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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영웅 Mayor LaGuardia 시장

12년 간 시장직 맡으며 뉴욕 발전에 기여

오늘의 뉴욕을 만든 사람 중 이 사람의 공을 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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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1900년대를 넘어 오면서 세계 최강의 국가로 탄생한다. 영국의 산업 자본이 쇠퇴하면서 그 세력들은 새로운 기회의 땅 미국으로 몰려든다. 그 가운데 컨트롤타워로서 뉴욕이 막강한 도시로 급부상한다. 1800년대의 뉴욕은 유럽 너머의 변방, 그저 그런 도시였다. 그러나 가능성이 있는 도시였다.

석유, 철강, 전기 등 신문명의 물질들이 서서히 새로운 시장을 찾아 이곳으로 몰리고 관련 산업들이 이곳을 통해서 이합집산 된다. 도시의 발전은 급물살을 탄다. 외형과 규모 면에서 유럽의 도시들을 뛰어넘는다. 유럽의 선진 문명 앞에 항상 작아졌던 뉴욕, 1차 세계대전을 거치고 2차 세계대전을 치르는 사이 뉴욕은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도시로 탄생한다. 그 과정에서 뉴욕을 새로운 도시로 만드는 데 기여한 당돌한 이탈리안 사나이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피오렐로 라과디아’(Fiorello H. La Guardia).

뉴욕 시장에 세 번이나 당선되어 12년간 시장을 역임한다. 그것은 뉴욕의 축복이고 미국의 행운이었다.

라과디아는 뉴욕 맨해튼의 전통적인 동네인 그리니치 빌리에서 1882년에 태어났다. 어린 시절은 잠시 애리조나에서 살기도 했다. 아버지는 이탈리안, 어머니는 유대인계 이탈리안이었다. 그러나 젊은 나이에 아버지가 사망한다. 미 육군에서 밴드마스터로 일했던 부친이 군 납품 불량 식품으로 사망한 것이다. 이 비극은 그에게 정신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굳은 결심을 갖게 한다. 훗날 그가 공직 부패 척결에 누구보다 앞장서는 기폭제로 작용한 것이다.

아버지의 죽음 후 라과디아는 유럽 지역 미국 대사관 영사관에서 근무한다. 그 덕에 유대인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프랑스어, 헝가리어, 크로아티아어에 능통했다. 귀국 후 뉴욕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 1910년 뉴욕대 졸업 후 뉴욕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다. 이민 노동자 등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무료 법률 서비스와 변론을 맡는다. 이를 발판으로 그는 정치에 입문, 당시 가장 문제 지역 중 한 곳인 이스트 슬럼가에서 1916년 공화당 후보로 하원 의원에 당선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의원직을 사임하고 전쟁터로 나간다. 미군 장교로 임관하여 폭격기 조종사로 이탈리아 전선에 참전한다.

1차 대전 종전 후 귀국, 1919년에 하원 의원에 재선된다. 열정적인 의원으로서 여성 참정권 옹호, 미성년자 노동 금지, 근로자들의 복지 입법 등에 앞장섰다. 공화당 의원이면서 공화당 정책에 반하는 진보적인 성향을 보였던 그는 민주당의 아성인 뉴욕에서 공화당 후보로 시장직에 도전한다. 이미 시장직에 도전해 한 두 차례 실패한 바 있다. 절치부심하던 끝에 당내 라이벌이 스캔들로 인해 후보 사퇴를 해 손쉬운 승리를 점쳤으나 예상치 못한 다른 후보의 출현으로 선거전은 혼전이었다. 한마디로 진흙탕 싸움이었다. 난타전 끝에 중산층인 독일계 이민자들의 지지에 힘입어 현직 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다.

 

암흑 도시 뉴욕 바꾸자마피아 소탕

1930년대 뉴욕은 대공황으로 경제 파탄에 빠진다. 사람들은 헐벗고 굶주렸다. 도시의 밤은 물론 낮까지도 마피아들의 세계다. 살인, 매춘, 도박이 판치는 암흑의 도시였다. 이러한 시절 그는 시장에 당선된다. 1934년 시장에 취임하자마자 마피아에 선전 포고를 한다. 곧바로 부패한 경찰 조직도 개편한다. 마피아의 주수입원이었던 슬롯머신 도박장 소탕에 들어갔고, 뉴욕 마피아 조직의 두목인 찰스 루치아노(Charles Luciano)를 전격 체포한다. 결국 마피아 조직을 와해시킨다. 뉴욕 감옥에서 복역 중이던 루치아노는 1946년 이탈리아로 영구 추방된다.

