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히브리인
히브리인(Hebrew)은 “에벨(Eber)에게 속하다”는 뜻을 가진 말로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의 조상의 이름을 따른 것입니다.
성경에서 “히브리인”이라는 말은 창세기에서 아브람에게 처음 쓰였던 명칭으로, 아브라함과 관련된 이름입니다.
{도망쳤던 자가 와서, 히브리인 아브람에게 말하였으니, 아브람은 아모리인 마므레의 평지에 거하였더라.}(창 14:13)
인상적인 표현으로는 “히브리인들의 아이들”(출 2:6), “히브리 여인”(Hebrew women)(출 2:7), “히브리 남자와 히브리 여자”(an Hebrew man, or an Hebrew woman)(신 15:12), “히브리인 남종이나 히브리인 여종”(an Hebrew or an Hebrewess)(렘 34:9),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Hebrew of Hebrews)(빌 3:5) 등이 있습니다.
2. 이스라엘
이스라엘(Israel)은 “하나님의 군사”라는 뜻을 가진 이름으로, 창세기 32:28에서 야곱과 관련해서 처음으로 불려 지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말하기를 “네 이름이 더 이상 야곱이라 불리지 아니할 것이요, 이스라엘이라 불리리라. 이는 네가 통치자로서 하나님과 사람들과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하니,}(창 32:28) 이 이름은 기근을 피해 이집트로 내려간 야곱의 12 아들들과 그 후손이 이집트에서 탈출하는 “출애굽”이라는 역사적인 사건과 깊은 연관이 있는데, 이스라엘은 홍해 사건을 통해 구속의 은혜를 경험하고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받음으로써 장차 카나안에 정착하여 영토를 회복하면 한 민족으로 독립할 수 있는 근간을 마련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제 만일 너희가 참으로 내 음성에 복종하고 나의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백성보다 나에게 독특한 보물이 되리니, 이는 온 땅이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에게 제사장들의 왕국이 되며 거룩한 민족이 되리라.’ 이것이 네가 이스라엘의 자손에게 고할 말이니라.” 하시니라.}(출 19:5,6),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민족들을 그들의 유업으로 나누셨을 때, 그분께서 아담의 아들들을 분리시키셨을 때, 그분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의 수에 따라 백성들의 경계를 정하셨으니, 이는 주의 분깃은 그분의 백성이요, 야곱은 그분의 유업의 몫임이라.}(신 32:8,9)
1) “야곱”(B.C. 1739)에게 주어진 새로운 이름으로서, 창세기(33번), 출애굽기(출 1:1,7, 6:14, 32:13- 4번), 민수기(민 1:20, 26:5 – 2번), 재판관기(판 18:29), 열왕기상(왕상 18:31,16), 열왕기하(왕하 17:34), 역대기상(9번), 역대기하(대하 30:6), 에스라(스 8:18)에서 쓰이고 있습니다.
2) 이외에 나머지는 야곱에게서 비롯된 “민족”과 그들이 “거주하는 땅”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고,
3) 특히 B.C. 975년부터 721년 사이에는 분열된 “북 왕국” 열 지파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의 역사
B.C. 975년 열 지파(왕상 12:1-9)의 반란으로 카나안은 이스라엘(Israel)과 유다(Judah)의 두 왕국으로 분할되었습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은 B.C. 975년에서 B.C. 721년까지 지속되었는데, B.C. 974년 여로보암 왕이 두 개의 금 송아지를 세웠고(왕상 12:28,29), B.C. 956년 아히야는 여로보암을 탄핵하였고(왕상 14:7), B.C. 953년에 나답은 살해당하고(왕상 15:27), B.C. 940년 시리아 왕이 이스라엘을 침공했고(대하 16:4), B.C. 929년 이스라엘은 혼란에 빠지게 되고(왕상 16:9-20), B.C. 918년 여리코가 재건되고(왕상 16:34), B.C. 910년 엘리야 선지자가 바알의 제사장들을 진멸하고(왕상 18:40), B.C. 901년 시리아 군이 하나님의 기적적인 방법으로 참패하고, B.C. 895년 엘리야 선지자가 옮겨지고(왕하 2:11), B.C. 894년 엘리사 선지자가 나아만을 치유하고, B.C. 893년 엘리사 선지자가 다양한 기적들을 행하고, B.C. 892년 시리아 왕이 사마리아를 포위하고(왕하 6:24), B.C. 891년 엘리사 선지자가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려 주고(왕하 4:32-35), B.C. 885년 하사엘이 시리아 