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과 훈련
Nurturing & Trai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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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부 College & Young Adult
경로대학 Silver College
웨슬리속회 Wesley Class Meeting
성서대학 Bible College
교회생활지침 Church Life Guid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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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200선

image예화 200선
1. 사랑의 절정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난 부인이 다섯 살과 세 살된 아들을 키우기 위해 철길 가에 있는
신발공장에 취직을 했습니다. 매일 아침 출근할 때 두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기 때문에
안고, 업고, 공장으로 출근하여 공장 안에 조그만 방에서 놀게 하고 부인은 일을 했습니다.
따뜻한 어느 봄날, 방안이 답답하다고 두 아이들이 엄마 몰래 철길로 나갔습니다. 철길에서
조약돌 치기도 하고 가위, 바위, 보 놀이도 하면서 놀고 있을 때 기차가 달려들었습니다.
누군가가 애들이 없다는 소리에 엄마가 뛰어나가 보니 철길에서 놀고 있고 있었습니다.
쏜살같이 달려가 두 아들을 철길 밖으로 던져 낸 순간 기차가 뛰어들어 엄마를 치고
지나갔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그 엄마의 장례를 치르고 난 후 두 형제는 고아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자라서 어른이 된 후 어머니의 무덤에 조그마한 묘비를 세우고
다음과 같이 새겨 놓았습니다. “어머니, 우리 어머니, 사랑하는 우리 어머니”라고. 그
어머니의 사랑의 절정은 두 아들을 기르기 위해 일당 몇 백원을 받으며 일했던 그것이
아닙니다. 두 아들을 기르기 위해 자신이 굶고 아이들 입에 먹을 것을 넣어 주었던 그것이
아닙니다. 그 기찻길에서 놀고 있던 두 아이의 생명을 건져내고 자신의 목숨을 버렸던 그
사건에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절정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찬송 작사자 하버겔은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 길을 주었다.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날 위해 무엇 주느냐”라고 읊었습니다. 왜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해야 합니까? 그것은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셨고 지금도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 박종순
2. 발렌타인
발렌타인은 고대 로마에 살았던 한 젊은 그리스도인의 이름입니다. 많은 초대교인들처럼
발렌타인은 그의 신앙 때문에 투옥되었습니다. 그는 자주 깊이 사랑하는 자들을 생각했고,
그 자신의 안녕과 그들을 향한 사랑을 알리기를 원했습니다. 그의 감옥 독방 창문 너머,
손이 닿지 않는 한 곳에 제비꽃이 만발해 있었습니다. 그는 몇 개의 하트 모양의 잎들을
뜯어 구멍을 뚫어서 “발렌타인을 기억해 주십시오”라는 말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보냈습니다. 다음날 또 다음날 계속하여 그는 더 많은 메시지들을
보냈는데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내용의 메시지였습니다. 이것이 기반이 되어
시작된 성 발렌타인 데이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을 전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어 그의 사랑을 보여 주시려고 많은 축복을 우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분은 우리에게 그분의 독생자를 주시어 우리의 구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회개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드리십시오. 그분께 그분의 사랑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 드리십시오.

3. 도자기공
한 전도사가 도자기 공장 지대에 사는 한 사람을 방문하였다. 그 사람은 젊었을 때는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이었다. 전도사는 그 집에 도착하여 유리 상자 속에 든 두 개의 좋은
꽃병을 보고 감탄하여 말했다. “야! 참 멋있군요. 아주 귀한 것이겠지요?” “그렇습니다.”
“얼마면 파시겠습니까?” 주인은 고개를 휘저으며 전도사에게 말했다. “이 세상 돈을 다
준다 해도 저 두 개의 꽃병은 절대로 팔 수 없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몇
년 전만 해도 술주정뱅이에다 노름꾼이었지요. 말하자면 마귀에게 영혼을 맡겨 놓고 다녔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의 권유로 교회의 집회에 참석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쓰레기 더미에서 흙 한 무더기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쓸 데가 없어서
버린 것이었지요. 나는 그걸 집에 가져와 반죽을 하고 모형을 만들어 구워 보았습니다.
결국 나는 쓸모 없던 흙으로 두 개의 아름다운 꽃병을 만들었습니다. 그 날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도 나를 가지고 똑같은 일을
하실 수 있을 거야!’
그때부터 저는 제 자신을 하나님의 손에 내맡기고 하나님께서 저를 새 사람으로 만들어
주실 길 바랐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그 쓰레기장의 흙 무덤 같은 나를 아름다운
꽃병으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4. 돌아온 딸
어느 시골의 한 가정에서 딸이 가출을 하여 자기 마음대로 살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는 처지에까지 이르게 되자 소녀는 자살을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죽기 전에 아버지
어머니가 계시는 고향이 그리워 고향 집에 내려갔다. 밤중에 가 보니 자신이 가꾸던
장미꽃도 보이고 뛰어 놀던 잔디밭도 보였다. 달밤에 자기 집을 바라보니 담장 옆 대문이
활짝 열려져 있었다. 그 소녀는 문 가까이 가, “아버지-” 조용한 음성으로 불렀다. 그러자
아버지가 벌떡 일어나 뛰어 나왔다. “어디에 있다가 이제 오느냐? 네가 집을 나간 뒤
대문을 닫아 보지 못했단다. 언젠가는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단다.” 혹시 밤중에 딸이
돌아올까 봐 깊이 잠들지 못하고 있던 아버지가 딸이 부르는 작은 소리를 듣고 뛰어나와 그
딸을 맞이했다는 이야기다.
승리의 그리스도

5. 목숨을 바친 사랑
전쟁중 우리 나라에 있었던 실화라고 한다. 한 만삭이 된 어머니가 아기를 낳기 위해 어떤
집을 찾아가던 중이었다. 그 어머니는 그만 그 집을 다가지 못하고 길에서 진통을 하기
시작했다.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었던 어머니는 어느 다리 밑에 겨우 자리를 잡아 아기를
분만하게 되었다. 추운 겨울 아무도 도와 줄 사람이 없는 가운데 그 어머니는 모든 것을
혼자 처리하고는 아기가 춥지 않도록 자기 옷을 모두 벗어서 아기를 감싸주었다. 해산 직후
추위에 어머니는 그만 얼어 죽고 말았다. 얼마 후 어느 미군 장교 한 사람이 차를 타고 그
근처를 지나가다가 휘발유가 떨어졌다. 그는 부대로 연락을 취해 놓고 차에서 내려 그
부근을 거닐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이상한 아기 울음소리 같은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그 군인은 그 소리를 따라 다리 밑까지 내려오게 되었다. 거기서 그
군인은 기가 막힌 장면을 목격했다. 어머니는 벌거벗은 채 얼어 죽어 있었고 어머니의 옷에
둘러싸인 갓난 아기가 몹시 울고 있었다. “내가 여기서 기름이 떨어진 것이 어쩌면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살리시기 위함인지도 모르겠군.” 이렇게 생각한 군인은 그 아기를
데려다가 양자를 삼아 잘 키웠다. 그 아들은 미국에서 훌륭하게 자라 성인이 되었다. 늘
자신의 출생에 대해 알고 싶어하던 그 아들은 어느 날 자기를 키워 준 아버지로부터 자기를
낳아 준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아들은 무덤을 찾아 한국에까지 나왔다. 그
아들은 어머니의 무덤 앞에서 자기 옷을 벗어서 무덤 위를 덮으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어머니 얼마나 추우셨어요! 나를 살리기 위해 어머니는 그런 희생을 치르셨군요! 저는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벌거벗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겠어요!”
사랑과 행복에의 초대, 양은순

6. 소년과 보트
신문배달을 하는 소년이 있었다. 하루는 장난감 가게 앞을 지나가다 중세의 범선을 본떠
만든 깜찍한 보트를 보게 되었다. 그 보트를 꼭 갖고 싶었지만 소년이 사기에는 값이 너무
엄청났다. 그래서 소년은 스스로 보트를 만들기로 했다. 소년은 날마다 가게의 진열장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책도 보면서 틈틈이 모은 돈으로 재료를 샀다. 나무를 자르고, 돛을
달고, 페인트를 칠하고, 자기의 모든 기술과 정성을 쏟아 드디어 멋있는 보트를 만들었다.
소년은 완성된 보트를 들고 강물에 띄었다. 강물에 뜬 보트는 아름답고 훌륭했다. 소년의
가슴은 뿌듯했다. 아, 그런데 보트가 강 한가운데에서 하류 쪽으로 급히 떠내려가는 것이
아닌가! 애써 만든 보트를 잃은 소년은 날마다 신문배달을 마치고 강가를 뒤졌지만 보트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몇 주일이 지난 어느 날, 소년은 어느 고물상에서 우연히 자기의
보트를 찾아냈다. 주인에게 자기의 것이라고 사정을 했지만 갖고 싶으면 돈을 내라는
것이었다. 소년은 석 달이나 신문배달을 하며 돈을 모았다. 드디어 돈을 마련하여 보트를
샀다. 보트를 사 오던 날, 소년은 보트를 끌어안고 얼굴에 비비며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돈이 보낸 편지, 이의용

7. 사랑의 희생
13세기 스페인의 귀족이며 명문 대학의 교수였던 라몬 럴은 자신의 유망한 장래를
포기하고 모슬렘교도들을 복음화하기 위해 갔었다. 그는 두 번이나 그 나라에서 추방을
당하였다. 1년 반을 감옥에 감금당했다. 노인이 되어 성벽으로 끌려가 돌에 맞아 죽어 갈
때에 그의 마지막 말은, “오직 예수”였다. 죽기 직전에 그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살아
있지 않은 것이고, 그리스도로 인하여 사는 사람은 결코 죽지 않는다”라고 말하였다. 그는
그의 목사 안수식 때에 “오, 주 하나님 당신께 나 자신, 나의 아내, 나의 자녀, 그리고 나의
모든 소유를 드립니다”라고 말했으며 죽는 날까지 그리스도만을 향한 독점적인 사랑을
취소하지 않았다. 네덜란드에서 핍박이 심해질 때에, 겔린드 물러는 믿음을 버리고 성경
읽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화형당하게 된다는 경고를 받았다. 그에게는 아내와 네 자녀가
있었다. “당신의 아내와 자녀를 사랑하는가?”라고 재판관이 물었다. “만일 하늘이 진주이고
땅이 금덩어리이고, 내가 그 모든 것의 소유자라면, 우리가 겨우 빵과 물만 먹고 살게
될지라도 내 가족을 위해 그 모든 것을 포기할 것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아신다. 그러나
결단코 그리스도만은 포기할 수 없다.” 그는 교살되어 화장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사랑의 희생을 잊지 않으셨다.
기쁘게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 J. 오스왈드 샌더스

8. 사고 싶었던 관심
어느 학교 선생님에게 열 두 살 먹은 딸이 있었습니다. 그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딸에게 어머니 역할까지 해주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학교 일 때문에 딸에게 시간을 충분히
내주지 못하는 게 문제였고, 그것 때문에 늘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서
크리스마스 휴가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크리스마스 휴가 때는 딸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막상 휴가가 시작된 첫날
딸아이는 자기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혼자 지내면서 식사 시간 이외에는 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음날도 그랬고, 또 다음 날도 그랬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될 때까지 계속
그랬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는 하루하루를 외롭게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침내
크리스마스 아침이 되자 크리스마스 트리에 선물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뜨개질로 짠 한
켤레의 양말이었습니다. 딸아이는 두 눈을 반짝이면서 말했습니다. “아빠,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까지 이걸 다 짜야 한다고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몰라요. 제가 방문을 잠그고
지금까지 했던 건 바로 이 뜨게질이었어요. 이젠 다 짰어요. 아빠 양말이에요! 좋으세요?”
“암, 좋고말고, 얘야, 정말 예쁘게도 짰구나, 고맙다.” 아빠는 딸아이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딸을 덥석 껴안았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으로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아,
이 철없는 아이야. 양말은 시장에 가서 사면 되지 않니? 난 양말 같은 건 원하지 않아.
너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단 말이야! 난 너와 함께 지내며 너의 사랑을 받고 너의
관심을 사고 싶었던 거야.”
잠잠하라 고요하라, 캐롤 메이홀

9.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실까?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되기를 원한다면 그는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실까?
무엇보다도 먼저 최고의 사랑을 요구하실 것이다. 우리가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그를
사랑하지 않는 한 그리스도를 따를 수 없다. 그는 우리의 지상의 가장 귀중한 관계들을
배제하시고 “너는 이 모든 것들을 미워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인상적인 말씀을 하신다. “미워하다”라는 용어는 상대적인 용어이다. 그것은
절대적인 용어는 아니다. 그는 여러분과 나에게서 우리가 최초로 느끼는 사랑, 즉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사랑을, 우리의 가장 귀중한
사랑 즉 우리 자신의 생명에 대한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요구하신다.
W.Y.플러튼

10. 왜 안됩니까?
메릴리는 성적 부디덕이 잘못된 것임을 익히 알고 있었다. 19세 때에 그녀는 모든 성적
지식을 다 배운 것 같은 기분에 빠졌다. 그런데 그녀는 여전히 성적 호기심을 갖고 있었고
억제할 수 없을 때도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성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을 스스로 확신하기 위해 합리화 과정을 시도하였다.’만일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부디덕을 저질렀다면 하나님은 나를 용서하셨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제도
용서하시리라고 확신한다.’ ‘다윗왕을 보라.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는데도….’
‘아무도 알 리가 없지. 그래서 나의 행동이 아무에게도 거침돌이 되진 않을 거야.’ 거듭거듭
몇 주일 동안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다. 마침내 메릴리는 자신이 ‘그 일을 해도 좋다’고
확신하였다. 어느 날 저녁, 그녀는 드라이브를 하다가 멋지게 생긴 히치하이커가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최종적으로 하나님께 반항적인 도전을 하였다. “도대체 어째서
안되는 겁니까?” 그녀에게 놀랄 만한 대답이 즉각적으로 들려왔다. “왜냐하면 내가 너에게
하지 말도록 요구하기 때문이란다.” 메릴리는 가속 페달을 힘껏 밟아, 기다리고 있는 그
히치하이커 곁을 빠르게 지나쳤다. 그녀가 합리화시킬 수 없었던 한 가지 이유가 그녀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임이 명백해졌다. 단순히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녀에게 맞지
않는 행동이기 때문이었다. 사랑은 상대방을 생각해 주는 것이다. “너희 믿음에….사랑을
공급하라.”
그리스도인의 인격 계발, 스탠리 C. 볼드윈

11. 오직 사랑하기 때문에
여러 해 전에, 정해진 시각에 어떤 큰 오르간 연주회가 열리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르간에 펌프질을 할 사람이 그만 병이 들고 말았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자 한 유명한
작곡가가 자신이 그 펌프질을 하겠노라고 자원했습니다. 왜 그런 보잘것없고 천한 일을
하려고 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작곡가는 “음악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떠한 일도
결코 초라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가
그를 섬기는 가운데 할 수 있는 어떤 일도 결코 보잘것없어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이름 안에서 행하는 봉사의 일이라면 가장 작고 미미한 일일지라도 모두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12. 그리스도의 사랑
영국의 선교사인 허드슨 테일러가 중국 대륙의 전도 책임자로 있을 때 그는 가끔 전도를
희망하는 후보자를 면접하였다. 한번은 봉사하기로 결심한 한 사람을 만나 “왜 당신은 해외
선교사로 가기를 원합니까?”하고 물었다. 선교사 후보자는 대답하기를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전세계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가기를
원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또 다른 한 명은 수백만의 사람들이 그리스도 밖에서 타락하고
있기 때문에 선교사로 나가기를 원한다고 대답하였다. 그 때 허드슨 테일러는 말하기를 “그
모든 동기들은 좋지만 시험과 시련 그리고 고생, 심지어 죽음의 순간을 당할 때, 그것은
당신을 구하지 못합니다. 단지 한 가지 동기가 당신을 어려운 시험과 시련에서 견디게 해줄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아프리카에 있는 선교사가
한번은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당신은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을 진실로 좋아해서
하십니까?” 그의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아닙니다. 나와 처는 먼지와 이 고생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초라한, 냄새가 나는 이런 오두막집에서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우리는 가라는 명령을 받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진정한 봉사를 하게 할 것이다.
인생을 다시 한번, 배훈

13. 사랑의 의미
6.25 직후 나병 환자 수용소에 미국 로터리 클럽에서 회원들이 방문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미국에서 파견나온 간호사 선교사 한 사람이 나병 환자의 고름이 흐르고 있는
상처를 간호하고 있는 뜨거운 인간애의 장면을 포착하였습니다. 한 사업가가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사진을 찍으면서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이것은 백만불짜리 가치가
있는 사진이다. 그러나 나는 누가 나에게 백만불을 주어도 이 일을 못할 것이다.” 간호사
자매는 이 사업가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저도 그 일을 못합니다.” 이
대답을 듣고 사업가가 당황하면서 말하기를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소?”라고 물었더니 자매가 대답하기를 “그리스도의 사랑이 저를 강권하기
때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에서 나를 향해 보여 주신 조건 없는 그 놀라운 사랑!
내가 그를 신뢰했을 때 나에게 놀라운 죄사함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나를 의롭다
하시고,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고, 나에게 영생을 허락하시고 지금 내 삶의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이 사랑을 체험한 사람들만이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사랑의 방식을 따르십시오.

14. 율법의 정신
굉장히 가난한 아주머니 한 분이 슈퍼마켓에 갔습니다. 그녀는 빵과 우유를 샀지만 고기를
몇 근 훔쳤습니다. 카운터에 가서 계산을 할 때 그녀는 빵값과 우유값만 지불했습니다.
그런데 계산하던 아가씨가 “아줌마, 그 가방 좀 열어 보세요”하고 말했습니다. 아주머니는
열지 않겠다고 우겼으나 경찰이 왔을 땐 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가방에서 고기가
나왔습니다. 그녀는 당연히 경찰서로 끌려갔고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직 재판관만이 형법을 사용하여 선고를 내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바로 법을
만든 사람들이며 법을 잘 알 뿐만 아니라 그 법의 뒤에 있는 정신까지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재판관은 그 가난한 아주머니를 부드럽게 심문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아주머니가 남편에게 버림을 받았으며, 현재 다섯 명의 아이를 기르고 있다는 것, 집도
절도 없으며, 몇 달 동안 기름진 음식이라곤 한 번도 입에 대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정을 알게 된 재판관은 그 아주머니를 감옥에 보내는 대신 그 가족이
살기 적절한 집을 제공해 주고 연금을 지급받도록 해주었습니다. 이 재판관에게는 법의
정신이 법조문보다 더 중요했습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간음하다 붙잡혀 온 어떤 연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돌로 쳐죽이려 하는 형식에 치우친 사람들의
행위를 저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제정자인 동시에 남자와 여자의 마음을 잘 아시는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연인의 주위 환경을 아셨으며, 그녀가 지금 회개했다는 사실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부드럽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 8:11). 율법 그 자체보다 율법의 정신이 예수님께는 더
중요합니다.
인간 심성의 외침, 후안 카를로스 오르티즈

15. 값진 기쁨
진지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믿는 바에 따라 행동의 다른 표준을 갖고
있기 때문에 때때로 화평을 유지하는 것이 힘들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들은 어떤 행위가
용납되거나 용납되지 않는다는 자신의 생각에 따라 다른 사람을 판단한다. 이러한 일은
같은 교회에 다니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발생한다.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여성들은 미국 여성들의 짙은
얼굴 화장을 눈감아 주는 것이 어려웠다. 동시에 미국의 신자들은 큰 맥주잔을 들고 있는
독일인이 참으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지 어떤지를 자문하였다. 각 나라마다 견해들간의
갈등이 있다. 예를 들면 네덜란드의 경우, 그리스도인들은 주일에 자전거를 타는 것에
관하여 서로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 흡연과 음주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여전히 다른 사람들에게는 금기 사항이다. 그러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에 기초한다. 은혜에 의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사람은 또한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자 할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이
자신의 신념을 가질 권리를 인정해 줄 것이다. 당신은 그 누군가의 양심에 걸림돌이 되는
것을 기꺼이 그만두겠는가? 즉 그 행동이 당신 보기에는 나쁘지 않더라도 어리거나 연약한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 그것을 하지 않거나 포기할 수 있는가?
자신의 명분을 내세우기보다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려는 이러한 일들을 행할 때
당신은 평화뿐만 아니라 기쁨도 경험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사랑을 위해 당신은
타인의 행복을 위한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험에 의하면 이러한 기쁨은 자신이
포기한 ‘잃은 것’보다 훨씬 더 값진 것이다.

16. 법보다 위대한 원리
세계적으로 유명한 신학자이면서 설교가인 미국의 아이언사이드 박사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분이 교회에서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청년 하나가 손을 들더니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기 시작합니다. “법대로 합시다” 이 말을 듣던 아이언사이드 박사가
아주 놀라운 얘기를 했습니다. “여보게 젊은이, 법대로 자네를 다루었다면 자네는 어떻게 될
것인가? 자네는 벌써 지옥에 가 있어야 마땅할 것일세.” 우리는 법보다 위대한 원리에
의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은총의 원리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께서 나를 다루신
것처럼 다른 사람을 대하겠다”는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인간관계를 지배하는 은총의
원리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옳고 그름의 원리 – 율법적인 원리 – 가 아닌 은총의 원리에
의해서 삶을 살아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이 순종할 수
있는 명령이 무엇입니까?
“네 원수를 사랑하라.”

17. 이상한 설교
어느 교회에 처음으로 취임한 신임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는 첫 취임 예배에서 아주 멋지고
놀라운 설교를 했습니다. 교인들은 얼마나 기뻐했을까요? 우리가 정말 목사님을 잘
모셔왔다고 생각했겠지요. 그 다음 주일이 되었습니다. 이 목사님이 취임 예배에서 한
설교와 똑같은 설교를 또다시 했습니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교인들이 늘어갑니다. 그래도
이제 두번째이니까 혹시 잊었거나, 아니면 취임 예배로 너무 정신이 없어서 설교 원고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착각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이해할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번째 주간에도 이 신임 목사님은 첫번째, 두번째 주간에 하신 설교를 똑같이
하셨습니다. 당신은 상상할 수가 있습니까? 똑같은 설교를 세 번 들었을 때의 교인들의
반응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모셔와도 단단히 잘못 모셔왔다”고 말할 것입니다.
한 용감한 교인이 목사님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은 언제 새로운 설교를
시작하시겠습니까?” 그래서 그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당신이 이 말씀을
정말로 삶 속에 적용할 때 그때 저는 새로운 설교를 시작할 것입니다.”
당신은 무슨 목적과 동기로 이 말씀을 받으십니까? 아니면, 행동의 변화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으로 이 말씀을 받으십니까? 우리가 이 말씀을 순종할 때 참 자유를
얻습니다.