그는 공직 부패와 특권 척결을 위해 누구보다 앞장서 싸웠고, 평생을 빈곤층과 억압 받는 사람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시장 재임 기간 내내 뉴욕시의 행정 업무를 그림자처럼 조종·지배하던 민주당 지지 정치 세력인 전통의 막강 조직 ‘태머니 홀’(Tammany Hall)과도 강하게 맞서 싸웠다. 그의 순수한 열정과 노력에 뉴욕 시민들은 물론 그의 정적들마저 신뢰를 보였다.

공화당원인 라과디아는 193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선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뉴딜(New Deal) 정책’에 적극 찬성한다. 국가는 자유방임주의 원칙을 포기하고 경제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실업자 구제와 경제 구조 및 관행을 철저하게 변혁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조했다. 그의 이런 소신 덕택에 뉴욕시 공공 사업에 소요되는 막대한 예산을 연방 정부로부터 지원받게 된다. 공항, 지하철, 공원, 교량, 주택, 의료 시설 등을 대폭 확충하는 커다란 업적을 남기게 된다.

라과디아는 다혈질 성격에다 지나치게 노동자 편에 선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는 또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히틀러를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광신자로 공개적으로 몰아세우며 해외 파병 근무를 희망했으나 루즈벨트 대통령과 의회는 군인으로서보다는 뉴욕 시장으로서 뉴욕시와 미국을 위해 더 큰 봉사를 하라며 그의 고집을 꺾느라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라과디아 시장 우표
1947년 9월 21일자 <뉴욕 타임즈>는 라과디아의 죽음을 “뉴욕의 수많은 공공 건물들 만큼이나 많은 역할을 했던 작은 거인이 숨을 거뒀다”고 표현했다. ⓒOlga Popova/Shutterstock

미국 역대 시장 중 1위로 뽑힌 작은 거인

1947년 9월 21일 <뉴욕 타임즈>는 한 정치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기사를 게재한다.

 

열정적이고 적극적이었던 그는 때로는 화재 현장에 달려 나가고 때로는 비행기를 타고 전국을 날아다니는 등 모든 문제의 현장들을 누비고 다녔다. 타고난 투사, 그의 상대가 히틀러든 길가의 시정잡배였든 상대를 가리지 않고 맞섰다. 뉴욕의 수많은 공공 건물들 만큼이나 많은 역할을 했던 이 작은 거인이 숨을 거뒀다.”

 

당시 뉴욕은 미국의 48개 주 가운데 가장 위험한 도시였다. 마피아를 몰아냈던 인물이 64세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췌장암으로 눈을 감을 때까지 온몸을 던져 뉴욕시의 부패와 폭력에 맞서 싸운 법조인이자 정치가이자 행정가이다. 그의 사망 후 뉴욕시는 모든 공공 건물에 30일간 조기를 게양했다.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53년 뉴욕의 3대 국제 공항 중 하나를 라과디아 공항(LaGuardia Airport)으로 명명했다. 1993년 미국 역사학자들과 사회과학자들의 여론조사에서 미국 역대 시장 중 1위로 뽑히기도 했다.

공직 기간 중 수많은 일화를 남겼던 라과디아가 뉴욕시 법정에서 주재했던 빵을 훔친 노인에 대한 경범죄 재판 일화는 유명하다.

배고픔을 못 견뎌 빵을 훔친 노인에게 유죄를 인정, 10달러 벌금을 선고한다. 법정 안에 앉아 있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이 노인이 빵 한 덩어리를 훔친 것은 이 노인만의 잘못이 아니다.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도 책임이 있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도 1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한다.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여러분에게도 각각 50센트의 벌금형을 선고한다”라고 판결한 것이다. 그 노인은 벌금 10달러를 내고도 남은 47달러 50센트나 되는 큰 돈을 가지고 귀가했다. (* 곽용석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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