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는 신의(Loyalty)가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그 진미는 한 모압여인이 그녀의 시어머니에게 보여준 유례를 찾기 어려운 신의에 있다. 룻기에 ‘사랑하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아하브’는 단 한번 등장하는데 바로 시어머니인 나오미를 향한 룻의 신의를 칭송할 때다(4:15).
시어머니의 무리한 제안에도 룻은 자신의 목숨을 걸 만한 위험도 무릎쓰겠다는 신의를 보인다.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3:5). 후에 보아스가 룻에게 한 말을 들어보면 이 신의가 또 다른 신의로 응답받음을 알려 준다.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3:11). 결국 두 아들을 잃은 나오미는 가슴에 다시 아기를 안게 되는데(4:16), 이는 룻의 갸륵한 신의로 인해 가능했다. 물론 나오미가 평소에 얼마나 자기 며느리들을 잘 대해 주었는지도 본문은 감추지 않는다.(1:9-10,15)
결국 룻기는 두 여인 간의 신의에 대한 이야기이며 여인들도 신의로 연합한다면 극단적인 남성 위주의 사회속에서 무엇인가를 이루어 낼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궁국적으로 룻의 신의는 하나님으로부터 합당한 은혜(헤세드)를 받게 된다. 놀랍게도 이는 나오미의 말에 이미 예고 된 것이었다. “너희가 죽은 자와 나를 선대(헤세드)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헤세드)하시기를 원하며”(1:8) 이는 맨 마지막에 등장한 다윗 집안의 족보를 통해 밝혀진다(4:13-22) 이방 며느리 룻이 하나님이 특별히 선택하신 다윗 집안의 선조가 된 것이다.
룻기에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행위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야기의 전반부의 갈등이 안정된 구조속에서 점진적으로 해결되어 가는 흐름은 비록 직접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도하시고 점차 해결해 나가시는 하나님의 은밀한 손길을 느끼게 해준다. 룻기는 물이 갈라지고 성이 무너지는 기적의 신학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불러도 대답 없으신 것 같고 보이지도 않으시지만 고군분투하던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룻기는 그려눈다. 그래서 우리에게 더 친근한 신학이다. 신의를 지키려는 우리의 분투에 하나님은 함께 하시는 것이다. (기민석교수 글, 생명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