18. 성경의 운동력
어떤 성경 주석이나 설교도 일체 없이 오직 성경 한권을 읽는 것만으로 원시인들이 구원을
받고 새 사람이 되는 것을 아마죤 강에서 선교사업을 하는 한 선교사를 통하여 들을 수
있었습니다. 미국 남부에서 있었던 일인데, 부부 두 세사람이 함께 성경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아마추어 성경 공부입니다. 그런 단순한 공부였지만 그들은 기쁨을
발견하고 생활이 변하여서 나중에는 삼십 명의 친구들이 모여서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성경 공부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수십 명의 선교사들이 배출되었고,
특히 치과 의사 부부가 한 달에 4만 불씩 벌던 직업을 버리고 몇 백 불의 월급을 받으면서
세계를 돌아다니며 성경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선교사들이 대학 교육을 받고
신학교를 졸업하고 박사 학위를 받은 후에 나왔지만, 요즘의 선교사들은 평신도로서 성경을
가르치는 운동을 하러 다닙니다. 어떤 목사님이 나에게 한 부인의 간증을 들려 준 기억이
있습니다. 그 부인은 글을 읽을 수 없어서 하루에 오백원의 품삯을 주며 성경을 읽어 줄
사람을 고용했는데, 읽어 주던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어서 그 부인보다 더욱 신실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되어도 성경을 한 번도
읽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을 알지 못하고 어떻게 신앙이 자랄 수가
있습니까? 성경을 매일 일용할 양식으로 읽어야 합니다.

19. 예수를 바라보게
1850년 1월 6일, 영국의 콜체스터 시는 심한 눈보라로 도시 전체가 마비되어 버렸다.
그리하여 한 십대 소년은 그가 늘 다니던 교회에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가까이에
있는 교회에 들어가 예배에 참석하였다. 그 교회에서는 출타한 목사님을 대신하여 한
평신도가 서툴게 설교를 하였다. 그가 설교한 본문은 이사야 45장 22절의 말씀이었다.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여러 달 동안 이 소년은
마음의 곤고함과 죄에 대한 괴로움에 빠져 있었다. 비록 교회에서 자랐다 할지라도(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목사였다), 그는 구원의 확신을 갖고 있지 못했었다. 그 서툴게 준비한
대리 설교자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은 채, 다만 본문을 반복해 외칠 뿐이었다. “사람은
바라보는 것을 배우고자 대학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어린아이라도 볼 수 있습니다.” 그 설교자는 이렇게 열변을 토했다. 그리고 그때, 이
설교자는 한쪽 구석에 앉아 있는 새 방문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 방문자를 쳐다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젊은이, 자네는 아주 피곤해 뵈는군.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그때
그 젊은 청년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았는데, 이것이 바로 위대한 설교가 스펄젼의
회심의 경험이었다.
능력 가운데 살라, 워런 워어스비

20. 어미새의 사랑
차디찬 지난 며칠 간 영하의 날씨에 있었던 일입니다.
아파트에 사는 한 가정에서 새 한 쌍을 선물로 받아 매일 아침 신선한 공기와 햇빛을
받으라고 초롱을 베란다에 걸었다가 저녁이면 들여오곤 하였습니다.
그 동안 새는 자라서 어미새가 되었고,어미새는 어느덧 알을 품더니 두마리의 예쁜 새끼를
갖게 되었으며,그 새끼들은 초롱 속에 만들어 준 둥지에서 자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베란다에 둔 것을 깜박 잊어버리고 영하의 날씨에 밤을 그냥 보내
버렸습니다. 아침에서야 새 초롱을 생각하고 허둥지둥 나가 보니 아뿔사 어미 새는 둥지에
몸을 덮은 채로 얼어 죽어 있었습니다.
인간의 실수로 인해 생명을 잃게 한 것을 생각하고 가슴을 치며 죽은 어미새를 집었더니,
아! 거기 얼어 죽은 어미새 밑에 한마리의 큰 새와 두 마리의 새끼는 그대로 살아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미새의 지극한 헌신은 육체로 둥지를 덮어 얼어 죽으면서까지 남은
생명들을 사랑한 기막힌 얘기였습니다. 차가워지는 혈관을 의식하며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여기 세상의 한파,죄악의 한파가 몰아 닥쳐 모두가 죽음에 직면하였을때 차디찬 십자가에
몸을 던져 스스로 차가워지면서 세상이라는 둥지를 덮음으로 그 한파 속에서 뜨거운
혈액으로 소생케 한 사랑, 그것이 하나님께서 지극히 인간을 사랑하셨던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이 사랑의 얘기는 바로 인간은 던져진 무목적의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나가는 존재라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21. 하나님의 사랑
한 수도사가 마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이제까지의 그 어떤 설교보다도 더
훌륭한 설교를 하겠다고 알리며, 모든 사람들이 모이기를 강요했다. 시간이 흐르자 성전은
노인과 청년들로 가득 찼다. 모든 사람은 그 예배를 통하여 훌륭한 설교를 들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시간이 되었다. 그럼에도 그 수도사는 설교를 시작하지 아니하였다.
대신에 촛대를 꽂아 둔 곳으로 가 밝게 타고 있는 초가 꽂힌 촛대를 집어 들고서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상이 조각되어 있는 제단으로 올라갔다. 그 수도사는
조용하고 밝게 타고 있는 촛불로 못박히신 예수님의 팔을 비추어서 모인 사람들로 하여금
분명히 볼 수 있게 하였다.
다음에는 촛불을 옮겨 역시 못박히신 예수님의 다른 한 팔을 비췄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그때 촛불은 못박힌 예수님의 두 발을 밝게 비추어 주고 있었다. 잠시 후에 그
수도사가 일어나서 돌아섰다. 그때에도 손에 쥐고 있던 촛불은 그의 얼굴을 밝게 비춰 모인
사람들은 그 수도사가 이렇게 말하는 동안 그의 뺨을 흘러 내리는 눈물을 볼 수가 있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당신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나의 설교입니다.”
그리고 그는 축복기도를 하고서 사라졌다.
로버트 슐러

22. 사랑은 사랑을 낳고
오래 전에 이름을 밝히지 않은 사람이 고아원에 찾아와 이렇게 물었다.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을 아이가 있습니까?” 그 물음에 원장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네, 있어요. 열
살짜리 여자아이인데 매우 흉한 꼽추예요. 단지 이름만은 좋아서 머시 굿페이스(Merch
Goodfaith: 훌륭한 믿음의 은혜라는 뜻)이지요.” “바로 그런 아이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이렇게 대답하고서 그 아이와 함께 떠났다. 35년이 지난 후, 아이오와 주 고아원
감사실의 실장은 한 고아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가정은 매우
특별한 곳인데 깨끗하고, 음식도 훌륭하며 특히 그곳 원장은 사랑이 넘쳐 흐르는 영혼을
가진 사람이다. 이곳에 수용된 어린이는 모두 잘 보살펴지고 있으며, 원장은 풍부한 사랑의
영향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이 저녁식사 후에 피아노 앞에 모여 섰을 때 나는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분위기를 느꼈다. 나는 결코 그 원장의 눈과 같은 아름다운 눈을
본 적이 없다. 그들은 내가 그 원장의 얼굴이 보기 흉하고 꼽추라는 사실을 잊고 있는 데
놀라워했다. 그 원장의 이름은 머시 굿페이스이다.” 어떤, 이름도 알 수 없는 사람이 추하고
보기 흉한 고아를 보살펴 줄 용기를 가지고 있었기에 머시 굿페이스는 사랑의 방법을
배우고 또 그 사랑을 백 배로 증식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오늘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돌볼 수 있는 용기를 주시기를 기도한다.
인생 최대의 갈망, 로버트 슐러

23. 보여 주세요
나는 김성준 선교사님과 같이 지내면서 그분의 이웃을 사랑하는 사랑을 볼 때마다 참
부끄러운 생각을 갖게 됩니다. 내가 목사로서 이분처럼 구체적으로 영혼을 구원하는 열정을
가졌는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당신은 왜 선교사로 갔습니까?”하고 그분께 물었더니
“그 야만인 지역은 전파가 통하지 않습니다. 또 글이 없어서 책을 줘도 읽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몸으로 직접 가는 방법 외에는 다르게 그들을 사랑하는 표시,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방법이 없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감동했습니다. 그러나 감동을 사랑으로 옮겨 행할 때는 어렵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예수님께서 설교하실 때 사람들의 감정은 부풀어 올랐습니다. 사랑해야겠다는 결단이
있었습니다. 그 설교, 예수님의 실제 설교, 사랑의 그 많은 설교 앞에, 예수님의 사랑의
행동 앞에 제자들과 사람들은 많이 감동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누가
높은가?” 하는 문제 때문에 서로 다투었습니다. 실제적으로 사랑할 때 우리에게 고통이
있고 아픔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가르치시기 위해 마지막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친히 대야에 물을 떠 오시고 허리의 수건을 동이시면서 자신의 몸
전체로 사랑의 수고를 보여 주셨습니다. 사랑은 실제로 어렵습니다. 참 사랑한다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대가를 치르는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인 것입니다.
십계명 강해, 홍정길

24. 눈물로 뿌린 씨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한 작은 동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열네 살 된 윌리암이라는 소년은
동리에서 평판이 대단히 나빴을 뿐 아니라 학교에서도 지도를 할 수 없었던 거칠고 못된
소년이었다. 더구나 그는 많은 학생들에게 점차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어서
학교 당국에서도 큰 문제였다.
그때에 새로 부임해 온 교사가 한 사람있었다. 이 새 교사는 윌리암 소년에 대한 말을 듣고
그를 한 번 지도해 보겠다고 했다. 동료 교사들은 모두 말렸다. 공연히 봉변이나
당할터이니 손을 대지 말라고 만류하였다. 그러나 그 교사는 윌리암 소년을 차근차근
관찰해 가면서 그의 형편과 성격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는, 희망이 없다고 낙인이 찍히고
틀림없이 악한 사람이 될 곳이라는 인정을 받고 있는 윌리암 소년을 친절과 이해와 끈기로
지도해 갔다. 교사는 못된 그 소년에게 사랑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었다. 선과 악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었다. 참된 자존심과 포부를 넣어 주었다. 그 교사는 눈물로 씨를 뿌린
것이었다. 놀라운 일이 생기기 시작했으니 그것은 뿌려진 씨앗이 싹을 트고 땅에 뿌리를
내고 자라는 것이었다. 이 소년은 나쁜 버릇을 버리게 되었다. 그리고는 밤잠을 안 자며
공부를 하였다. 그는 대학에 진학을 했다. 대학을 졸업할 때에는 우등이라는 명예로 졸업을
했다. 윌리암은 계속 법률을 공부했다. 그는 결국 미국 대법원의 부판사가 되었다. 윌리암은
뉴욕 주의 주지사가 되었고 드디어는 미국의 국무장관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그는
어려서 몹쓸 인간으로 점찍혀 버림받았으나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본 한 교사의
지도로 이처럼 위대하고 뜻 있는 일생을 보내게 된 것이다.

25. 포기하지 않는 사랑
수년 전 한 아가씨가 스코틀랜드 주일학교에서 장난꾸러기 소년만 모인 반의 담임을
자청하고 나섰다. 그중에서도 보비라는 소년은 다룰 수 없는 골칫거리 아이였다.
주일학교에서는 이 여선생님에게 새 옷 한 벌을 가지고 보비의 집을 방문하여 계속 출석을
잘하도록 했다. 여선생님이 보비의 집을 방문했을 때 보비는 씻지 않아 땟물이 흐르는
얼굴에 머리는 빗질을 하지 않아 헝클어져 있었고, 그가 입고 있는 옷은 진흙에 뒹굴어
거의 걸레가 되어 있었다. 여선생님은 보비에게 새 옷을 갈아 입히고 교회에 잘 나오도록
부드럽게 얘기했다. 그러나 보비는 또 더러워졌고 교회도 나오지 않았다. 여선생님은 다시
보비를 방문했다. 이미 새 옷은 다 망쳐지고 걸레가 되어 있었다. 또 한 벌의 새 옷을
선물하고 잘 타일렀다. 그러난 여전히 보비는 달라지지 않았다. 여선생님은 힘이 빠지고
말았다. 주일학교 부장을 찾아가 이제 더이상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주일학교
부장은 “용기를 잃지 말고 계속해 보십시오”하고 격려했다. 그 여선생님의 계속적인
노력으로 고삐 풀어진 망아지 같은 이 소년은 나중에 훌륭하게 성장하여 중국에 선교사로
갔다. 그가 바로 로버트 스미슨 목사이다. 그는 성경을 중국어로 번역하여 수백만의 영혼을
주께로 나오게 했다.
G.D. 제임스

26. 엄마 노예의 죽음
어떤 선교사가 임지로 가는 도중에 여자의 비명을 듣게 되었다. 무슨 소리인가 하고 가까이
가보니 아들이 노예로 끌려가는데 그 엄마가 주인을 보고 “주인님, 나도 아들과 함께 사
주십시오. 저희 모자가 함께 가서 열심히 일하겠습니다”하며 애원했다. 그러나 그 주인이
“안돼”하며 아들만 끌고 가는데 그 엄마는 생명을 내걸고 함께 사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엄마도 울고, 아들도 울고…. 한번 헤어지면 영원히 만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광경을
보던 그 선교사는 주머니의 모든 돈을 털어 그 두 모자를 사서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세월이 지난 후 어느 날, 선교사가 풀밭에서 비명을 지르고 넘어졌다. 실신이 된
선교사의 뒷발에 독사의 이빨 자국이 나 있자 엄마 노예가 입을 대어 독을 빨아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거의 죽었던 선교사가 일어나 보니 독기를 입으로 빨던 엄마 노예는
얼굴이 퉁퉁 부어 죽어 있었다. 엄마 노예는 자기를 사 준 그 고마운 선교사, 진정한
사랑을 베풀고 자유를 준 이 선교사를 위하여 사망의 독을 입으로 빨았던 것이다. 오늘
우리는 어떻게 해야 나의 생명을 건져 주신, 아니 우리 가족 전체를 살려 주신 예수님을
위해 살 수 있을까?
겨울 전에 어서 오라, 신예철

27. 못 받아도 괜찮습니다
강아지를 보고 “나는 네가 밉다”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면서 쓰다듬어 주면 좋다고
꼬리를 칩니다. 그러나 “난 널 사랑해!”하고 꽥 소리를 지르면 콱 물어 버립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사랑한다고 말했느냐 미워한다고 말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랑의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어떤 교육도, 어떤 비판도, 어떤 훈계도,
사랑으로 말미암은 것만 틀림없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제가 인천에서 목회하던 30여
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그때는 토요일마다 주일을 위해 목욕탕에 가곤 했습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공중 목욕탕으로 곧바로 가서 목욕을 하고 돌아오는데, 길에서 문둥병
환자를 만났습니다. 평소 우리집에 자주 오는 분이어서 낯이 익었습니다. 그는 나를
반기면서 말합니다. “저어, 사모님은 늘 뵙고 신세를 집니다마는 목사님은 오래간만에
만났으니 두둑히 좀 도와 주십시오. “그래서 주머니를 뒤져 보니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습니다. “이것 참, 아무것도 없네요. 어쩌지요?” 했더니, “에이, 그러시지 말고 좀
주세요. 목사님”하면서 물러서지를 않습니다. 무슨 말을 해도 믿지를 않아서 저는 난처한
지경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저는 그 사람을 좀더 가까이 오라고 한 다음,
방금 씻은 깨끗한 손으로 문둥병자의 손을 덥석 붙들어 잡았습니다. 그리고 불쑥
소리쳤습니다. “정말 없단 말이야!” 그랬더니 이 사람이 “아아, 목사님 참말 고맙습니다.
돈을 얻은 것보다 더 기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하고 몇 번이고 인사를
했습니다. 못 받아도 괜찮습니다. 사랑이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종말론적 윤리, 곽선희

28. 보잘것없는 초상화
아이버 포웰은 {성경의 유리창}이라는 그의 훌륭한 책 속에서 유산을 남기지 않고 죽은
부자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그가 죽었을 때 그 집의 가구 경매에서 죽은 그의 아들의
초상화를 산 유일한 사람은 남루한 옷을 걸친 늙은 여인이었다.
그 아들은 어린 시절에 죽었기 때문에 그 부자는 그 그림을 무척이나 아꼈다. 그러나
모여든 경매자들은 그 그림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다. 왜 그 그림을 샀느냐는 질문에 그
여인은 수년 전에 소년의 유모였고 그 소년을 무척 사랑했다고 대답했다. 뒤에 그 초상화를
자세히 살펴보다가 그림 뒤에 있는 두꺼운 서류뭉치를 발견했다. 봉투를 열어 보니 그
속에는 유서가 들어 있었다. 그의 사랑스런 아들에 대한 기억을 고이 간직한 사람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주겠다는 내용이 명백히 쓰여 있었다.

29.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롬 13:12,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아래 두 지 아니하고 동경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엑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 5:14-16)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빌 2:15) 어두움을 몰아내는데 과연 얼마만큼의 빛이 필요할까요? 아주 작은 빛입니다. 그것은
등화관제를 할 때 여실히 들어 납니다. 온 동네가 칠흙같은 어둠 속에 있을 때 어느 집에서
TV를 켰다고 합시다. 그 빛은 어김없이 밖으로 새어나와 어두움의 적막을 깨고 맙니다.
또한 칠흙같이 어두운 밤에 조그만 손전등 하나가 아주 훌륭한 길 안내자가 되어줍니다.
당신의 주변을 살펴보십시요. 영적인 암흑이 존재하는 곳은 없습니까? 어두움은 아주 작은
빛으로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눈이 달빛에서 반사해서 빛을 발하듯이, 예수님의
빛을 반사해서 내는 그 빛을 당신에게서 요구하십니다. 당신은 조용히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삶으로써 그 빛의 역할을 해내실 수 있습니다.

30. 겸손하게 십자가를 지라
낙타는 하루를 시작하고 마칠 때마다 주인 앞에 무릎을 꿇는다고 합니다. 즉, 하루를
보내고 일을 끝마칠 시간이 되면 낙타는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등에 있는 짐이 내려지길
기다리며, 또 새날이 시작되면 또다시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주인이 얹어 주는 짐을
짊어지는 것입니다. 주인은 낙타의 사정을 잘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낙타가 짊어질 수
있을 만큼만 짐을 얹어 줍니다. 낙타는 주인이 얹어 주는 짐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낙타는
당신입니다. 그리고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형편을 누구보다도 잘
아십니다. 그리고 당신이 짊어질 수 있을 만큼 당신에게 짐을 얹어 주십니다. 이 때 당신은
어떤 모습으로 짐을 받으십니까? 낙타와 같은 겸손한 모습입니까?
새에게 날개는 무거우나 그것 때문에 날 수 있고, 배는 그 돛이 무거우나 그것 때문에 항해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십자가는 짐이 되나 그것이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천국으로
향하게 만든다.

31. 맡을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
최선을 다해 그 일을 했지만 기대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낙심합니다.
스코틀랜드에 있는 어떤 목사는 열심히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 년 동안 새로 나온 교인이라고는 로버트 모펫트라는 단 한 명의
소년뿐이었습니다. 교인들은 목사님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고 수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로버트라는 소년이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제가
열심히 공부해서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겠어요.” 이 말에 목사님은 다시 힘을
얻었습니다. 그후 로버트는 아프리카 선교사가 되어 수많은 영혼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했습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입니다. 충성을 다 하십시오. 그리고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32.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자
알렉산더 대제 휘하에 알렉산더라는 병사가 있었습니다. 그 병사는 형편없는 생활을 하면서
알렉산더라는 이름을 먹칠을 하고 다니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알렉산더 대제는
알렉산더 병사가 있는 막사로 찾아가 다음과 같이 명령을 했습니다. “자네 이름이
알렉산더라지? 그렇다면 자네 이름을 바꾸던가 아니면 자네의 생활 태도를 바꾸도록 하게!”
우리에게도 병사와 같은 모습이 있습니다. 즉, 이름은 그리스도인이지만 행동은 전혀
그리스도인 답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자칭 그리스도인은 아니신지요?

33. 가치 있는 일에 열심을 내자
한 영국 귀족이 부모로 부터 엄청난 유산을 물려 받았습니다. 그 귀족은 그 돈을 가지고
무엇이든지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많은 돈을 점박이 쥐를 만드는 일에
투자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점박이 쥐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어느 면에서
보더라도 무익한 일이었습니다. 귀족은 수많은 돈과 시간과 노력과 재능을 점박이 쥐를
위해 바쳤지만 점박이 쥐는 귀족이나 인류에게 아무런 유익도 가져다 주지 않았습니다.
우리들도 자신의 만족만을 위해 일하다 보면 귀족과 같은 어리석음을 범할 때가 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을 내고 있습니까? 당신이 열심히 내고 계신 일은 진정
가치있는 일입니까?

34. 좌절감
어느날 마귀가 야시장을 열어 정욕, 기만, 자랑, 시기, 등과 같은 도구에 가격표를 붙여
팔았습니다. 그런데 그 시장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것은 ‘좌절’이었다고 합니다. 좌절감은
목표와 욕구가 성취되지 않을 때나 혹은 하기 싫은 일을 강요당할 때 생기는 인간의
감정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좌절하게 되는 더 근본적인 이유는 믿음의 방패를 버리고
두려움과 불신앙과 자기연민이라는 창의 공격을 허락했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도 사람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飁 마지막으로 좌절이란 도구를 쓴다고
합니다.

35. 칭찬은 사람을 변화 시킨다
어느 택시 회사에 성미가 무척 까다로와서 직장 전체의 분위기를 우울하게 만드는 한
수리공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사 과장이 그 사람의 해고 문제를 사장에게 정식으로
건의했습니다. 그러나 사장은 그 사람이 얼마나 완벽하게 일을 해내고 있는지에 대해
칭찬하면서 그 일을 없었던 것으로 하자고 말했습니다. 사장의 그 이야기는 머지 않아
수리공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사람은 유능하고 유모어 있는
사람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칭찬에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36. 친절은 가장 큰 무기이다.
어느 내무반에 한 믿음 좋은 병사가 있었는데 그 병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늘
놀림을 당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한 상사가 병사의 오른 뺨을 군화로 힘껏 후려치고는
‘너희 기독교에서는 오른 뺨을 때리면 왼쪽 뺨도 내민다면서’라고 조롱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다음날 아침, 상사는 자신의 군화가 반들반들하게 닦여져 있는 걸
보았습니다. 상사는 누가 그랬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의 주변에도 우리를 괴롭히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
쓸데없는 감정 소비를 하기보다는 친절을 재푸십시오. 친절 이상으로 힘있는 무기는
없습니다.
37. 부지런하자
어느 부자집에 머슴이 필요하다는 소문을 듣고 어떤 사람이 자기를 써 달라고 부탁하러
왔습니다. 그때 주인은 “너는 무얼 가장 잘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잠자는 걸 가장 잘한다고 대답했습니다.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마땅한 사람도 없고
해서 주인은 그 사람을 머슴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습니다. 그 날은 유달리
천둥과 번개가 심한 밤이었습니다. 심란해진 주인은 집안 구석구석 비가 새는 데는 없나
살피다가 머슴이 자기 방에서 코를 골며 자는 것을 보았습니다. 천둥 번개가 요란했지만
머슴은 낮 동안 힘을 다해 모든 일을 해 놓았기 때문에 피곤해서 깊이 잠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제야 주인은 잠자는 걸 제일 잘한다고 한 머슴의 말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38. 세상 욕심을 벗어 던지라
알렉산더 왕이 이끄는 군대가 페르시아를 쳐부수기 위해 전진하고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군인들은 패전을 결심이라도 한 듯 힘없이 행군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알렉산더 왕은 그
이유를 재빠르게 알아차렸습니다. 군인들은 여러 전투에서 얻은 노획물들을 몸에 잔뜩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군인들의 행군을 잠깐 멈추게 한 알렉산더는 노획물들을
모두 모와 불태울 것을 명령했습니다. 이 명령에 군인들은 심한 불평을 늘어놓았지만, 결국
그렇게 함으로써 페르시아와의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군사입니다. 그렇지만 군사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하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세상적인 욕심을 잔뜩 짊어진 채 군사 노릇을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39. 네 부모를 공경하라
텍사스의 한 사내가 아내와 네 자녀를 버리고 캘리포니아로 가서 30년 동안 오직 자기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는 돈 한푼 없이 죽었는데, 자기의 시체를 고향 텍사스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텍사스에 살고 있던 자식들은 모두 그 소식을 듣고 분개했습니다. “그
사람이 우리와 무슨 상관있어? 그가 아버지로서 우리에게 해준 게 뭔데? 그 사람 때문에
어머니와 우리 모두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왜 우리가 그 시체에 수고와 돈을 들여야
하지?” 그러나 신앙심이 깊은 큰아들은 아무 말없이 동생들의 불평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캘리포니아로 가서 아버지의 시체를 운구해 오기 위해 자기 트랙터와 농기게들을
저당잡혔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난 후 큰아들은 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경에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씌어 있을 뿐, ‘어떤 부모’라는 말은 없단다”

40. 무엇을 위해 모이는가?
교회에는 여러 모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임을 이상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사람들을
종종 봅니다. 모이자마자 험담으로 시작해서 험담으로 끝을 맺습니다. 당신이 속해 있는
모임은 어떻습니까? 혹, 험담이 난무하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모임의 목적과 의의를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모임은 오직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만 존재해야 합니다. 험담은 그리스도인의 모임에서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될
요소입니다. 헐뜯을 만할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그 사람을 놓고 애통하는 심령으로 함께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서로가 잘 되는 길입니다.

