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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란 무엇인가?(한스큉,현대판 마틴루터)

현대판 마틴 루터
1979년 12월 한스큉은 오스트리아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을 때 바티칸이 그를 가톨릭 신학자가 아니라고 선언했다는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유령한 이 튜빙겐 신학자와 로마의 신앙교리성의회 간의 10년에 걸친 갈등의 절정이었다. 하나의 신학 논쟁이 전세계 언론의 표제기사가 되는 일은 극히 드문일이지만 이 경우 세간의 미디어는 큉을 가톨릭의 거대한 획일 체제에 도전하는 현대의 마틴 루터로 부각시켰다.
한스 큉은 현대신학자중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가톨릭 신학자이지만 개신교 신학자인 바르트와 틸리히의 영향을 받았으나 가톨릭적 입장도 견지하고 있는 신학자이다. 그를 주목해야할 이유는 이른바 ‘현대판 종교 재판’이라고 할 수 있는 일련의 사태 때문은 아니다. 그의 신학이 변증적으로 현대 사회의 제문제에 답변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주요 종교들과의 대화를 계속적으로 시도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
‘교회란 무엇인가’는 그의 저서 ‘교회’Die Kirche의 축약본이다. 일반 성도들이 수월하게 독서할 수 있도록 저자 자신이 새롭게 편집한 것이다. 그러나 저자도 밝혔듯이 결코 내용면으로 부실하거나 부족한 부분을 발견할 수 없다. 그만큼 저자의 요지가 소책자에 잘 담겨있다.

‘교회란 무엇인가’는 교회론을 다루고 있다. 21세기를 바라보며 미래교회를 준비해야하는 우리에게 교회란 화두는 중요한 정도를 떠나서 우리의 존재 자체를 규정할 정도로 무게있는 주제이다. 우리에게 교회는 무엇일까? 교회가 잘못되었다면 어떤 모습이 잘못된 것일까? 새로운 대안으로서의 교회는 어떤 모양새를 가져야 할까? 교회의 근본적인 모습은 어떤 것일까? 교회에 대한 물음은 끝이 없고 진지하다. 왜냐하면 우리의 사역의 장과 삶의 터전이 바로 교회이기 때문이다.

양파 껍질 벗기기?
교회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은 ‘양파 껍질 벗기기’이다. 양파의 껍질을 벗기다 보면 남는 알맹이는 아무것도 없다. 버려진 양파 껍질이 양파 알맹이도 되기 때문이다. 교회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본질에 국한된 질문도 아니고 형태에 집중된 질문도 아니다. 본질과 형태는 함께 이야기 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결국 양파의 알맹이를 찾아보라는 질문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그러기에 큉도 교회를 이야기 할 때 형이상학적인 관념의 정의를 도출해 내지 않는다. 오히려 변하는 역사적 양상 속에서 교회의 본질을 볼 때 비로소 교회를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교회의 본질은 언제나 역사적 형태 안에서 보아야 하고 역사적 형태는 언제나 본질을 출발점과 목표로 해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즉, 교회는 절대적으로 고정된 정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역사안에서 그리고 현실 속에서 늘 새롭게 적응해 나가야 하는 것이 교회의 모습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현재의 실제에서의 출발이며 과거 근원의 조회이며 미래의 교회상의 추구인 것이다. 교회의 존립 근거는 결정적으로 타당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활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약성서에서 회고하고 있는 초대교회도 교회의 이상형이 될 수 없다. 신약성서의 교회는 당시 역사적 상황에서 훌륭한 것지 현대에도 그것을 원리와 원칙으로 여길 수는 없다. 초대 교회를 그대로 본뜰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에 맞게 변형시켜 적용하여야 하는 것이다.

