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물고기는 기독교의 상징이었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요한복음 6장의 “오병이어 기적”이나 요한복음 21장의 “물고기 153마리의 기적”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물고기 상징은 로마의 핍박을 받고 있던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독특성과 유일성을 비밀스럽게 고백하기 위해 사용한 일종의 아크로스틱 혹은 애너그램 암호였답니다. 물고기에 담긴 상징성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중심으로 모여 “구원자 예수님”을 예배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는 그들에게 꼭 필요한 신앙고백의 표현들이었지요.
이 표현들을 그 당시의 성도들이 사용했던 헬라어로 쓰면 “Ίησοῦς Χριστός, Θεοῦ Υἱός, Σωτήρ”가 됩니다. 자세히 보시면 다섯 개의 단어들이 보이지요? 각각의 단어들에서 첫 번째 알파벳을 따로 떼어 보겠습니다.
(1) Ίησοῦς (예수)➝ Ι
(2) Χριστός (그리스도)➝ Χ
(3) Θεοῦ (하나님의)➝ Θ
(4) Υἱός (아들) ➝ Υ
(5) Σωτήρ (구원자) ➝ Σ
이번에는 단어와 분리된 다섯 개의 알파벳들을 순서대로 모아보겠습니다.
Ι + Χ + Θ + Υ + Σ ➝ ΙΧΘΥΣ
보시다시피 ΙΧΘΥΣ라는 단어가 만들어 집니다. ΙΧΘΥΣ가 무슨 뜻일까요? 그렇습니다. “물고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가 “물고기”에 압축되어 들어간 셈이지요. 초대교회 성도들은 위에 설명된 순서들을 역으로 사유하여 물고기를 예수님의 독특성과 특별성을 의미하는 암호처럼 사용한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로마의 핍박 아래서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물고기 상징을 사용했습니다. 한 그리스도인이 길을 가다가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물고기의 반을 의미하는 반호(⊂)를 그립니다. 반호를 받은 상대방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면 그 뜻을 이해할 수 없어 그냥 지나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대 방향으로 반호(⊃)를 그림으로 물고기의 온전한 모양을 완성시킵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라는 고백이 완성되지요. 얼마나 기뻤을까요? 서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성도들은 길에서 부둥켜 안고, 서로 다독이며, 필요한 것을 나눴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다시 못보면 하늘에서 다시 보자는 말로 서로를 격려하며 헤어졌지요. 그들은 이런 방식으로 물고기 상징을 사용하며 서로를 위로했던 것입니다.
그 때로부터 천 년과 수 백 년이 지난 오늘, 여전히 ΙΧΘΥΣ가 적혀있는 물고기 상징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자동차, 열쇠고리, 귀걸이, 목걸이, 티셔츠 등에서 말이지요.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라는 고백이 공개적으로 선포되고 있는 듯하여 기쁘지만, 한 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합니다. 거룩한 고백을 담고 있는 물고기 상징이 일개의 장식품으로 전락된 듯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어떤 목사님께서 “십자가를 목에 달지 말고 가슴에 새기라”고 했는데, 물고기 상징도 그렇게 변질되고 있는 것같아 아쉽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과 제 삶을 비교해 봅니다. 제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마음껏 예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고, 목청 높여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으며, 통성으로 기도까지 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로마의 핍박을 피해 카타콤에 숨어살던 초대교회의 성도들, 밖에 나왔을 때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물고기 반을 상징하는 반호(⊂)를 그리며 자신의 신앙을 표현한 그들이 가장 원했던 상황을 저는 소유하고 있다는 말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풍성해서 귀한 줄 모르는 괘씸한 모습이 제게 보이는듯하여 부끄럽기만 합니다.
‘ΙΧΘΥΣ가 내 자동차, 액세서리, 옷에서 보여지는 것만큼, 내 삶에서도 보여지는가?’
이 질문이 끊이지 않고 저를 따라오는 오늘입니다.
(*이상환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