41. 성경을 알자
어느 목사가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누가 여리고 성벽을 무너뜨렸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한
소년이 일어나 “저는 절대로 무너뜨리지 않았습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그 대답을 듣고
놀란 목사는 주일학교 선생에게 이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냐고 따지듯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선생은 “저는 그 소년이 정직하다고 믿습니다. 그 소년은 분명코 그 성벽을
무너뜨리지 않았을 겁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실제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에 대해 지나치게 무지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성경은 하나님에 대해
밝혀놓은 책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 무지한 사람은 과연 어떤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누구를 향해 기도하는 걸까요? 우리는 성경을 읽고 배워야 합니다.
그리함으로 올바로 하나님을 알고, 올바로 기도를 하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올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42. 전도
그리스도인에게는 날마다 일어나는 세 가지 기적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성경말씀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전도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고 사랑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스운 이야기 같지만 현실입니다. 이는 전도에 대해서만 생각해 보아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한 얘기는 밤을 새워서까지 하려고 합니다. 한 가지
예로, 멋있는 사람과 막 교제를 시작한 처녀를 보십시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자신과
교제하고 있는 사람에 대해 말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에 관해서 만큼은 입을 꼭
다물고 있는 걸까요?! 어떻게 그 놀랍고도 감격적인 복음을 혼자만 알고 있을 수 있을까요?
우리 모두 자문해 보아야 할 일입니다.

43. 세상을 등지지 말라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사회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이런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신실한 믿음의 소유자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적이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일컬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세상 사람들과 분리되어져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과
어우러져야 하며, 그 속에서 더욱더 빛을 발하며, 맛을 내야 합니다. 열왕기상 18장 3,4절
말씀에 나오는 오바댜를 보십시오. 그는 악독했던 아합 왕이 통치하던 시대에 궁내 대신을
지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여호와를 크게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은
세상에서 어떻게 살고 계십니까? 세상에 뛰어들어 그들에게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
주십니까?

44. 당신의 신앙의 깊이는?
어느 저녁무렵, 한 노인과 그의 손자가 호숫가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많은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가령, 계절은 왜 바뀌며, 여자들은 왜 지렁이를 싫어하며, 인생이란
무엇인가 등등. 마침내 손자가 할아버지를 쳐다보며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하나님을 본
사람이 있나요?” 그 노인은 잔잔한 호수 건너편을 바라보며 대답했습니다.”얘야, 나는 이제
점점 하나님 이외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단다.”
우리의 하루 하루가 바로 이 노인과 같아야 할 것입니다. 점점 하나님을 선명하게
바라 보며, 숨을 쉬는 것처럼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하나님과 대화하면서 천국 생활을
준비한다면 그보다 행복한 삶은 없을 것입니다

45. 으뜸이 되고자 하느냐?
성공한 목회자인 사무엘 브랭글 목사는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남달랐습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것을 보고, 맡고 있던 교회를 사직하고 런던에
있는 구세군에 들어갔습니다. 처음으로 그가 한 일은 한 무더기의 흙투성이의 장화를 닦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속으로 불평하였습니다. 그러나 곧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일을 생각하면서 자신 또한 예수님처럼 섬기는 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브랭글 목사의 섬기는 삶은 시작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일생동안 많은 이들을
섬김으로 많은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저로 머리가 되게 하고 꼬리가 되지
말게 하옵소서.”하고 기도를 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기도를 하면서 높은 위치에서 호령하고
있는 자신을 상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머리란 무릎 꿇고 섬기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46.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
유명한 복음 전도자였던 죤 길모어 목사는 어느 날 작은 마을을 지나다가 주방용품을 팔고
있는 어느 노인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요즘 장사는 잘
되시는지요?” “예, 그럭저럭 잘 됩니다.” “할아버지는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물론 믿지요.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다는 것은 정말 위대한 일인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렇지만 그보다
더 위대한 일이 있지요” “그래요? 그게 뭔데요?” “그건 나를 구원해 준 그분과 동행하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단지 구원받고 죽어서 천국가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날마다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그 속에서 천국 생활을 미리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47. 준비되어 있는 선교사
요즘 들어 세계선교에 대한 열의가 무척 높아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정말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세계선교를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기본적인 신앙조차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또한 단순한 타문화권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을 그 민족에 대한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계선교를
운운하기 전에 잠깐 우리의 주변을 살펴 보아야 합니다. 선교사가 되겠다고 하면서
가족들이나 교인들과의 관계조차 원활하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코카콜라가 전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음료가 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코카콜라 회사에서 내건
좋은 표어 때문이었습니다. 그 표어는 “세계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선교사는 가정과 교회에서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썩어졌던 사람들입니다. 바로 그 사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다른 문화권에 들어가
복음을 전할 때 비로소 그 복음은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폭발적인 힘을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48. 죄에 대해서는 민감하라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이 이야기를 하면서 나란히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리스도인이 그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너무 아픈 나머지 그리스도인은
불평 섞인 욕을 해댔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욕을 했던 것을 회개하면서 “주님,
그리스도인으로서 산다는 것은 때로는 너무 힘이 듭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비그리스도인이 입을 열었습니다. “여보게 뭘 그런 걸 다 회개하나?
삶을 좀 자유스럽게 살게.”
순간 우리는 비그리스도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조그만 죄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은 그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는 사람은 죄를 짓고도 자신이 지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합니다.

49. 왜 준비 안 하십니까?
어느 아이가 주일학교 시간에 하늘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하늘나라를 준비하셨다는 것을 오늘 배웠어요. 하늘나라는
참으로 아름답고 좋은 곳이래요.” 듣고 있던 엄마는 아이의 말이 맞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칭찬을 해 주었습니다. 아이는 다시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엄마는 다른 여행준비는 언제나 철저하게 준비하시면서 그 아름다운 하늘나라
여행을 위해서는 왜 준비를 하지 않으세요?”

50. 성경은 무슨 내용일까?
주일날 교회에서 선생님이 어린이들을 모아놓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얘들아 성경은 무슨
내용이니?” 이때 한 작은 어린이가 손을 들더니 대답을 하였습니다. “우리 누나 성경에는요,
우리 누나 애인 사진과 편지가 들어 있어요.”

51. 가장 중요한 것
어떤 사람이 다니엘 웹스터에게 물었습니다.
“이제 까지 당신의 마음에 품었던 생각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미국 역사상 훌륭한 지성 가운데 한 사람인 웹스터는 간단하게 대답하였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나의 신뢰입니다.”

52. 짐 윌슨의 성경이야기
프린스턴 대학에 짐 윌슨이라는 구약 교수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학생들이 이 노교수에게 성경을 토론하러 왔습니다. 교수는 말했습니다.
“성경 토론도 좋지만 성경을 몇번이나 읽었습니까?” 그러자 학생들은 한 번도 제대로 읽지
못했다고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짐 윌슨이 자못 놀라는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나는 적어도 40년을 밤잠 못자면서 연구를 하며 수백 번을 읽어도 믿지 못할 것이 없으니
우선 몇번이나 읽고 나서 성경 토론을 해봅시다.”

53. 열 명의 문둥병자
누가복음에 나오는 열 명의 문둥병자들이 예수님을 만나서 모두 고침을 받고 돌아갔는데
그중의 한 사람만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감사를 드렸습니다. 나머지 아홉 사람은 깨끗한
몸으로 회복된 것이 너무나 기뻤던 까닭에 가족과 친구들에게 달려가서 함께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얼마 후 그들의 감격이 가라앉게 되자 그제서야 예수님을 찾아가서 감사를
드려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예수님이 계신 곳을 찾아가 보니 이미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뒤였다고 합니다. 감사는 감사할 수 있을 때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감사할 시기를 알아야 하며 하나님께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54. 구원받았음으로 일한다
무디는 이 말을 자주 했습니다. “회심하기 전 나는 십자가를 향해 일했다. 그러나 그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십자가로부터 일해 왔다. 전에는 구원 받기 위해 일했다. 그러나 지금은
구원 받았음으로 일한다.”

55. 요한 웨슬리의 간증
“내가 회심을 하고 중생을 체험하기 전에도 선교사였으며 예수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예수를 열심으로 믿었고 온갖 교회 일에 몰두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아들의 믿음이
아니요 종의 믿음을 가졌었습니다. 종의 믿음은 억지로 하는 것입니다. 아들의 믿음은
은혜요, 축복입니다.”

56. 전도의 시기
어느 회사를 경영하는 사장이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었습니다.
꼭 자기는 주일날이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인데 전도는
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보고 예수를 믿으란 말을 한마디도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회사에 같이 일하는 사람이 많이 있어도 다른 이야기는 늘 하지만 한번도 교회에
가자고 전도를 해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날은 설교를 듣고 나서 전도를 못한 자기의 잘못을 깨달아서 꼭 전도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자기 회사 사무실에 나가서 사장 자리에 앉았습니다.
조금 후 문을 열고 제일 먼저 들어온 사람은 자기 비서였습니다. 가만히 생각 해보니까 이
비서에게 한번도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해 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비서가 교회에
다니고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이 비서가 놀란 표정으로 왜 그런 것을 묻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받지 하면서 사장은 다시 전도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비서는 “제가 사장님을 15년 동안 모셨는데 저한테는 한번도 전도를 안 하셔서 제
생각에 저 같은 존재는 예수를 믿을 수도 없나보다 생각했습니다. 오늘 이렇게 저한테
전도를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도 다음 주일부터는 교회에 다니겠습니다.”라고
말하더랍니다.

57. 다니엘 웹스터의 신앙
위싱턴에 미국의 유명한 정치인이요, 학자요, 언론인이었던 다니엘 윕스터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같은 시에 있는 큰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언제나
시골의 작은 교회만 찾아 다녔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웹스터씨, 왜 그렇게 하십니까?”
웹스터는 이렇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내가 시내의 내 얼굴을 아는 교회에 나가면 목사들이 정치인 웹스터한테 설교를 한단
말입니다. 그런데 나를 모르는 곳에 가면 내게 필요한 소리 ‘죄인 웹스터가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 가를 들려줍니다. 이것이 제가 듣고 싶은 설교입니다.”
58. 마르틴 루터의 변화
마르틴 루터의 고민은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근본적인 죄의 문제였습니다.
지금까지 범한 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정결하게
충성하려는 그에게 끊임없이 찾아와 그의 정결을 깨뜨리며 주님께 충성하기보다는 썩어질
정욕을 만족시키고 싶어하는 끊임없는 죄의 도전이었습니다.
과연 이렇게 본질적으로 썩어버린 인간에게도 소망이 있을까? 이러한 인간도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을까?
마르틴 루터는 죄의 도전을 물리치기 위해서 기도도 많이 했으며 말씀 묵상 연구도 많이
했으며 저 유명한 28계단 성당의 계단을 무릎으로 올라가는 것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샘솟는 죄의 정욕은 결코 이러한 루터의 노력으로 해결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였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로마서를 연구하다가 드디어 이러한 죄인에게 비추는 하나님의 빛을
발견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러한 정욕의 사람, 죄악의 사람, 더러운 인간을 있는
그대로 받으시고 그들의 죄를 예수님의 몸에 담당시켰습니다.
불꽃 같은 눈으로 인간을 살피시고 인간의 죄악을 미워하며 불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차라리 그 모든 심판을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님께 내리시고 그 대신 심판받아
멸망받았어야할 인간도 용서하시고, 받아들여 자녀로 삼으시려는 놀라운 결단을 내리시고
그 일을 행하셨음을 몸으로 깨달아 알았을 때에 루터는 하나님께 무릎을 꿇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인간의 죄는 인간의 공로나 힘, 능력으로 어쩔 수 없습니다.
교황청이 죄의 용서를 빙자해서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면죄부를 판매한다는 것은 도무지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루터는 드디어 1517년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설교회의 정문 앞에 걸어 놓았으며
종교개혁의 불씨를 당기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그의 삶을 통하여 얻은 몸의 진리요
말씀에서 발견한 것입니다. 어느 누가 이 진리를 취소하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때 루터는 담대히 외쳤습니다.
“나는 지금 여기 왔소. 이외에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소. 하나님께서 나를 도울
것이요.”
루터는 힘있게 거절을 하고 종교개혁을 위해서 생명을 다하여 열심히 주님의 일을
하였습니다.

59. 지름길은 없다
한 희랍의 수학자가 “기하학에 지름길은 없다.”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이 말은 노력하지
않고 어떻게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나 하고 궁리하는 젊은 학도들에게 주는
경고입니다. 우리들도 알고 있듯이 그런 방법은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성경에서도
마찬가지이며 우리들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이 길은 지름길이 아닙니다.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길입니다
60. 기쁨을 불어 넣어 주는 책
어떤 분이 한 회사의 이사회에 참석한 일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모인 여러 사람들의 소리를
듣고 있으니까 주님께서 이 사업체를 떠나셨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모인
사람들이 하는 대화는 모두가 다 어두운 미래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여기 모인 여러분들, 최근에 여러분들이 읽은 책은 무엇입니까?”
참석한 사람들이 대답하기를 무슨 잡지, 무슨 신문, 소설 등이었습니다.
그때 그 사람이 말하기를 “여러분은 잘못된 책만을 읽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환경에
구애됨이 없이 항상 기쁨을 불어넣어 주는 책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61. 플라톤과 제자
플라톤은 아테네의 한 젊은 철학도에게 어느 날 참된 시작이 무엇인가를 설명했습니다.
철학도는 지금까지 자기가 진정으로 배울 만한 철학자나 시인을 만나 보지 못했으나 드디어
플라톤을 만났다고 자기 스승에게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얘기를 다 듣고 난 후 플라톤이 이 젊은 철학도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이제까지
섬겨왔던 그 모든 스승들을 진정으로 사랑했습니까?” 이어서 플라톤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에게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는 참된 지식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지식은 참된 사랑의
관계를 통해서만 얻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62. 상대방을 존경한다는 것
첫째, 사람을 존경한다는 것은 그들의 관심을 존중해주며 그들의 입장에 서서 그들의
관점에서 인생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둘째, 다른 사람을 존경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감사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셋째, 다른 사람을 존경한다는 것은 그를 믿고 이해하고 함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63. 위대한 기도
가장 좋은 기도 응답은 기도를 통하여 더 큰 믿음과 확신을 갖고 용기와 능력이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조지 메레디스는 말했습니다.
“기도한 후에 더 나은 사람으로 일어서는 사람은 기도 응답을 받은 사람이다.
인생의 절정기에 느닷없이 가시의 공격을 받아 쓰러졌던 니버 목사는 오랫동안 인고의 기도
끝에 다음과 같은 위대한 기도로 일어섰습니다.
“오, 하나님! 우리가 변경할 수 없는 것이라면 이를 침착히 받아들일 수 있는 우아함을,
우리가 변경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이를 변경할 용기를, 우리가 이 두 가지를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아멘!”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 놀라운 구원의 이름으로 지상에서부터 하늘나라
아버지께로 위대한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64. 경건의 기도
16세에 주님을 영접하여 93세까지 80년 가까이 기도한 사람으로, 자기가 낳은 일곱
자녀들뿐만 아니라 손자, 증손자들과 수천명에게 깊은 감명을 주어 주께로 더욱 가까이
나아가게 영감을 불러 일으킨 어머니가 있습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나이 많은 사람이든 젊은 사람이든 그녀가 남을 비판하거나 불친절한
말을 하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오직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삶을 의탁하고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녀가 이처럼 놀라운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었던것은 그녀의 경건 훈련에 있었습니다.
그녀는 매일같이 시간을 정하여 그 시간을 기도와 말씀과 예배의 시간으로 삼았습니다.
삶의 최우선을 경건의 시간에 두었기 때문에 그는 어떠한 중대사가 일어나도 경건의
시간만은 지키려고 하였습니다.
나이가 점점 많아져서 거동하기도 불편해졌을 때 자녀들이 모시겠다고 했으나 아직 기도할
수 있고 말씀을 공부할 수 있는 동안은 혼자서 살고 싶다고 하면서 이제 93세가 된
연로한 노인이지만 기도하는 일과 말씀 공부하는 일을 쉬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중보기도의 명단을 작성하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자기를
통해서 사랑을 베풀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찾아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기도의
열매로 수많은 사람들이 고난 중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신앙의 사람으로
바뀌어지고 있습니다.

65. 열두 명만 있다면
영국 런던에 위치한 메트로폴리탄 교회는 스펄전 목사님이 목회하던 교회였습니다.
1866년에 소속 성도가 4천3백66명으로 그 당시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하루는 스펄전 목사님이 성도들에게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주님을 향해서 가슴이 뜨거운 사람, 열두명만 있다면 이
런던의 삭막하고 고독한 환경을 기쁨이 충만한 곳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나
4천3백66명이 있다고 할지라도 전부가 다 미지근한 성도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66. 엘리엇 선교사
엘리엇은 남미의 키치와 인디언 전도를 위해서 선교회관을 건축하고 있었습니다. 이
회관에서 키치와 인디언을 위한 병원과 학교 시설을 중심해서 여러 가지 선교를 위한
필수적인 시설이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엘리엇 선교사는 이를 위해 일년 이상 일했고 이제
거의 완성단계에 이를 때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큰 홍수가 나서 이 모든 시설이
하루 아침에 떠내려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엘리엇은 얼마 후 그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나는 그 날 아침 나의 모든 수고와 땀과 기도가 들어 있는 선교회관을 휩쓸어가는 홍수
속에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나는 아직도 너의 하나님이다. 지금도 너는 나를 신뢰할 수 있느냐?’
이제 나의 수고는 물거품이 되었습니다만 하나님께서 다시 시작하실 것입니다.”
67. 찬송
설교의 대상은 인간입니다. 설교는 사람을 움직입니다. 그러나 기도의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찬송은 하나님과 사람을 움직입니다.
성가대란 이렇게 중요합니다. 오늘 주님이 부르시면 설교도 기도도 끝납니다. 그러나
찬송은 하늘나라에서도 영원히 계속됩니다. 천사들이 모두 찬양할 것입니다. 다윗이 수금을
탈 때 사울 왕의 귀신이 쫓겨 나갔다고 합니다. 다윗은 노래하는 임금으로 법궤를 메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할 때는 너무 기뻐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잔인한 죽음도 노래를
빼앗지는 못합니다. 신앙의 절정은 노래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기적은 찬송이 있는 곳에서 시작됩니다. 성도여 노래가 있게 하시길 바랍니다.

68. 모임의 중요한 점
1. 기도하는 모임이어야 합니다.
2. 예수 중심의 모임이어야 합니다.
3. 변화가 있는 모임이어야 합니다.
4.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나는 모임이어야 합니다.
5. 예수 그리스도만 나타나는 모임이어야 합니다.

69. 고난 중의 찬송
나이가 많은 전도사가 늙은 과부의 집을 심방하기 위하여 진흙탕이 되어 있는 좁은 길을
지나서 다 찌그러진 허술한 집을 찾았습니다. 그러자 인기척을 들은 흑인 과부는 “거기 밖에
누가 왔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방에 들어가 불을 켠 전도사는 방안 풍경에 할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전도사는 그 방안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고통당하는 한 여인이 누더기 침상에
누워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의 얼굴은 먹물처럼 새까맣고, 삶에 찌든 주름살
자국으로 얼기설기 얽혔고, 차가운 겨울 밤인데도 불도 없고, 빛도 없고, 냉냉한 방에
쓰레기처럼 버려져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눈은 성스러운 평화와 신뢰의 신앙으로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그의
입은 끊임없이 “찬양하라, 영광, 할렐루야.”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 흑인 여인에게 남은
것이 있다면 가난과 관절염과 하나님을 찬양하는 평화와 찬송뿐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았던 사람들 가운데 이 여인처럼 세상의 기쁨과 환경 조건을 다 빼앗겨
버리고 비참한 삶을 산 여인은 얼마 안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찬송을 부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70. 죄악의 때
어느 시골 양반이 생전 처음으로 세탁 비누를 쓰면 때가 잘 빠진다는 말을 듣고 “내 평생에
찌든 악의 때를 벗겨야겠다.”면서 비눗물을 만들어 꿀꺽꿀꺽 마셨다고 합니다. 과연
비눗물이 백발이 되도록 지은 죄악의 때를 씻을 수 있을까요? 절대로 씻을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정결한 예식을 만들어 손을 부지런히
씻는다고 청결한 삶이 될까요? 이것이 비눗물로 죄를 씻으려는 노인과 똑같은 행동인
것입니다.

71. 오늘의 탕자
건망증 환자가 엄청난 보물을 자기 집 장롱에 두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잊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받은 은혜에 대해 그런 태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당신은 교회에 와서는 잃어버렸던 자신의 모습을 찾고서 “아! 내가 고귀한 신분이구나!”하고
느끼다가도 다시 세상에 나가서는 도로 다 잃어버리고 거지처럼 살다가 또 교회에 와서
자기를 확인하는, 목표를 잃은 탕자의 모습으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보물을 찾고 나서 다시 감추어 버리는 목표를 잃은 삶을 살고 있다면 우리는 오늘의 탕자인
것입니다.

72. 한 알의 밀알
미국의 메사추세스 노드햄토 공동묘지에 가보면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무덤과 그 옆에
데이비드를 사랑했으나 일찍 죽었기 때문에 결혼하지 못한 아름다운 여인 제루사
에드워드의 무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를 위한 데이비드의 원대한
소망과 기대는 아무런 결실을 얻지 못한 채 그는 죽어 보잘것없는 무덤 속에 묻히고
말았습니다.
그의 노력과 일의 결과는 지금 거의 남은 것이 없고 그의 헌신적인 선교의 기억과 수십
명의 인디언 신자들이 고작 그가 이루어 놓은 전부가 되고 말았습니다. 진정 그는 한 알의
밀알처럼 썩어져 그의 이름조차도 잊혀가고 그의 사업도 모두 잊혀져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청교도의 성자라고 일컫는 요나단 에드워드가 데이비드를 자기의 아들이라고 부르고
그의 짧은 인생을 조그만 책으로 만들었을때 이 책은 미국 전역에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불러 일으켰고 전도의 불을 붙였습니다.
영국의 캐임브리지 대학의 학생이었던 헨리 마틴도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는 모든
학문의 성취와 천재적인 머리와 그에게 손짓하는 모든 기회를 포기하였습니다. 그가 인디언
탄광촌에서 전도하다가 돌아왔을 때 그의 건강은 심히 악화되었고, 그의 몰골은 거지
형상이었습니다. 그는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흑해 북부의 거친 곳에 가서 거기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 전도하다가 쓰레기더미 아래서 죽어갔습니다.

