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휠체어는 나의 날개> / 차인홍 지음 / 마음과 생각 펴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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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장애인으로서는 최초로 미국의 음악대학 교수가 된 바이올리니스트 차인홍이 들려주는 희망의 메시지. 두 살 때 소아마비를 앓은 뒤 휠체어 생활을 하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 제대로 된 정규 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지은이는 이 책에서 ‘절망적 상황에서도 자신의 삶을 예비하시고 가장 선한 곳으로 이끌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한다.
재활원에서 처음 바이올린을 접했을 때의 환의, 베데스다 4중주단으로서의 활동, 인생의 동반자 아내와의 만남, 미국 유학 생활의 어려움, 그리고 ‘장애인 장학재단’에 대한 비전까지 그가 걸어온 다양한 삶과 앞으로 펼쳐갈 비전이 진솔하게 그려진다.
지은이는 초등 과정을 겨우 마친 자신이 미국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음대 교수가 되기까지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만남의 축복’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 여러 만남을 통해 하나님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시고 자신의 길을 예비하시는지를 드러낸다.
절망의 상황에서 희망을 연주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차인홍 교수는 절망을 온몸으로 끌어안고 산 사람이다. 소아마비로 두 살 때부터 걷지 못하고 휠체어에서 생활했으며, 집안 사정도 어려워 아홉 살 때는 재활원에 맡겨져 성장했다.
장애인인 데다가 정규 학교의 문턱에도 가보지 못하고,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였던 그는 스물네 살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검정고시로 모든 과정을 마치고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된다. 당시로서는 능력 있고 부유한 사람들도 유학을 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음에도 하나님께서 주신 만남의 축복을 통해 유학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신시내티 대학, 뉴욕 시립대학,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차례로 받고 우리나라 장애인으로서는 최초로 미국 음악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이런 극적인 변신 뒤에는 탄광에서 하루 10~15시간씩 바이올린 연습에 몰입했던 고통의 시간들과 졸린 눈을 비벼가며 독학으로 검정고시를 위해 이를 악물었던 눈물의 시간들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과 희망에 대한 끝없는 갈구가 밑바탕이 되었다.
하지만 지은이는 자신의 성공이,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 때문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께 받은 사랑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그래서 그는 “나는 내 생애의 어느 한 부분도 고생담으로 여겨지길 원하지 않는다. 나는 고생한 사람이 아니라 사랑받은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이 책은 고생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받은 이야기이자, 한 편의 러브스토리인 것이다”라고 말한다.
‘넘사벽’ 앞에 서 있는 청춘에게 들려주는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라는 의미를 가진 신조어 넘사벽은 우리 시대 청춘들의 상황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표현 중 하나다. 대학의 넘사벽, 취업의 넘사벽, 가난의 넘사벽 등 우리 청춘들은 너무 많은 넘사벽 앞에서 좌절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차 교수는 ‘인생의 장벽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청춘들’에게 자신이 살아온 삶을 통해 희망을 전해준다. 그리고 그 장벽을 뛰어넘는 방법으로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제시한다. 자신이 노력했을 때는 이룰 수 있는 것이 없었으나, 모든 것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긴 순간 하나님께서 불가능한 일들을 이루어주셨다는 것이 지은이의 고백이다.
“나는 목표를 향해 가다가 잠시 다른 길로 돌아 와버린 것은 아닌지 염려하는 청춘들을 만날 때면 그렇게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때론 곁길로 돌아가는 것 같을지라도 그분의 인도하심 속에 있다면, 돌아서 가는 그 길이 나중에는 가장 효과적인 길이었음을 알게 될 거라고. 그분이 인도하시는 인생이라면 우리가 경험하는 것 중에 버릴 것은 하나도 없노라고….”
차 교수의 이러한 고백은 수많은 ‘넘사벽’ 앞에 서 있는 우리 사회의 청춘들에게 큰 위로가 될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새로운 비전 ‘장애인 장학재단’
그의 삶을 이끌어주신 분은 분명 하나님이시다. 하지만 그에게 실질적으로 손을 내밀어준 사람들이 없었다면, 그는 지금의 삶을 살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이 책에서 계속해서 강조해온 ‘만남의 축복’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이자 여러 사람들에게 받은 사랑의 빚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은이는 그 사랑의 빚을 갚기 위해 새로운 비전을 갖게 되었다. 바로 장애인들을 위한 장학재단을 만드는 것이다. 2001년 중국의 한 장애인 재활원에 다녀온 뒤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이었지만 그동안 재단의 기금 마련을 비롯한 여러 상황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어오던 일이다. 그러다가 ‘찰리 할머니’라는 익명의 독지가에게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사용해 달라’며 보내온 편지와 수표 두 장을 받고 나서야 장학재단을 시작하는 데는 많은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작은 관심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지은이가 꿈꾸는 비전은 ‘장애인을 위한 장학재단’이 되었다. 그리고 이 책 <휠체어는 나의 날개>의 지은이 인세 수익을 그 ‘장애인 장학재단’에 사용하기로 했다. 차 교수는 이제 제2, 제3의 ‘찰리 할머니’들이 나타나길 기도하고 있다. 그리고 그 꿈을 위해 자신의 달란트와 노력을 헌신하고자 한다.