왕을 죽이고(왕하 8:15), B.C. 850년 요나 선지자가 니느웨로 가고(욘 1:2, 2:4), B.C. 847년 이스라엘은 시리아 왕에게 압제당하고(왕하 8:3), B.C. 842년 그로부터 구해냄을 받으며(왕하 13:5), B.C. 838년 모압(Moab)이 침공하고, 엘리사가 죽으며, B.C. 822년 여로보암 2세가 이스라엘의 영토를 회복하고(왕하 14:25), B.C. 793년 아모스 선지자가 예언하고, B.C. 784년 11년간의 공위(空位)로 인한 정치 공백 기간을 거쳐, B.C. 771년 풀(Pul)이 이스라엘을 침공하고(왕하 15:19), B.C. 740년 앗시리아의 티글랏필레셀(Tiglath-pileser) 왕이 포로들을 사로잡아 가고(왕하 15:29), B.C. 725년 북 왕국 열 지파의 포로 됨이 예언되고, B.C. 723년 사마리아가 살만에셀(Shalmanezer)에게 포위당하고(왕하 18:9), B.C. 721년 북 왕국 열 지파가 앗시리아로 포로로 끌려감으로(왕하 17:6) 해서 북 왕국 이스라엘의 역사는 끝이 납니다.
※ 이스라엘인(사람)(Israelites)
이스라엘인(사람)은 “이스라엘 지파에 속한 자”라는 뜻으로 이집트에서 파라오에 의해 처음으로 불려지게 되는데(출 9:7), 이집트에 내렸던 모세의 10가지 재앙으로부터 이집트인과는 구별되는 고센 땅에 살던 야곱의 12아들들에 속한 사람들을 일컬은 것입니다. {파라오가 사람을 보내니, 보라, 이스라엘인(Israelites)의 가축은 하나도 죽지 아니하였더라. 그래도 파라오의 마음이 완악하게 되어 그가 백성들을 가게 하지 아니하더라.}(출 9:7)
특히 “Israelitish”는 “woman”과 함께 “이스라엘 여인”(Israelitish woman)이라는 형태로 레위기에서 3번만 사용되었습니다(레 24:10,11).
3. 유대인(Jews)
“유대인”은 유다(Judah)의 후손들로, 나중에는 이스라엘인으로도 불립니다.
1) 유다(Juda, Judah, Judas)는 “찬양”이라는 뜻의 레아가 낳은 야곱의 넷째 아들의 이름입니다(B.C. 1740).
2) 또 이 이름은 유다에게서 비롯된 지파, 또한 “유다 지파”가 차지한 “영토”에도 적용이 됩니다.
3) 북 왕국 열 지파의 반란 이후에 르호보암이 통치한 남 왕국을 “유다”라고 부릅니다.
“유대인”이라는 말은 솔로몬의 사후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왕국 분열이라는 이스라엘 왕조의 역사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유대인”(Jew)은 “유대(유다 땅)의 거민들”이라는 뜻으로 포로기 전후로부터 불려진 이름입니다(왕하 16:6).
{그때 시리아의 르신왕이 엘랏을 시리아로 회복시키고, 엘랏에서 유대인들(Jews)을 쫓아내었으므로 시리아인들이 엘랏으로 가서 오늘날까지 거기에 거하였더라.}(왕하 16:6) – B.C. 739
{그러자 힐키야의 아들 엘리아킴과 셉나와 요아가 랍사케에게 말하기를 “내가 청하오니 시리아 말로 당신의 종들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그것을 알아듣나이다. 성벽 위에 있는 백성의 귀에 들리도록 유대인(Jews)의 말로 우리에게 말씀하지 마소서.” 하였으나,}(왕하 18:26) – B.C. 713년
이것은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사람들을 두고 일본 사람들이 “조센징”이라고 부르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현재 한국의 영문 표기는 “Korea”로, 이것은 고려 시대 당시 아라비아의 무역상들을 통해서 세계에 알려진 이름입니다. 왕건이 새로운 나라를 창건하면서 고구려의 민족 정신을 살려 고려라고 이름붙이고, 태조 이성계가 민족의 정통성을 찾기 위해 단군이 세운 고대 왕조의 이름 “조선”을 복원하여 나라 이름을 “조선”(朝鮮)이라고 부른 것처럼 (사실상 학자들이 이 둘을 구분하기 위해서 이전의 단군 조선 왕조를 고조선이라고 하여 이씨 조선과 단군 조선을 편의상 나눈 것뿐입니다.) 나라와 민족의 이름에는 시대적인 배경과 역사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신약 시대에 와서 이 이름은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회복을 기다리는 백성이라는 의미로 이방인과 대비되어 자주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이 년 동안 계속됨으로써 아시아에 사는 모든 사람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할 것 없이 주 예수의 말씀을 듣게 되었더라.}(행 19:10)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혼에게 환란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이방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이방인에게라.}(롬 2:9,10)
열왕기하 16:6에서는 이 명칭이 남 왕국 “두” 지파에 적용되었고, 나중에는 “열 두” 지파에게 적용되었습니다.
