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0일 삼성전자 CE 담당을 하는 윤부근 사장이 고려대 화정 체육관에서 열렸던 삼성그룹 토크 콘서트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 앞에서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 그런 임원이나 간부와는 일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임원들이 내 앞에서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일단은 해보겠다고 합니다.”
그 토크 콘서트에서 윤 사장은 지금껏 자신이 삼성전자에서 일하면서 겪었던 숱한 고난의 시간을 참석자들에게 진솔하게 나누었다. 회사에 입사한 이후 자기 자신이 원하는 곳에는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했다고 한다. 입사 후 그가 처음 들어가 일한 곳은 텔레비전 설계실이었고, 그리고 그에게 맡겨진 일터는 중동과 아프리카였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시장이 크지 않아서 모두들 회피했던 지역이었다. 삼성은 성과를 중요시 여기는 회사로 유명하다. 고로 시장이 크지 않은 곳에서 열심히 일한들 성과가 드러나는 것이 별로 없다. 하지만 그는 열심히 연구하고 계발하여 제품을 만들어 중동과 아프리카 시장에 팔았다. 만약 중동과 아프리카 시장이 작다고, 그래서 성과가 눈에 띄게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낙심하여 열심을 내지 않았더라면 현재의 그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시련과 위기를 넘을수록 마음 에너지가 강해진다. 시련과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원하는 것이 되지 않아도 끝까지 실망하거나 포기하면 안 된다”고 강조하는 말 속에서 그가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자신에게 맡겨진 부서에 임했는지를 읽어볼 수 있다.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을 책임 맡은 이후 인도네시아, 독일, 영국 등 해외 파견 근무를 오래하면서 무척 많은 고생을 했다. 하지만 결국 한국으로 돌아와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경영혁신팀에 들어가게 되었다. 비록 경험해 보지 않았지만 배우는 심정으로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했고, 열심 있는 그에게 제품 제조, 구매, 그리고 글로벌 운영팀 등과 같은 업무까지 맡겨졌다. 하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일했건만 그의 임원 승진은 쉽지 다가오지 않았다. 승진하지 못한다는 말은 결국 밀리고 밀려 명예 퇴사하는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그의 아내가 요리사 자격증을 따두어야 할 정도의 상황이었다고 하니 그 당시 그의 현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읽어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시련이 많고 길다고 해서 낙심하거나 맡겨진 업무에 게으름 피워도 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아라.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푸시킨의 시처럼 다가오는 시련은 견디어 내어야만 한다.
윤 사장은 시련이 많았지만 오히려 시련이 그에게 더욱 열심을 내야겠다는 동기부여로 삼았다. 경역혁신팀에서 2년 동안 일했는데 2년 동안 읽었던 책이 평생 읽었던 책보다 많았다고 한다. 스스로에게 동기부여를 주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내기 위해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일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결국 “윤부근”이라는 석자는 삼성에서뿐 아니라 한국과 전세계가 지목하는 단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