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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명설교-데니스 레인(Denis JV Lane) 강해설교

데니스 레인의 “유다의 부패상”(겔 22:1~31)

데니스 레인(Denis J. V. Lane)은 영국 런던 태생의 변호사였다. 성공회 신학교(St. John’s College)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런던 남동부의 한 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하여 그 후 캠브리지에서 3년간(1956~59) 사역을 하였다. 1959년에 본격적으로 선교훈련을 받게 되고, 그 다음 해 4월 싱가폴에 OMF 선교사로 파송되었다. 그 후 OMF 이사회 총책임자를 역임하기도 한 그는, 특히 강해설교가 생소한 80년대에 강해설교 세미나로 약 15년간 한국교회를 묵묵히 섬긴 설교의 대가이기도 하다. 한국교회의 많은 목회자들이 그의 세미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강해하고 말씀에 충실하면서도 적용이 있는 설교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 실린 “유다의 부패상”은 구약의 대표적인 에스겔서 강해 “The cloud and the Silver Lining”의 일부분을 발췌하여 번역한 것으로, 그가 얼마나 뛰어난 통찰력을 가지고 성경 본문을 해석하고 적용하는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그의 설교는 철저히 강해 중심이다. 그는 예화도 없이 본문을 잘 요리하여 일목요연하게 진리를 설명한다. 조금 아쉬운 것은 본문을 너무 포괄적으로 보고 망원경식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성경의 전체 흐름을 잘 알지 못하면 그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없고, 깊은 내면적인 터치가 부족한 것이 흠이라면 흠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설교는 한 구절 속에 담겨진 내용을 가능하면 소상하게 이해하여 현 시점에 잘 적용하고 있다. 또한 성경진리와 현대인의 사조를 잘 대비시켜 적용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에스겔이 살았던 그 시대는 바로 현재 서구 사회의 모습이며, 더 나아가 한국의 현재 상황을 대변하는 것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시대와 사회는 변해도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과 태도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오늘 우리가 아파하는 9가지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시대상을 고발하고 있다.

글 ┃ 안병만 열방교회 담임목사

에스겔 22장 1~31절
…네가 흘린 피로 인하여 죄가 있고 네가 만든 우상으로 인하여 스스로 더럽혔으니 네 날이 가까왔고 네 연한이 찼도다 그러므로 내가 너로 이방의 능욕을 받으며 만국의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노라…(이하 생략)

<설교 원문>

유다를 타락의 길로 접어들게 한 원인은 폭력과 우상숭배입니다. 2절에서는 “피 흘린 성읍”이라고 했고, 3절에는 “우상을 만들어 스스로 더럽히는 성”이라고 고발하고 있습니다. 유다가 폭력과 우상으로 병들었다는 사실을 통해, 죄란 개인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죄의 양이 증가하면 전 사회에 속속들이 스며듭니다.

마치 우리 몸이 감염에 대한 자체 저항력은 있지만, 충분한 저항요소를 만들어 낼 수 없을 때에는 질병에 걸리고 고통을 당하게 되어 생존 자체에 위협을 받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에스겔은 유다를 부패와 타락의 길로 접어들게 한 아홉 개의 질병을 고발 형식으로 열거하고 있습니다.

첫째, 권력 남용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권력을 피 흘리는데 사용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책임을 위탁하신 것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사욕을 위한 목적추구에 권력을 남용하였습니다. 현대에도 그런 이기적인 지도자들이 있습니다. 위기는 그럴 때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법과 질서가 문란해진 사회에서는 시민들은 철권 수단으로 혼란을 바로 잡겠다고 공약하는 독재자에게 권력을 쥐어 줍니다. 히틀러는 그와 같은 환멸의 분위기 속에서 등장하여 세력을 잡았던 것입니다.

둘째, 부모의 권위 실추

“그들이 네 가운데서 부모를 업신여겼으며”(7절). 일체의 권위가 추락되면 마침내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떨어집니다. 권위란 그 원천이 더 높은 권위에 의해 제정되었다는 점을 인식하지 않으면 그 논리적 근거는 없어집니다.

예컨대 권력을 장악한 자가 부당하게 권력을 남용해도 막을 길이 없습니다. 또 예를 들어, 자녀들을 내가 낳았다고 해서 부당하게 부모의 권리를 행사해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내게 권위를 주셨다고 생각하면, 나는 자녀들의 유익을 위해 바르고 유용하게 권리를 행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불신 사조가 팽배한 사회에서 부모들의 권위가 떨어지는 현상은 놀랄 일이 못됩니다.

