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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찬양을 위한 Tips

올바른 찬양을 위한 Tips

1. 찬양의 정의

찬양은 인간이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응답하고 기꺼이 나아가는 여러 방법 중 특출한 일면을 지닌 것이다.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찬양의 대상이며(신 10:21) 이를 통하여 그의 신격(神格)과 행사 속에 있는 하나님의 탁월함과 유일함이 나타난다. 찬양은 하나님을 나타내지만 하나님을 완전히 보여주지는 않는다.

찬양은 하나님께 드릴 인간의 첫째 임무이기 때문에 히브리 성서에 찬양을 뜻하는 여러가지 단어가 있는 것은 필연적이다. 찬양을 나타내는 대표적 단어는 할랄, 야다, 자마르, 샤바흐 등이며, 바락(축복하다), 아나(번갈아 노래하다), 라난(외치다), 쉬르(노래하다), 길(기뻐하다) 등과 같은 단어도 있다.

1. 할랄 : 강조형으로서 이 말은 찬양을 표현하는 말 중 가장 최고의 표현인 할렐루야(Halleujah), 즉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에서 나타난다. 몇가지 설명적인 예로 사 16:14(‘영화’) ; 렘 48:2(‘칭송’), 51:41 ; 합 3:3등이 있다.

2. 야다 : 그 뜻은 `감사하다, 찬양하다’이며 본래 이 단어는 예배와 연관성이 있었지만, 그 연관성이 없어지면서 감사의 한 요소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말이 되어서 할랄처럼 순수하진 못하다. 명사 토다는 ‘감사절’, ‘찬송’, ‘감사하여 바치는 물건’을 의미한다.

3. 자마르 : 처음엔 가지치기 노래였으나 후에 일반적으로 감사의 노래가 되었다고 보는 형태이다. 보통 악기를 갖고 하는 찬양을 말한다.

4. 샤바흐 : 시편과 전도서에 4번 나오고, 그 아람어형이 다니엘서에도 나온다.

찬양과 관련된 생각들을 시 113편의 앞 귀절들에서 볼 수 있다. 시 113편은 한가지 예외는 있지만 구약 속에서 찬양의 주요한 양상이나 주제를 보여준다.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귀절은 이 시편의 주제이다. 그러나 1절과 2~3절에서는 찬양의 대상이 주 여호와 이름으로 확대된다. 그러므로 찬양의 대상이 단순한 주 여호와이거나 또는 그의 이름과 같은 어떤 속성이거나 또는 ‘나의 힘’, ‘나의 구속자’같은 명칭이거나, ‘우리 구원의 반석’ 같은 은유적인 표현(95:1, 참조 : 18:1~3)이 된다는 것은 명백하다.

시편 113:1에 두번째 논제인 `여호와의 종들’, 즉 ‘찬양을 바쳐야 하는 자들’이 나온다. 그것은 단순히 `나(I)’일 수도 있다. 이것은 집단일 수도, 개인일 수도, 또는 `내 영혼'(103:1, 104:1)이나 `주의 성도'(145:10), `우리 또는 우리들 제사장들'(135:19~20), 성전에 있는 예배자들(149:2), 의인(140:13), 주의 구속자들(107편), 모든 나라들(100편),`호흡이 있는자'(150:6), 심지어는 모든 자연세계(19편, 89:5, 96:112, 97:1, 98:4,7~8)일 수도 있다.

시편 113:2에는 찬양의 세번째 논제가 나오는데, 찬양을 드리는 경우, 즉 찬양을 드려야 할 때를 나타낸다. 이 귀절은 찬양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침과 밤, 새해, 승리를 했을 때와 고통을 당할 때까지 이 모든 경우가 찬양을 드려야 하는 경우가 된다.

또, 3절을 보면 찬양할 장소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찬양은 동쪽에서부터 서쪽까지 어디서든지 찬양을 드려야 한다. 그러므로 시온에서도, 예루살렘에서도, 거룩한 산에서도, 성소의 주(主)앞에 있을 때에도, 심지어 침상에서도(63:5~6, 149:5) 찬양을 드려야 한다.

시편 113:4은 하나님께서 찬양을 받으실 근거와 이유를 나타내고 있는데, 여호와는 모든나라 위에 높으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찬양의 주제는 ‘for’란 단어를 연구함으로 알 수 있게 된다. 히브리어 단어 키(왜냐하면)는 왜 인간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가 하는 이유의 실마리가 된다. 시편과 구약의 이유를 나타내는 절(節) 속에 숨겨진 신학이 있다. 113:4에서처럼 때때로 ‘for’는 표현되지 않지만 암시(함축)되어 있으며, 100:3에서 ‘…이신 줄 알지니라’는 ‘because(때문에)’의 변형이다. 요컨대 구약의 찬양의 개념에서 ‘때문에’를 연구하는 것은 가치있는 일이다. 시 113편에서 언급되지 않은 한가지 논제는 찬양의 방식이다. `어떻게’란 논제에는 희생과 제물, 육체적 행동, 악기, 말, 금식(禁食), 묵상, 침묵 등이 포함된다. 이 모든 6개의 논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찬양활동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자발적이며 널리 보급되었는가를 알기 위하여 별도로 연구해 볼 가치가 있는 것이다.

