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95세 어른의 수기’
[HOOC] 호서대 설립자이자 명예총장인 강석규 박사가 지난 달 31일 오후 11시 노환으로 별세했습니다. 향년 103세.
그가 95세 되던 해 ‘어느 95세 어른의 수기’라는 글을 하나 썼습니다.
젊은 시절 가난과 역경을 딛고 결코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던 고 강석규 박사, 그는 65세 은퇴후, 95세가 되던 해까지 ‘남은 인생은 덤이다’라며 허송했던 30년에 대한 후회를 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어학 공부를 시작하련다. 105세 생일날 후회하지 않기 위해”라고 했습니다.
< 어느 95세 어른의 수기>
나는 젊었을 때.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결과 나는 실력을 인정받았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 덕에 65세 때 당당한 은퇴를 할 수 있었죠. 그런 내가 30년 후인 95살 생일 때. 얼마나 후회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내 65년의 생애는 자랑스럽고 떳떳했지만, 이후 30년의 삶은 부끄럽고 후회되고. 비통한 삶이었습니다.
나는 퇴직 후 ‘이제 다 살았다. 남은 인생은 그냥 덤이다’ 라는 생각으로 그저 고통없이 죽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덧없고 희망이 없는 삶…. 그런 삶을 무려 30년이나 살았습니다.
30년의 시간은 지금 내 나이 95세로 보면… 3분의 1에 해당하는 기나긴 시간입니다.
만일 내가 퇴직할 때. 앞으로 30년을 더 살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난 정말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 때 나 스스로가. 늙었다고, 뭔가를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큰 잘못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95살이지만 정신이 또렷합니다. 앞으로 10년, 20년을 더 살지 모릅니다.
이제 나는 하고 싶었던 어학공부를. 시작하려 합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10년 후 맞이하게 될 105번째 생일날. 95살 때 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고 강석규 박사는?
고 강석규 박사의 삶은 포기하지 않는 도전의 일생이었습니다.
그는 1913년 충남 논산 태생으로 논산보통학교(현 부창초)를 나와 농사일을 했습니다. 24세에 독학으로 초등교사 자격증을 취득해 서산 성연보통학교, 강경여중, 대전공립공업학교, 경동중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았습니다.
34세에 서울대 전기공학과에 입학했습니다. 졸업 후 군산여고 교사를 거쳐 충남대와 명지대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강 박사는 1970년에 서울 대성중고등학교, 1978년 호서대 전신인 천원공업전문대, 호서전산학교, 서울벤처정보대학원대학교를 설립하고 호서대 총장과 서울벤처정보대학원대학교 총장을 지냈습니다.
1989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2009년 청조근정훈장을 받았습니다.
유족은 강일구 호서대 총장, 강철구 동우건축그룹 회장, 강명희 한남대 교수, 강순구 목사, 강명선 목사 등 3남2녀.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이며, 영결식은 4일 오전 10시 아산 호서대 대학교회에서 치러집니다. 장지는 파주 탄현기독공원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