73. 여행
프랑스 작가 라브니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상 언어 가운데 최후로 두 가지 단어만
남긴다면 사랑과 여행이라는 것이다.
여행에는 우수가 있고, 고독이 있으며, 환희와 감탄이 있습니다. 그 모든 과정들이 우리를
성숙케 합니다. 여행을 하기 위해 우선 있는 그대로를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은 폭넓은 인간성과 도덕정신이 필요합니다. 여행은 만남입니다. 새로운 자연과
새로운 풍물과 역사와 미래와 현재를 만납니다. 그리고 사람을 만나고 하나님을 만납니다.
여행에는 반드시 주제와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주제가 없는 여행은 방황에 불과합니다.

74. 삶의 자세
칼 매닝거는 “소유하고 있는 것보다 삶의 자세가 더 중요하다.”라고 말했습니다. 현대의
가장 큰 문제는 우리 인간의 존엄성을 비하시켜서 하나님께서 주신 가능성과 창의력마저도
무시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뇌의 능력은 브리태니커 대영백과사전을 다
외우고도 40개 외국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으며 수십 개 대학의 필수 과정을 다 마칠 수
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가능성을 열등의식이나, 죄책감이나, 부정적인 의식구조 때문에 불과 10%
내외밖에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75. 성공의 열쇠
캘리포니아 가든 그로브에 가면 로버트 슐러 목사가 담임으로 있는 크리스탈 교회가
있습니다. 그분이 말하는 성공요건은 첫째, 마음속에 꿈을 가지라고 합니다. 모든 성공은
꿈에서 잉태된다고 주장합니다. 다만 위대한 꿈이 있을 뿐이니 잠재력을 부정적 사고로
묶어 버리지 말라고 역설합니다.
둘째, 갈망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몹시 간절히 원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습니다. 욕망이 끊어지는 날까지 실패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셋째, 모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경기장에 나오는 선수들은 각기 승리하겠다는 각오로
나온다고 합니다. 후회는 소용이 없습니다. 오직 실행에 옮기는 것뿐입니다. 시작이 반이기
때문입니다.

76. 삶의 B.C.와 A.C.
사도 바울은 성경에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믈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이전의 삶(B.C.)을 말하는 것이고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는 바로 이 순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순간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삶 속에 들어와 우리들의 삶의 구주와 주님이
되심으로써 변화된 우리들의 삶, 이 새로운 삶이’A.D.’인 것입니다.
77. 누군가 해야 할 일
미국 켐브리지 대학에서 불이 났을 때의 일입니다.
불이 나자 학생들은 모두 불을 끄기 위해 릴레이식으로 줄을 서서 물을 날랐습니다. 추운
날씨였는데 헤어라는 학생이 물 속으로 들어가 물을 퍼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원래 허약하고 건강하지 못한 그를 본 교수가 물었습니다.
“여보게 헤어, 자네는 허약한데 왜 이렇게 힘든 일을 자청하였나?”
헤어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일은 분명 누군가가 해야만 할 일이기에 제가 먼저 맡았을 뿐입니다.

78. 생수를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생수를 마시려면 바위를 깨뜨려야 합니다. 생수는 파야 나옵니다.
헌데 그리스도인의 약점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 쉽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파헤치는 경험 없이 죄 지은 그 모습 그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는 너무나
인간적인 방법을 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파고 또 파헤쳐서 깊은 곳까지 자신을 낮추지
않고서는 은혜의 생수가 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79. 성도의 공동 생활
본 회퍼는 <성도의 공동 생활>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들어줄 귀를 찾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들어줄 귀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이 들어야 할 때에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더 이상 귀를 기울여 듣지 못하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말씀에도 귀를
닫아 버릴 것입니다.
오랫동안 인내로써 이웃의 말을 들을 수 없는 자들은 지금 이웃에게 웅변을 토한다 해도
빗나간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이웃에게 말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비록
그들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해도 말입니다.”

80. 제일 중요한 생각
미국의 유명한 정치가요, 학자인 다니엘 웹스터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한번은
국무 장관으로 있을 때의 일입니다.
뉴욕의 어떤 호텔에서 저명한 사람 약 20명과 저녁을 함께 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서로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웹스터만 가만히 머리를 숙이고 있더랍니다.
그때 옆에 있던 사람이 “웹스터 씨, 일생을 통해서 당신의 마음속에 들어온 생각 가운데
제일 중요한 생각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 보았습니다.
“내가 지금 하는 모든 일을 이 다음에 하늘나라에 가서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생각을 할 때 내 마음이 제일 엄숙해 집니다.”
81. 성자의 단순한 이야기
중세의 한 성자의 이야기가 우리의 신앙을 일깨워 줍니다.
어느 날 아침 나는 새들에게 먹을 것을 주려고 하였습니다. 그 날은 찌푸린 하늘에 몹시
추운 날씨였고, 땅 위에는 하얀 눈이 덮여 있었습니다. 나는 문 밖에 나가 곡식을 한 움큼
쥐어서는 새들에게 뿌리고 새들이 와서 주워 먹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새들은 눈을
멀뚱멀뚱 뜨고 멀리 앉아서 추위와 배고픔에 떨면서도 두려워 가까이 오지 않았습니다.
새들이 날 신뢰할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나는 거기 앉아서 새들을 쳐다보며 기다리는 동안에 차츰 하나님의 마음을 전보다 더
분명히 깨달을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여러 가지를 주시고, 계획을
세우시고, 기다리시며, 우리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뜻과 계획과 사랑과 은혜와 능력과
영광과 기쁨들을 받아들이기를 기다리고 계시다는 것을 말입니다.

82. 내가 아닌 그리스도께서
내가 아닌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존경을 받으시고 사랑을 받으소서
내가 아닌 그리스도께서
보여지고 알려지고 들려지소서
내가 아닌 그리스도께서
모든 생각과 말 속에 계시옵소서
내가 아닌 그리스도께서
겸손하고도 조용한 노력 속에 계시고
내가 아닌 그리스도께서
겸허하고도 성실한 수고 속에 계시옵소서
과장도 아니고 허식도 아니며
오직 그리스도께서만이
버려진 자들을 불러 모으시나이다
그리스도 오직 그리스도께서만이
머지않아 내 꿈을 이루어 주시리라
곧 다가올 풍성한 영광, 완전한 영광을 내가 보리니
그리스도 오직 그리스도께서만이
내 모든 소원을 이루시며
그리스도 오직 그리스도께서만이
나의 전부가 되시리

83. 하나님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
수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당하고 수많이 죄 없는 자유인들이 독일의 수용소(아우슈비츠)에서
죽어가던 그 현장 속에서 유대인들이 눈물을 뿌리면서 외친 질문은 이것입니다.
“하나님 지금 어디 계십니까? 하나님이 왜 이런 사건을 허용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연합군이 이 수용소를 탈환하고 이 수용소의 벽을 감시하다가 한쪽 벽에 씌여진
찬송가의 가사를 보며 깜짝 놀랐습니다. 어느 그리스도인이 그의 신앙의 고백으로 기록해
놓았던 구절이었습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하네.’
하나님의 사랑? 이 저주와 이 지옥 같은 수용소에서 하나님의 사랑이라니 웬 말입니까?
그러나 또 다른 곳에서는 이런 글자가 선명하게 씌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기에 계십니다(God is here).”

84. 주님이 우리를 택하신 목적
주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목적은 어디에 있을까요?
성경에 나타난 선택의 의미는 특권의식이 아닌 사명의식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과실을
맺기 위하여 나무가 존재하는 것이며 나무가 존재하는 보람은 열매에 있습니다. 농부가
무엇보다도 원하는 것은 열매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꽃과 열매에 대한 흥미있는 대조적
교훈을 볼 수 있습니다.
꽃이라는 단어는 성경에 모두 37회 등장합니다. 그러나 열매라는 단어는 자그마치 2백회
이상이나 등장합니다. 또 의미상으로 보아도 꽃은 성경에서 순간적이고 허무한 인생의
일시적 가치만을 비유하고 있음에 반하여 열매는 궁극적이며 영원한 생의 가치를 교훈할 때
쓰여지고 있습니다.

85. 좌절할 때 마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
캘리포니아 말리브에 있는 페퍼다 대학교의 졸업식날이었습니다. 그 날 1백명의 학생들이
학사학위를 받았는데 대학 졸업자의 평균연령이 40세 가까왔습니다.
고령의 졸업자 가운데 67세의 할머니가 있었는데 그는 10명의 자녀와 27명의 손자 손녀를
가진 할머니였습니다. 그 할머니가 학사 학위를 받으려고 단상에 올라가자 한 백발의
노인과 여러 사람들이 앉았던 자리에서 환호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 드디어 해내셨군요. 할머니, 잘하셨어요. 드디어 성공하셨어요.”
졸업식이 끝나고 그 할머니는 자기 목사님을 만나 격정에 못이겨 눈물을 흘리면서 목사님의
손을 꼭 붙잡고 말했습니다.
“목사님, 나에게 만약 믿음을 심어 주지 않았더라면 나의 하나님이 내가 좌절할 때마다
나에게 새 힘을 주시지 않았더라면, 나는 시작하자마자 포기했을 것입니다.”

86. 인간의 이상형
신학자 리처드 니버는 인간의 이상형으로 예수를 본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누구나가 닮고
따라야 할 인생의 정도가 곧 예수라는 것입니다. 또 그분의 전생에 속에서 두 가지를
본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신을 향한 절대 신앙이며, 또 하나는 인간을 향한 절대
사랑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인간을 사랑하면서 사는 길이 정도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겸허해지는 것입니다.

87.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
믿음은 靜이 아닌 動입니다. 퇴보가 아닌 전진입니다. 바라는 실상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산 믿음인 것입니다. 믿음은 철저한 자기 부정입니다. 자신을 철저하게 부정하지
않은 이상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자기를 죽이고 자기 부족을
인정하고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을 때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거룩하심이 시인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신뢰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의심없이 믿는 것입니다.

88. 예수 ‘한 고독한 생애’
그는 한 시골의 여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이 곳에서 그는 30세가 될 때까지 목공수의
목수로 일했습니다. 그후 3년 동안 그는 떠돌이 설교자였습니다.
그는 한 권의 책도 쓰지 않았고, 그는 관직을 취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가정을 떠나서
가정을 소유한 일도 없습니다. 그는 큰 도시에 나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그가 태어난 곳으로부터 2백 마일 이상을 여행한 적도 없습니다. 그는 일반적으로
위대하다고 할 만한 그 어떤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신임장이 없었고 단지 그 자신
홀로였습니다.

89. 사랑의 징계
어느날 유명한 부흥사인 무디에게 어떤 여자 교인 한 사람이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아무리 범죄해도 하나님은 저를 그대로 놔두시데요. 그러므로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
분이신 것이 분명해요.”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무디는 부인을 지그시 바라보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부인! 부인은 지금 부인이 스스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왜요? 제가 교회를 얼마나 오래 출석했는데요” 라고 부인이 반문하자 무디는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은 당신을 그대로 놔두지 않았을 것이요.”
그렇습니다. 징계는 자녀에게만 있는 것입니다.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는 자녀의 잘못을 그대로 방관할 수 없어서
사랑하는 자녀를 향해서 사랑의 채찍과 매를 듭니다. 그처럼 우리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그대로 방관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징계가 올 때,
그것이 해석되고 징계로 확신될 때 하나님을 원망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90. 잃은 것과 가진 것
“우리 생애 최고의 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2차대전중 헤롤드 럿셀이라는 공수부대원이
전투에 나갔다가 포탄에 맞아 두 팔을 잃어 불구자가 됩니다. 그는 참혹한 좌절에
빠집니다. “나는 이제 쓸모 없는 하나의 고깃덩어리가 되었구나.” 그런 가운데 그에게 차츰
진리의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잃은 것보다 가진 것이 더 많다고 자각하게 된
것입니다. 의사가 그에게 의수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것으로 글을 쓰고 타이프도 치기
시작합니다. 그의 이야기는 영화화되어 직접 불구자의 모습으로 출연하게 됩니다. 그는
정성을 다해 연기를 합니다. 그 해 그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주연상을 탑니다. 그 상금은
상이용사를 위해 기부합니다. 어떤 기자가 찾아와 물었습니다. “당신의 신체적인 조건이
당신을 절망케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그는 결연히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나의
육체적인 장애는 나에게 도리어 가장 큰 축복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잃어버린
것을 계산할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남은 것을 사용할 때
잃은 것의 열 배를 보상받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에만 눈을 돌릴 때 그곳에는 오직
절망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불가능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잃은 것을 넘어 가진 것을
세어 보면 더 많은 가능성이 언제나 기다리고 있습니다.

91. 부모 된 자의 기쁨처럼
언젠가 선교를 열심히 하는 젊은 청년들의 어떤 모임에서 어떤 사람이 점심식사를 잘 내고
식후에 과일까지 좋은 것으로 내놓았습니다. 그러자 그중에 한 젊은 청년이 이렇게 저에게
반문했습니다. “목사님! 우리는 고기를 먹지 않아도 죽지는 않지 않습니까? 고기 먹지 말고
그 돈을 아끼고, 이 과일 먹지 말고 그 돈도 아껴서 선교해야지, 먹고 마시는 데에 다 쓰면
언제 선교합니까?” 이렇게 한 청년이 눈을 부릅뜨고 도전해 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답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늘 고기를 주시고 이 과일을 주시는 것은, 이것 없어도 하나님께서
선교를 충분히 하실 수 있으시며 우리가 어떤 기특한 마음을 가진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서 우리에게 지금 주신 상급이니까 감사함으로 먹으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자녀에게 갖는 가장 큰 기대는 자녀가 훌륭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녀가 훌륭하게 된
것이 기쁜 것만큼 자녀에게 좋은 옷을 입히고 좋은 것을 먹이면서 기뻐하는 것을 보는 것도
부모된 자가 누리는 기쁨 중의 큰 기쁨입니다. 먹고 마시는 것이 복의 전부라거나, 복의
첫번째, 두번째의 조건이라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으로도
우리를 기쁘게 해주십니다. 오늘 나에게 좋은 것을 주시면 감사하겠지만 좋은 것을 주지
않으신다 해도 그것이 우리가 받을 복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그래도 우리는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더 깊은 신앙으로 가는 길, 박영선

92. 갚을 수 없는 빚
오래 전 미국의 보스턴 시에 스트로사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큰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꿈을 이루는 데 필요한 돈이 없어서, 거부인 바턴 씨를 찾아가서 2천불을 꾸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자기에게 담보는 없지만 일에 대한 꿈과 용기가 있으니 믿고 대여해
주시면 그 은혜는 잊지 않겠노라고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바턴 씨의 주위 사람들은 경력도
없는 그에게 담보나 후원자도 없이 돈을 꾸어 주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바턴 씨는 웬지 그 청년의 용기가 마음에 들어 모험을 걸고 2천불을 주었습니다.
과연 스트로사는 얼마 되지 않아 그 돈을 갚았습니다. 이 일이 있은 지 10년이 지났습니다.
당시 미국에는 대 경제공황이 일어나 바턴 씨는 완전히 파산이 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소문으로 이 사실을 알게 된 스트로사는 바턴 씨를 찾아가 당신이 빚진 돈 7만 5천불을
내가 대신 갚아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바턴 씨는 깜짝 놀라 “자네가 가져 갔던 돈은 이미
갚았는데 무슨 소리요?” 하고 의아해 했습니다. 이에 대한 스트로사의 대답은 멋진
것이었습니다. “분명히 빚진 돈 2천불은 옛날에 갚았지만 당신이 베풀어 준 은덕은 평생
갚지를 못합니다. 그때에 2천불로 장사를 해서 오늘 이렇게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돈으로 갚아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신 나간 사람입니다. 은덕과 사랑은 영원히 갚을 수
없는 빚입니다.”

93. 감사 주일의 유래
청교도들이 메이 플라워 호를 타고 미국에 도착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중 반 이상이
굶어 죽고 병들어 죽었습니다. 게다가 남아 있는 사람들마저 해마다 겹치는 흉년으로
고통을 당했습니다. 도무지 밝은 전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금식
기도를 선포하고 경건한 이 신앙인들이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하나님, 이 상황을 돌보아
주십시오.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이렇게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를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땐가 또 한번 대단히 어려운 형편에 놓이게 되자 그들은 다시
금식 기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금식 기도를 놓고 의논하는 자리에서 어떤 농부 한 사람이 이렇게 제의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금식하면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달리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비록 종사가 흉년이 들고 형제자매들이 병으로 쓰러지는 어려움을
겪지만 이 가운데서도 우리가 감사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식량이 풍족치 않고 여건이
유럽보다 편안하지는 않지만 신앙의 자유가 있고 정치적인 자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앞에는 광대한 대지가 열려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금식 대신에 감사 기간을 정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농부의 그 말은 참석한 사람들에게 깊은 감화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금식 기도 주간을 선포하는 대신 감사 주간을 선포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한 것이 감사주일의 기본 동기인 것입니다.
고통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손길, 옥한흠

94. 겸손의 일상 생활화
우리의 겸손한 마음과 온유한 심정은 사람과의 관계나 서로 대하는 태도에서 나타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겸손을 이웃에게 나타내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겸손이란
가치없는 것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위에서 본 모든 말씀에 비추어서 우리의 일상생활을
통해 겸손을 배우자. 겸손한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동하기를 힘쓴다.
즉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여 서로 종이되며 각각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며 서로
순복하라”고 하신 말씀 그대로의 생활이다. 지혜에 있어서나 재능에 있어서나, 혹은 받은 바
신령한 은혜에 있어서 우리가 어떻게 우리보다 훨씬 뒤떨어지는 사람을 낫게 여길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그 질문은 마음속의 참겸손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하나님의 광명한 빛 가운데 자신은 진실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하나님만이 우리의 모든 것이 되게 하기 위하여 자신을 완전히 죽일 때까지 나타나는 것이
겸손이다. 이러한 사람은 오직 “오, 주여 당신을 찾으려고 나는 나 자신을 버렸사오니 나로
하여금 나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케 마옵소서”라고 할 것이다. 이렇게 되고서야 비로서
자기 중심의 모든 생각을 끊어 버리고 모든 사람앞에서 자기를 낮추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게 되고 , 또 자기를 위해서 구하지 않고 오직 자기를 하나님의 종으로 또는
모든 사람의 종으로 생각하게 된다.
어떤 신실한 종은 주인보다 더 지혜로울런지 모른다. 그러나 신실한 종이라면 역시
종으로서 마땅한 정신과 태도를 가져야 한다. 참으로 겸손한 사람은 가장 연약하고 가장 볼
것 없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오히려 우러러보며 그들을 존경하고 섬긴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던 그리스도의 정신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가장 작은 자 즉 다시 말하면, 피차의 종이
되는 것을 만족케 한다.
겸손한 사람에게는 시기와 질투란 없다. 겸손한 사람은 자기 앞에서 다른 사람들이 섬김과
존경 받음을 볼 때는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한다. 다른 사람은 칭찬을 받고 자기는 오히려
천대받고 무시당해도 참을 수 있다. 이는 그가 마치 바울 사도와 같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 그 정신을 배웠기 때문이다. 과연 이러한 사람은 마치 예수님께서 자기의
기쁨을 위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존귀를 구하지 않으신 그 마음을 받아들인 것이다.
동료들의 실수와 죄를 보고 날카로운 말로 책망하고픈 유혹을 받을 때에도 겸손한 사람은
“서로 참으며 서로 용서 하기를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용서해 주신 것같이 하라”고 여러 번
말씀하신 이 교훈을 마음에 새기고 생활에 임할 것이다. 그러한 사람은 주 예수를
옷입어야만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안다.
앤드류 머레이

95. 개는 개일 뿐입니다.
갑술년, 개의 해, 수 많은 견공들이 신문이나 TV에 버젓이 출연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진돗개 한 마리가 대구에서 고향집까지 찾아가 화제가 됐던 적도 있습니다.
연예인들과 함께 출연하여 재롱을 부리는 개, 사업가 모모씨 집에서 귀부인 못지 않게
대접을 받으며 살고 있는 개, 드라마나 퀴즈프로에 나와 사람 보다 뛰어난(?) 용모를
자랑하는 개…
개의 해이니 만큼 개를 강조하고 개의 특성을 알리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를 여러 마리 씩이나 데리고 나와 전국의 시청자가 보는 앞에서 마구 끌어안고
쓰다듬고 뽀뽀까지 하는 장면은 지나쳐도 한참이나 지나치다는 생각입니다. 아직 우리
주변에는 어려운 이웃들이 많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도 여럿입니다. 아프리카나
방글라데시같은 데서는 하루 한끼를 못먹어 굶어죽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개는 개고 사람은 사람입니다. 아무리 충성심이 많고 아무리 귀여워도 사람이 다스리도록
지음 받은 가축에 불과할 뿐입니다.
개 미용실이 성행하고 개 먹이가 고급화되고 개 한 마리 값이 수백만원이나 된다는
기사내용보다 불우한 이웃돕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동참하고 있는가를 보도해야 하는
기자정신이 아쉽기도 합니다.
개는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동물입니다. 개와 인간의 역사는 오래되었고 다양합니다.
감동실화도 있고 감격적 사건도 많습니다.
그러나 개는 개이고 사람은 사람입니다. 우선 순위는 분명 사람이 먼저임을 잊지 맙시다.
낮은 울타리

96. 성 어거스틴의 말 중에서
사탄이 내게 오는 것을 환영한다. 내 믿음을 위해 나는 악마와의 대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사탄을 마음속에 계시는 그리스도에게 소개한다. 그러면 그리스도는
사탄에게 말씀하신다. “사탄아 어거스틴의 문을 두드리는 것은 좋다. 그러나 너와 싸울
상대는 나 예수이다 ” 라고 하시며 못자국이 있는 손을 내밀어 보이신다.