셋째, 약자의 학대

에스겔은 7절에서 지극히 작은 자와 소외된 힘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약한 자들이 유다에 많이 있었습니다. 예컨대 아버지가 없는 자식들은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과부들은 수입도 없었고, 법적인 혜택도 없었습니다. 나그네나 이방인들은 아무런 정치적 보장이 없이 늘 혜택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사회에서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단체나 영향력이 있는 집단들은 어느 정도 정당한 대우를 요구하여 받아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빈곤하고 무력한 서민들은 힘있고 지체 높은 권력자들의 발길에 이리저리 차이기만 하였습니다.

바른 사회의 시금석은 이런 소외된 자들을 어떻게 대접하느냐 하는 데 달려 있습니다. 또 그들이 뭉쳐서 폭동이나 시위를 벌려 자신들의 억울함을 분출시키지 않고 조용히 눌려 살 때 어떻게 그들을 대하는가를 보면 그 사회의 질과 수준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늘어나고 하나님의 축복이 넘친다고 자랑하는 곳에서, 빈곤과 질병에 허덕이며 아무의 돌봄도 받지 못한 채 고달픈 나날을 한숨과 근심으로 살아가는 이웃들이 즐비하다면, 그런 곳의 교회는 아직도 하나님의 축복이 의미하는 진정한 뜻을 모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넷째, 무분별

영적 생활은 유다에서 전혀 인기가 없었습니다. “너는 나의 성물들을 업신여겼으며 나의 안식일을 더럽혔으며”라고 주께서 꾸중하셨습니다(8절). 그들은 하나님과 관련된 일체의 것들을 경시하였습니다. 이런 풍조를 부채질한 자들은 제사장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이 현실 생활에 부적절하다고 옆으로 밀어 내었습니다.

거룩하고 속된 것의 구별은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불필요한 구분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거룩하게 하기보다 속되게 해버리는 편이 생활에 훨씬 편리하였습니다. 이는 세속 사회에서 더 잘 수용되는 방법이었습니다. 다른 좋은 신전도 많은데 사람들을 모으려면 아무래도 수준을 낮추고 남과 유별나게 가리는 것들을 없애서 거의 차이점이 없게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날이 다 같은 날들이며 더러운 것이 없고 거절할 것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혀 다르게 가르치셨습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굳게 서서 그 사실을 명백히 하였습니다. 깨끗하고 더러운 것을 구별할 능력을 상실한 사회는 옳고 그릇된 것도 분별치 못합니다. 이 진리의 부식을 막지 못하고 오히려 조장하는 현대 사조를 인정하는 교회 지도자들은 에스겔이 유다에게 선언한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할 것입니다. 에스겔 시대의 부패는 그 당시에만 한정된 진리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다섯째, 암살과 유혈 흥정

본문 9절에 “네 가운데 피를 흘리려고 이간을 붙이는 자도 있었으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현대의 파렴치한 테러 청부업자들처럼,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반대파를 설득시킬 수 없으면 허위날조나 중상모략으로 공중 앞에 나서지 못하게 하든지 아예 죽여 버리든지 하였습니다. 목적을 위해 수단은 얼마든지 정당화 되었습니다. 살려두거나 죽이는 일, 불명예와 허위 사실로 덮어씌우거나 제거시키는 일의 판단 기준은 다만 자기들의 목적 여하에 달려 있었습니다.

여섯째, 성적 문란

이는 현대 사회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성의 문란은 갈수록 조장되고, 심지어 지역 성소에서는 종교적인 의미를 붙여 공적으로 인정되었습니다. 옛날에 그어진 한계선은 모두 지워 놓고 새로운 한계선은 도입하지 않았습니다. 테러집단과 중상자들은 성적 편력과 함께 잔인한 피 장사를 하였습니다. 근친상간도 아무런 정죄를 받지 않고 공공연히 자행되었습니다. 여인들에게는 하등의 신변보호가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무법천지였습니다.

섹스란 ‘라우드 뮤직(loud music)’과 같습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더 큰 음악을 원합니다. 끝내는 볼륨을 더 이상 높일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릅니다. 섹스도 탐닉하면 점점 더 비정상적인 만족을 요구하다가 더 이상 아무것도 찾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리하여 타락한 개인에서 출발한 일련의 비극은 가족의 질서와 유대를 깨고 사회로 연결되어 온 나라가 문란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조니 정조니 하는 말들은 신실을 모르는 사회에서는 지나간 세대의 진부한 어휘에 속하게 됩니다.

일곱째, 청부살인 계약

“네 가운데 피를 흘리려고 뇌물을 받는 자도 있었으며”(12절). 악한 목적에 방해가 되는 인물들은 그냥 처치해 버렸습니다. 홧김으로 사람을 죽이는 자들에 대해서는 그런 극도의 상태까지 밀쳐진 이유에 대해 우리는 다소의 이해를 해 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본문에 나온 살해는 의도적으로 태연히 저지르는 냉혈 살인입니다.