교회를 믿을 것인가?
교회를 믿을 것인가? 교회를 믿을 수 없는 이유들…그 하나 교회는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 교회는 어디까지나 피조물일 뿐이다. 그 둘 우리가 바로 교회이기 때문이다. 신앙공동체인 교회는 바로 우리들 자신이다. 그러나 교회를 믿을 수도 있다. 그 이유들…하나, 교회가 신앙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교회는 단순히 하나님의 뜻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이루어야할 인간에게 요구되는 결단에서 이루어진다는 것. 둘, 하나님의 은총에서 오는 신앙이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하여튼 교회의 본질을 탐구해 나가는 방법과 교회를 믿을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해답들을 뒤로 하고 보다 근원적인 문제를 논의해 가야 한다. 한스 큉은 교회의 근원을 예수가 전한 하나님의 나라로 보고 있다. 즉, 교회의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며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신앙공동체가 교회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큉이 바라본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인가? 그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는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하며 이 통치는 최종적으로 실현된 하나님의 통치가 하나의 사건으로 ‘가까이 왔다’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예수의 하나님 나라는 회개와 신앙을 전제로 한 하나님의 통치였고 이 하나님의 통치는 죄인들에 대한 복수의 심판도 아니고 오히려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의 사건인 것이다. 그러므로 한스 큉이 본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을 향한 근본적인 결단의 요구이다. 자신의 마음을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두느냐 현세의 이익에 두느냐하는 근본적인 결단을 내리게 하는 것이다.

사실 예수의 생애에 교회는 없었다. 제자들도 이스라엘 사람들도 예수에 의하여 족적으로 집단화된 일은 일체 없다. 그러나 예수의 생애 없이는 교회도 없다. 교회는 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부활 신앙에 기초한다는 사람들이 나사렛 예수의 부활을 믿으며 한데 모여 약속된 하나님 통치의 완성과 부활한 그 분의 영광 중의 출현을 기다리게 된 이래 교회가 존재하는 것이다.

거듭 새로이 소집…
이제부터 논의 깊이가 깊어진다. 교회는 누구인가? 교회는 어떻게 구성되고 어떻게 공동체를 형성하는가?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라고 큉은 이야기 한다. 먼저 교회가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아닌 것이 몇가지 잇다.

하나, 교회는 그렇기 때문에 성직자 중심이 아니다. 교회를 평신도와 성직자로 구분하는 교회론은 잘못된 교회론이다. 왜냐하면 신약성서에서는 교회 구성원 모두가 ‘선택된 자’로 ‘성도’로 ‘제자’로 ‘형제’로 불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오직 한 주님, 오직 한 스승을 모시고 있다.

둘, 교회는 개개의 개인이 아니다. 교회의 공동체서을 이야기하는 듯.. 교회의 출발점은 개개의 신자의 결단에서 출발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개인의 자유결사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름과 선택을 전제로한 공동체이다. 교회는 각 개개인을 죄와 고통에서 구원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개인으로 구성된 백성의 전체의 구원을 지향한다. 물론 교회는 개인으로 구성되나 그 개인은 ‘부름받은 개인’이라는 것이 중요…

셋, 교회는 객관적 실체가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과 인간을 중개하는 초인격적 제도도 아니고 절대적인 신에 준하는 존재도 아니라는 것…교회가 하나님의 부르심에서 출발한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인간들에서 출발한다. 그러니까 제도가 인간보다 중요한 것일 수는 없다는 이야기…넷, 교회는 이상적인 존재가 아니다. 역사적 존재이지 이상적 존재는 아니다. ‘거듭 새로이 소집’된다. 교회는 무오하다는 명제는 어불성설.. 왜냐하면 교회도 하나님의 심판대 아래 있기 때문…

