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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전문-2019년 12월 1일/주님께 나아감/히10:19-25

2019년 12월 1일 주일 예배(대강절)

제목 : 주님께 나아감

본문 : 히브리서 10: 19 – 25

 

오늘은 교회력상으로 강림절/대림절/대강절입니다. 지난주까지는 성령강림절 이후에 해당하는 절기였지만 오늘부터는 주님이 오시는 것을 기다리는 강림절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강림절은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려는 소망을 가지고 그분께 나아갈 준비를 하는 기간입니다. 이러한 때에 오늘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많은 유익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은 크게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19절부터 21절은 후에 나올 권면의 이유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2절부터 25절까지세가지의 권면에 대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서 권면이라는 말을 썼지만 사실은 이것은 권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할 것, 꼭 해야할 것, 하지 않으면 안될 명령입니다. 오늘은 우리에게 권면하시고 명령하시는 이 말씀을 가지고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19절 20절 –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길이요 휘장은 그의 육체니라.”

 

구약시대의 성전에 보면 성소와 지성소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지성소에는 사람이 함부로 들어 갈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함부로 들어 갔다가는 죽음을 면치 못했습니다. 바로 그곳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곳이요, 하나님과 만나는 곳이었습니다. 이 곳은 제사장만이 그것도 1년에 오직 한차례 1속죄일(유대력 7월 10일)에만 들어갈 수 있을 따름이었습니다. 부정한 인간이 감히 하나님께로 직접 나아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고 있는 휘장이 있었는데 이 휘장은 매우 크고 화려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며 아무도 함부로 지성소에 근접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습니다. 또한 지성소 뿐 아니라 성소도 심지어는 성소밖의 뜰에도 안뜰 바깥뜰로 나뉘었고 헤롯시대에는 안뜰과 제사장의 뜰과 남자의 여자의 뜰로 나누어 출입을 엄격히 제한했습니다. 이렇듯 성전은 성소는 일반인이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심지어 지성소에까지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는 말입니다.

원래는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은 지성소에 들어가면 그것은 곳 죄인이 거룩한 곳을 범했기 때문에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는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피는 이렇듯 우리를 정결케 하는 힘이 있습니다. 제사장이 성전에 들어갈 때도 피를 바르고 들어갔다고 합니다.(ICCⅩⅩⅩⅧ, p144) 또한 출애굽기 29장의 제사장 위임식때도 보면 오른쪽 귀와 엄지손가락과 엄지 발가락에 바르고 제단에 뿌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렇듯 피는 속죄를 뜻합니다.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면 우리의 죄를 속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이러한 의식이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단번에 모든 죄를 사함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성소에 들어가도 지성소에 들어가도 죽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휘장 가운데로 길을 열어주시사 우리가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20절에 보면 길은 길이요 휘장은 그의 육체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아마 마태복음 27장 51절에 있는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라는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밖혀 죽으심으로 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 보면 예수님의 육체를 성소 휘장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육체가 죽음으로 예수님의 육체가 로마군병의 창으로 십자가의 대못으로 찢겨짐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었고 우리죄가 사하여 짐으로 우리가 하나님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21절에 보면 또 “하나님의 다스리는 제사장이 계시매 “

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시한번 우리에게 확증시켜주시는 말씀입니다. 제사장이란 인간과 하나님을 연결해 주는 중재자입니다. 예수님은 한분 제사장 우리와 하나님을 화목하케 하시는 중보자 이십니다. 우리에게 다른 이름을 주신적이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죄많은 우리를 구속하셔서 우리가 감히 하나님과 만날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우리 앞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문이 열리게 것입니다. 그런데 문이 열려 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문으로 들어가야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앞에 다가설 수 있는 것입니다. 문은 예수님이 열어 주셨지만, 문으로 들어가는 결단은 우리가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문으로 들어갈 있겠습니까? 그 방법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22) (이미 거룩해졌음, – 회개 + 죄 용서하심)

 

우리는 죄인이었습니다. 인간이 죄를 지었을 제일 먼저 행동은 하나님으로부터 숨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는 죄를 지은 후에도 그들은 하나님의 낯을 피해 숨었습니다. 죄악된 인간이 감히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을 갈망하는 마음이 강하면서도, 동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피하고자 하는 이중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별히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모든 죄는 그리스도의 보혈로써 깨끗하게 씻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이 보혈로 우리의 죄를 깨끗이 씻어주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 제 더 이상 두려운, 숨어야 하는 관계가 아닌, 화목한 관계가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을 받은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있으며, 또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우리의 특권이면서 동시에 의무이기도 합니다.

