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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자녀 교육의 성서적 원리(강영우박사)

성공적인 자녀 교육의 성서적원리(강영우박사)

[골 3:21]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찌니 낙심할까 함이라”

교육의 영역은 크게 지적 영역(cognitive domain), 정의적 영역(affective domain), 심리영역(psychomotor domain)의 세 부분으로 나누는데, 쉽게 말하면 지력, 심력, 체력의 삼대분야이다.

오늘날 세계를 움직이는 사람들 가운데는 유태인이 참으로 많다. 1986년 실버만이란 학자가 쓴 “오늘날 미국의 유태인”이란 책을 보면 20세기를 주도한 최고의 지성 21명 중 15명이 유태인이라고 한다.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유태인은 1,500만으로 남한인구의 1/3 정도이고, 그 중 1/3이 미국에 살고 있다. 즉 550만이 미국에 사는데 노벨상 수상자의 3명중 1명이 유대인이다. 우리나라는 유대인의 3배 이상의 인구이면서 아직 학문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대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전 세계에서는 100위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데, 시카고 대학의 경우는 한 대학에서만 노벨상 수상자가 70명이 나왔다. 그렇지만 유대인들이 머리가 좋기 때문에 우수한 사람들이 많이 배출되고 세계적인 지도자가 많이 나온 것은 아니다. 스탠포드 대학의 젠센 교수가 측정한 민족들 간의 IQ는 거의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온다. 부유하고 교육수준이 높은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의 1,000명을 무작위로 뽑아서 I.Q 테스트를 해도 평균치는 같게 나올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취도에 있어서 차이가 현저한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 언급한 교육의 영역인 지력, 심력, 체력 중에서 심력에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유대인들도 IQ테스트를 해 보면 기본능력은 다른 민족에 비해 우수하지 않은데, 정의적인 영역에서 심력 테스트(자아개념 및 자아상 검사 등)를 해 보면 차이가 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유대인은 나라 없이 2000년을 살다 1948년에서야 독립한 국가 이스라엘을 세울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유대민족이 고난과 고통을 겪으면서 심력이 강하게 길러진 덕분에 그러한 차이를 보인다고 생각할 수 있다. 누구나 잘 알겠지만 유대인은 교육에 있어서 어느 민족보다 우월하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 나라 사람들처럼 어리석게 지적 능력을 중시해서 그것만을 높이려는 노력은 절대 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13세까지는 정의적 영역(감정과 의지의 영역)을 키우는 것에 집중하는데 IQ가 낮아도 이렇게 심력을 높여주면, 즉 자신감과 자존감을 키워주면 자연히 공부도 잘 하고 성공도 하게 된다고 한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나는 교수, 백악관의 장애인정책보좌관, 유엔의 세계장애위원회  부위원장 등 유명한 타이틀을 많이 갖고 있으니까 어떤 면에서는 성공한 사람이다. 그렇지만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사대부중에 시험 쳤다가 낙방한 경험도 있고, 망막박리로 입원을 한 후로는 일반학교에 더이상 다닐 수 없었다.

맹인으로 사는 지금은 시독보다 3배의 시간이 드는 촉독으로 점자책을 읽어야 한다. 그래서 이제는 청독을 하고 있는데, 미국에서는 맹인을 위해 주로 녹음자료가 제작된다. 신문, 시사잡지 등 모두 청각자료로 talking book이라고 해서 나오지만 청독의 경우 공간지각이 되지 않기 때문에 원하는 부분으로 테이프 돌려듣기를 할 수 없다. 그리고 컴퓨터로 일반 책을 읽는 것도 몇 배의 힘이 든다. 화면을 볼 수 없으니까 화면의 내용을 점자로 바꾸거나 소리로 나오게 하는 작동을 거쳐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 수 있을 때보다 보이지 않을 때 공부를 더 잘했는데, 좋은 대학교에 입학해서 장학금으로 학교를 다녔고, 미국에서도 3년 8개월 만에 교육학 석사, 심리학 석사, 교육학 전공 철학박사를 받았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볼 수 있었을 때보다 머리가 더 좋아진 것이 아니라 그 때에 비해 심력이 강해진 까닭이다. 신앙을 통해서 의지력도 강해지고, 인생에 대한 사명과 목적이 뚜렷해지면서 심력이 강한 유대인처럼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자녀교육에서는 지력이 아닌 심력을 기르는 데 집중해야 한다.