하나님의 영
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는 어떤 방식으로 활동하며 어떻게 채워지고 있는가? 큉은 말한다. 교회는 성령의 피조물이다! 하나님의 영은 교회를 채우고 있다. 성서는 교회를 영의 집이라고 말한다. 신앙인들은 영의 집으로 지어지는 사람들이요 영의 집을 짓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교회와 성령을 동일시 할 수 없다는 것. 교회는 성령이 아니다. 하나님은 교회안에 활동하시고 교회에게 자신을 계시하시며 교회에로 임재하시고 교회를 설립하고 유지한다. 그러나 교회의 소속된 영은 아니다. 영의 하나님의 영이다. 따라서 언제나 자유로운 영이시다. 성령과 교회를 혼동하지 않기 위해서 교회를 ‘신성한’ 존재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 낫다. 어떤 교회가 성령과 자신을 구분하는 교회일까? 교회내에 죄와 허물이 있음을 냉정하고 겸손하게 인정할 수 있고 죄의 용서함을 받아 해방되리라는 희망을 가지는 교회는 비록 약하고 부자유스럽더라도 필경 자유로운 교회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활동이 교회에 의해 제한될 수 없다. 성령은 어디서나 뜻대로 활동하낟. 하나님의 영의 능력은 모든 장벽을 뛰어넘는다. 성령은 비단 그리스도교의 주님만이 아니, 온 세상의 주님의 영이시다. 또한 성령은 언제나 뜻대로 활동한다. 성령의 바람은 ‘불어야 할 때’ 분다기 보다는 ‘불고 싶을 때’분다는 것이 옳은 표현이다. 성령의 능력을 교회가 제한다거나 가로막아서는 안된다. 교회는 다만 성령의 임재를 기다리고 요청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일반적인 성령의 활동 뿐 아니라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활동은 역시 개인적이고 구체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교회는 카리스마의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넓은 의미의 카리스마는 개인에 대하여 공동체 내의 봉사활동을 부과하고 동시에 이 봉사활동을 수행할 능력을 부여하는 하나님의 부름이다. 그러니까 카리스마는 소명과 봉사라고 바꾸어 불러도 상관없다. 카리스마는 그렇기에 다양하다. 어떻게 다양한 카리스마의 세계에서 통일성을 확보할 수 있으며 자유속에서 질서가 보장될 수 있을까? 카리스마의 질서가 없다면 교회는 난잡한 시장바닥처럼 될 것이다. 일단은 각자가 자기의 카리스마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카리스마를 받은 사람들의 다양성이 평준화되어 질서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기의 것을 가져야 한다. 다만 자신의 카리스마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여.. 사랑이 성령의 첫 열매이고 최고의 카리스마이다, 또한 주님께 순종하는 마음이 있어야한다. 질서를 존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카리스마의 궁극적 목적이 공동체의 건설에 있기 때문이다. 성령의 놀라운 역사는 교회를 채우고 교회를 이끄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를 교회답게하는 성례는 무슨 의미일까? 성례전이 없다면 교회가 교회다울 수 없는 것… 세례와 성찬없이는 교회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성찬공동체이다. 본질적으로 식사의 친교이다. 친교이며 일치이며 상통이다. 주의 만찬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에클레시아이며 공동체임이 드러난다. 각 개인이 만찬에 참여함으로서 주의 몸에 참여하고 한 몸이 된다. 모두가 한 빵을, 곧 한 주님의 몸을 먹는 성찬식이야말로 구체적으로 공동체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그러나 성찬을 거행할 때만이 공동체가 그리스도의 몸인양 해서는 안된다. 언제나 공동체 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음식을 나누지 않는곳 저마다 자기 음식을 먼저 먹는 곳, 어떤 사람은 주리고 어떤 사람은 취해 있으며 아무도 남을 기다리지 않는 곳 그런 곳에는 진정한 주의 만찬이 있을 수 없으며 다같이 심판을 받게 된다.