이를 위해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런데 십자가 사랑을 받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그 큰 사랑의 희생을 부인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믿음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 앞에 서는 믿음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바로 믿음으로입니다. 다른 어떠한 것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앞에 물질을 바침으로 하나님앞에 나아갈 있게 것도 아니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일을 행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딘 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우리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믿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감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감히 하나님의 심판 앞에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믿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믿음은 간혹 흔들리기도 하고 또한 신앙의 권태에 빠질때도 있습니다.

 

처음 믿었을 는 하나님을 향한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나, 하루 하루 일상의 속에 파묻혀 살다보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점차 희미해져서 도대체 내가 왜 교회에 빠지지 않고 나가야 하나? 하는 의문이 생길때가 있습니다.

히브리서가 쓰여질 당시는 한창 박해가 심한 시기였습니다.

이들에게는 사실 구약시대와는 다른 의미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두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교회에 나아가다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다가 순교를 당할 수도 있는 어려움이 있었던 시기입니다. 이러한 시기에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있게 되었는지를 회상하면서 지금 다시 한번 하나님 앞에 두려움 없이 나아가기로 결단하는 귀한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한 그들에게 굳건한 믿음위에 서라고 하는 것이 오늘의본문의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씻어 주셨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하며 그 감격의 마음을 되찾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구약시대와 같은, 혹은 히브리서 시대와 같은 두려움은 없어졌지만, 더욱 무서운 나태와 신앙의 권태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는 신앙을 잃어버리지 않았던 그리스도인들이 신앙 생활이 밋밋해지고 편안하고 익숙해진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그마한 시험 속에서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신앙을 잃어 가고 있습니다.

가끔 신앙 상담을 하다 보면, 여러 일들로 시험에 들어 신앙생활을 중지하려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예전에 어떤 청년이 이러한 일로 상담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청년들에게,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그러한 시험이 들때가 있는데, 그러한 시험의 때를 잘 이겨 나가야 한다고 권면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도 잊지 말아야 것은 결코 교회에 나오는 것을 중단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말을 해 줬습니다. 그러한 시험이 들더라고 교회에 나오는 것을 쉬지 않고 나오면 결국에는 승리할 수 있지만, 교회에 나오는 것을 중단한다면 언제 그 시험에서 헤어나올 수 있을 지 알 수 없다. 라는 말을 해 주었습니다. 다행히 청년은 계속해서 교회에 빠지지 않고 나왔고, 결국에는 시험을 이겨 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25절의 말씀처럼

“모이기를 폐하라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여야 합니다.

 

  1. 또한 우리는 믿음위에 소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고”

23절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그 말씀이 모두 이루어 질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천국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소망이 있는 사람은 현재를 슬기롭게 이겨 나갈 있습니다.

 

지금 열심히 공부하면 몇일 후에 있을 기말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얻을 것이라고 하는 소망을 가진 학생은 열심히 공부할 수 있습니다. 지금 열심히 일하면 얼마 후에 우리가 갖고자 했던 집을 장만할 수 있다고 하는 소망을 가진 사람은 비록 힘들더라도 열심히 일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비록 암담해 보이더라도 우리가 가진 꿈과 비전을 향해 열심히 나아가는 사람은 그 꿈과 비전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도 얼마나 소망을 굳게 붙잡고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구원받았다고 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이에 더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또한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비전이 이루어지는 소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믿음이 올바로 정착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우리에게 약속한 천국에 대한 소망은 서로 뗄레야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약속이 있습니다.