심력을 기르는 성서적 원리를 보도록 하자. 나의 저서 “우리가 오르지 못할 산은 없다”에 소개된 10가지 원리는 모두 성경에 뿌리를 둔 것이고 학문적으로도 검증된 것들이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한국에서 일자리를 얻지 못했던 시절, 미국에서 체류하기 위한 방법으로 다시 학교를 들어갔는데 한 강좌에서 미국 교육의 종교적 기초 즉 성경을 토대로 한 교육의 기초를 배우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대학이 먼저 생기고 나서 명문대에 들어가기 위한 대학예비학교가 생겼고 이것이 오늘날의 고등학교의 효시라고 한다. 첫 번째 대학예비학교는 1778년 하버드대에서 4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세워진 필립스 아카데미이고, 3년 후 뉴햄프셔 주의 또 하나의 필립스 아카데미가 세워졌다. 두 학교의 건학이념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는데 라틴어로 “none sivi”, 영어로는”not for self” 즉,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이다. 교육학을 전공한 본인도 교육은 자아실현, 즉 나를 위한 것이라고 배웠고 그렇다고 확신했는데, 그 학교의 이념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 자녀들에게 “공부해라! 공부해서 남 주냐?”하고 다그치는데 이것은 분명히 비성서적․비교육학적인 발언이고, 진정 공부는 남을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것임을 말해두고 싶다.

필립스 아카데미의 설립자 사무엘 필립이 조카인 존 필립이 함께 건학이념을 정하면서 인용한 성경말씀 두 군데가 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 6:38)  말씀을 묵상하고 필립스의 건학이념을 떠올려 보니 그들은 세상에 자신이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주는 그런 인물, 가정에 주고 지역사회에 주고 국가에 주고 세계에 주는 그런 인물을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말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아이들도 그러한 목적을 가지고 가르치는 학교에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당시는 매우 빈곤하고 변변한 일자리도 없는 형편이었지만 두 아들을 필립스 아카데미에 보낸다는 큰 꿈을 꾸게 되었다. 모름지기 꿈이 커야 성취도 큰 법이기에……. 그 큰 꿈은 그로부터 13년, 15년 뒤에 다 이루어졌다.

여기서 우리가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남을 위해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얻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20세기를 마감하면서 미국에서 중등교육에 가장 권위 있는 잡지인 Education Week(교육주간)은 미국 교육이 21세기에 가져갈 만한 20세기의 좋은 것이 무엇인지 조사했다. 이 특별취재를 위한 모델로 필립스 아카데미가 뽑혀 분석해 보았는데, 230여 년 동안 세상에서 소위 입신출세와 성공을 한 사람들을 제일 많이 배출한 곳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일반 명사 인명사전에 오른 사람의 수, 사회에 좋은 일을 목적으로 기부한 돈의 액수, 종교 지도자와 변호사의 수 또한 필립스 아카데미 출신이 많았다고 한다. 돈을 많이 벌라고 가르치지 않았지만 재벌도 그 학교 출신이 제일 많았다. “주라 그리하면 받을 것이다”라는 말씀을 가지고, 이 사람들이 최선의 것을 세상에 주었을 때 결국은 그들이 풍성히 받게 되고 이것이 학문적으로도 입증이 된 셈이다. 21세기에 미국의 모든 공교육이 다른 것은 다 버려도 20세기에서 답습할 것은 “나 자신이 아닌,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지역사회와 국가와 세계를 위해서 최선의 것을 주고자 공부한다”는 의미의 인격교육이라는 결론이 내려지는 것이다

