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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선교 130년 ‘복음과 사랑’

image image1884년 미국의 의료 선교사 알렌이 한국 땅을 밟고 복음을 전한 지 130주년을 맞았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 조선이 복음을 통해 개화와 근대화의 물결을 만난 것이다. 이듬해엔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입국하면서 이 땅 교회는 교육과 의료 선교로 인재를 양성하며 한민족 역사의 변곡점을 만들어냈다. 한국교회는 2014년과 2015년, 기독교 선교 13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대회를 열 계획이다. 이에 본보는 기독교 선교 13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본다.

“우리는 이곳에 계속 남아 있는 유일한 외국인이지만 이 모든 일 가운데 해를 입지 않았고 우리의 사역은 가장 낙관적인 상황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풍성한 결실을 거두었습니다.” 1884년 12월. 첫 한국 거주 선교사였던 미국 북장로교 알렌이 뉴욕 선교본부로 보낸 편지 일부다. 그는 자객의 칼에 찔려 실려 온 우영사 민영익을 치료하는 등 갑신정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선교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당시 대부분 외국인들이 피신한 것과는 정반대였다. 한국 도착 3개월. 그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기로 하고 자리를 지켰다.

◇한국사회를 변화시킨 기독교=알렌은 130년 후 한국의 미래를 예견했을까. 그의 결정은 이듬해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의 내한으로 시작된 본격적인 선교의 초석이 됐다. 이후 1945년까지 내한한 선교사는 1470명. 미국 선교사만 65%에 달했으나 선교사들은 교파주의를 넘어 협력했다. 1905년 4개 장로회 선교부와 2개 감리회 선교부가 함께 재한개신교선교부공의회를 결성해 다양한 연합 활동을 추진했다. 이들은 알렌 도착 이전부터 추진해 오던 성경번역 등 문서사업을 실시했고 선교지 분할을 통해 중복투자와 경쟁을 막았다.

1907년 평양 대부흥 이후 한국교회는 마침내 해외 선교에 참여했다. 1913년 중국 산둥성에 첫 선교사를 파송한 것이다. 미국 윌리엄 커 선교사의 말처럼 ‘한국인 선교사는 복음 이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선교지에서 삶을 드렸다.’ 이는 외국 선교사들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선교사들의 목표는 복음을 전한 선교지 주민들이 기독교인이 되고 그들이 다시 선교사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알렌 도착 이후 29년 만에 그 꿈이 이뤄졌다.

선교사들과 한국교회는 사회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글 성경 번역과 보급으로 견고한 한문 중심 사회를 뒤흔들었다. 교회와 기독교 학교에서는 한글 배우기운동이 전개되는 등 한글 부흥과 정리, 보급에 교회 역할은 지대했다.

선교 초기부터 강조했던 사회운동은 결실을 더했다. 술과 담배, 마약 퇴치에 앞장선 교회는 시민운동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물산장려운동과 농민운동을 전개했고 3·1운동을 주도하면서 일제의 탄압에 굴하지 않았다. 한국전쟁 이후 설립된 민간 구호기관 역시 기독교에서 시작됐다. 월드비전과 컴패션을 비롯해 미국 기독교아동복리회 한국지부가 1948년부터 한국을 도왔다.

해방 이후 교회의 역할은 더욱 증대됐다. 선교 재개를 위해 내한한 다수의 선교사들은 ‘한국의 현실에서 교회의 역할이 커졌고, 한국인들은 사랑과 구호 협력의 손길을 요구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해방 당시 한국교회 신자 수는 40여만명. 기독교인들은 한국사회의 지도층을 형성했다. 불교와 유교 문화에 이어 프로테스탄티즘을 매개로 서구문화가 한국사회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한국교회는 멈추지 않고 73년 ‘빌리 그레이엄 전도집회’와 ‘엑스플로 74’, 민족복음화대성회 등 집회를 통해 부흥을 견인했다. 사회 참여에도 적극적이어서 1960년대 이후 막혔던 언로를 대신하는 등 민주화운동에 촉매 역할을 했다. 한일협정과 3선개헌 반대운동을 펼쳤고 유신헌법과 긴급조치에도 격렬하게 저항하는 등 인권운동과 민주주의 확산에 기여했다.

◇끝나지 않은 사명=한국 기독교 선교 130년. 교회의 사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회 안팎의 갈등과 반목, 경제적 불안정과 한반도 주변 정세는 ‘안녕’하지 못한 현실이다. 교회는 이를 치유해야 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현재 교회가 닥친 위기부터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서울신대 박명수 교수는 “세상이 요구하는 것은 교회가 하는 일이 아니라 순수성 그 자체”라며 “지도자부터 복음이 주는 순수함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규 교수는 이를 ‘무명(無名)에의 의지’로 명명했다. 이름 없이, 빛 없이 살겠다는 의지로 세상의 것을 포기해야 병든 사회를 구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기의 시대를 헤쳐 왔던 130년 한국교회의 ‘경험’을 되새길 필요도 있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 한정국 사무총장은 “한국교회 역사는 위기와 변혁이라는 역설적 반전으로 볼 수 있다”며 “한국적 선교와 신학을 확립해 세계 교회에 기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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