믿음이 있다는 것과 소망이 있다는 것은 거의 동의어입니다. 왜냐하면 전능자에 대한 믿음은 아무리 절망적인 순간일지라도 소망을 우리에게 줍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나아가는 우리들은 결코 좌절하거나 낙망하지 아니하며 소망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1. 마지막으로 우리는 서로 남을 사랑하고 선한일을 행해야 합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4절의 말씀입니다.

 

믿음과 소망을 가졌다면, 이제 사랑할 차례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믿음”, “소망”, “사랑”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그분의 약속에 대한 소망에 근거한 사랑입니다. 갈대와 같이 흔들리는 우리의 감정에 근거한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의거한 사랑입니다. 이 믿음, 소망, 사랑은 뗄레야 없는 관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망이 없는 믿음이 없고 사랑이 없는 소망 역시 무의미한 것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과 소망이 있는 우리는 당연히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의 실천은 나의 사랑의 실천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사랑의 실천에 대한 격려가 됩니다.

내가 사랑을 실천할 때, 그 사랑을 받고, 사람들 역시 사랑의 실천자가 됩니다.

그럴 때 우리 가운데 온전한 사랑이 가득 차게 되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교회/ 여러분이 속한 어느 곳에 사랑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시 그러한 생각을 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깨달으셨으니 사랑을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사랑 때문에 다른 이들도 사랑하게 되고, 결국에 가서는 사랑이 충만하게 것입니다.

여러분이 속해 있는 곳이 어디든, 그곳이 교회든, 가정이든, 회사든 어느 단체든, 그곳에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사랑을 실천하지 않아서이고, 여러분이 사랑을 실천하기 시작하면 그곳은 점차 사랑이 가득한 곳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소금과 빛인 우리 믿음의 사람들의 사명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소금이 음식보고 싱겁다고 하면 그것처럼 적반하장이 어디있겠습니까?

방에 놓은 전등이 방이 너무 어둡다고 하면 그것 또한 얼마나 우수운 일입니까?

소금은 음식을 맛있게 해야 책임이 있고, 전등은 방을 밝게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맛나는 세상으로, 밝은 세상으로, 사랑이 있는 세상으로 만들 책임이 는 사람들입니다.

이를 위해서 예수님은 빛으로, 소망으로, 사랑으로 땅에 오셨으며,

비로 강림절에 우리는 “사랑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우리의 삶을 돌아 보아야 합니다.

하늘에 대한 소망을 가진 사람이 어찌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향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어찌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인 사랑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강림절을 맞이하면서 우리가 다시한번 생각해야 말씀은 바로 “믿음, 소망, 사랑”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이것을 가지고 모이기에힘써야 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25절에 보면 –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날이란 종말의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종말의 때는 언젠가는 기필코 올 것입니다. 그러나 때와 시는 없다고 되어 있습니다. 다만 그 시기가 가까웠다라는 것만 알 수 있을 따름입니다.

종말의 때에 관해서는 말씀을 전했기 때문에 다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때는 가장 어두울 때,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입니다. 모이기 힘들고, 말씀대로 살아가기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가지고 살아가기 만만치 않을 때가 바로 종말의 때입니다.

이렇게 말씀대로 살아가기 힘든 때에 더욱 모이기에 힘쓰며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가지고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항상 모여야 합니다. 모이지 않고 우리들은 믿음을 유지할 수 없으며 모이지 않고 우리들은 약속의 소망을 굳게 잡을 없으며 모이지 않고 우리는 사랑과 선행을 격려할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말씀중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하는 중심 말씀은 앞에 나온 믿음 소망 사랑의 말씀과 함께 모이기에 힘쓰라는 말씀입니다. 어쩌면 이 말씀이 더욱 중요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인것입니다.

교회는 모여야 해도 있습니다. 기독교인은 모여야 뭘 해도 할 수 있습니다. 모이지 않는 교회는 죽은 교회요, 모이지 않은 기독교인은 죽은 기독교인입니다. 강림절을 시작하며

더욱 모이기에 힘쓰는 우리가 되어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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