* 참고 : 시편 103:3~5, 104:2~4, 113:5~9, 41:13, 72:18~19, 89:52, 106:48, 150 등

2. 찬양자의 자세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 하며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디모데후서3장 1절~6절)

디모데후서의 이 구절들은 찬양하는자의 자세에 대한 경고로 아주 적합하다. 물론 찬양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든 크리스챤들에 대한 권고이기도 하다. 먼저 말했듯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자 하나님과의 대화이다. 하나님과의 대화에서 우리들이 지켜야 할 것들을 마땅히 지키지 못한다면 우리가 드리는 찬양은 이미 찬양이 아니라 그저 곡조에 몸을 내맡긴 방종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예배를 인도하는 찬양팀에 있어서 지켜야 할 자세들이 갖추어지지 않는다면 찬양집회는 “록그룹 콘서트” 비슷한 것이 되어 단순히 소리를 지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그토록 애타게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여도, 그 찬양 안에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 그 기도 안에 하나님께 대한 바른 자세가 없다면 우리가 드리는 찬양, 기도는 아무 의미가 없다.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올바른 찬양을 드릴 수 없다. 찬양을 한다고 하면서 자신을 높이려 하고, 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여서 천국의 것보다 땅의 것을 사모하는 자, 이러한 사람은 이미 찬양하는 자로서의 기본 자세부터가 틀린 사람이다.

또한 교회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2중 생활을 하며 자기만을 사랑하고 스스로 자랑하며, 찬양하는 것이 무슨 대단한 은사라도 되는 것처럼 우쭐거리는 사람들은 이미 천국행 티켓을 발로 차버린 사람들이다. 찬양팀이 되었다는 것이 은사가 아니다. 물론 목소리가 좋아서 찬양팀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그러한 사람들이 없다고 찬양 예배가 진행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안타까운 것은 교회에서 찬양팀을 맡은 사람들 가운데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앞에 나오려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오히려 하나님과 그들을 보고 있는 회중의 사이를 훼방하는, 그야말로 큰 죄를 짓고 있는 사람들이다.

남을 헐뜯고 자신이 올라서기 위해 남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미 찬양할 자격을 박탈당한 사람들이다.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 사랑 가운데 으뜸이라면,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갈라 놓기 위해 `목숨걸고’ 뛰어드는 것은 죄 가운데에서 으뜸가는 죄이다.

또, 찬양하는 자들은 부모를 거역해서는 안된다. 육신의 부모이기때문에, 자신의 창조주인 하나님만을 잘 섬기면된다는 생각을 갖고, 교회의 생활과 가정 생활의 차이가 거의 “지킬박사와 하이드씨”가 될 정도로 판이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먼저 자신에게 부모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하나님께서 직접 기록하신 십계명에도 하나님을 위한 계명 다음의 인간을 위한 계명으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계명이 처음으로 나오고 있지 않은가?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천박하다. 거룩하지 못하다. 감사를 드릴 줄 모르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자이다. 모든 일에 감사해야 할 우리들이 인간적으로 보아도 감사한 일에 감사를 드리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자들은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할 뿐만 아니라 언제나 부족하다고 불평을 한다. 이러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더하실까? 찬양은 감사하는 사람들의 것이어야 한다.

찬양을 유행가부르듯이 노래로 ‘부르는’ 자들이 있다. 찬양은 자신의 감정 표출이나 원통함을 풀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들이 드리는 찬양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뿐 아니라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른 자로 낙인찍혀 나중에 계산할 것이 많게 된다. 이들은 먼저 이러한 태도를 버리고 회개한 뒤에 찬양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 자신이 아무리 주님을 부르고 감사한다고 찬양을 하여도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가식이 아니라 그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그들의 찬양은 주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신령과 진정으로 찬양을 드려야 한다. 말뿐이 아닌, 마음 자세부터 부족한 자를 앞에 세워주신 것을 감사드리고, 만에 하나라도 앞에서실수를 하여 찬양을 은혜스럽지 못하게 만들지 않도록 기도하는 자세이여야 한다. 언제나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이어야 한다.

찬양하는 사람들은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 흔히 우리가 `날라리’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크리스챤은 이러한 삶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그들과 같이 있으면서 주님을 전해야 한다는 말도 물론 타당하다. 그러나, 자신의 믿음이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는 그들과의 접촉을 피해야 한다. 범죄, 악은 병균과 같은 것이라 전염성이 아주 심하다. 예를 들어 약물 중독에 걸린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가 약물을 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꺼번에 많은 양을 마시면 약이 질려서 그만 하게 될까? 절대 아니다. 오히려 몸을 망치고 더 깊이 빠지게 될 뿐이다.

또, 자신이 아무리 은혜스럽더라도 앞에 선 자들은 언제나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찬양을 드리는 자의 모습이 웃지 않고, 잔뜩 찌뿌린 얼굴을 하고 있으면 청중들에게 은혜가 되지 않는다. 아까도 언급했듯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갈라놓는 것 만큼 큰 죄는 없다.

우리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면서 하나님께 죄를 짓는 행동을 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얘기이다. 선하지 못하고, 쾌락을 사랑하고, 경건하지 못한 모습은 우리가 버려야 하며, 돌아서야 할 모습들이다. 선을 행한다고 하며 위선하며, 하나님보다는 이 세상의 쾌락이 더 좋고, 경건하지 못하고 영적교만에 빠져 있는 모습이 얼마나 추악한지는 다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방금 얘기한 경건하지 못한 모습은 영적으로 자신이 성숙했다고 믿을 때 오기 쉬운데, 언제나 교만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

남이 보기에 경건해 보이더라도, 하나님께서 날 보시면 어떻게 보일는지를 언제나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자신을 겹겹히 싸고 있는 죄의 형상, 위선을 벗어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자로서 올바르게 생활할 때,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찬양하는 모습이 될 것이다. 언제나 올바른 찬양으로 하나님께 경배드리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경험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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