본문중에서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멈출 줄 몰랐습니다. 그분은 계속해서 나를 세워주셨고, 내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도록 이끌어주셨습니다. 나는 그 사랑을 받으며 하나님의 이름은 바로 ‘사랑’이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에게 간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어떤 목사님께서 간증을 하는 내게 이런 격려를 해주시더군요. “차 교수님은 마음껏 자랑하셔도 됩니다. 차 교수님이 마음껏 자랑을 해도 그 자랑이 차 교수님 자랑이 아니라는 걸 사람들은 다 압니다”라고 말입니다. 그 말씀을 듣고 보니 나도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내게는 나를 자랑할 만한 아무런 근거나 배경이 원래부터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 고백하듯이, 나는 처음부터 천재도 아니었고, 부자도 아니었으며, 남다른 신체적 조건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즉, 나 자신을 자랑할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런 내가 무언가를 조금이라도 이룬 게 있다면 그건 내가 이룬 게 아니라 나의 앞뒤, 좌우에 계신 그분이 이룬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그와 같은 이야기를 다시 하고 싶었습니다. 나 같은 사람을 자신의 목숨처럼 사랑해주시는 어떤 분이 있음을, 나 같은 사람도 반석 위에 세워주시는 어떤 분이 있음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 ‘서문’ 중에서)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목자 되신 주님을 바라보며 한 걸음 한 걸음 ‘따라가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나는 두 다리를 쓰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잘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분이 내 뒤에서 휠체어를 미는 그 속도대로, 그 방향대로 내 몸을 맡긴 채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으니 말입니다.
만약 나의 두 다리가 멀쩡했다면, 혹은 백그라운드가 좋았다거나 경제력이 받쳐줬다면 나는 내 생각대로, 내 속도대로 방향을 틀고 달려왔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분명 지금의 내 모습과는 다른 모습, 다른 얼굴로 살아가고 있겠지요. 아마도 다리의 힘 조절을 못해서, 때로는 내 생각이 넘쳐서 가지 말아야 할 곳으로 달리다가 부서지고 깨지고 넘어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약할 그때가 곧 강할 때(When I am Weak, Then I am Strong)” 라는 성경 말씀을 참 사랑합니다. 약한 만큼 강하신 그분의 은혜를 받을 수 있고, 그 인도하심대로 따라갈 수 있으니 말입니다.
나는 ‘인생이 선물이다’라는 말의 뜻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음악을 모르던 내가 음악을 접하게 된 것도 내 배경이 아니라 강 선생님이 주신 선물이었고, 악기를 살 수 없던 내가 악기를 살 수 있었던 것도 희생을 각오한 어머니가 주신 선물이었으며, 그런 선생님과 어머니를 내 인생에 허락하신 것도 나를 향하신 하나님 사랑의 선물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바이올린이란 악기를 선물로 받고 또 하나의 새로운 길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것까지 내다보시고 내 나이 열여섯에 나를 일본에 보내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한참 음악 공부를 해야 할 그 중요한 시기에 바이올린을 내려놓고 일본에 가서 휠체어를 타고 운동하는 것에 집중했던 것도 사실은 하나님의 속 깊은 계산이자 선물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는 실수가 없고, 그분 안에 살면 우리가 겪는 모든 경험들이 다 유익하다는 것을 이 일을 돌아봐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나는 목표를 향해 가다가 잠시 다른 길로 돌아 와버린 건 아닌지 염려하는 청춘들을 만날 때면 그렇게 얘기하곤 합니다. 때론 곁길로 돌아가는 것 같을지라도 그분의 인도하심 속에 있다면, 돌아서 가는 그 길이 나중엔 가장 효과적인 길이었음을 알게 될 거라고. 그분이 인도하시는 인생이라면 우리가 경험하는 것 중에 버릴 것은 하나도 없노라고….
나는 초등학교 졸업장밖에 없었음에도 유학으로 학사, 석사, 박사 과정까지 마쳤을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단 한 번의 학비를 내는 일도 없었고 단 한 번도 굶는 일이 없었습니다. 초라하게 서 있던 나를 누군가 화려하게 꾸며주셨고, 아무것도 없던 내게 모든 것을 주셨다는 걸 내 인생은 확인시켜주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모든 걸음을 인도하셨다. 나는 그분이 이끄시는 인도함 속에서 모든 걸 누리며 여기까지 왔다.’
이 깨달음이 있은 뒤부터 나는 내가 무엇을 잘해서 이루었다거나 누구보다 노력했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말을 감히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나는 그 시절, 인생이 내가 가진 실력이나 배경, 노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걸 깊이 실감하고 있었습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