97. 바꿔 쓴 고린도전서 13장
내가 다른 나라 말을 완전히 익히고 그 나라 사람처럼 얘기할 수 있어도,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익히지 못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졸업증서와 학위증을 받고
모든 현대적 기술을 배웠다 하더라도, 주님의 사려 깊은 사랑을 받지 못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과 당당히 싸워 이기고 그들을 조롱할 수 있어도,
주님의 호소하는 목소리를 듣지 못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강한 신념과 위대한
이상, 그리고 거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땀흘리고 피 흘리고 울며 기도하고
애원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갖지 못했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요, 다른 이웃에게 옷과 돈을
준다고 하더라도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품지 못한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 내가
모든 계획을 포기하고 집과 친구를 떠나 전도 사업에 몸을 바친다 하더라도, 하루하루
번거로움과 전도 사업에 대한 경멸을 참지 못하여 참을성 없고 이기적인 인간이 되어
버려서, 일상생활의 권리와 여가, 사소한 계획을 포기할 만한 사랑을 갖지 못한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요, 그러면 내게서 미덕이 사라지는 것이라. 내가 모든 아픔과 질병을
치료한다고 하더라도, 친절한 주님의 사랑에 굶주려 상처받은 마음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어떤 기사를 쓰거나 책을 출판해서 갈채를 받는다고 해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뜻을 그의 사랑의 말로 전달할 수 없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
신앙 다이제스트

98. 재난을 통한 축복
배가 좌초되었다. 생존자는 단 한 사람뿐이었다. 그 사람은 파도에 밀려 인적없는 작은
섬에 당도했다. 궁지에 빠져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열심히 외쳤고 다른 배가 보이지 않을까
하고 날마다 지켜보았다. 어설픈 오두막을 하나 지어서 좌초된 배에서 건진 물건을 몇가지
들여다 놓았다.
어느날 먹을 것을 찾아다니다가 오두막이 불에 타서 연기가 나는 것을 보고 슬퍼서 어쩔줄
몰랐다. 오두막이 금새 재로 변했다.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기도에 대한 응답이 왔다! 다음날 일찍 배 한 척이 다가왔다. 섬에 고립되었던
사람은 어떻게 자기를 구하러 왔는가 하고 물었다. 선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는 당신이 낸 연기를 보았읍니다.”

99. 성령 충만
우리가 매일 수염을 깎아야 하듯 그 마음도 매일 다듬지 않으면 안된다. 한번 소제했다고
언제까지나 방안이 깨끗한 것은 아니다.
우리의 마음도 한번 반성하고 좋은 뜻을 가졌다고 해서 그것이 늘 우리 맘에 있는 것은
아니다. 어제 먹은 뜻을 오늘 새롭게 하지 않으면 그것은 곧 우리를 떠나고 만다.
마르틴 루터

100. 우리 역시 마찬가지
인간들의 사랑 속에는 언제나 사심이 있습니다. 인간들의 마음속에는 순수한 하얀 것,
순수한 까만 것, 순수 악과 순수 선이 사실 거의 없다시피 한 것입니다. 남을 사랑한다
하면서도 나의 행복을 구한다 든지, 그 사람에게서 존경과 사랑을 구합니다. 사랑을
주고받음에 있어서 우리는 무서운 착취를 하게 됩니다. 사랑과 애정과 인기와 존경을
수입하고 그 사람과 상하 관계를 만들어 버리거나 주종 관계를 만듭니다. 예를 들면 백원의
사랑을 주고는 자기 장부에는 받을 것을 천원이라 적어 놓습니다. 무의식중에 그렇게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조그만 사랑을 베푼 후에는 그 사람을 자기의 정신적 노예로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사람에게 짐지우고 또 그것이 세상에
선전되기를 바라며 그 보답이 어디선가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계산을 하고 타산을
합니다. 순수하고 사심 없이 사랑하기란 인간으로서는 참으로 힘든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마도 하나님께 무슨 척도가 있어서 인간의 사랑을 시금석으로 분석해 보면 역사에 알려진
위대한 영웅적인 사랑의 행동에도 불순한 것이 30퍼센트, 어떤 것은 40퍼센트,어떤 것은
90퍼센트, 혹 어떤 것은 세상의 선전 효과를 노린 것도 있을 것입니다. 이기심이 사라지고
있었던 것 외에도 여러 가지 것이 있을 줄로 생각됩니다. 위선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불완전하지만 우리는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심 없이 사랑했습니다.
순수했습니다. 제자들에게 받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영원한 사랑의
부채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김준곤

예화
(우리 시대의 동화 =최 명길 엮음. [유익과 무익까지]콘라드 아데나워부터)
30분 늦어진 독립
어느 날 간디가 개최한 회의에 일부 의원들이 늦어 회의가 예정보다 30분 늦게 개최되었다. 그러자 간디는 개회를 선포하기 전에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몇 사람의 게으름으로 인해서 우리 인도의 독립이 30분 늦어 졌소.”

예수와 가룟 유다의 모델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불후의 명작인 [최후의 만찬]을 제작하면서 많은 고심을 했다. [최후의 만찬]에 나오는 예수와 가룟 유다의 모델을 어디에서 구할 것인가?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예수의 모델로 피에트로 반디네리라는 한 성가대원을 발견해 작품을 시작했다. 피에트로는 예수의 모델이 된 후, 로마로 음악 공부를 하러 가서 나쁜 친구의 꼬임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됐다.
한편 예수의 모델을 구해 큰 성과를 보았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마지막 단계에 들어 장벽에 부딪쳤다. 예수를 배반한 가룟 유다의 얼굴을 좀처럼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다 빈치는 마침내 유다의 얼굴을 발견했다. 그런데 그 모델은 다름아닌 예수의 모델이 되었던 피에트로였다. 같은 인간이면서도 어떤 생을 사느냐에 따라 예수도 되고 유다도 될 수 있는 것이다.

분노의 침전물
정신의학자 엘미게이쓰는 감정 분석 실험에서 매우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사람의 숨결이라는 것은 눈으로 보이지 않지만 시험관에 넣고 액체 공기로 냉각하면 침전물이 생긴다.’
이 침전물은 감정 변화에 따라 여러가지 색으로 변하는데, 화를 내고 있으면 밤색으로 변하고 고통이나 슬픔의 상태에서는 회색,
후회의 상태에서는 복숭아 색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이 중 밤색으로 변한 분노의 침전물을 수집해서 흰 쥐에게 주사하면 수 분내에 죽는다고 한다.
이 실험을 통해 정신 의학자가 얻은 놀라운 결론은, 화를 낼 때 사람 몸에는 독소가 생기며 이 독소는 의학적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무서운 독력을 지닌 독소로서 만약 한사람이 한 시간을 계속해서 화를 내면 80명을 죽일 수 있는 독소가 나온다는 것이다.

유익과 무익[탈무드]
어느 부자가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이상하단 말일세. 내가 죽으면 내 재산을 모두 자선 단체에 기부하겠다고 유언을 해 두었는데도 사람들은 왜 나를 구두쇠라고 비난하는 걸까?”
친구가 말했습니다.
“내가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를 잘 듣게나. 어느 날 돼지가 암소에게 자신은 왜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는지 모르겠다고 불평을 털어 놓았다네. 사람들은 항상 암소의 부드럽고 온순함을 칭찬하지. 물론 너는 사람들에게 우유와 크림을 제공하지만 … 하지만 난 사람들에게 너 보다도 더 많은 것을 제공해. 베이컨과 햄, 심지어는 발까지도. 암소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렇게 말했다네. 글쎄 그건 아마 내가 죽은 뒤 보다는 살아 있을 때 유익한 것을 제공하기 때문이 아닐까?”
콘라드 아데나워
1932년 2월 쾰른 시 방문을 위해 공항에 도착한 히틀러는 당연히 환영 인파로 북적댈 줄 알았던 넓디넓은 활주로가 텅 비어 있어 당황했다.
환영 인파가 동원되지 않았던 이유는 당시 시장으로 있던 아데나워가 다음과 같은 이유로 히틀러의 공항 환영을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히틀러는 수상으로서가 아니라 나치당의 선거 유세를 위해 일개 연설자로서 쾰른 시에 오는 것이다. 그러니 쾰른 시를 책임지고 있는 시장인 내가 그를 공식적으로 환대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히틀러는 하는 수 없이 쾰른 시 방문을 즉각 취소하고 대단한 환영이 예정된 바로 옆의 도시로 날아갔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인해서 아데나워 시장은 12년간의 추방 생활을 감내해야 했다.
독일의 패전 후, 서독의 수상이 되어 히틀러의 죄악을 씻고 ‘라인강의 기적’을 이뤄낸 장본인이 다름아닌 쾰른 시의 시장이었던 콘라드 아데나워였다.

노인[ 개미. =베르나르 베르베르. 열린 책들.]
아프리카에서는 갓난아이의 죽음보다 노인의 죽음을 더 슬퍼한다. 노인은 많은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부족의 나머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갓난아이는 세상을 경험해 보지 않아서 자기의 죽음조차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럽에서는 갓난아이의 죽음을 슬퍼한다. 살았더라면 아주 훌륭한 일을 해 낼 수 있었을 아이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그에 비해 노인의 죽음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어쨌든 노인은 살 만큼 살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500여 년전 세계 미술의 중심지였던 이탈리아의 플로렌스 지방에 한 소년이 미술을 공부하러 왔습니다.
그 소년은 오려서 부터 그림에 대해 남달리 뛰어난 제주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소년을 본 사람들은 누구나 플로렌스 제일의 화가가 될 것이라고 말하곤 하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청년이 된 소년은 어느 성당의 제단 그림을 그리게 되었습니다.그러나 그는 그림을 완성하려고는 않고 그저 산이나 바다를 돌아다니며 열심히 스케치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의 노트는 이상한 그림들로 가득 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여러 생활하는 모습 뿐만 아니라 근육과 뼈의 생김새, 새가 날거나 앉는 모습, 그 밖의 여러 모양새들을 수백 장씩 그렸습니다.
사람들의 실망은 대단했습니다.
“저 사람은 결국 아무것도 그리지 못할 거야. 왜 저런 사람에게 교회 그림을 맡겼지?” 하며 빈정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릴 대상의 본질을 알 때 까지 절대로 그림을 그리지 않았던 것인데, 이런 그의 참마음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가 스케치한 그림 가운데는 오늘날의 비행기나 자동차 같은 것도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였습니다.

미켈란젤로가 그림을 그리듯
자기의 생업이 무엇이든 간에 그 일을 아주 잘 해 내야 한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자기보다 그 일을 더 잘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자기의 직업이 거리를 청소하는 일이라면 미켈란젤로가 그림을 그리듯, 셰익스피어가 글을 쓰듯, 베토벤이 작곡을 하듯 거리를 쓸어라.
그리하여 하늘의 천사들과 땅 위의 사람들이 거리를 지나가다 이렇게 말하도록.
“여기 위대한 거리 청소원이 살다 갔구나. 그는 자기 일을 정말 잘 했구나.”

비발디의 선율
세계적인 작곡자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인 비발디가 스트라디바리우스로 연주를 하는 날이었습니다.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세상에서 최고라고 알려진 바이올린이었기에 콘서트 홀은 초만원을 이루었습니다.
이윽고 연주가 시작되었고, 청중들은 비발디의 선율에 빠져 들었습니다.
청중들은 ‘역시 악기가 좋으니까 저렇게 멋진 소리가 나는구나!’라며 감탄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비발디가 연주를 멈추고 바이올린을 높이 쳐들더니 바닥에 내리 쳤습니다. 산산이 부서진 바이올린.
청중들은 모두 놀라 소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 때 사회자의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저것은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아닙니다. 싸구려 바이올린입니다. 비발디 선생이 바이올린을 깨뜨린 이유는, 참된 음악이란 악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에게 분명히 보여 드리고자 해서입니다.”

두 개의 다른 텔렉스 [운명아 비켜라 내가 간다. =문 정희. 동화 출판사]
두 사람의 세일즈맨이 아프리카로 출장을 갔다. 그들은 다름 아닌 신발을 그 곳에 수출하기 위해서 간 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가서 보니 기가 딱 막히는 일이 있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모두가 신발을 신지 않고 그냥 맨 발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할 수없이 두 사람은 한 동안 그 곳을 답사해 본 후에 각 본사로 다음과 같은 텔렉스를 보냈다. 한 사람의 텔렉스 내용은 당연히 이렇게 찍혀 있었다.
“신발 수출 불가능. 가능선 0%. 전원 맨발임.” 이라고 한 것이 그것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조금도 틀림이 없는 실상 그대로의 보고 내용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사람의 텔렉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황금 시장. 가능성 100%. 전원 맨 발임.”
참으로 기막힌 시각의 차이라고나 할까.

디즈레일리와 그의 하녀[숭어. = 김 정빈 엮음. 동쪽 나라]
영국 수상 디즈 레일리가 젊었을 때 하녀 한 명을 구하고 있던 차에 추천을 받은 여자가 한 사람 들어왔다. 디즈레일리는 그 여자에게 물어 보았다.
“당신이 만약 스무 장의 접시를 포개 들고 이 방을 나가다가 문턱에 발이 걸렸다고 합시다. 그런 경우 어떻게 하겠소?”그 여자는 자신있게 대답했다.
“그런 정도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저는 그 순간 턱으로 접시를 단단히 누르고, 얼른 무릎을 꿇겠습니다. 또 그것이 여의치 않아 넘어진다고 해도 몸을 굴려 접시를 한 장도 깨지 않을 것입니다.”
두번째 여자가 왔다. 같은 질문에 그 여자는 다만 이렇게 간단히 대답하였다.
“아직까지 그런 일을 겪어 보지 못해서 뭐라고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다만, 발이 문턱 같은 데 걸리지 않도록 미리 조심하겠습니다.”
디즈레일리는 그 두번째 여자를 채용했다. 그리고 나중에 그 하녀와 결혼했다. 이리하여 일약 하녀에서 영국 총리가 된 그녀는 나중에 이런 일화를 남겼다.
어느 날 그녀는 남편과 함께 마차를 타고 의사당으로 가고 있었다. 그 동안 남편은 국회에서 할 연설문을 손질하는데 여념이 없었는데, 사실은 마차 문이 잘못 닫히면서 부인의 손가락 하나가 문에 끼여진 상태였다.
부인은 남편의 일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마차가 국회에 도착할 때 까지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마침내 마차가 도착하고 나서 보니 부인의 손가락은 새까맣게 멍이 든 채 였다.
디즈레일리 같은 명재상의 뒤에는 또 그만한 부인이 있었던 것이다.

집념의 힘
마가렛 미첼은 다리 부상으로 인해 기자 생활을 그만 두고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7년 동안 한 편의 소설을 완성시켰다.그러나 무명 작가의 작품을 받아 주겠다는 출판사는 한군데도 없어 그녀는 3년 동안이나 출판사로부터 외면을 당했다.
그러던 중 그녀는 막 출장 길에 오르려던 맥 밀린 출판사의 레이슨 편집장에게 소설을 읽어 달라고 간청했다. 미첼의 원고를 정거장에서 마지못해 받아들긴 했지만 레이슨 편집장 역시 무명 작가의 원고에 흥미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는 출장 중에 미첼로부터 소설을 읽어달라는 간절한 내용의 전보를 세 통이나 받았다.
두번째의 전보를 받았을 때까지도 원고를 읽지 않았지만 결국 그는 작가의 집념에 가까운 청을 거절할 수 돌아오는 길에 그녀의 소설을 읽었다.
그리고 그는 기차가 도착역에 이르는 것도 모를 정도로 소설에 푹 빠져 버렸고 즉시 미첼의 소설을 출판하였다.
마가렛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이렇게 해서 세상 빛을 보게 되었다.

끈기있는 젊은이[짧은 얘기 긴 생각 그리고 시. 김 형모 엮음. 쪽지]
한 청년이 다음과 같은 광고를 보았다.
“모집:임시로 회계사를 고용함. P.O.BOX 1720”
그는 그 광고를 보자마자 즉시 서류를 갖추어 신청하였다.
그러나 아무런 회답도 없었다.
세번째까지도 회답이 없자 그는 우체국을 찾아가 P.O.BOX 1720의 수신인이 누구냐고 물어 보았다. 그러나 직원은 그 수신인의 이름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는 우체국장을 찾아가서 부탁을 했으나 그도 거절했다. 마침내 그 청년은 한가지 방법을 생각해 내었다. 새벽에 일어난 그는 곧장 우체국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P.O.BOX 1720 근처에서 망을 보았다. 얼마 후 한사람이 나타나더니 우편물을 꺼냈다. 그 청년은 그 사람을 미행하였다. 그가 도착한 곳은 한 증권 회사 사무실이었다. 그 젊은이는 사장에게 임시 회계사 모집 광고를 보고 신청서를 냈는데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으며 찾아가서 그 BOX의 수신인을 물어 보았지만 거절당했다는 말을 했다. 그러자 그 사장이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내가 그 광고를 낸 사람임을 알게 되었죠??” “저는 여러 시간을 우체국 복도에 서서 1720 BOX를 지켜 보았습니다. 그런데 몇 시간이 지나서야 한사람이 들어와서 그 박스의 우편물을 가져 가더군요. 저는 그 사람 뒤를 몰래 따라와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그 사장은 말했다.
“젊은이, 자네야말로 내가 바라던 끈기있는 사람일세. 자네를 고용하겠네.”

서머셋 모옴의 지혜
소설가 서머셋 모옴(달과 6펜스)이 무명 시절, 한 권의 책을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출판사에서는 무명 작가의 소설 작품을 위해 많은 비용이 드는 광고를 해 줄 리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나의 소설 작품을 알릴 수 있을까?’ 몇날 며칠을 생각하던 끝에 모옴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 올렸습니다. 모옴은 곧장 신문사로 달려 갔습니다. 그리고 광고 담당 기자에게 다음과 같은 광고 카피를 건네 주었습니다.
– 마음씨 착하고 아름다운 여성을 찾습니다. 나는 스포츠와 음악을 좋아하고, 성격이 비교적 온화한 젊은이입니다. 내가 바라는 여성은 모든 점에서 최근 서머셋 모옴이 쓴 소설의 주인공과 닮은 분입니다. 착한 마음, 지혜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바로 그런 여성이지요. 자신이 그 주인공과 닮았다고 생각되시는 여성분이 있다면 즉시 연락해 주십시오. 꼭 그러한 여성과 결혼하고 싶습니다. –
모옴이 의뢰한 광고가 신문이 나오자 마자 그의 작품은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습니다. 광고가 실린 지 채 1주일도 못되어 그이 소설책은 어느 서점에 가도 구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모옴은 차츰차츰 유명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디오게네스의 침
그리이스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느끼고 생각한 것을 그대로 행동에 옮기는 사람이었다. 그는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고 그야말로 거지와 같은 생활을 했다.
어느 날 그 동네의 벼락 부자가 디오게네스의 명성을 듣고 그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벼락부자의 집은 졸부답게 입구에서부터 온통 값비싼 대리석과 금으로 번쩍거렸다. 벼락부자는 디오게네스에게 말할 기회를 단 1분도 주지 않고 집안 자랑을 늘어 놓았다.
그런데 갑자기 디오게네스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퉤! 하고 벼락 부자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명성이 자자한 철학자의 이 어이없는 행동에 놀라 당황해 하는 부자에게 디오게네스는 말했다. “그대의 집과 정원은 정말로 훌륭하네. 이렇게 아름답고 깨끗한 집에서 내가 침을 뱉을 곳이란 자네 얼굴 밖에 없네. 거만과 탐욕으로 가득찬 자네의 얼굴이 곧 쓰레기 통이니까?…”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어린 왕자. 생 떽쥐베리]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새로 사귄 친구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어른들은 가장 중요한 말은 묻지도 않는다. “그 애 목소리는 어떠니? 어떤 놀이를 가장 좋아하지? 나비 채집도 하니?” 대신 어른들은 “그 애는 몇 살이지? 체중은 얼마나 나가니? 그 애 아버지는 돈을 잘 버시니?”라고 물어댄다. 어른들은 이런 숫자들로만 그 애가 어떤지 다 안 것 처럼 생각한다. 어른들에게 “장미빛 벽돌로 지어졌고, 창문에는 제라늄 꽃이 피었으며, 지붕에는 비둘기들이 앉아 있는 아름다움 집을 보았다” 라고 말하면 그들은 그런 집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그들에게 “2만 달러짜리 집을 보았다.”고 말하면 그들은 “정말 굉장한 집이구나!”라고 감탄할 것이다.

도마뱀의 우정[숭어. 김 정빈 엮음. 동쪽 나라]
일본 도쿄에서 올림픽이 열리게 되어 스타디움 확장을 위하여 지은 지 3년 되는 집을 헐게 되었다. 인부들은 지붕을 벗기려다가 꼬리 쪽에 못이 박힌 채 병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도마뱀 한 마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집주인을 불러 그 못을 언제 박았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집을 짓던 3년전에 박은 것이 분명하다고 대답했다. 3년 동안이나 못이 몸에 박힌 채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고 모두들 혀를 내둘렀다. 사람들은 신기한 사실의 까닭을 알기 위해서 공사를 잠시 중단하고 도마뱀을 지켜 보기로 하였다. 그랬더니 다른 도마뱀 한마리가 먹이를 물어다 주는 것이었다. 그 도마뱀은 하루에도 몇번 씩이나 못에 박힌 친구를 위해 먹이를 가져다 주기를 3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을 계속하였던 것이다.

최상의 약
남아프리카의 고아원에서 많은 어린 아이들이 원인 모를 병으로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유엔에서 급파된 의사들이 원인 분석에 들어가 다음과 같은 처방을 내렸습니다. ‘깨어 있을 때 10분간 안아 주고 키스해 주고 귀여워 해 줄 것’
처방대로 아이들을 대하자 아이들은 원기를 회복했고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청어 잡이
북해에서 청어잡이를 하는 영국의 어부들은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하면 북해에서 잡은 청어를 런던까지 산 채로 운반할 수 있을까…
런던에 도착하면 청어는 거의 다 죽어서 번번이 제 값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한 어부만은 청어를 산 채로 가져 와서 큰 재미를 보았다.
동료들이 신기해서 그 비법을 물어 보았다. 한참을 뻗대던 그 어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비결? 비결이랄 것 까지야 있나. 난 그저 청어가 들어 있는 통에 청어를 잡아 먹는 물고기 한 마리를 집어 넣었지. 그렇게 하면, 몇 마리는 잡혀 먹히지만 다른 수 백마리의 청어는 잡혀 먹히지 않으려고 계속 도망을 다니거든.아, 그러니 그놈들이 런던에 도착해서도 싱싱하지 않고 배길 수 있나.”
지극한 보살핌
미국의 유명한 교육 학자가 시골에 있는 어느 학교를 방문했다.
그는 수업 중인 1학년 교실에 들어가서 “선생님, 지금 수업을 받고 있는 학생들 중 노란 옷을 입은 소녀와 저기 저 소년은 뛰어난 머리를 가진 천재입니다. 그러니 깊은 관심과 애정으로 보살펴 주신다면 반드시 위대한 인물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교사는 이 유명한 교육학자의 말을 받들어 지극정성으로 그 두 아이를 보살폈습니다. 그 결과 두 아이는 졸업할 때 가장 좋은 성적을 거뒀습니다. 그의 예언이 적중한 것에 감동한 교사는 교육학자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교육학자는 다음과 같은 글을 교사에게 보냈습니다. “존경하는 선생님, 사실 그 두 아이는 제가 전혀 모르는 학생들입니다. 저는 다만 눈에 띄는 아이 두 명을 골라 선생님에게 부탁했을 뿐입니다. 이로써 전 결론적으로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즉, 선생님의 지극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게 된 아이들은 자신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무한히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화씨 56도의 냉동 화차
소련 철도국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이 실수로 냉동 화차 속에 갇히고 말았다. 아무리 빠져 나가려고 해도 나갈 수가 없었다. 소리를 질러도, 문을 힘껏 두드려 보아도 모두 헛일이었다. 이제 희망이란 누군가 우연히 냉동 화차의 문을 열어 주는 것 뿐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사람은 희망을 버리고 자포자기의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드디어 몸이 저려 오기 시작했다. 그는 다가오는 죽음을 앞두고 자기의 상태를 화차의 벽에다 기록해 나갔다.
‘몸이 점점 차가와 진다…..춥다. 그러나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몸이 얼어옴을 느낀다……나는 몽롱해 진다….아마도 이것이 마지막일런지도 모른다….제발…’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다른 직원이 화차의 문을 열었을 때 그는 이미 싸늘하게 식은 시체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냉동 화차는 오래 전부터 고장이 나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냉동 화차의 실내 온도는 화씨56도(섭씨13도)에 불과했으며 실내 공기도 충분했다고 한다.

