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르 하쪼핌(Mount Scopus)’.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히브리 대학이 자리 잡은 장소.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해서 ‘전망산’이라고 불린다. 성경 역사로는 다윗이 자신의 아들인 압살롬에게 쫓기며 도망치던 곳(삼하 15:30)이기도 하다. 당시 다윗은 머리를 가린 채 맨발로 울며 걸었고, 그를 따라 나섰던 백성들도 각각 자기의 머리를 가리고 울었다. 아들 압살롬의 모반으로 인한 피신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인심이 압살롬에게 돌아갔다는 보고를 받은 다윗은 예루살렘을 버린 채 쫓기는 신세가 된다. 다윗은 그때 “나는 정처 없이 간다”(삼하 15:20)고 심경을 전했다. 다윗이 걸었던 길은 고통과 슬픔의 길이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나약한 시기였다.
앞서 다윗은 우리아를 죽이고 그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았다. 선지자 나단은 다윗의 범죄를 그대로 지적했고 다윗은 회개했다. 하나님은 그러나 이 일 후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아들에게 쫓겨 정처 없이 나선 그는 도주 노상에서 밧세바 사건을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도 이렇게 인생길을 걷는다. 널찍한 평지대로도 있지만 골짜기와 돌짝 산길도 오른다. 길을 잃기도 한다.
선한목자교회 유기성 목사는 지난달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가야 할 길을 분명히 보여 달라고 주님께 기도할 때 주님은 순종을 먼저 물으셨다. 길이 보여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순종할 때 길이 보인다”며 “성경은 주 예수님이 길과 지혜라고 말씀했다”고 했다.
성경에서 길은 영어로 ‘way’로 번역된다. way는 히브리어로 ‘데레흐’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 개념을 포함한다. 성경은 길을 언급한다. 단순한 도로(path)가 아니다. 성경은 길의 역사이다. 각 인생길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아브람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 75세에 그가 살던 하란 집을 떠난다(창 12:4). 야곱은 아버지 이삭에게 축복기도를 받고 하란으로 향한다. 길을 가던 야곱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다.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 여정을 시작하며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간다. 선지자들은 정기적으로 여행했고 남자들은 절기마다 성전을 향해 걸었다.
마지막 사사이자 첫 선지자였던 사무엘은 매년 도시를 순회했다. 사무엘은 도시의 성소에서 사역을 수행했다. 이 같은 구약적 전통은 신약으로 이어진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갈릴리에서 예루살렘까지의 여정이었다.
요셉과 마리아는 로마 황제 아우구스티누스의 법령에 따라 갈릴리에서 베들레헴으로 여행해야 했다. 아기 예수는 마구간 구유에서 태어났으며 헤롯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피신했다. 12세 소년 예수는 예루살렘에서 ‘내 아버지의 집’을 발견했다. 그는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나갔고, 갈릴리 마을과 도시를 다니며 병자를 고쳤고 천국 복음을 전파했다.
사마리아를 관통하던 예수님은 수가성 여인을 만나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복음을 전했고 마침내 예루살렘에 입성했다. 예수님의 여정은 골고다 수난의 길, ‘비아 돌로로사(슬픔의 길)’에서 절정에 이른다. 그의 죽음은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부활한 그는 엠마오로 가는 길 위에서 제자들과 함께 걸으셨고, 다메섹 길에서 ‘박해자’ 사울에게도 나타났다. 이 예수님은 오늘 우리와 함께 걷는다. ‘임마누엘’이다.
시인 김소엽은 그의 시, ‘사막에서·2’에서 ‘길은 사막에서 끝나고/ 길은 사막에서 시작되네/ 땅의 길이 없어지니/ 하늘의 길이 열리네’라며 길이 없는 사막에서 찾은 그리스도의 길을 표현했다.
이스라엘 네게브 신광야에서 ‘광야학교’를 열고 있는 팔레스타인 강태윤 선교사는 4일, “나그네 같은 인생길을 걷는 기독교인들은 주님의 축복을 받은 존재”라며 “광야 길을 걷더라도 낙심치 말자”고 했다.
글·사진=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