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9일에 있었던 야외예배 설교 전문입니다.
2019년 6월 9일 야외예배
본문 : 시 133편 1 – 3 제목 : 주 안에서의 아름다운 친교
-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오늘 말씀은 주 안에서 믿음의 형제자매들의 친교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를 노래하고 있는 다윗의 시입니다. 친교는 전통적으로 교회의 가장 중요한 4가지 필수 요소 중에 하나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 필수요소라는 것은 ‘말씀 선포’와 ‘봉사’와 ‘교육’ 그리고 ‘친교’입니다. 이 4가지는 교회에 반드시 있어야할 것으로 어느 것 하나가 결여되어 있다면 그것은 전통적인 교회의 개념과는 다른 교회인 것입니다.
예전에 어느 교수님이 절과 교회의 다른 점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학생들에게 질문을 한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많은 것이 다르겠지요, 그렇지만 그 교수님이 강조하신 가장 다른 점은 바로 ‘친교’의 여부에 있었습니다.
즉 친교가 없는 불교인은 있을 수 있고, 친교하지 않고도 절을 다니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친교가 없는 기독교인, 친교하지 않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 라는 것입니다. 적어도 전통적인 기독교인의 상에는 부합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친교’라는 것은 교회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가끔 이렇게 야외에서 예배를 하거나, 체육대회를 하고, 또는 성도들 끼리 교제하는 시간을 가지면, 그것은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시간과 재정과 노력의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친교’는 결코 낭비가 아닙니다. 물론 교회의 친교가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지는 것의 좁은 의미는 아니며, 성도간의 관계의 넓은 영역을 포함하는 말이기는 하지만, 어찌 되었건 이렇게 성도 간에 함께 어울리는 시간 역시 교회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성도의 교제, 오늘 본문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정말로 아름답게 여기시는 성도의 교제가 우리 교회 가운데 충만한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은 말씀을 몸으로 실천하는 날이기에 여기서 말씀을 마치고 싶지만, 또한 그렇게 해도 충분할 것 같지만 간단 하게 나마 친교에 관한 몇 가지 사항으로 더욱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 우리는 믿음 안에서 한 형제, 자매입니다.
“오늘 본문에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라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형제들은 바로 오늘날의 우리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2: 50에서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주님의 십자가 보혈로 구원받은 우리들은 한 형제요, 자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합께 연합해야 하는 것이요, 그 연합을 주님께서는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은 모두 한 형제요 자매들입니다. 서로 간에 남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한 가족인 것입니다. 오늘은 이 한 가족이 야외에서 예배하며 나들이를 나온 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하루 주님 안에서 참된 평안과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 하나님은 우리들의 친교를 아름답게 보십니다.
물론 오늘 말씀은 다윗의 고백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은 아마도 다윗이 유다지파만의 왕에서 이스라엘 전체의 왕으로 등극하고 모든 지파가 연합된 것에 기쁨으로 감사 찬양 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서로 분열되어 있던 형제들이 하나로 뭉쳤으니 왜 아니 기쁘겠습니까! 이것은 단순히 다윗의 마음뿐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본문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연합할 때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자연 상태의 인간들은 관계를 단절시켜 나아가는데 익숙합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남을 이용하고 헐뜯고 시기하고 미워하는데 익숙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자녀들은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체험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또한 자기 자신이 아니라 남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 안에서 참된 교제가 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 자녀가 서로 다투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부모 마음이 아픈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또한 자녀들이 서로 사랑하며 협력하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흐믓한 광경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한 가족이요, 한 형제, 자매입니다. 서로 사랑하며 합력함이 마땅한 것이요, 그렇지 못하면 그것은 잘못입니다. 남남이 남남처럼 지내는 것은 당연하지만, 가족이 남남처럼 지내는 것은 잘못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교제가 우리가운데 넘쳐 나기를 바립니다.
- 주님의 사랑으로 나누는 교제가 참된 교제입니다.
교회안의 친교는 세상의 친교와는 다릅니다. 세상의 친교는 자신들의 만족과 목적을 위한 친교이지만, 교회의 친교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친교입니다. 즉 교회의 친교가 올바른 친교인 증거는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가?에 달려 있다 라는 말입니다.
교회에서 아무리 친교와 단합이 잘되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주님의 뜻을 이루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친교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어느 속회에 친교가 아주 잘되어서 속도원들 끼리 너무 친한데 다른 사람이 들어갈 틈이 없어서 부흥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새 신자가 왔다가 비집고 들어 갈 틈도 없는 친분 속에서 겉돈다고 한다면 그것은 교회의 친교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친교는 주님의 사랑, 즉 희생과 십자가의 사랑에 근거한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사명을 이루기 위한 친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절에 보면 “기름과 헐몬의 이슬”로 그 아름다움을 묘사하고 있는데 기름은 성별하심을 나타내는 것이요, 이슬은 은혜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영생’의 복을 명령하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아름다운 교제 속에서 우리를 성별하시고 은혜를 주시며 영생을 이루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친교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마땅한 것이요, 만약에 없다면 그것은 잘못인 것입니다. 또한 이 친교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위해 또한 반드시 있어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이렇게 야외 에배에 나와 예배하며 친교하는 우리들 가운데 친교의 은혜가 더욱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