골로새서 3잘 21절 “아비들아 자녀를 격노케 말찌니 낙심할까 함이라(두렵다)”는 구절은 심력교육의 근간을 이루는 말씀이라 할 수 있다. “낙심할까 두렵다”를 영어로 보면 용기를 꺾을까봐 두렵다는 말로 궁극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기를 살려주라”는 것이다. 교육학 용어로는 “자긍심”, “자신감”을 길러주라는 얘기와 같다. 자긍심, 자신감을 길러주는 것은 정의적․의지적 영역의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을 어떻게 보는가, 나 자신을 어떤 가치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인생을 다르게 살 수 있고 그 성취 또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동료 중에 영화 “슈퍼맨”의 주인공이었던 배우 크리스토퍼 리브가 있다. 그는 말에서 떨어지는 사고로 경추를 다쳐서 전신마비가 됐다. 병원에 입원한 그는 산소호흡기를 쓰고 튜브로 미음을 공급받아야 했을 뿐 아니라 혈관주사를 놓기 위한 수많은 줄이 그의 몸을 감다시피 했었다. 그런 절망적인 상태에서, 그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어머니! 내 인생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내가 이 꼴로 세상을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이 줄들을 다 빼는 데 동의해 주십시오”라고 절규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내가 보기에도 네 인생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구나. 나는 네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2, 3분 후에 병실로 들어 온 아내에게도 똑같이 “여보! 이제 당신이 보다시피 내 인생에 남은 것이 하나도 없소. 차라리 죽는 것이 나으니 이걸 빼는 데 동의해 주시오” 라고 했다. 그러나 부인은 그의 어머니와는 달리 “동의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아직도 당신이에요(You are still you). 이 세상에 살아서 할 일이 있어요. 이 세상에 살면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할 일이 있어요. 우리에게 당신은 아직도 필요합니다. 그러니 살아주십시오. 전 빼는데 동의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크리스토퍼 리브는 부인의 이 말 한 마디에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게 되었다.   “내가 아직도 나라고?  내가 아직도 나라고? 그럼, 내가 아직도 나로서 그동안 살아왔던 인생의 목적을 그대로 실천해 나갈 수 있단 말인가?” 그는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할 수 있다고, 아내가 아직도 나를 사랑하고, 내 이 모습을 그대로 사랑해 준다면 하나님도 이 모양 그대로 사랑해 주실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다. “내가 할 일이 있다. 그렇다면 그 할 일은 무엇일까? 그렇다! 나를 전신마비로 만든 척추신경마비를 재생하는 방법을 연구해 보자!”

그러고 나서 그는 제일 먼저 책을 쓰는데 그 자서전 제목이 “Still me!(아직도 나다!)”이다. 그 책은 많이 팔려서 그 돈을 근거로 크리스토퍼 마비 재단을 만들었고, 2억 달러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모금액도 모을 수 있었다. 또 그 돈으로 이미 척추신경재생 연구에 진전을 보고 있다고 한다.

다시 골로새서 말씀을 근거로 크리스토퍼 리브의 이야기를 돌이켜 보면 자기 자신을 어떻게 보는가는 매우 중요한 일임을 알 수 있다. 자신을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을 때는 죽음을 택하게 되고, 살 가치가 있고 존재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을 때는 삶을 선택함과 동시에 위대한 일도 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 교육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건 자존감(self-respect)이다. 자기자신을 존귀하다, 위대하다고 보면 정말로 스스로가 위대하고 존귀해지는 법이다. 지금, 여러분은 어떠한가?  위대하고 존귀한 존재라고 생각하는가?

이렇게 한번 말해보라.

“나는 위대하다. 나는 존귀하다. 그 이유는 나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위대하시므로, 하나님이 존귀하시므로 나 또한 위대하고 존귀한 것이다!”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날 때, 하나님은 존귀한 생명을 그냥 내보내지 않으시고 모두에게 큰 사명을 주셨다. 스스로가 하나님의 존귀함을 지닌 존재임을 깨닫게 되면 자아상이 회복되고 자신감이 생겨 공부를 잘 하게 된다고 확신한다. 이것은 윌리엄 베넷트가 문교부 장관으로 있을 때 과학적으로 입증이 된 사실이다.

