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이 나라 백성을 얽어맨 결박을 끊으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자유와 빛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1885년 4월5일 부활주일에 27살의 청년 아펜젤러 선교사는 갓 결혼한 아내와 함께 처음으로 조선 땅을 밟고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복음의 불모지였던 조선 땅에 도착했지만 당시 조선은 ‘갑신정변’ 등 격변의 시기로 선교 사역은 순탄치 않았다.
아펜젤러 선교사는 목숨이 위태로운 조선의 선교활동을 위해 근대 교육과 독립운동을 도우며 복음의 씨앗을 뿌리기 시작했다.
그가 세운 배재학당을 통해 서양교육과 기독교 교육을 시작했다. 배재학당은 영어를 비롯해 천문학과 과학 그리고 야구와 축구 등을 가르치며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교육을 접할 수 있게 했다.
또 아펜젤러는 일제 강점기 시대에 독립운동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왔다. 서재필 등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했으며, 영어성경을 번역해 누구나 쉽게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힘썼다.
이렇게 한 사람의 헌신과 희생으로 뿌려진 복음의 씨앗은 조선에서 한국으로 이어지면서 큰 열매를 맺을 수 있었다.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온지 130년을 맞았다. 한국 기독교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2만5000여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선교대국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을 전하려는 아펜젤러 선교사의 간절한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감리교 선교사였던 아펜젤러의 후예인 한인연합감리교회 연합회는 아펜젤러 선교 130주년을 맞아 감사의 예배와 포럼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10월4일 후러싱제일교회(담임 김정호 목사)에서 전 감리교 신학대학 총장이었던 김홍기 목사를 초청해 감사예배를 드릴 예정이다.
또 10월5일에는 목회자와 신학생을 대상으로 뉴저지 내리연합감리교회(담임 이성일 목사)에서 포럼도 마련했다. 주제는 ‘웨슬리의 신학적 조명에서 본 아펜젤러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우리의 과제.’
– See more at: http://www.danbitv.com/news/detail.php?id=1276#sthash.DTbwtI94.dpu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