쓰러진 거목[샘터. 표지글]
미국 콜로라도 주 롱 파크의 경사진 곳에 쓰러진 거목의 잔해가 있습니다. 식물학자는 이 나무의 나이가 400년이라고 말했습니다. 콜럼버스가 미국 대륙을 발견 했을 때 이 나무는 작은 떡잎이었습니다. 그리도 영국의 청교도들이 이 곳에 정주했을 때 이 나무는 사람의 키보다 작은 것이었습니다. 이 거목은 오랜 생애 동안 영 네번이나 벼락을 맞았습니다. 4세기라는 긴 세월 동안 수도 없는 폭풍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거목은 살아 남았습니다. 근처의 모든 나무들이 쓰러져도 이 거목만은 살아 견디었습니다. 하지만 이 거목도 결국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결코 쓰러질 것 같지 않던 이 나무도 부질없이 허물어 지고 말았습니다. 어떤 역경에 부딪치더라도 살아 남을 만한 강인함을 가지고 있던 이 나무도 육중한 자신의 몸이 힘겨웠던지 땅 위에 눕고 말았습니다.
과연 무엇이 이 불사조 같은 쓰러뜨렸겠습니까? 그것은 벼락도 폭풍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세찬 비바람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어이없게도 하찮은 딱정벌레들이었습니다. 나무의 외피를 뚫고 침입한 수많은 딱정벌레들이었습니다. 그토록 막강한 위력을 가지고 있던 거목이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딱정벌레들에 의해 쓰러졌다는 것은 정말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누군가와 아무도[라즈니쉬 우화]
어느 마을에 ‘모두’, ‘누군가’, ‘아무나’ 그리고 ‘아무도’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마을에 중요한 일이 생겼다. ‘모두’는 ‘누군가’가 틀림없이 그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아무도’ 그 일을 하지 않았다. 이를 보고 ‘누군가’가 매우 화를 내었다. 왜냐하면 그 일은 ‘모두’가 해야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모두’는 ‘누군가’가 그걸 하겠거니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아무도’ ‘모두’가 할 일을 하지 않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결국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을 ‘아무도’ 하지 않고 말았다는 것을 알고 ‘모두’가 ‘누군가’를 책망하고 있었다.

묵묵히 추구하는 삶
편작은 죽은 사람도 살려낸다는 중국의 명의였다.[화타와 더불어] 그리도 그의 두 형도 모두 의사였다. 다만 두 형은 막내인 편작만큼 세상에 이름을 알리지 못했을 뿐이다. 위나라 임금이 편작에게 물었다.
“그대 삼 형제 중 누가 병을 가장 잘 치료하는가?” 편작이 대답했다.
“큰 형님의 의술이 가장 훌륭하고 다음은 둘째 형님이며 그 다음이 저의 의술입니다. 저의 큰 형님은 환자가 아픔을 느끼기 전에 얼굴빛으로 이미 그 환자에게 다가올 병을 압니다. 그리하여 그 환자가 병이 나기도 전에 병의 원인을 제거하여 줍니다. 그리하여 환자는 아파 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치료를 받게 되어 저의 큰 형님이 자신의 고통을 제거해 주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의 큰 형님께서 명의로 소문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저의 둘째 형님은 환자의 병세가 미미할 때 그 병을 알아 보시고 치료에 들어 가십니다. 그래서 환자들은 저의 둘째 형님이 자신의 큰 병을 낫게 해 주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반면에 저는 병이 커지고 환자가 고통 속에서 신음할 때에야 비로소 병을 알아 봅니다. 환자의 병세가 심각하므로 맥을 짚어 보아야 했고, 진기한 약을 먹여야 했으며 살을 도려내는 수술을 진행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저의 그런 행위를 보고서야 비로소 제가 자기들의 병을 고쳐 주었다고 믿는 것입니다. 제가 명의로 소문나게 된 것은 이렇게 하찮은 이유에서입니다.”

세 친구[탈무드]
어떤 남자에게 세 친구가 있었다. 첫번째 친구는 그가 가장 좋아하고 신뢰하는 친구였다. 두번째 친구는 좋아 하기는 했지만 첫번째 친구보다는 소중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세번째 친구는, 친구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별로 관심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어느 날 그가 먼 길을 떠나게 되었다. 그는 가장 소중히 여기는 친구에게 함께 가자고 부탁했다. 그러나 그 친구는 이유도 말하지 않고 함께 가기를 거절했다. 두번째 친구에게 부탁하자 성문 앞까지는 함께 가 주겠지만 그 이상은 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 세번째 친구를 찾아 갔다. 그 친구는 말했다.
“자네가 가자면 기꺼이 함께 가 주겠네. 어려움을 함께 이겨 나가는 것이 친구 아니겠나?”
이 이야기에서 번째 친구는 재산이다. 제 아무리 소중히 여기고 사랑할지라도 죽음이라는 먼 길을 떠날 때에는 남겨 두고 가야 하는 것이다. 두번째 친구는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 역시 묘지까지는 따라가 주지만 그 이후에는 혼자 갈 길을 가고 만다. 세번째 친구는 선행이다. 평상시에는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죽음 뒤에도 그와 동행한다.

효심
옛날 어느 마을에 효자와 불효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마을에서는 효자에 대한 칭송이 대단했습니다. 반면 불효자에 대한 비난 또한 그 만큼 심했습니다.
어느 날 꾸지람만 듣던 불효자가 ‘나도 그 효자처럼 행동해서 칭찬을 받으리라.’하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효자가 하는 행동을 가만히 지켜 보았습니다. 그런데 효자가 하는 행동은 뜻밖에도 아주 쉬워 보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버지의 옷을 입고 있다가 옷이 따뜻해지면 아버지에게 내어 드리고, 밥상이 들어오면 음식이 상했나 먼저 먹어 보고, 밤에는 아버지의 잠자리에 누워 잠자리를 따뜻하게 해 드리는 일 등이었습니다. “뭐야, 아주 쉬운 일이잖아.”
자신을 갖고 집으로 돌아온 불효자는 효자에게서 본 바를 그대로 행동에 옮겼습니다. 그런데 칭찬은 웬걸, 전보다 더한 호통을 들었습니다.
“이 무례한 놈아 어디 감히 어른의 옷을 입어.” “점점 못된 짓만 하는 구나. 어른보다 먼저 수저를 들다니.”
“이제는 어른보다 먼저 따슨 잠자리마저 차지하려는구나.”
“당장 나가거라. 이 놈아!” 불효자는 그 행동에 따른 효심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생활인의 행복[백치. 도스토예프스키]
행복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콜롬버스가 행복을 느낀 것은 아메리카를 발견했을 때가 아니라 그것을 찾고 있을 때였다. 그의 행복이 고조된 순간은 아마도 신세계를 발견하던 바로 사흘 전이었을 것이다. 승무원들이 절망하여 뱃머리를 다시 유럽으로 돌리려 하던 때였을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신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은 없어도 괜찮다. 콜롬버스는 거의 신세계를 보지 못하고 죽은 것과 같다. 사실상 그는 자신이 발견한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죽었다.
문제는 생활에 있는 것이다. 단지 생활에만 있는 것이다. 생활 속에서 무언가 영원히 모색하는 것에 삶의 행복이 있는 것이지 무언가를 발견한다는데 행복이 있는 것은 아니다.

라과디어 판사
뉴욕에 가면 헨리 라과디어라고 하는 시장의 이름을 따서 지은 공항의 이름이 있다. 다음 얘기는 라과디어가 시장이 되기 전, 뉴욕 시의 야간 판사로 있을 때의 일화이다.
어느 추운 겨울 밤, 남의 물건을 훔친 죄로 한 노인이 라과디어 판사 앞에 섰다. “무엇을 훔쳤습니까?” “빵 한 덩어리를 훔쳤습니다.” “왜 훔치려 했습니까?” “배는 고픈데 수중에는 돈 한푼 없어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말을 끝마친 노인은 눈물을 흘렸다. 잠시 후 라과디어 판사는 판결을 내렸다.
“할아버지, 법은 법입니다. 제겐 법 그대로 시행할 의무가 있습니다. 할아버지께 10불의 벌금형을 내리겠습니다. 그리도 할아버지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든 저를 비롯해 이 도시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벌금형을 내리겠습니다. 따라서 저는 10불, 그리고 이 재판정에 참석한 여러분은 모두 5불씩 내시기 바랍니다.”

준비된 영혼에게 우연한 행복이
1897년, 프랑스의 과학자 파스퇴르는 농부들의 요청으로 닭 콜레라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콜레라에 걸린 닭에게서 뽑아낸 병원균을 한군데 계속 배양하면 균이 독성이 현저히 약해져 닭에게 주사하더라도 가볍게 병을 앓을 뿐 오히려 그 병에 대한 면역이 생긴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우연한, 그렇지만 결코 우연이 아닌 발견으로부터 오늘날 일반화된 백신(독성이 약해진 균)을 이용한 예방 주사법이 유래되었다.
만일 파스퇴르가 이 귀중한 발견을 특허내고 팔았더라면 그는 엄청난 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의 연구 결과를 인류 전체의 공유로 돌렸다.
후에 프랑스인들이 이 위대한 과학자를 위해 성대한 70회 생일 축하연을 베풀어준 자리에서 파스퇴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젊은이들이여, 인생에는 우연이라는 것이 있다. 갈팡질팡하지 말고 오로지 한 곳만을 파라. 그러면 뜻밖에도 진리의 물줄기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우연은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영혼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다.”

6일 전쟁의 교훈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자주 전쟁을 벌였습니다. 그 중 1967년 6월에 일어난 ‘6일 전쟁’은 우리에게 좋은 교훈 하나를 선사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전력은 이집트가 훨씬 뛰어나다고 평가되었는데 오히려 이스라엘이 6일만에 승리를 거두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전사자들입니다. 짧은 기간동안 일어난 전쟁이긴 했지만 그만큼 격렬했고 목숨을 잃은 군인의 수도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이집트의 사상자는 대부분 사병이었던 반면에 이스라엘의 사상자는 거의 다 장교였습니다. 장교인들 어찌 죽음이 두렵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도 이스라엘의 장교들은 앞장서서 싸웠던 것입니다. 이집트의 장교들이 뒤에서 잘 싸우라고 지시만 하고 있을 때 말입니다.

나폴레옹과 괴테
나폴레옹이 독일에서 괴테를 만났을 때의 일이다.
“나를 위하여 시 한 편을 지어 줄 수 없겠는가?” 나폴레옹이 이렇게 청하자 괴테가 대답했다. “폐하, 저는 어느 누구에게도 시를 써서 바치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아니, 이유가 무엇인가?” 나폴레옹이 되묻자 괴테가 이렇게 대답했다.
“그것은 단지, 나중에 후회할 일은 하지 않는다는 제 신조 때문입니다.”

대통령의 이력[‘삼익 악기’ 사보에서]
가난한 켄터키주의 농촌 태생. 학력은 국민학교 중퇴 열등감이 심했음 독학으로 법률 공부를 시작함
몸이 허약했음
잡화점을 차림 빚만 지고 가게 망함 빚 갚는데 15년 걸림하는 일마다 운이 따르지 않음 청년이 되자 결혼을 함
불행한 결혼으로 끝나고 맘 다시 소규모 사업체를 차림 또 망함 측량 기사와 우체국 직원 등을 전전하며 피나는 독학 끝에 변호사가 됨
용기를 얻어 하원 의원에 출마함 결과는 실패 하원 의원에 당선되었으나 초선 임기 후 재도전에서 또 낙선 신경쇠약으로 오랫동안 앓아누움
상원의원에 출마함 결과는 낙선 부통령에 입후보했으나 결과는 패배 상원의원에 또 출마함 결과는 또 낙선
1860년 대통령 선거에 당선됨 게티즈버그에서 역사에 남을 위대한 연설을 했으나 당시 청중들의 반응은 냉담함
언론으로부터는 매일 얻어맞고 반 이상의 국민들로부터 배척을 당함 1865년 저격범의 흉탄에 쓰러짐
이상은 인류가 흠모하는 미국의 대통령 에이브러함 링컨의 일생입니다.

우리는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분의 마음의 거실로 초대하신다. 우리는 거기서 낡은 슬리퍼를 신을 수도 있고 그 거실에 있는 모든 것을 자유로이 사용할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우정의 주방으로 초대하신다.거기서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요리하며 잡담할 수 있다. 그는 우리를 능력의 식당으로 초대하신다. 거기서 우리는 마음껏 음식을 즐길 수가 있다. 그는 우리를 지혜의 서재로 초대하신다. 거기서 우리는 배우고 자라며 성숙할수 있고 또 우리가 원하는 모든 궁금증을 풀 수도 있다 .
그는 우리를 창조력의 작업장으로 초대하신다. 거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될 수도 있고 어떤 사건들의 결과를 산출하기 위하여 협력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는 우리를 안식의 침실로 초대하신다. 그곳은 새로운 평화가 발견되는 곳이며 우리가 벌거벗을 수도 있고, 상처를 입을 수도 있으며, 아무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유를 누릴 수도 있다. 그곳은 또한 우리가 하나님과 가장 깊이 친밀해질 수 있는 곳이며 우리가 하나님을 가장 잘 알고 또 하나님께 우리를 가장 잘 알리는 곳이다.

사회학자 데이비드 바탕의 말대로 성령 운동은 예나 지금이나 인간이 합리적 이성보다는 원초적 본능에 의지하던 시대(premodern)와 합리적 이성의 한계를 자각하고 원초적 본능으로 돌아가려는 시대(postmodern), 인간이 구체적 언어보다는 자연적 표현에 의지하던 시대(preliterate)와 구체적 언어의 한계를 자각하고 자연적 표현으로 돌아가려는 시대(postliterate), 인간이 규제된 의지의 틀보다는 분방한 자유를 즐기던 시대(Fiesta)와 자유를 가두어 놓은 모든 사회 문화적 틀을 부수고 본원의 자유를 찾고자 하는 시대(encounter)의 가장 강력하고 효율적인 결합이다.(영성, 여성, 음악, 하버마스책 5장)

[내가 20년을 비록 가난하게 사는 동안 두어칸 집에서 두어이랑 전답을 갖고 겨울 속옷과 여름 베옷이 각각 두벌 있었으나 눕고서도 남은땅이 있고 신변에는 여벌옷이 잇었으며 주발 밑바닥에 남은 밥이 있었소. 이 세가지 남은것을 가지고 한 세상 편하게 지냈던 것이오. 오직 책 한 시렁, 거문고 한벌, 벗 한 사람, 신 한켤레, 잠 청할 베개 하나, 바람들일 창 하나,차를 끓일 화로 하나 햇빛 쪼일 마루 한쪽 늙은몸을 부축할 지팡이 하나, 봄 경치를 찾아다닐 나귀 한 마리면 족하오] – 선조때 김 정국 ‘행복론’
젊은이란 멋있는 이성을 만나면 사랑하고 싶은 마음을 갖는것, 친구의 호주머니 보다는 그의 마음을 좋아하는 것, 친구를 위해 즐겁게 즐겁게 헌혈할 수 있는 것.

기도 – 한 한국 교수가 미국에 유학가서 어느 미국인 집에 식사 초대를 받았다. 미국인 부부가 한국말로 기도를 좀해달라고 부탁. 그런데 이 교수는 교회를 나가본적도 없고 어떻게 하는지를 몰랐는데 그 부부와 자녀들이 두 손을 곱게 모으고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하는 수 없이 ‘김 소월의 진달래 꽃’ – 평소에 외우고 있는 – 을 읊었고 마지막에는 아멘까지 덧붙였는데 미국인이 가라사대 ‘어쩌면 당신의 한국말 기도는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지요. 마치 시처럼 리듬이 있군요.

산과 강과 도시만을 생각한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무의미한가 그러나 함께 생각하고 느낄 사람이 있다는 것과 비록 헤어져 있어도 영혼이 가까이 있는 사람이 있다는 느낌은 이 세상을 살아있는 정원으로 만든다. – 괴테.

폴란드 속담에 그런 말이 있다.
겨울이 혹독한 계모라면 봄은 수줍어 하는 처녀요. 가을이 쓸쓸한 미망인 같다면 여름이야말로 굶주린 자들에게도 자신을 활짝 열어젖히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

머리, 가슴은 여자. 몸은 개, 날개는 새, 꼬리는 뱀, 목소리는 사람의 목소리를 가진 희랍의 전설 괴물이 있었습니다. 스핑크스이지요. 이 스핑크스가 사람들에게 수수께끼를 내고는 못맞추면 잡아먹곤 했습니다. 이디프스에게 수수께끼를 냄. 아침에는 네개의 다리, 점심에는 두개, 저녁에는 3개의 다리를 갖고 다니는 동물이 무엇? 사람. 돌에 머리를 박고는 죽었다. 이것은 유년기, 청년기, 노년기(지팡이)
여자에게는 전생의 역사적인 연애가 남자에게는 단 한개의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는다.

나폴레옹이 알프스를 넘으면서 했던말(내가 알프스산 보다 더 높구나)
쇼펜 하우어 말하기를 ‘[사람의 위대함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정신의 방대함과 체격의 방대함을 재는 법칙은 정반대이다.] 전자는 멀수록 커 보이고 후자는 멀수록 작아 보인다.’

영국의 어느 교회에 이런 낙서가 있었다. ‘술은 인류의 가장 큰 원수다.’ 바로 옆에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었다. ‘네 원수를 사랑하라.’

우승자를 존경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뒤떨어졌으되 기어이 결승점까지 달려가는 주자와 그런 주자를 진지하게 보는 관걕, 그들이야말로 중국미래의 대들보이리라. – 노신 (조화석습)

그대와 내가 다른점은
만일 그가 그의 일을 끝내지 않는다면 그는 게으르다 하고 내가 일을 끝내지 않았다면 나는 너무 바쁘고 많은 일에 눌러 있기 때문이라 하고
만일 그가 다른 사람에 관해서 말하면 수다쟁이라 하고 내가 다른 이에 관해서 이야기 하면 건설적인 비판을 한다고 하고
만일 그가 자기 관점을 주장하면 고집쟁이라 하고 내가 그렇게 하면 개성이 뚜렸해서라 하고
만일 그가 나에게 말을 걸지 않으면 콧대가 높다고 하고 내가 그렇게 하면 그 순간 복잡한 다른 많은 생각을 하고 잇기 때문이라 하고
만일 그가 친절하게 하면 나로부터 무엇을 얻기 위해 그렇게 친절하다 하고 내가 친절하면 그것은 내 유쾌하고 좋은 성격의 한 부분이라 하고 그와 내가 이렇게도 다르다니 얼마나 딱한가?

# 신종 치매 테스트법
1. 아침에 회사알에 세워 둔 차의 위치가 퇴근시 헷갈린다.
2. 퇴근때 작업복 입고 퇴근하다 돌아온다.
3. 자판기에 1,000원짜리 넣고 커피 한잔 뽑아 온다.
4. 여자 친구를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에서 만나기로 하고
안암동 고대 오거리에서 두시간 기다린다.
5. 사번 적는 칸에 사내 전화번호를 기입한다.
6. 이스라엘은 즉시 독도를 팔레스타인에 양도하라고 주장한다.
7. 맥도날드 햄버거 하나먹고 1만원짜리 내고 100원 받아온다.

# 손가락 이야기

손가락들이 서로 자기자랑을 하고 있었다. 엄지 부터 순서대로 ‘난 여기서 가장 힘이 세!’ ‘난 여기서 하는 일이 가장 많아!’‘난 여기서 제일 키가 커!’‘나 없으면 결혼반지 못껴!’그러자 곰곰생각하던 새끼 손가락이 말합니다. ‘니들.. 니들.. 나 없으면 병신이여!’

# 과별 여자 꼬시는 방법
1. 국문학과: 오늘도 바람에 별이 스치우는 군요. 이 밤 저와 함께 사랑의 시를 지어 볼까요
2. 수학과 : 오! 이렇레 얼굴이 미분적으로 생길 수가. 가슴은 환상적인 포물선을 그리는 군요. 오늘 저에게 당신의 몸을 풀 수 있는 기호를 주시겠습니까?
3. 미대: 당신은 모나리자의 미소와 조각한 것 같은 아름다운 손을 가지고 계시군요. 당신의 피부는 비너스 상과 같이 희고 부드럽군요. 4B연필 보다 더 진한 저의 마음을 받아 주세요.
4. 정보통신과: 당신은 다양한 재능이 보이는 군요. 천리안과 같은 눈을 갖고 계시고 하이텔 같은 친근감이 느껴집니다.우리가 함께 소프트한 밤을 지내 볼까요? 저와 당신은 38,400모뎀 처럼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어요.
5. 신학과: 아! 우리의 만남은 태초전부터 정해놓으신 하나님의 섭리 이십니다. 믿습니까? 믿으시면 아멘 하시고 저와 이밤 아차산에나 가시지요.
# 속도없어
3남매가 가수 오디션을 보러갔다. 3남매는 매니저에게 최대한 잘 보이려고 갖은 아부를 다했다. 점심을 같이 먹으러 가서는 달랑 짜장면 한그릇 시켜 놓고 매니저 하는 말이 ‘이 한 그릇의 짜장면을 어떻게 먹겟느냐’
장남이 ‘남긴것을 먹겠습니다.’
차남은 ‘흘린것을 먹겠습니다’
막내인 여자가 말했다. ‘매니저님, 입닦지 마세요.’

# 달라짐
다른 사람에 대해서 끊임없이 불평하고 있는 제자에게 스승이 말했다. “네가 바라는 것이 평화라면, 다른 사람을 고치려고 하지 말고 너 자신이 달라져라. 온 세상이 융단을 깔기보다는 슬리퍼를 신고서 네 발을 보호하는 것이 더 쉽다.

#망원경으로 박테리아를 관찰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현미경으로 별을 관찰할 수 없는 것이지요.
# Knowhow의 문제이다.
개에게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면 꼬리를 흔들고 그리고 조용히 나는 지금 너를 잡아먹을 거야 해도 꼬리를 흔든다. 그러나 큰 소리로 나, 너를 사랑해 하면 짖는다.

# 학교에서 많은 친구들이 그렇게 묻습니다. 왜 그렇게 공부하느냐? ‘그냥한다.’ 그러면서 저는 속으로 그렇게 묻습니다.너는 왜 그렇게 공부하지 않느냐? 신학을 공부한다면 그리고 적어도 전도사가 되거나 목사가 된다면 대충 공부하고 졸업해서 그렇게 강단에 선다면 그것이 정말로 진실할까?

