던 궁정이다. 성 아래 왼쪽 성당이 짤스부르크 성당으로서 모짤트는 이 성당에서 영세를 받았다.

 

오스트리아 수도 비엔나에서 서쪽으로 300여 킬로 떨어진 곳에 있는 짤스부르그는 우선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짤트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그 음악 신동이 이 도시에서 탄생하므로 짤스부르그는 모짤트 때문에 유명해 진 것은 물론이요, 모짤트 덕에 먹고 사는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짤스부르그의 ‘짤스’란 말은 독일어로 소금이란 뜻이고 ‘부르그’란 성읍이란 뜻. 그래서 그 의미는 ‘소금 성읍’이란 뜻이다.

 

서기 7세기 경 이곳에는 암염이 생산되었다고 한다. 지금으로 말하면 아마 석유에 해당될까? OPEC 회원국인 중동 사막의 나라들이 석유자원 하나 믿고 세계의 강대국들을 쥐락펴락하는 꼴을 상상해 보라. 옛날은 소금이 재산이고 부의 상징이었으니 이 짤스부르그는 당연히 교황청에서 눈독을 들이는 노른자 땅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부유한 땅에 호엔 짤스부르그란 기막힌 성을 건축하고 이 성은 영주가 사는 곳이 아니라 바로 대주교가 사는 집이 되었다. 왜냐하면 이 짤스부르그는 정치, 경제적으로 어느 나라에도 예속되지 않고 교황청이 직영(?)하는 곳이었으니까. 그러니까 대주교가 이 호엔 짤스부르그 궁정에 살면서 이 도시의 황제 역할을 한 셈이다.

 

그러나 교황청의 그 ‘좋은 세월(?)’ 다 지나가고 나치독일이 스치고 지나가는 풍상의 세월을 거쳐 지금은 오스트리아의 영토로 굳어버렸다.

 

호엔 짤스부르그 성 바로 밑에 자리 잡고 있는 짤스부르그 대성당은 서유럽의 가장 큰 성당으로 한꺼번에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고 6천개의 파이프로 이루어진 가장 큰 파이프 오르간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성당에 들어가면 오른쪽엔 모짤트가 연주하던 올간이 자리 잡고 있다하여 여러분 사진기 셔터를 눌러댔다. 이 성당에서 모짤트는 영세를 받았다.

 

모짤트는 여기 짤스부르그에서 1756년 태어났다. 아버지 레오폴트 모짤트는 이 짤스부르그 대주교의 궁정음악가였다. 7남매 중 막내였다. 아버지는 아들의 음악적 천재성이 눈치채고 4세 때부터 클라비어를 가르쳤고 6세 때에는 이미 뛰어난 합시코드 연주자, 오르간과 바이올린 연주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고 9세부터는 교향곡을 작곡했다고 하던가. . .

 

아버지는 모짤트와 누이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Maria Anna Mozart)를 데리고 뮌헨으로 연주 여행을 시작, 그 뒤로 10여년 동안 연주 여행을 하면서 많은 작곡가들을 만나게 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모짤트의 아버지는 그 시대의 ‘극성 강남 엄마’였다고 봐야 한다.

 

모짤트가 짤스부르그에서 비엔나로 옮겨가 궁정 작곡가로 활동할 때의 오스트리아 황제는 조세프 2세였다. 그는 합스브루크 왕조의 절대여제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의 뒤를 이은 그의 아들. 왕권과 귀족세력에 저항하여 민주주의의 여명을 밝힌 위대한 프랑스 혁명이 서서히 역사 속에서 무르익어 갈 무렵 프랑스에는 ‘피가로의 결혼’이란 희극이 화제가 되고 있었다. 주인공은 백작의 하인 피가로. 그의 연인이자 백작 부인의 하녀인 수잔나에게 초야권(당시 영주들의 하녀가 결혼 할 때는 신랑보다 앞서 첫날밤을 지내는 제도였지만 폐지된 상태였음)을 주장하면서 추근대는 백작을 골탕 먹이기 위해 백작부인과 음모를 짜서 알마비바 백작을 통쾌하게 복수하는 내용의 이 희극은 1786년 비엔나에서 모짤트에 의해 오페라로 만들어졌다.

