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한 단체가 주관한 보리밟기 체험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다. 시골에서 자라지 않아 좀처럼 접해볼 기회가 없었는데 잘됐다 싶어 행사소식을 듣고 발걸을을 한 것이다. 보리밟기를 해줌으로써 서릿발로 들뜬 땅을 다지고 보리의 뿌리를 튼튼하게 해준다기에 온 힘을 다해 꾹꾹 밟아주었다. 그저 보리가 건강하게 잘 자라 풍년이 들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보리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야속해할 법도 한 일이 않은가. 겨우내 찬바람 맞으며 따뜻한 봄이 오기만을 기다렸는데 그토록 바란 봄소식은 아니 오고 발로 밟아대다니…
우리의 인생에도 이와 같은 경험들이 있기 마련이다. 설상가상에 엎친 데 덮친다고 고난을 꼭 찾아와도 연달아 찾아와 사람의 마음을 후벼 파고 아프게 만든다. 그런데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 역시 보리밟기와 같은 고난을 통해 성강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조금이나마 위로를 얻을 수 있다.
성경에서 고난당했던 인물 중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욥과 요셉이 있다. 욥은 하루아침에 재산과 자녀들, 건강까지 모두 잃은 시련을 당한다. 문둥병에 걸려 비참한 꼴이 되었을 때 그의 아내는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는 독설까지 듣는다. 친구들조차도 그에게 위로는 커녕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그야말로 하늘을 향해 원망을 쏟아내기에 충분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요셉또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할 정도로 귀한 아들이었지만 이복형들의 질투로 인해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가는 신세가 되고 만다. 왕의 경호대장이던 보디발의 집에서 일하던 그는 보디발의 아내를 범하려 했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기 까지 한다. 어두운 감옥에서 죄 없이 옥살이하는 그의 심정은 얼마나 비참했을까? 형제들을 향한 배신감, 나아가 세상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찰 수 밖에 없는 조건이었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때로는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지 깨닫게 하려고 고난을 주시기도 한다. 혹독한 훈련을 거쳐 굳건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창조주 하나님만 의지하게 만드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고난의 아픔만 느껴질 뿐, 고난의 유익은 없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고난의 터널을 통과한 뒤 오히려 내면이 성숙해질 뿐 아니라 이전보다 더 복을 받는다는 사실을 욥과 요셉의 마지막 삶을 볼때 증명해준다.
욥은 끝까지 인내하고 하늘을 향해 원망하지 않았다. 자신을 비난한 친구들을 위해 오히려 축복을 빌었다. 고난에도 하늘의 뜻이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결국 하나님은 그의 병을 고쳐주고 재산도 배나 더 주셨고 10명의 자식을 낳게 해주셨다. 엄청난 고통을 이겨낸 후 그 고통을 잊을만큼 큰 복을 누리게 된 것이다.
요셉의 인생도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연한 기회에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하게 되고 왕의 신임을 얻어 국무총리의 자리에까지 오른다. 부와 명예, 권력을 한 번에 얻는 그야말로 인생역전이다. 여기에 다시 가족들과 재회한 것을 물론 형제들과 화해하고 온 가족이 이집트에서 함께 살게 된다.
인생의 보리밟기를 당할 때 그 아픔을 견딘다는 것이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보리밟기의 목적이 결국은 보리가 잘 자라게 하기 위함임을 안다면 조금 더 힘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도 보리처럼 파릇파릇하게 잘 영근 알곡을 만들어낼 날이 꼭 올테니 말이다.
-기쁨의 언덕 2015년 2월호, 호산나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