그런 살인자는 면밀히 계획을 세우고 자기 개인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수인을 고용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이런 의도적인 살인을 원하는 자가 있을 뿐 아니라, 기꺼이 살인 청부를 맡아 주겠다고 나서는 자들이 있을 정도로 극심한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은밀하게 행해지는 청부 살인은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는 통로가 되고 있습니다.

여덟째, 일확천금을 위한 착취

자기방어를 할 수 없는 영세민들에 대한 고금리와 소외자들에 대한 사회적 대책 부재는, 약간의 권력을 내뻗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네가 변전에 이식을 취하였으며 이를 탐하여 이웃에게 토색하였으며”(12절).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의 노동력을 이용하여 비인간적인 착취로 대기업을 이루고서도 약자와 궁핍한 자들에 대해 냉담한 실업가들은 얼마든지 많이 있습니다. 이는 부패한 사회와 후진사회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아홉째, 여호와에 대한 망각

마지막으로 유다 사회의 뿌리를 좀먹던 또 하나의 질병은 모든 타락의 근본 원인이 되었던 여호와를 잊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네가 나를 잊어버렸도다.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12절). 보이지 않지만 살아 계신 주님께 자신들의 모든 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자들은 권력의 이기적 남용이나 부모에 대한 불경, 거룩한 것들을 멸시하거나 테러와 섹스에 탐닉하지 않습니다. 폭력범죄는 자기들보다 더 높은 절대 권력자에게 제한을 받는다는 의식이 없는 곳에서 비등합니다.

예컨대 실업가들이 주님께 자기들의 사업방법에 대해 최종적으로 답변을 해야 한다고 의식한다면, 기업의 품위를 전통적인 비도덕적 이윤추구나 전체적인 착취방식보다 더 중하게 여길 것입니다. 사회적 부식의 특징은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전혀 의식하지 않는 것입니다.

에스겔은 그런 상황에서 투쟁하였습니다. 에스겔서 1장에 기록된 하나님에 대한 에스겔의 심대한 체험은 동포들의 망동을 더욱 두렵게 부각시켰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백성들의 깊은 잠을 깨울 수 없었습니다. 다만 설교를 통해 그들의 몽상을 흔들고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에 죄의 자각을 심어 주도록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에스겔의 딜레마는 본 장의 뒷부분에 확대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부패는 위에서부터 밑에까지 만연되어 있습니다. “선지자들의 배역함이 우는 사자가 식물을 움킴 같았도다. 그들이 사람의 영혼을 삼켰으며 전재와 보물을 탈취하며 과부로 그 가운데 많게 하였으며”(25절).

제사장들이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분간치 못하고 현상유지에 급급했던 모습은 앞에서 이미 주목했었습니다. 선지자들은 관리들이 시행하려는 정책은 어떤 것이라도 승인해주는 성권의 매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이 땅 백성은 강포하며 늑탈하여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압제하였으며 우거한 자를 불법하게 학대”(19절)함이 당연한 귀결이었습니다.

백성들의 생활태도는 지도자들로부터 전이됩니다. 윗물이 더러운데 아랫물인들 깨끗하게 살아야 할 논리성이 약화되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부정을 하면 밑에 사람들도 같은 패턴을 따라 속되게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기회주의자들이 번창하고 이기적인 사욕에 몰두케 되며 약자의 위치를 악용하거나, 자신과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비록 앞뒷집에 사는 빈한하고 서러운 내 동포, 내 이웃이라도 본체만체하는 냉정한 인간들이 판을 치게 됩니다.

자기 수단껏 악착같이 벌어서 자신의 출세를 확보하면 그것으로 일이 끝나는 것이지, 무슨 윤리니 도덕이니 국가사회의 기강이니 하나님이니 하는 것을 따질 필요가 없다는 비인간화의 속풍은, 권력층이나 지도층의 그릇된 작태에서 발단된 것들입니다.

에스겔은 예루살렘 사회의 붕락 현상 앞에서 누군가 도울 자를 찾았지만 아무도 나서는 자가 없었습니다. 누구라도 의연히 일어서서 바르게 외칠 수만 있다면! 한 사람이라도 나서서 “더 이상 썩을 수 없다!”고 선언한다면! 그러나 그런 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주께서는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 못한 고로”(30절).

하나님은 마지못해 유일한 구조책은 심판의 방법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내가 내 분으로 그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보응하리라”(31절). 그의 음성에는 기쁨이 없습니다. 심판은 비극의 조종(弔鐘)이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예수 자신도 예루살렘 도시를 내려다 보시며 우시고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눅 19:42)이라고 탄식하셨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우리 사회의 부패와 몰락 현장을 보신다면 어떻게 하실까요? 과연 기개 있게 나서서 탈선의 열풍을 막아설 자를 찾으실 수 있을까요? 아니면 유일한 해결책으로 심판을 선언하실까요? 하나님의 도덕률은 인종과 국가를 초월합니다. 심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내려질 수 있습니다.

[월간프리칭 2006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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