엄격하게 말해서 이 이름은 B.C. 975년 북 왕국 열 지파와 남 왕국 두 지파가 분리된 후에는 “두 지파”의 남 왕국의 백성에게만 사용됩니다.
B.C. 603년 다니엘은 느부캇넷살(Nebuchadnezzar)의 첫 번째 꿈을 해석하고, B.C. 561년 에윌 므로닥(Evil-merodach) 왕이 여호야킨을 포로에서 풀어주고, B.C. 539년 다니엘은 벨사살(Belshazzar) 왕 앞에 손가락이 나타나 벽에 쓴 것을 해석하고, B.C. 536년 유대인에게 호의를 베푸는 코레스(Cyrus) 왕의 칙령이 선포되고, B.C. 535년 두 번째 성전이 기초가 세워져서 B.C. 516년 그 역사가 완성되고, B.C. 463년 아탁세르세스(Artaxerxes) 예루살렘 성읍의 재건을 중단시키고, B.C. 458년 아탁세르세르 왕이 에스더와 결혼하고, B.C. 457년 에스라가 돌아오고, B.C. 444년 느헤미야가 총독으로 임명되고, B.C. 332년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이 예루살렘에 입성하고, B.C. 320년 프톨레미 소터(Ptolemy Soter)가 예루살렘을 습격하고, B.C. 312년 안티고누스(Antigonus)가 유다(Judea)를 프톨레미로부터 빼앗고, B.C. 203년 안티오쿠스(Antiochus) 대왕이 유다(Judea)와 페니키아(Phenicia)를 침공하고, B.C. 200년 사두개파(Sadducees)가 발흥하고, B.C. 199년 이집트 장군 스코파스(Scopas)에 의해 나라가 회복되고, B.C. 198년 스코파스(Scopas)가 패주하고, B.C. 170년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예루살렘에서 40,000명을 학살하고, B.C. 168년 아폴로니우스(Apollonius)가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그 성전을 주피터 올림피우스(Jupiter Olympius)라고 명명했고, B.C. 165년 유다 마카베오(Judas Maccabaeus)가 군대를 일으켜서, B.C. 163년 유다가 총독이 되고, B.C. 160년 유다가 로마와 첫 번째 조약을 맺고, B.C. 156년 시리아 군대가 철수하고, B.C. 144년 요나단이 처형되고, B.C. 130년 히르카누스(Hyrcanus)가 이두메인들(Idumeans)을 정복하고, B.C. 95년 바리새인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B.C. 70년 히르카누스가 패배했다가 B.C. 63년 히르카누스가 복위하고, B.C. 54년 크래수스(Crassus)가 성전을 약탈하고, B.C. 49년 아리스토불루스(Aristobulus)가 독살되고, B.C. 42년 헤롯(Herod)이 마리암(Mariamne)과 결혼하고, B.C. 40년 파르시안(Parthians)이 유다(Judea)를 침공하고, 헤롯은 로마에 의해 분봉(分封) 왕으로 책봉되고, B.C. 37년 로마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B.C. 31년 무시무시한 지진이 있었으며, B.C. 29년 마리암(Mariamne)이 처형되고, B.C. 17년 헤롯 왕이 성전을 재건하기 시작하고, 기원 전 4년 9월경(장막절)에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예수님과 함께 시작된 새로운 유대인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자료: 한국 컴퓨터선교회 기독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