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별세2013.12.05 18:31 입력
▲ 향년 95세로 타계한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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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백차별정책을 철폐하고 최초의 흑인대통령에 올랐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6일(한국시각) 타계했다. 향년 95세.
제이콥 주마 남아공 대통령은 이날 TV 생중계를 통해 “남아공의 새로운 건국을 이끈 만델라 전 대통령이 우리 곁을 떠났다. 평화롭게 가셨다”고 밝혔다.
만델라 전 대통령은 폐질환을 앓아왔으며 최근 몇달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사경을 넘나들기도 했다.
현재 만델라 전 대통령의 가족들은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인근 자택에서 장례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1918년 남아공 동부지역인 롤리라라 만델라 지역에서 태어난 그는 대학시절 법학을 전공하며 저항운동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1943년에는 남아공의 대표적 저항단체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에 가담했다. 초기에는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무저항’ 노선을 따랐으나 1960년 백인정권이 흑백분리정책에 반대하는 흑인 시위대에 총격을 가해 69명이 숨진 ‘샤퍼빌 학살사건’을 계기로 폭력저항노선으로 방침을 바꿨다.
1961년에는 ANC 무장분파의 지도자에 올랐으나 1962년 체포돼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1980년대 남아공 정부의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세계적 비난이 고조되면서 만델라 전 대통령에 대한 석방요구도 거세졌다. 그는 세계 최장기수 명단에 올랐으며 대표적 양심수 가운데 한명으로 인식됐다. 이에 따라 세계각국이 남아공에 대한 경제제재를 가하기도 했다.
결국 남아공 정부는 1990년 27년간 수감했던 그를 석방하고 저항단체인 ANC도 합법화했다.
석방 뒤 그는 ANC를 이끌며 아파르트헤이트 완전철폐를 이끌어냈으며 1994년에는 자유선거로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올랐다. 1993년에는 이같은 공로로 당시 백인 대통령이던 프레드릭 드클레르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공동수상했다.
1999년 퇴임한 만델라 전 대통령은 만델라 재단과 전직 수반들의 모임인 ‘디엘더스’를 통해 인권과 환경 등 세계적인 문제를 다뤘으며 아들이 에이즈로 숨지면서 에이즈 문제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췌장암과 폐질환이 악화되면서 2010년 이후 공식석상에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왔다.
남아공 문제 전문가들은 그의 업적으로 대통령 당선 뒤 남아공을 보복의 악순환에 빠져들지 않게 유지한 점을 들고 있다. 그는 대통령 취임 직후 인종과 성별에 관계없이 인재를 고루 등용하는 등 흑백 화해에 주안점을 두었다.
[넬슨 만델라 어록]
넬슨 만델라는 ‘살아있는 성인’으로 불릴만큼 세계인의 추앙을 받았다.
자유를 향한 열정, 고난 속에도 굽히지 않는 강한 의지는 그의 생전 어록에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만델라가 설립한 ‘넬슨 만델라기념센터’의 셀로 하탕 이사장 등이 펴낸 만델라 어록집(Nelson Mandela By Himself)에 따르면 그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사람 중의 하나이다.
그의 주요 발언을 정리한다.
▲”ANC(아프리카민족회의)의 투쟁은 아프리카인들의 투쟁이다. 이 투쟁은 아프리카인이 직접 겪은 고통과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은 생존권을 위한 투쟁이다……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이 아프리카인들의 투쟁에 나 자신을 바쳐왔다. 나는 백인이 지배하는 사회에 맞서 싸웠고 또한 흑인이 지배하는 사회에도 반대해 싸웠다. 나는 모든 사람이 함께 조화를 이루고 동등한 기회를 누리는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에 대한 이상을 간직하고 있다. 그런 사회야말로 내가 살아가는 목적이고 이루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그런 이상을 위해 나는 죽을 준비가 돼 있다.” (1964년 4월20일. 내란 혐의 리보니아 재판 최후 진술에서)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한 우리 모두는…새로 태어난 자유에 영광과 희망을 돌린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범법자 신세였던 우리는 오늘 우리의 땅에 세계 각국을 초청하는 귀중한 특권을 누리고 있다. 정의와 평화, 인간의 고귀함을 위한 공동의 승리를 쟁취한 우리 국민과 함께 자리하기 위해 찾아온 국제사회의 귀빈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우리는 결국 정치적 해방을 이뤄냈다. 우리는 아직도 빈곤과 박탈, 성차별 등 여러 차별에 묶여 있는 우리 국민을 해방시킬 것임을 맹세한다.
이 아름다운 나라에 사람에 의해 사람이 억압받는 일이 결코, 결코, 결코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자유가 흘러넘치도록 하자. 아프리카에 신의 축복이 있기를!” (1994년 5월 10일 남아공 초대 흑인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한 연설에서.)
▲”친구들, 동지 그리고 남아공 국민 여러분, 평화와 민주주의 그리고 모두를 위한 자유의 이름으로 인사를 드린다. 나는 여기 여러분 앞에 선지자가 아니라 여러분의 천한 종으로 서 있다. 당신들의 지칠 줄 모르고 영웅적인 희생 덕분에 내가 오늘 여기 서 있게 됐다. 그러므로 난 남은 내 인생을 여러분의 손에 맡긴다.” (1990년2월11일 27년 동안의 옥살이 끝에 석방돼 케이프타운 시청 발코니에서 한 연설)
▲”난 말을 결코 가볍게 하지 않는다. 27년간의 옥살이가 내게 준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고독의 침묵을 통해 말이 얼마나 귀중한 것이고 말이 얼마나 사람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지 알게 됐다는 것이다.” (2000년 7월 14일, 만델라 어록집)
▲비판적이고 독립적이며 탐사적인 보도는 민주주의의 활력소다. 언론은 정부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언론은 정부 관리에 맞설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능력을 갖춰야 한다. 언론은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충분히 독립적이어야 한다. 언론은 헌법의 보호를 누려야 한다. 그래야 언론이 시민으로서 우리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다.(1994년 2월 14일, 만델라 어록집)
▲”지도자로서, 난 과거 음케케즈웨니궁에서 당시 섭정왕이 보여준 원칙을 항상 따라왔다. 난 회의에서 의견을 피력하기 전에 참석자들이 각자 무슨 견해를 가졌는지 들으려 항상 노력해왔다.” (1994년. 자서전 ‘자유를 향한 긴 여정’)
▲진정한 지도자는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특히 민감하고 복잡한 문제를 대할 때는 더욱 그렇다. 긴장된 상황이 되면 일반적으로 극단주의자들이 세를 불리고 감정이 이성적인 생각을 밀어내는 경향이 있다.” (2000년 1월 16일. 만델라 어록집)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자신이 속한 국민과 국가를 위해 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하는 것을 다 마쳤다면 그는 평안하게 안식을 취할 수 있다. 난 그런 노력을 했다고 믿고 있고 그래서 영원히 잠잘 수 있을 것이다.” (1996년. 만델라 어록집)
[CBS 노컷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