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은 은퇴하지 말지니 일할 수 있으면 그 이상의 행복이 없느니라.
제2는 쌓아두지 말지니 잘 버릴 줄 알아야 홀가분하니라.
제3은 대접 받으려고 하지 말지니 그대가 독립적일 때 가장 행복하니라.
제4는 젊게 보이려고 꾸미지 말지니 자연스러움이 최고의 아름다움이니라.
제5는 중얼거리지 말지니 남에게도 자신에게도 보탬이 안 되느니라.
제6은 괴롭던 일을 되새기지 말지니 되도록 즐겁던 추억을 생각할지니라.
제7은 젊음을 시기하지 말지니 백발은 노인의 면류관이니라.
제8은 남의 일에 참견하지 말지니 내 생활을 즐길지니라.
제9는 죽은 뒤의 걱정은 하지 말지니 그대는 아직 싱싱하게 살아있느니라.
제10은 보이는 것은 단념할지니 보이지 않는 것 즉 천국을 바라볼지니라.
사람을 늙게 하는 것은 나이가 아니다. 80이 지나도 인생의 수레바퀴를 힘차게 돌리고 있는 노인도 많다. 사람은 자기가 느끼고 있는 정도만큼 늙는다. 내가 많이 늙었구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말 늙은 것이며, 늙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만큼 늙지 않았다. 많은 노인들이 그 주름살 속에 젊음을 간직하고 있다. 사실 대부분의 노인은 자신이 늙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를 늙었다고 생각하는 노인이 있다면 그는 정말 늙은 것이다.
유대인들은 노년기를 셋으로 구분한다. 65세-75세를 ‘노년 개시기’(老年開始期), 75세-85세를 ‘백발청춘기’(白髮靑春期), 즉 인생의 가장 원숙한 맛을 즐기는 꽃피는 시절, 85세 이후를 ‘전진하는 노년기’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성경에서 나온 용어로서 성경은 ‘해를 거듭한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 한국어의 회춘(回春)과 비슷한 개념이다. 이런 유대인의 전통적 발상은 사람은 노년기에도 계속하여 성장한다는 생각이 들어있다.
노인의 <중얼거림>이 젊은이들을 멀리하게 한다. 중얼거림은 자신도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의미 없는 중얼거림을 말하는 노인을 흔히 ‘망령들었다’ 혹은 ‘노망’이라고 한다. 노인의 중얼거림은 말더듬과는 거리가 멀다. 할아버지들 보다는 할머니에게 중얼거림이 더 많다. 어쨌거나 중얼거림은 불평불만과 관계가 깊다. 속에 불만이 쌓이면 어떤 형태로든지 표출되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너를 안아주고 백발이 되기까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너희를 지었은즉 안아줄 것이요 품어줄 것이요 구하여 내리라.”(이사야서 46:4) 사랑스런 아기를 엄마가 품에 품고 보호하듯이 하나님은 자기를 믿는 자들을 백발이 되기까지 보호하겠다고 하는 약속이다. 장수를 복이라고 하지만 조물주가 동행하는 장수가 최고의 축복이다.
노년기와 노화(老化)는 구별되어야 한다. 노화는 생리적인 과정이지만 늙는 것은 정신적인 상태이다. 노화현상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여기에 대한 정신적인 반응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새파란 30대도 그 정신이 늙기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시인 브라우닝은 “젊은이들이여 나와 함께 늙어가자. 더 좋은 것은 미래에 있느니.” 하고 읊었다. 늙는 것이 더 아름답고 좋은 과정임을 말하는 것이다. 미지의 미래이지만 창조자의 품에 안긴 사람은 밝은 미래를 바라보기 때문에 세월을 아름답게 꾸밀 수 있다.
“늙은 말이 길을 안다.”는 속담처럼 연륜은 무시할 수 없다. 슬기로운 자는 노인의 말에 귀를 기우릴 줄 안다. 그 노인이 걸어온 직업 여하를 막론하고 연륜이 쌓은 그 많은 경험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최효섭/ 아동문학가·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