내실을 쌓아가야 합니다. 이것 저것 쫒아가다가는 남는 것이 없지요. 숫자적 허구성. 사람을 숫자로 보지 말고 인격으로 보세요.
아무런 감흥이 없는 시대. 이웃의 아픔에 그저 담담한 그리고 이웃의 기쁨에 담담한 모습이 지금의 우리의 모습과 갔지요.
교통질서 이경규가 간다. 이것은 방법의 문제이다. 고발적 차원이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 오직 두 세번밖에 만난적이 없어도 평생 흔적 짙게 안 잊혀지는 사람이 몇 있는가 하면 매일 얼굴을 마주 대하여도 아무런 의미없이 덤덤히 지내는 사람도 많다.
순수한 마음 – 시 (2층, 4층)

東家食 西家宿(동가식 서가숙)
동쪽 집에서 밥먹고 서쪽 집에서 잠잔다. ‘사람 욕심이 지나침’ 또는 ‘이집 저집 떠돌며 기식하는 것이나 그런 사람’을 일컫는다. 풍속통(風俗通)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제 나라에 한 처녀가 있었다. 두 남자가 동시에 청혼을 하니 큰 고민에 빠졌다. 한 청년은 동쪽 마을 사람으로 못생겼으나 부자였다. 다른 청년은 서쪽마을 사람으로 미남이나 집이 가난했다. 그녀의 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다 딸에게 물었다. ‘동쪽 청년과 서쪽 청년중 무가 좋겠느냐?직접 입으로 말하기 난처하면 한쪽 어깨의 옷을 벗어 표시하거라’ 그러자 딸은 갑자기 양어깨의 옷을 모두 벗어 버렸다. 부모가 의아해서 그 까닭을 묻자 ‘밥은 동쪽 집에서 먹고 잠은 서쪽 집에서 자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부잣집 음식과 미남을 다 갖고 싶었던 것이다.
분수를 모르고 날뛰는 요즘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태도가 분명치 못한 경우를 시쳇말로 ‘양다리를 걸친다’라고 한다. 욕심이 과하거나 우유부단한 경우가 대부분. 상황을 봐가며 유리한 쪽을 택하겠다는 생각이지만 다 잃기 십상이다.

아이들은 더 이상 우리 어머니들이 입었던 몸빼나 월남치마를 그리워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 숨쉴 수 있게 호흡하고 마음껏 상상하고 생기있게 살아가게 해 주어야 한다. 틀에 얽메이게 하지 말아야 한다.

* 낯설지 않기
구두를 산적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고른 후에 산 것이라 디자인이나 크가나 모든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새 구두에 발을 넣고 몇 발을 내딪지 않았는데 발 뒤꿈치도 아프고 엄지발가락 뿐만 아니라 모든 발이 아픕니다. 어제까지 신었던 구두가 오히려 편합니다. 그런데 너무 낡은 구두라 계속 신지는 못하지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발과 구두를 친한 사이로 만들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자주 만나게 하고 힘들때 쯤에서 쉬게 해주고 익숙하던 낡은 구두도 종종 신켜주고 또 잊을 만할 때 다시 새 구두를 만나게 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몇번을 하고 나니 이제는 발들이 새 구두에게 배려하기 시작합니다. 아프다고 했던 발가락들이 이제 제법 참아줍니다. 그렇게 몇일을 보내고난 지금은 이제 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때론 새로운 것이라면 무엇이나 해 보려고했던 우리의 모습에 조금은 반성을 하면서 옛것과 조화를 이루는 범위내에서 새것을 수용을 해야 할 것입니다.

*연애 편지
작고한 국문학자 양주동 박사가 1920년대 후반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유학했을때의 일이다. 그는 서울에서 짝사랑했던 어떤 아름다운 전문대 여학생을 도무지 잊을 수 없어 연애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온갖 미사여구를 총동원한 그의 편지는 막상 당사자에게 전달조차 되지 못하고 중간에서 없어져 버리곤 했다. 그 여학생이 미션스쿨에 다녔기 때문에 기숙사 사감의 사전 검열을 통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알게된 양주동 학생은 궁리 끝에 묘안을 짜냈습니다. 성경가운데 ‘사랑’과 관련된 대모을 뽑아 내 ‘요한복음 몇장 몇절’ ‘마가복음 몇장 몇절’한느 암호 같은 연서를 보낸 것이다. 사감은 의심없이 그 편지를 여학생에게 전달해 주었다고 한다. 그 여학생은 그 의미를 알아차리고 밤새 성경을 뒤져 양주동의 뜻을 알아차리고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겠노라고 답장했다고한다.

[지혜로 가려낸 쭉정이]
통치자는 무릇 아랫사람의 됨됨이를 볼 줄 알아야 하며 사람을 사귀는데 있어서도 현명한 지혜가 필요하다. 여기에 적힌 두 가지 예기는 한 현명했던 왕이 신하들 가운데서 쭉정이를 골라내기 위한 묘안이었다.
첫 번째 얘기는 다음과 같다. 왕이 손톱을 깍다가 손톱 하나를 손 안에 감추고는 능청스럽게 말했다. ‘손톱이 하나 없어졌구나. 빨리 찾도록 하라.’ 왕은 얼른 찾아내라고 성화를 했다. 그러자 한 신하가 제 손톱을 몰래 잘라가지고 와서 말하는 것이었다. ‘여기 찾았습니다’ 왕은 그 신하의 간교함을 알게 되었다.
두 번째 얘기는 이러하다. 왕이 뜰을 거닐다가 대신들이 보는 앞에서 화들짝 놀라는 척하며 말했다. ‘저기 사라지는 것이 흰 말이 아니더냐?’ ‘글쎄요, 못 보았는데요.’다들 그렇게 말했는데 유독 한 신하가 왕이 가리키는 쪽으로 황급히 뛰어갔다 오더니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예, 흰말이 맞습니다.’왕은 그 신하의 불성실함을 알게 되었다.

[걱정으로 망친 하루]
휴일을 맞아 한 가족이 소풍을 떠났다. 한여름의 무더위를 피해 계곡으로 갔다. 물장구도 치고 나무들 속에서 술래잡기를 하다 점심때가 되었다. 가족들은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 앉아서 음식 보따리를 풀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정성스럽게 준비해온 김밥과 음료수를 꺼냈다. 그런데 병따개가 없었다. 산 아래 주차장의 차 안에다 두고 왔던 것이다. 아버지가 막내에게 일렀다. ‘차에 가서 병따개를 갖고 오너라’ 막내는 입이 한주먹 튀어나와서는 떼를 썼다. ‘누나도 있고 형도 있는데 왜 제한테 시키세요.’ 이번에 아버지가 장남에게 말했다. ‘그럼 네가 갔다 오너라.’ 장남은 그럴게요. 하고 말하면서 한 마디를 더 했습니다. 갔다오는 사이에 김밥 먹지 말기. 모두에게 약속을 받고는 내려갔습니다. 가족들은 음식을 앞에 놓고 있으려니까 견딜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김밥을 먹을 수도 없고.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병따개 가지러 간 장남을 오지를 않는 것이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이제 김밥을 먹으려고 뚜껑을 여는 순간 갑자기 숲속에서 장남이 뛰어나온 것이다. 그러면서 하는말이 ‘내 그럴줄 알고 가지않고 지켜보고 있었지.’

[협동, 지도자)
인도의 어느 산 속에 수백 마리의 메추리 무리가 살고 있었다. 그들이 가장 무서워 하는 것은 세잡이들이었다. 사냥꾼들은 메추리의 노랫소리를 흉내애어 새들을 모아서는 그물로 잡곤 했다. 그런데 어느날 현명한 메추리 한 마리리가 제안을 했다. ‘앞으로 사냥꾼이 그물을 던지면 우리 모두 그물코 밖으로 목을 내밀어 일제히 그물을 들어올리면서 하늘로 날아가자’ 모두 그 제안에 찬성했습니다.
이제 다음날 사냥꾼들이 그물을 던지자 그들은 그대로 그물을 들어 올리며 하늘로 날아갔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두 메추리 사이에 시비가 벌어지더니 두편으로 갈라졌습니다. 그때 그들은 모두 그물에 잡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현명한 새는 자기 친구들과 힘을 합쳐 그물을 들어 올려서 날아갔습니다.
이 우화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무엇입니까? 어떠한 역경도 힘을 합치면 능히 이길 수 있다는 것과 아무리 훌륭한 지도자가 있다해도 그를 따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여기서는 사람들을 제대로 이끌 수 있는 지도자가 있었야 한다는 교훈이다.

[권위 주의자란]
권위주의자란 다음과 같은 사람이다. 첫째, 인습과 관례, 전통에 얽매여 있는 사람들이다. 자신들이 지켜 오고 믿어 온 것에 전혀 의심을 품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그런 인습을 남에게까지 강요한다. ‘내 경험에 따르면’하며 자기 의견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도 권위주의가 된다.
둘째, 자기보다 힘있는 사람에게는 복종하고 자기보다 약한 사람은 업신여긴다. 셋째, 권위주의자는 자기가 믿는 권위를 따르지 않는 사람을 그냥 놔 두려 하지 않는다.
[리더쉽]
리더십은 세가지로 이뤄진다. 첫째는 헤드십 – 명령, 지시 등을 따르는 것, 둘째는 매니져십이다. 관리에 입각한 것. 셋째는 협의의 리더십이다. 부하에게 자발적으로 일할 마음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
여기서 공통점은 십이라는 단어이다. 배를 뜻하는 단어 ‘십(ship)’자가 처음으로 붙은 것은 스포츠맨십이다. 17세기의 일이다. 어느 날 영국의 리처드 킹스턴 경이 축구 시합을 관전하고 있었다.사소한 일로 스코틀랜드 군과 잉글랜드 군의 선수들이 충돌하자 관객도 흥분하여 경기장 안으로 몰려 들어갔다. 이때 킹스턴 경은 이렇게 연설했다. “우리는 모두 같은 배의 승무원들이다. 우리는 이 배(ship)를 침몰시켜서는 안된다. 그렇다. 이 스포츠맨을 위한 배를…”

[지도자와 보스]
지도자는 또 보스와도 다르다. 보스는 사람들을 몰고 간다. 지도자는 그들을 이끌고 간다. 보스는 권위에 의존한다. 지도자는 선의에 의존한다. 보스는 늘 회초리를 필요로 한다. 지도자는 회초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보스는 ‘나’라고 말한다.지도자는 ‘우리’라고 말한다. 보스는 ‘가라’고 명령한다. 지도자는 ‘가자’고 권한다. 보스는 등 뒤에서 일한다. 지도자는 공개적으로 일한다. 보스는 남을 믿지 않는다. 지도자는 남을 믿는다. 보스느 겁을 준다. 지도자는 희망을 준다. 보스는 복종을 요구한다. 지도자는 존경을 모은다. 지도자는 자기가 밟고 있는 땅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보스는 무지개를 바라본다. 지도자는 대중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보스는 자기 눈으로만 세상을 본다. 지도자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약점에도 불구하고’권위를 얻는다. 보스는 자기의 ‘약점에 의해’권위를 유지한다. 지도자는 자기의 약점을 숨기지 않는다.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보스는 자기의 약점을 숨긴다. 권위를 잃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자기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을 가까이 한다. 보스는 자기와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을 미워한다. 지도자는 권위를 쌓는다. 보스는 권력을 쌓는다. 지도자는 타협을 잘 하고 대화를 즐긴다. 보스는 타협을 모르고 대화를 거부한다. 지도자에게는 귀가 여러개 있다. 보스에게는 귀가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듣기 좋은 말만을 듣는 귀 하나만 가지고 있다. 지도자는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가를 알려 준다. 보스는 누가 잘못하고 있는가를 지적한다. 지도자는 자기 말에 책임을 진다. 보스는 자기 말도 무시한다. 지도자는 지지자를 만든다. 보스는 부하만을 만든다. 지도자는 권위마저도 즐기지 않는다. 보스는 권력을 즐긴다. 지도자는 권력이란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긴다. 보스는 권력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지도자는 자기 후계자의 짐을 덜어준다. 보스는 후계자에게 무거운 짐만 떠넘긴다. 지도자는 앞에서 이끈다. 보스는 뒤에서 호령한다.

아이젠하워 장군은 통솔하는 기술을 끈 한 가닥으로 설명한 적이 있다. 그는 끈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이 끈을 당겨 봐라. 그러면 끈은 얼마든지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 따라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밀면 아무 데에도 가지 못한다. 사람을 이끌 때의 요령도 이와 똑같다.’고 말했다.

[용기]
사람에게는 누구나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용기이다. 1. 부하를 신뢰하고 부하에게 권한을 이양하고 부하의 성장에 기대를 걸 줄 아는 용기 2. 붙임성이 없고 개성적이지만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부하를 북돋워 주는 용기. 3. 부하로부터 비판받아도 차분히 앉아서 듣는 용기 4. 기분이 상하는 나쁜 정보에도 귀를 기울이는 용기. 5. 안일하게 부하와 타협하지 않는 용기 6. 부하를 평가할 때 정실에 흐르지 않고 객관성과 공평성을 가질 수 있는 용기.

[지도자의 덕목]-주자‘근사록’
1. 관대하면서도 엄격함이 있어야 하고 분명해야 한다. 2. 부드러우면서도 매듭짓는 게 분명해야 한다. 3. 꾸밈이 없으면서도 거칠거나 무뚝뚝하지 않고 공손해야 한다. 4. 일을 처리하는 능력이 있으면서도 조심스러워 한다. 5. 점잖으면서도 속이 단단해야 한다. 곧 외유내강의 덕을 갖춰야 한다. 6. 정직하고 솔직하면서도 남의 결점을 들춰 내지 않고 냉혹하지 않아야 한다. 7. 대범하면서도 요점을 잘 파악해야 한다. 8. 무슨 일에나 적극적으로 대처하면서도 속이 알차야 한다. 9. 용기와 신념을 가지고 행동하면서도 혈기에 넘쳐 만용을 부리지 않아야 한다.
[존재의 가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헤르메스는 자기가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인간 세계에서는 얼마나 존경받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그는 인간으로 변해서 어느 조각가의 집을 찾아갔다. 그는 제우스 신의 동상을 보고 값이 얼마냐고 물었다. 조각가는 1백만원이라고 대답했다. 헤르메스는 그 다음에 해라 여신의 것은 얼마냐고 물었다. 조각가는 1백마50만 원쯤은 받아야겠다고 대답했다. 이윽고 헤르메스는 자기 조각을 보고 저것은 얼마냐고 물었다. 자기는 천신의 사자인데다가 효험도 크니까 값이 제일 비쌀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조각가는 뜻밖에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것은 다른 동상을 사신다면 그냥 드리겠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세상에서 어떻게 평가를 받고 있는지 잘 모른다.

한비자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나무를 흔들어 움직이고자 할 때 가지나 나뭇잎들을 하나하나 끌어당긴다면 힘만 들 뿐 효과가 없다. 줄기를 흔들어 움직인다면 가지와 잎은 저절로 따라서 움직이게 마련이다.’

[동그라미 안과 밖]
어느날 노스승이 제자들을 모두 마당에 모았습니다. 그리고는 한 제자에게 마당에 동그라미를 그리라고 했다. 제자는 시키는 대로 꼬챙이를 가지고 마당에 둥근 원을 그렸다. 그리고는 이제 스승이 물었다. ‘지금 너희들은 동그라미 속에 들어가고 죽고 동그라미밖에 있어도 죽는다. 어떻게 하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겠느냐?’ 제자들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어느 제자가 말했다. 혹시 금을 밟고 있으면 어떤가요? 스승이 하는 이야기가 다음과 같다. 물이 담긴 항아리가 물 속에 있으면 그 항아리의 안도 물이요 밖도 물이거늘 그런데 금이 어디 있느냐?
이제 시간이 많이 지나갔을 때 평소에는 별로 눈에 띄지 않던 제자 하나가 걸어나오더니만 동그라미를 두 손으로 지우는 것이었다. 노스승이 그제야 마당으로 시선을 보내며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무지에 대한 판결]
한 거지가 있었다. 그는 무엇보다도 다가오는 겨울의 추위가 걱정이었다. 그는 그런 가운데 구걸을 하러 다녔다. 그날은 운이 좋게도 누군가가 그의 손에 커다란 빵 한 덩이를 던져 주는 것이었다. 그는 빵을 들고 커다란 군용 트럭에 올라타는 군인들을 구경을 했다. 그런데 그에게 한 군인이 다가와 야전 점퍼를 줄 테니 빵을 조금 나눠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거지는 빵 한 조각을 떼주고는 점퍼를 받았다. 너무나 기뻤다. 그래서 군인들에게 가서 빵을 바지와 바꾸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한 군인이 바지를 벗어서 던져 주고는 손을 내밀었다. 거지는 그에게 빵을 주었다. 거지는 이번에는 자신의 빵을 줄테니가 신발과 바꾸자고 또 말하였다. 다른 군인이 신발을 벗어 주었고 그는 빵을 주었다. 거지는 튼튼한 군화, 야전 점퍼 그리고 바지를 입고 더 이상 겨울을 두려워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후 그 마을에 군인들이 물러가고 다른 군인들이 들어왔다. 전쟁에는 관심도 없거니와 승자와 패자에 대한 구분도 없던 이 거지는 여전히 적군의 군복을 입고 다녔다. 어느날, 남자는 등 뒤에서 쏜 총을 맞고 쓰러졌다. 겨울을 따뜻하게 해줄 옷가지들이 그의 수의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말의 진실, 의미]
옛날에 어떤 부자가 친척집을 방문하기 위해 며칠 동안 집을 비우게 되었다. 그래서 하인을 불러서는 말했다. ‘대문을 잘 지켜여 한다. 그리고 소를 밧줄에 단단히 묶어 놓거라.’ 주인이 이제 떠나고 집에 있는데 이웃집에서 잔치가 벌어졌다.도저히 집에 있을 수 없어서 생각 끝에 밧줄로 대문을 묶은후 소의 등에 싣고 잔칫집에 놀러갔다. 그 동안 도둑이 들어와서 물건을 모두 가져갔다. 주인이 돌아와서 하인을 다그쳤다. ‘이게 어찌된 일이냐?’ 하인이 억울하다는 듯 대답했다.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주인님이 시키는 대로 대문과 소를 잘 지켰을 뿐입니다.’ 주인은 할 말이 없었다.

[베풀어줌, 선행]
남자는 언젠가는 선행을 베풀 것이라 장담했다. 그러나 지금은 가진 것고 없고 집도 없어서 나중에 안정이 된 후에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는 늘 말했다. ‘뭐가 있어야 베풀어도 베풀지. 내 본래 마음은 그렇지 않다구. 두고 봐, 나중에는 불쌍한 이웃들을 돌보며 살 거라구’
이에 어떤 사람이 비유로 말해 줍니다. “산골짜기 농부가 소를 샀는데 무지해서 그는 몇 달후에 있을 노모의 환갑 잔치를 위해 우유를 저장해야겠다고 생각했지. ‘손님들에게 싱싱한 우유를 주기 위해서 그날 가서 한꺼번에 짜는 것이 좋겠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농부는 우유를 마시고 싶었지만 잔칫날을 위해 참았다. 아이들이 마시고 싶다고 해도 모른체 했다. 그러나 잔칫날 아침에 소의 젖을 짰더니 젖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여자로부터의 자유]
깊은 절에서 수행중이던 젊은 스님 둘이서 산길을 가게 되었다. 그러다가 강가에 이르게 되었다. 별로 깊어 보이지 않아서 신발을 벗고 바지가랑이를 걷어올렸다. 그런데 저만치에서 한 젊은 여가가 강을 못 건너서 머뭇 거리고 있는 것이었다.그 광경을 본 한 스님이 다가가서는 등을 내밀었다. 여자는 수줍은 듯 스님 등에 업혔다. 이를 본 스님이 얼굴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그러나 여자를 등에 업은스님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강을 건넜다. 두 스님은 강을 건너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십리쯤 왔을 때 같이가던 스님이 못마땅한 듯 여자를 업었던 스님을 비난했습니다. ‘수행자의 신분이면서 어떻게 여자를 업을 수 있소!’ 그러자 스님이 허허 웃으면서 하는 말이 ‘나는 벌써 그 여자를 강가에 내려놓고 왔거늘 스님은 아직도 업고 있구려.’
[사랑 하려면]
고부간의 갈등이 있는 가정이 있었다. 이런 가정에서는 아내의 남편이 그리고 어머니의 아들이 둘 사이에서 겪는 정신적인 피곤함은 크다. 그는 고심 끝에 아내를 불러서 말ㅇ했다. “어머니를 죽이도록 합시다.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할 수 없소.” 그러면서 아내에게 하얀 가루를 내밀었다. “앞으로 백일 동안 이 독약을 푼 물에 달걀을 삶아서 어머니가 잡수시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주의할 것이 하나 있는데 아주 정성스럽게 갖다드려서 당신의 속마음을 감춰얄 될게요. 어머니도 눈치가 빠른 분이니 사랑으로 대하는 듯해야만 속으실 겁니다.” 이말을 듣고 며느리는 너무나 기뻤다. 그녀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어머니께 갖다 드렸다. 어머니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온갖 정성을 기울였다. 처음에는 의심하던 어머니도 시간이 지나면서 며느리를 좋아하게 되었다. 이제 웃음이 피었습니다. 99일째 되던날 아내가 서럽게 웁니다. “어머니는 좋으신 분이세요. 내일이면 이제 돌아가실 터인데 어떻게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까?” 남편이 말합니다. “걱정 말아요. 사실은 독약이 아니라 밀가루였소.”

[추방당한 아부]
그는 아첨하기를 좋아하였다. 어느날 고을의 군수를 찾아뵙게 되었다. 그래서 군청에 다니는 사람에게 군수에 대해 물었다. “어떻게 하면 군수님의 환심을 살 수 있을까요?” 그 사람이 대답했다. “당신이 그분의 마음에 들고자 한다면 그분을 본받으시오” 그는 군수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다가 군수가 한쪽 눈을 실룩거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도 한쪽 눈을 실룩 거렸다. 그것을 본 군수가 말했다. “눈병입니까, 아니면 눈안에 티끌이라도 들어갔습니까?”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두 손을 마주 비비며 대답했다. “눈병도 티끌이 들어간 것도 아닙니다. 다만 군수님의 마음에 들고자 군수님을 본받은 것입니다.” 군수는 몹시 화가 나서 그를 내쫓아 버렸다.

[진정한 힘]
장날이면 닭싸움이 볼만한 마을이 있었다. 덕소라는 사람은 어느 마을의 유지의 부탁으로 싸움닭을 훈련시켰다. 그 유지는 열흘이 지나자 덕소에게 물었다. ‘닭이 이제 싸울수 있겠는가?’ ‘아직 때가 안 됐습니다. 지금은 공연히 허세를 부리며 제 기운만 믿고 날 뛸 뿐입니다.’ 또 며칠이 지나서 그 유지가 물어 봅니다. 어떠냐, 이번에는 싸움을 시킬 수 있겠느냐? 아직 안됩니다. 다른 닭들을 보면 당장에라도 덤벼들 기세로 설쳐 될 뿐입니다. 열흘이 지나 유지가 다시 물었다. ‘아직은 아닙니다. 상대방을 노려보며 화를 냅니다. 또 며칠이 지나서 유지가 묻는다. 그때 덕소가 말을 한다. ’지금은 상대 닭을 대하는 태도에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면 마치 나무로 만든 닭같습니다. 비로소 그이 덕이 온전해진 것입니다. 그 기개에 다른 닭들이 차마 대응을 못하고 도망쳐 버린답니다.

