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라 시인의 “그를 깁다”-2011 해외 동포 문학
– 그를 깁다 –
남편의 방한복을 손질한다
지퍼를 올리려니 꼼짝 않는다
그가 걸어온 길이
지진으로 찢어진 도로처럼
두 갈래로 갈라져 봉합되지 않는다
녹슬어 이가 빠진 지퍼
혹한의 거리에서 가족을 위해
자신의 어금니가 뽑히는 것도
참아낸 것일까
일거리를 파헤치던 소맷귀는
낡아 헤어져 탄력을 잃고
말없이 삼키고 만 사연들이
실밥마저 닳아 터진 자리에서
삐져나오다 말고 주춤거린다
살며시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본다
싸늘한 동전 한 잎
한푼이라도 아껴 쓰려던 그가
자린고비로 살아온 삶의 비늘이다
작은 일에 투정하며 쐐기를 박았던 말들
묵묵히 받아넘기며 살아온 그 이
터진 옷깃을 깁다 말고
가벼워진 방한복을 와락 안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