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려고 해도 자꾸 눈물이 나온다. 사망권세 이기신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절 아침에도, 사순절을 끝내고 첫 출근하여 이번 주 아침기도회 중에도 눈물은 계속 나왔다. 진도 앞바다 그 추운 바다 속에서 차오르는 물을 견디지 못해 숨을 거둔 ‘세월호’ 희생자들 때문이다. 즐거운 수학여행이 서글픈 이별 여행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앞날이 구만리 같은 젊은 학생들이 청춘의 꽃으로 활짝 피워보기도 전에 캄캄한 배에 갇혀 억울하게 짧은 인생을 마감했으니 그 부모들의 아픈 가슴을 무엇으로 형언할 수 있으랴!
이번 사건으로 대한민국의 국격이 수직으로 추락했다는 말도, 세계 경제 10위권 대한민국이 부끄럽게 침몰했다는 말도 그냥 건성으로 들린다. 사회 전반에 만연된 부정부패의 결과란 말도, 재난에 대처할 줄 모르는 허둥지둥 정부에 대한 비난도, 안전 불감증에 중독된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란 비판의 소리도 귀 담아 듣고 싶지 않다.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해도 되는 일들이다.
그저 발을 동동 구르며 기적이 일어나기를 고대하고 있는 실종자 가족들만 눈에 밟히기 때문이다. 움직이지 말고 선실에서 기다리라는 어른들의 말만 철썩 같이 믿고 어이없게 목숨을 잃은 학생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막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어른으로 살고 있는 내가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한국에선 모든 국민들이 집단 패닉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고 한다. 방송의 모든 오락 프로그램이 중단되고 극장가엔 사람이 없다고 한다. 결혼식에 가려던 사람들도 맥이 풀려 그냥 외출자체를 포기하고 대형 공연 스케줄도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게 어디 한국만이겠는가? 미주에 살고 있는 한인들도 마찬가지다. 지난 부활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기뻐하며 부활찬양을 불러야 할 그 시간에 세월호 희생자와 실종자들을 위해 하나님의 자비가 속히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눈물의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어쩐 일인가? 기도하다가도 결코 분한 마음은 가라앉지 않는다. 몰염치한 그 세월호 선장을 생각하면 화가 치민다. 그 사람은 ‘타이태닉’이란 영화도 보지 못했을까?
아니 대한민국엔 ‘캡틴 필립스’같은 선장은 없단 말인가? 소말리아 인근 해상에서 화물선 앨라배마 호가 해적의 공격을 받게 되자 19명의 선원들을 모두 대피시키고 홀로 해적들과 대치하다 결국은 인질로 잡혔던 필립스 선장! 생존을 건 숨막히는 협상을 통해 결국 살아남아 자유의 몸이 된 그는 선장이란 무슨 직업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준 실제인물이었다. 그래서 그 선장을 소재로 한 영화 ‘캡틴 필립스’가 금년 아카데미 상을 받기도 했다.
대한민국엔 ‘허드슨 강의 영웅’은 존재할 수 없는가? 지난 2009년 탑승객 155명을 태운 US 에어웨이즈의 프로펠러가 새 떼와 충돌하면서 추락위기를 맞았을 때 고도가 너무 낮기도 하고 이륙한 라과디아 공항으로 되돌아가 가기도 불가능하여 캡틴 체슬리 슐렌버거가 기지를 발휘하여 허드슨 강을 활주로로 삼아 불시착 시키는데 성공했다. 탑승객 전원을 구해낸 그의 천재적인 기지 때문에 그는 허드슨 강의 영웅으로 존경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런 푸념을 늘어놓아 희망의 생명줄을 붙잡고 구조되는 한명의 생존자라도 있다면야 얼마나 좋으련만 기적은 없고 싸늘한 주검만이 줄줄이 인양되고 있으니 이 안타까운 마음을 어이하랴!
한인들의 자부심으로 우뚝 솟아오른 다저스의 류현진이 희생자 가족을 위해 1억원을 기부하고 하와이에서 열린 LPGA 롯테 챔피언십 경기에서 거의 4년 만에 정상에 오른 미셀 위가 여객선 희생자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머리에 검은 리본을 꽂고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심정은 미국 땅에 살고 있는 우리 모든 한인들의 마음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사건이 재발되지 않기 위하여 이 사건을 교훈으로 삼는 일에는 누구하나 예외가 있을 수 없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선장도, 승무원도, 우리 모두가 잊어서는 안 될 교훈을 얻어야 한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선장이 배를 버리고 도망치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우리는 분명하게 목격하고 있다. 선장이 배를 버리면 버림받은 배는 침몰하고 만다. 만약 세월호 선장이 마지막까지 배를 지켰다면 수백명의 불쌍한 죽음은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선장은 마지막까지 배를 지키는 사람, 그리고 그 배와 함께 죽는 사람이다. 타이태닉의 선장이 그랬다. 그건 항해 매뉴얼에도 있는 수칙이라고 한다.
그럼 선장이 배를 버리듯 목사가 십자가를 버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목사가 탐욕과 물질의 노예가 되어 십자가를 버릴 때 교회가 침몰하는 모습을 우리는 너무 많이 목격해 왔다. 교회의 캡틴으로 부름 받은 목사 한명을 잘못 만나 교회가 깨지고 공중분해 되는 사례를 우리는 여러 번 보아왔다.
하나님의 위로가 희생자 유족들에게, 그리고 슬픔에 잠긴 대한민국, 그리고 지구촌의 한민족들에게 임하게 되시기를 함께 기도하자. 간절하게 기도하자.
그리고 배를 버린 부끄러운 선장 때문에 대한민국이 ‘초상집’이 되었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결코 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한번 생각해 보자(조명환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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