좀더 구체적로 그리스도는 예배의 모임에 현존한다. 교회에 현조하는 그리스도는 오늘날에도 교회안에서 활동하시고 계시다. 예배의 모임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해 부름을 받았고 예배의 모임을 통하여 받아들여졌으며 여기서 주의 만찬을 거행하고 여기서부터 다시 세상에 봉사하기위하여 파견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이와같이 모든 예배의 모임에 현존하므로 개별교회나 지역교회가 참으로 온전히 친교와 일치를 나눌 수 없다. 그리스도는 교회에 자신을 준다. 그러나 결코 몸인 교회에 머리인 그리스도가 동화하지는 않는다. 교회가 그리스도를 머리로 고백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가 되지 않는다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교회는 그시스도로부터 약속과 지시를 받고 함께 생명도 받는다. 교회의 자율성은 근본적으로 타율성안에 존재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와 그의 계시에 순종해야 한다. 그 분의 말씀을 억지로 자신의 소유로 삼아서는 안된다. 겸손하고 조심스럽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말씀의 권위에 복종하고 그것을 자신의 소유로 삼으려는 것이 아니라 듣고 전파하고 실천하는 교회는 인간이 줄 수 없는 권위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제 까지 교회의 근원에서 출발하여 교회의 모습을 비추어 보았다면 남은 내용은 현실 교회에서 출발하여 교회의 본질을 고찰하고자 한다. 큉은 에큐메니칼 정신에 입각하여 교회의 단일성을 이야기하고 아울러 보편성 , 성성, 사도성을 차례로 언급하고 있다. 저자는 물론 로마 가톨릭 교회를 그 대상으로 상정하고 있으나 개신교 독자들도 염두에 두고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그래도 가톨릭 중심적인 시각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근본과 급진
한스 큉이 말한 교회는 거울이다. 현실 교회의 모습을 비춰보면서 잘못된 점과 고쳐야 할 일들이 많이 생각났다. 교회란 무엇일까? 어쩌면 교회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21세기 고도의 다원화된 후기 산업사회를 살아가면서 교회는 자신의 정체성을 시대의 흐름에서 찾아야 하고 정체성을 묻는 물음을 포기해서는 않될 것이다. 교회에 대한 한스 큉의 입장은 그런 면에서 본받을 만하다. 한스 큉은 철저한 계시를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바르티안이다. 교회가 사람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으로 시작되었으므로 어떠한 인간적 권위나 술수가 통해서는 않되는 장이라는 것은 바르트의 계시주의와 일맥상통한다. 교회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간 다리가 될 수 없다.

이상적인 존재도 아니고 믿음에 대상도 되지 않는다. 교회는 성령의 피조물이므로 성령의 주관하심에 전적으로 의탁해야 한다.

한스 큉이 제시한 교회의 지향점에 한국교회를 비추어 본다면 뼈를 깍는듯한 아픔이 있다. 한국교회는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에서 너무나도 많이 떨어져 있다. 목회자 중심의 교회, 사회에 기여하기 보다는 게토안에서 안주하는 교회, 성령의 역사하심을 기다리기보다는 성령을 도구화 하려는 교회, 무엇보다 교회의 구조가 인간다움을 버리게 하고 비인간화 시킨다는 점에서 반성할 것이 너무나도 많이 있다.

가장 급진적인 것은 근본(Radical)으로 돌아가려는 일련의 운동작용이다. 교회의 근본을 찾고 돌아가려는 운동은 그러기에 급진성을 가진다. 큉의 저서는 이론적이고 추상적이 될 수 있는 경향이 있다. 물론 우리의 상황과 다른 서구의 신학자의 저서이고 가톨릭의 이야기여서 오는 차이점이겠으나 그의 저서가 또다른 원리와 원칙으로 변질되면 안될 것이다. 그의 뜻도 아니고 하나님의 뜻도 아니다. 교회를 바라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고민한다면 ‘지혜로운 급진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교회이 갱신이 이 시대 살아가야할 교회의 우선적 과제이며 갱신의 노력만이 또한 교회를 살릴 수 있을 것이다. 교회를 살리기 위해,교회에 하나님의 통치를 기대할 수 있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기다리는 지혜로운 급진 운동을 기대해 본다.

저자 약력

1928년생
파리 소르본 가톨릭 연구소 신학박사
62-65년 2차 바티칸 공의회 공식 자문관 역임
60-69년 독일 튀빙겐 대학 명예교수
97년 스위스 국제 윤리 제단 회장
국제적인 신학 평론지 ‘콘실리움’ 창립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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