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계 디자인계의 화두는 ‘사회적 약자(弱者)를 위한 디자인’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디자인을 잘 활용하자는 것이다. 종전에는 디자인이 부유하고 구매력이 있는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수단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디자이너들이 갖고 있는 재능과 시간의 일부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디자인하는 데 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07년 4월부터 9월까지 미국 뉴욕의 ‘국립 쿠퍼 휴이트 디자인박물관’에서 열린 ‘소외된 90%를 위한 디자인’ 전시회는 그런 이념을 잘 반영해 주었다. 30여종의 전시품들은 모두 생활환경이 열악하여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디자인된 용품이었다. 그중의 하나가 이 전시회의 포스터에 등장하는 휴대용 살균 정수기이다.
- ‘소외된 90%를 위한 디자인’ 전시회 포스터… 창 시모아 디자인, 2007년. 오른쪽 사진은 이 포스터에 나오는 제품인 라이프스트로. 베스터가드 프랑센 디자인, 2005년, 크기 310×30㎜, 무게 57g.
‘라이프스트로(Lifestraw)’라는 이름의 이 개인용 정수기는 스위스의 사회적 기업 베스터가드 프랑센이 디자인했으며, 오염된 물의 박테리아·기생충·바이러스 등을 없애주는 기능을 갖고 있다. 원통형으로 손에 들거나 목에 걸고 다니기 편하고, 청소하기도 쉽게 디자인되었다. 색채는 밝은 하늘색(몸체)과 짙은 청색(양쪽 끝부분)의 투톤 배색(配色)으로 청결한 느낌을 준다. 정수(淨水) 능력은 약 1000L로 한 사람이 일 년 동안 마실 양이다.
그러나 가격이 20달러(약 2만2000원)나 되어 오지에 살거나 재난을 당한 사람들이 구입하기에 부담스럽다. 따라서 자선단체나 로터리클럽 등 NGO들이 성금으로 사들여 2010년 아이티 지진, 지난해 파키스탄 대홍수 등 피해 지역의 주민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해 주고 있다.
이 순회전시회는 워싱턴DC와 덴버 등지에서도 열려 디자인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일깨웠다. ‘디자인에 의한 자선(慈善)’이라는 이념은 그렇게 확산되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