나의 큰아들도 남들이 알아주는 하버드대 의과대를 나와 어렵다는 안과의사를 하고 있지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올라갈 때만 해도 그다지 뛰어난 학생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우수학급과 일반학급을 나누는데 우수반에 들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전형적인 한국 부모답게 직접 가르쳐 봤지만 1년 후에도 우수반에는 들지 못했다. 그래서 비상수단으로 스쿨버스를 타고 가는 시간까지 절약해서 아내에게 새벽에 30분씩을 가르치도록 했는데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때 아들은 안타까워하는 나를 보며, “아버지는 내가 아버지 아들이니까 똑똑한 줄 알지만, 나는 똑똑하지 않습니다. 나에게는 기대를 하지 마십시오. 동생한테나 기대하십시오”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 후 큰아들에게도 중학교에 진학하고 자아상이 바뀌는 계기가 생겼다. “미래문제 해결팀”이라는 것을 만들고 내가 그 팀의 코치를 하게 되었는데, 아주 우수한 친구 3명을 동료로 뽑게 하고 일을 시켰다. 팀은 맡은 일에 있어서 거듭 좋은 성과를 거두었고 아들은 이를 통해 자신감을 회복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두각을 나타내더니 그는 최고우등생으로 필립스아카데미를 거쳐 하버드대까지 가게 되었다. 이전 4, 5년 동안 지적 능력을 향상시키려는 부모의 극성스런 노력은 부질없었지만, 심력에 변화가 일어나고 자신감을 회복한 후로는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격노케 하지 말찌니 낙심할까 두렵다”라는 구절을 다시 한 번 상고해 보라. 이 말씀은 바로 자긍심, 자신감을 길러주는 것이 교육의 제일순위임을 말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격노할까 두렵다”라는 부분으로 말씀을 들여다보자.

우리는 언제 격노하는가? 우리는 우리의 필요가 충족되지 않을 때 격노하게 된다. 부부간에도 남편과 아내가 서로의 요구를 충족시켜 줄 때 그 가정이 행복한 것처럼 부모 자녀 간에도 마찬가지다. 자녀의 필요는 태어나고 성장하면서 계속 변하기 마련이고 지적, 정서적, 도덕적, 직업적으로 다 변하게 되어 있다. 이것을 충족시켜 주면 격노하지는 않을 것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아기가 배가 고프면 화가 나서 울지만, 그러다가 어머니가 젖을 주려고 한다든지 우유를 주려고 냉장고 문을 열면 울음을 딱 그친다. 이제 우유가 오는구나 하고 기다리는데 한참 있어도 원하는 게 안 오면 다시 운다. 기저귀가 젖어서 울다가도 발자국소리가 나면 이제 기저귀를 바꿔주겠구나 하고 울음을 그쳤다가 안 바꿔주면 다시 울어버린다.

바로 이와 같다. 성장하면서도 마차가지로 필요가 충족되면 격노가 그치고, 그렇지 못하면 계속 격노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자녀들의 성장과 더불어 변화하는 독특한 요구를 충족시켜 주면 격노하지 않고 신이 나서 자존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살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현대교육의 진리’이다. 그러면 자연히 공부를 잘 하고, 심력이 강해져서 무슨 일에서든지 성취자가 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이 점을 자녀교육에 있어서 늘 명심하기 바란다.

▶ 강영우박사 프로필

-1968    국립 서울맹학교 고등부 졸업

-1972    연세대 문과대 교육과 졸업

-1976    미 피츠버그대 대학원, 교육, 심리학 석사, 동 대학원 철학박사

-1977- 인디아나주 교육부 특수교육국장

-1979- 노스이스턴 일리노이대 특인교수

-1992- 사회복지법인 국제교육재활교류재단 회장

-1995- UN 세계장애위원회 부의장

-1996- 루즈벨트 대통령 재단 고문

-1998- 굳힐 인더스트리 국제본부 이사

-1998- 한국보건사회 연구원 자문위원

-2001-  미 백악관 장애인정책 수석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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