 

귀족이 아닌 평민의 피가 흐르고 있었기에 모짤트도 이 희극에 관심이 많았을까? 그러나 조세프 2세는 ‘피가로의 결혼’에 반대하면서 모짤트를 멀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태양왕’ 루이 14세가 베르사이유 궁전을 짓기 위해 백성들은 궁핍에 몰아넣었고 루이 16세에 이르러서는 베르사이유 궁전의 하인들조차 빵이 없다고 아우성을 치자 당시 황실의 사치와 향락의 대명사로 통하던 마리 앙트와네트는 그들에게 무슨 말을 했다던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될 것 아냐?” 그 마리 앙트와네트는 마침내 프랑스 혁명당시 혁명군에 의해 파리의 콩코드 광장에서 단두대의 이슬로 인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 앙트와네트의 오빠가 바로 오스트리아의 황제 조세프 2세. 평민들이 귀족을 조롱하는 피가로의 결혼을 천하의 모짤트가 작곡한다 할지라도 결코 좋아 할 리가 없었다.

 

이런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모짤트가 어릴 때 한번은 조세프 2세의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의 여름 별장인 쇤브룬 궁전에 초대받아 연주하는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기막힌 연주 솜씨에 갈채를 보낸 마리아 여왕이 “너의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자 어린 모짤트는 여왕의 치마폭에 안기며 따님인 마리 앙트와네트와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 앙트와네트는 모짤트보다 훨씬 나이 많은 누님뻘이었다. 만약 그때 어린 모짤트의 청혼(?)이 받아들여져 마리 앙트와네트가 모짤트와 결혼했었더라면 그녀가 단두대의 이슬로 결코 인생을 마감하지는 않았을 텐데 . . . .

 

모짤트는 결국 아버지가 반대하는 비엔나의 하숙집 주인 딸 콘스탄체 베버와 결혼하였다.

은 생애 동안 ‘돈조바니’, ‘마적’ 등 600여곡의 음악을 남기고 35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는 낯선 사람에게서 ‘레퀴엠’ 작곡을 의뢰받고 작업을 하던 도중 이를 완성하지 못하고 알 수 없는 병명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1791년 12월의 일이었다.

 

그러나 그가 어디에 묻혔는지는 지금까지도 아무도 모르고 있다. 모짤트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여 아버지의 묘지에서 DNA를 채취하여 모짤트가 묻혀있는 곳을 찾으려 했으나 모두 허사가 되었다고 한다.

프이메이슨의 단원이 되어 이들을 위한 작품을 쓰기도 했던 모짤트의 생애는 영화 ‘아마데우스’를 통해서도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1

7세까지 살았던 짤스부르그 구 시가지 그의 생가에는 지금도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있다. 그리고 그가 뛰놀았을 짤스부르그 성당 앞 광장의 빨래터, 유유히 흐르는 잘자흐 강물을 바라보며 그는 어린 시절을 여기서 보냈다.

 

음악 신동 모짤트의 숨결을 느껴보려는 사람들은 지금도 구시가지에 흐드러지게 널려 있는 모짤트 초콜렛, 모짤트 카페, 모짤트 콘서트를 즐기면서 고전주의 음악의 거장으로,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불행한 생애를 마감한 아마데우스에게 한송이 꽃을 바쳐 위로와 사랑을 전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리라.       <계속>

 

▲ 모짤트의 생가. 그는 이 아파트 3층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17세까지 이곳 짤스부르크에서 살다가 오스트리아 황제 조세프 2세때 비엔나로 가서 궁정 작곡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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