[거울에 대한 비유]
몸매와 얼굴은 예쁘지만 마음은 아름답지 못한 여자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외모는 가면처럼 느껴졌다. 무엇하나 사랑하는 것이 없었다. ‘흥 제까짓게 뭐라고’ 이말은 그녀의 입버릇 처럼 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그런 모습이 못마땅했다.어느날 그녀가 외출을 했다가 평소와 같이 불쾌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사람들의 험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교양이 없다는 둥, 친척인 철학자가 집에 다니러 왔다가 그녀의 말을 듣고 한마디 해주었다. ‘물론 보기 싦을 것을 억지로 봐야 될 이유는 없지. 너는 불쾌한 것이 그토록 보기 싫다니 앞으로 거울도 보지 말아야겠구나. 그래야 즐겁지 않겠니?’

[호랑이가 가장 좋던데요. – 어쩔 수 없는 본능]
소년은 아주 어릴 때 절에 맡겨저 노스님의 손에서 자랐다. 소년에게는 늙은 스승의 가르침이 유일한 교육이었다. 노스승은 소년에게 아름다운 여자가 그려진 그림을 보여주며 사람을 잡아 먹는 호랑이라고 가르쳤다. 어느날 소년은 젊은 승려들을 따라 마을에 내려갔다. 깊은 산속에서 자란 소년에게 마을의 모든 것들은 큰 구경거리였다. 많은 집들, 노는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 손님을 호객하는 장사꾼들, 바짝 붙어서 걷는 남녀들, 소년은 그런 모든 것을 구경하고 돌아왔다. 노스님은 소년에게 물었다. ‘그래 마을에서 무엇이 가장 좋더냐?’ 소년은 주저 없이 말했다. ‘호랑이가 가장 좋던데요.’

[네 안의 부처]
몹시 추운 겨울 등산을 갔던 사람들이 그만 길을 잃어 버렸다. 그래서 한참을 헤매다가 어느 절을 발견하고는 들어가서 추위를 피하는데 여전히 추워서 땔감을 찾았다. 그런데 땔감은 보이지 않고 법당안에 나무로 만든 불상이 놓여져 있었다.그는 불상을 들과 나와 도끼로 쪼개 불을 지폈다. 그 광경을 본 승려들이 불주위로 모여 들었다. 한 승려가 질겁을 하고는 소리쳤다. ‘아니 이런 미친 놈을 봤나. 부처님을 쪼개 불을 지피다니. 그 소리를 듣고 큰 스님이 나타나서 ’이놈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냐?‘ 그때 그 남자가 나무로 장작을 뒤적이더니만 하는 말이 ’보시다시피 지금 사리를 찾고 있는 중입니다.‘노스님의 얼굴이 붉어졌다. ’뭐라구 이놈 나무토막에서 무슨 사리가 나오느냐?‘ 그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면 됐지 않습니까? 나무토막을 태워 모두들 추위를 녹였으니 말입니다.
[입안의 떡]
한 스승이 제자들에게 물었다. ‘작은 솥에 떡을 쪘다. 그런데 세 명이 먹기엔 모자라지만 천명이 먹으면 떡이 남는다. 이유를 아느냐?’ 그의 대답에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밖에서 이것을 듣고 있던 노스승이 ‘자기 배 채우는 것에 급급하면 항상 음식이 부족한 법일세’라고 말하자 그 스승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렇습니다. 서로 다투면 부족하고 사양하면 남는 이치입니다.’ 이번에 노스님이 그에게 문제를 던졌다. 이번에는 노 스승이 물었다. ‘그렇다면 자네는 세상에서 가장 큰 떡이 무엇인지 아시겠나?’ 그가 대답을 못하자 노 스승이 하는 말이 ‘바로 입안의 떡이지’했다는 것이다.
먹을 수 없는 떡이 아무리 크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자기가 맛볼 수 있는 떡 그러니까 스스로 깨달은 것만이 마음의 양식이 된다는 얘기였다.

[어리석음으로 집을 삼고]
그는 부자였지만 어리석기가 그지 없었다. 하루는 이 부자가 이웃마을에 다니러 갔다가 그 말을에 제일가는 부자의 삼층집을 보게 되었다. 부러운 마음으로 돌아와서는 자기 집이 불만족 스러워서 무척이나 화가났다. 그래서 목수를 불러서는 그집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는 목수에게 그 집처럼 멋있는 집을 지을 수 있느냐고 물자. 그가 대답하기를 그 집은 목수 그자신이 지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는 집을 짓는 것을 보기 시작했다. 목수는 이제 땅을 고르고 벽돌을 쌓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부자가 하는 말이 나는 삼층집을 원한다. 아래 두층은 갖고 싶지 않고 3층부터 지어줘. 목수가 한심해서 말했다. ‘일층을 짓지 않고 어떻게 이층을 지을 것이며 이층을 짓지 않고 어떻게 삼층을 지을 수 있습니까?’ 그러나 그는 막무가내였다. ‘내가 집이 없어서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나는 삼층이 필요해.’하면서 때를 쓰는 것이다.

[볶은 깨]
아니는 배가 고파서 먹을 것을 찾았다. 그런데 먹을 것이라고는 깨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날것으로 먹었으나 맛이 씁쓰름해서 프라이팬에 깨를 볶아서 먹기 시작했다. 아이는 생각했다. ‘깨를 볶아서 땅에 심으면 맛있는 깨를 잔뜩 얻을 수 있을 거야’ 아이는 집에 있는 깨를 모두 볶아사 땅에 심었다. 그리고 매일 같이 땅을 관찰했지만 복은 깨에서는 싹이 나지 않았다. 이 예화를 통해서 여러분 볶은 깨는 싹이 나지 않습니다.

[멀리 보기]
돼지 몸에 이 세 마리가 붙어서 서로 좋은 자리르 차지하려고 다투었다. 그때 지나가던 다른 이가 물었다. ‘왜들 그렇게 싸우니?’ 세 마리가 동시에 대꾸했다. ‘더 맛있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지.’ 그러자 지나가던 이가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보름후면 이 집 영감님 환갑 잔칫날이잖니. 사람들은 그날 이 돼지를 펄펄 끓는 물에 삶을 거야. 그런데 그일은 걱정하지 않고 자리 싸움만 하다니, 답답하구나.’
세 마리의 이는 그 말을 듣고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합심하여 쉬지않고 돼지의 피를 빨아댔다. 돼지는 점점 여위어갔고 잔칫날이 되자 사람들은 다른 살찐 돼지를 선택하게 되었다.

[인내심]
철하자로 유명한 사람에게는 악처로 소문이 자자한 아내가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철학자에게 질문을 던지곤 했다. ‘결혼을 하는 것과 안 하는 것, 어느 쪽이 더 좋은 삶입니까?’ 이데 대하여 철학자는 말했다. ‘나로서는 결혼을 권하고 싶습니다. 좋은 아내를 얻으면 행복할 것이고 나쁜 아내를 얻으면 철학자가 될테니까요.’
어느날 철학자가 밤 늦게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바가지를 긁기 시작했다. 철학자는 이런 경우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 최고임을 삶을 통해서 터득하고 있었기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내는 화를 삭이지 못하고 바깥으로 나가더니 물이 가득 한 물동이를 가지고와 그에게 퍼부었던 것이다. 그래도 철학자는 태연하게 물을 털며 ‘허허, 날씨 한 번 험악하군, 천둥이 치더니 금세 소나기가 쏟아지네, 그려’

[이 시대 정치인]
한방에 기거하던 네명의 수행자기 일주일 동안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지내기로 했다. 모두 약속을 했다. 그런데 저녁이 되자 촛불이 가물거리며 꺼지려는 순간 한 수행자가 외쳤다. ‘촛불이 꺼지려고 해’ 그러자 다른 수행승이 말했다. ‘말하지 않기로 했잖아!’ 촛불이 꺼진 어두운 방 한쪽에서 누군가가 말을 했다. ‘너희 두명은 약속을 어겼어’ ‘너희들 전부 다 약속을 깨뜨렸어. 나만 말을 안했다구. 하하하!’ 어두운 방안에 마지막으로 약속을 어긴 사람의 통쾌한 웃음 소리가 울려퍼졌다.

[치수에 중독된 어리석음]
한 남자가 신발을 사기 위해 발 치수를 재어 종이에 적어 놓았다. 그런데 시장에 가면서 그 종이를 깜박 놓고 나왔다.그는 신발 가게에 와서야 그것을 깨닫고 주인에게 말했다. ‘치수 적은 종이를 그만 집에 두고 왔구려’ 그래서 다시 집에 가서 종이를 가지고 왔으나 신발가게 문이 닫혔다. 그가 옆가게 주인에게 그 이야기를 하자 주인이 어이없어하면서 말했다. ‘아, 신어보고 맞는 걸 고르지 그랬어요?’ 이에 그가 하는 말이 ‘치수를 믿지 어찌 발을 믿겠소’

[잠시 들른 세상]
한 여행자가 그 도량의 깊이에 대해 평판이 자자한 수도승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수도승의 방은 너무나 작고 초라했으며 보이는 가구라고는 책상밖에 없었다. 여행자가 물었다. ‘가구는 전부 어디에 있습니까?’ 이에 수도승이 되묻는 것이었다. ‘당신의 가구도 여기에 없지 않소?’ 여행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저야 이곳에 잠시 다니러 온 나그네 아닙니까?’ 수도승은 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도 이 세상에 잠시 다니러 온 나그네입니다.’

[시간의 순리]
오래 전 옛날에 작은 나라의 왕이 늘그막에 딸 하나를 두게 되었다. 왕은 딸의 출생이 무척 기뻣으나 막상 갓 태어난 공주를 보자 마음이 서글퍼지는 것이었다. 왕은 급히 의사를 불러 말했다. ‘공주의 성장을 보지 못하고 죽을까 두렵구나. 나를 위해서 공주를 빨리 자라나게 할 수 있는 약을 만들어 오너라.’ 의사는 몹시 남감하여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왕의 추궁하는 듯한 얼굴에 무겁게 입을 열었다. ‘공주님에게 약을 먹여 빨리 자라게 할 수 있습니다. 단 한가지 지켜야 할 것이 있는데 약을 먹는 십 년 동안은 공주님을 보셔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셔야 나타납니다.’ 왕은 그렇게 하기로 약속했다. 십 년의 세월이 흘렀고, 의사는 왕에게 공주를 만나도록 했다. 왕은 공주를 보고 뛸 듯이 기뻐하면서 말했다. 참으로 훌륭한 의사구나. 이렇게 어여쁘게 자라게 하다니. 왕은 의사를 높이 치하하고 많은 상금까지 주었다.

[세상의 권세]
그는 깨달은 자로서 나라 안에 명성이 자자하였다. 왕의 귀에까지 그 명성이 전해지자 왕은 그를 한 번 시험해 보고 싶어졌다. 어느 날 왕은 그를 초청했다. 그는 허공 가득 부는 바람에 옷깃을 부풀리며 왕을 만나러 왔다. 그런데 그는 왕을 보고서도 예를 갖추기는커녕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이에 화가 난 왕이 그에게 소리쳤다. ‘나는 이 나라의 왕이요!’ 그는 눈을 껌뻑 거리며 태연하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압니다.’ 왕의 얼굴은 노여움으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안다구! 그런데도 나를 모른척 하느냐? 이놈’ 그는 아랑곳 하지 않은채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허공이 보이십니까?’ ‘그렇소.’ ‘허공이 한 번이라도 왕께 아는 척했습니까?’
[자신에게 맞는 삶]
어느 날, 갑이라는 제자가 스승을 찾아와 물었다. ‘들으면 곧 행해야 합니까?’ ‘어찌 부모님이 계신데 듣는 대로 행하겠느냐? 두루 살펴서 행해야 되지 않겠느냐?’ 며칠 후에 을이라는 제자가 스승을 찾아와서 물었다. ‘들으면 곧 행해야 합니까?’ ‘맞다, 들으면 곧 행해야 한다.’ 같은 질문에 전혀 다른 대답을 하는 스승을 옆에서 지켜본 한 제자가 물었다. ‘며칠 전에 갑이 들으면 곧 행해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 선생님은 부모님이 계신데 어찌 그러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오늘 을이 물었을 때는 곧 행해야 한다고 하시니 그 이유가 듣고 싶습니다. ’갑은 남보다 행동이 빠르고 진취적이기 때문에 그 성품을 누른 것이고 을은 몹시 소심하여 행동은 적고 생각이 많기 때문에 북돋아 준 것이다.
[남자]
당신은 남자중의 남자입니다. 당신은 남성적이 매력이 넘치는 사람입니다. 남자는 언제 진정한 남성이 됩니까? 그 영화 배우는 매우 길어 보이는 시간, 약 15-30초정도 생각에 잠겼다.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나서 그르 유명하게 만든 독특한 콧수염을 기른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남자는 그의 아버지가 그를 남자라고 불러줄 때 진정한 남성이 됩니다. 그때 까지는 남성이라고 할 수 없지요.’

[고통이 차오를 때]
나의 딸은 피아노를 시작한지 2년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손가락에 힘이 없는지 피아노 소리가 질질 끌리며 들려 옵니다. 이렇게 진도가 나가다가는 딸 제나는 피아노를 포기하겠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연습을 계속 하라고 강요한다면 나는 잔인한 아버지가 되는 것일까요? 내가 그 아이의 흘리는 눈물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나는 왜 딸이 고통을 느끼도록 합니까? 딸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 그애가 받는 고통이 내일의 훌륭한 음악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마가는 폭풍우가 부는동안 ‘제자들이 괴로이 노젓는 것’을 예수께서 알고 계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막 6:48)
그분은 밤새도록 제자들을 보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가야할 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그 시간이 되자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십니까? 왜 하나님은 병이 깊어 질때까지 기다리십니까? 왜 주님은 나사로가 죽을 때 까지 기다리셨습니까? 나는 알지 못합니다. 내가 아는 유일한 것은 그분의 시간은 항상 정확하다는 것입니다. 나는 오직 그분이 최상의 것만을 행하신다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우연은 없습니다. 모든 사건은 우리가 하나님께 더욱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계획된 것입니다.
-영원보다 더 오랫동안 – 맥스 루카도

‘All tragedies are finished by a death
All comedies are finished by a marriage.’- byron

[헬렌켈러]
헬렌 켈러는 자기가 사흘 동안만 볼 수 있다면, 첫날에는 그동안 자기에게 친절을 베풀어준 사람들을 만나 그 고마운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겠다.그외 나머지 시간은 책을 많이 읽겠다. 둘째날은 일찍 일어나서 새벽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겠다. 그리고 박물관에 가서 인류가 이룩한 발전의 발자취를 보겠고 미술관도 가서 인간의 창조력을 보고싶다. 셋째날은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숲의 새 소리와 바닷가의 파도 소리를 듣겠다. 그리고 사람들이 땀흘려 일하는 일터를 보겠다.그리고 연극 한편을 보고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예술성과 아름다움을 감사하겠다.‘
[마지막 유언]
살려 주세요.

나는 다시 그날 저녁으로 되돌아가고 싶다. 거리에서 이 작은 책을 펼치고 나서 겨우 처음 몇 줄을 읽어 보고 다시 덮고는 가슴에 꼭 끌어안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정신없이 읽기 위해 내 방에까지 달려왔던 그날 저녁으로 그리고 나는 아무런 마음의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 부러워한다. 오늘 처음으로 이 책을 열어보게 되는 저 알지 못하는 젊은 사람을 너무나도 열렬히 부러워 한다. – 알베르 까뮈가 장그르니에의 섬을 읽고 –

교황이 심장이 좋지 않아서 이식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추기경이 많은 성도들을 광장에 불러 놓고 자초지종을 설명을 합니다. 그리고는 누가 교황을 위해서 심장을 기증할 사람이 있습니까? 했더니 거의 모든 사람이 손을 들면서 ‘제가 기증을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제가 기증을 하겠습니다.’ 모두가 자기가 기증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심장이 하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이 추기경이 여러분 고맙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만 심장을 주셔야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그러다가 추기경이 그러면 제가 깃털을 여기서 날릴테니까 이 깃털이 머리위에 떨어지는 사람이 기증을 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동의를 했지요. 그래서 이 추기경이 이제 깃털을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바람에 이리 저리 날리다가 이제 사람들 위로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반응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자기 위에 내려 오는 깃털을 향해 입으로 후후 불어서 다른 사람에게로 날려 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 깃털이 땅바닥에 떨어 졌다는 이야기 입니다.
교회를 위해서 일하고자 하는 마음은 서로에게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한눈에 반했다. 애꾸눈 남자가 여자에게 나는 말을 했었다. 내가 너를 처음 보았을 때 한 눈에 반했다고 말을 하지 않았나?

2년 동안 목욕을 하지 않는 남편이 있었다. 부인이 남편에게 목욕하라고 화를 냈다. 목욕탕에 갔던 때밀이 한테 밀어달라고 했다. 1시간 2시간, 4시간 밀어도 밀어도 끝이 없었다. 그때 이 남편이 미안한지 이제 그만하라고 말하는 순간, 그 때밀이 아저씨가 갑자기 때 타울을 바닥에 집어 던지더니만 하는 말씀이 ‘야, 너 지우개지.’
너 지우개지. 말해도 해도 듣지 않을 때 그렇게 말하시기 바랍니다. 너 지우개지. 우리는 지우개가 아닌가요? 하나님이 계속 우리에게 말하지만 끝까지 바뀌어지지 않는 우리는 지우개가 아닌가요?

한참 좋은 나이다.
30대는 20대를 보고 50대는 30대를 보고 요즈음은 같은 10대 안에서도 한 살 차이로 세대가 바뀌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사실 보면 모두 시기가 다 좋은 때이다. 톨스토이는 70의 나이에 부활을 썼고 괴테도 82세에 파우스트를 탈고했다. 주나라 강태공도 80에 입신해서 중국 천하를 통일했으며 모세또한 80에 일을 시작했고 아브라함은 75세에 신개척지로 갔다.

먼 옛날 인도에 겸손한 한 임금. 누구에게나 인사. 백성들은 좋아함. 대신들은 못마땅하게 생각. 그래서 대신들이 고쳐줄 것을 요구. 임금이 대신들을 불러놓고 세 개의 해골을 내 놓음. 고양이,말, 사람의 해골. 임금은 대신들에게 주며 일렀다. 전국을 돌며 이 해골을 팔아 가지고 오시오. 고양이 해골- 문지방에 두면 쥐가 오지 않는다. 말해골-질병이 떠나간다. 사람 해골 팔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사람들의 머리가 중요하다하여 잘 숙이지 않지만 사람의 머리가 귀한 것은 살아 있을때이고 죽으면 아무 의미없다. 죽으면 무섭기만 하다.

‘정숙한 여자는 욕정이 설령 천사를 가장하고 와서 유혹해도 동하지 않지만, 음탕한 여자는 빛나는 천사와 짝을 지어도 천상의 잠자리에 싫증을 내고 쓰레기통에서 썩은 고기를 뒤진다.’ 이 참을 수 없는 욕망의 움직임.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인가?’
햄릿이 자기 어머니가 아버지가 죽자 그의 동생 즉 시동생과 결혼하는모습을 보고

‘레미제라블’의 작가 빅토르 위고는 싸움을 세 가지로 정의함. ‘국가와 국가의 싸움, 자여노가 인간의 싸움, 자기와 자기의 싸움인 내면적 자아의 싸움,’ 세 번째가 가장 어려움,
노벨문학상 받은 러시아의 솔제니친은 감시와 억압과 고통 속에서 26만여 페이지에 달하는 대작 ‘수용소 군도’를 저술함, 6백만 명의 정치범이 갇혀 있는 소련 수용소의 내막을 고발하는 이 소설을 위해 2백 27명으로부터 증언을 수집. 스탈린, 레닌까지 규탄.
독일의 천문학자 케플러는 부모에게 버림받아 갓난 아기 때부터 할머니손에서 양육, 네 살 때 병을 앓아 한 손을 쓰지 못하고 시력도 나빠짐. 꿈 잃지 않고 천문학자가됨. 30세때 체코슬로바키아로 이주 아내와 외아들이 죽는 가운데서도 그는 연구. 태양계의 중심이 지구가 아니라 태양이라는 사실 발견. 17세기에 .
고난을 당하는 것은 기차가 터널을 지나는 것과 같다.

플라톤 이후 영혼만 살아남는다는 영혼 불명사상이 있었습니다. 그의 책 파이돈에 보면 이 육체는 감옥이기에 하루빨리 이 육체에서 벗어나야만 영혼이 자유와 해방을 얻는다는 이론이지요. 우리 대부분 크리스챤들도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 하루빨리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어느덧 최불암 나이 여든. 몸도 마음도 움직이지 않음. 어느집 대문앞에서 초인종을 누르지 못해 쩔쩔 매는데 한 꼬마가 지나간다. ‘애야, 초인종 눌러주련’ 그 부탁에 꼬마는 초인종을 누르려고 애를 쓰지만 키가 작기에 역부족, 10분을 그렇게 하다가 초인종을 누르는데 성공, 띵똥, 그러자 최불암 꼬마의 어깨를 툭치며 하는말, 야, 튀어.

[금덩어리 이야기]
전원일기 야외 녹화 마치고 돌아오던 최불암. 산모퉁이에서 금덩어리 발견. 너무커서 다음날 가방을 가지고 와서 담아가야지 하고 금을 땅에 묻어둠 그리고는 푯말에다가 ‘최불암이 파면 금, 다름 사람이 파면 뱀.’ 그 길을 가던 땅군이 이것을 보고 밑져봐야 뱀이겠지 하고 팠는데 금이 나와서 가져감. 그리고 자기가 잡은 뱀을 집어 넣음. 다음날 최불암, 땅을 파 보니까 뱀이 나왔다. 그 뱀을 보고 최불암. 뱀 대가리를 치면서 ‘야, 나야 나, 정신차려 나 최불암이라니까.’

[그러나 내일은]
지휘자 금난새 씨엑 고민이 있었다. 대원들이 번갈아 가며 연습에 불참하기 때문에 여 연습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백발이 성성한 심벌즈 주자 최불암씨만은 한 번도 빠짐없이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드디어 공연전날 많은 사람들이 불참을 했는데 최불암 여전히 참석, 이 모습을 보고 금난새씨 여러분, 최불암씨 본받으세요. 한 번도 연습에 빠진적이 없잖아요.‘ 그때 최불암 가라사대 ’ 저… 저는 내일 못나오는데요.‘

-리차드 포스터의 「기도」중에서 14쪽-

실제로 기도를 막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다. 그것은 현대의 고학력자들에게 거의 보편적인 것으로서 기도하기 위해 기도에 관한 모든 것을 먼저 ‘완전히’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즉 실제로 기도할 수 있으려면 먼저 우리의 삶이 멋지게 조율되어야 하고, 기도하는 법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도에 따르는 철학적인 문제들을 연구해야 하고 기도의 위대한 전승을 더 잘 이해하는 등 선행되어야 할 많은 것들이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것은 출발점이 잘못된 것이다. 마치 마차를 말 앞에 매어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에밀리 그리핀은 「기도하는 것은 기꺼이 소박해지려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신 것은 기도는 어린아이들이 부모님께 나아오는 것과 어느정도 유사하다는 사실이다. 때때로 우리의 자녀들이 맹렬한 요구를 가지고 우리에게 나아오는 경우가 있다. 종종 우리는 그들의 요구가 이기적이거나 저속하기 때문에 슬퍼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들의 동기가 어찌되었건 그들이 우리에게 나아온다는 그 자체가 단순히 기쁜 것이다. 실제로 기도하는 그 행위속에서, 즉 하나님과의 친밀하고 끊임없은 상호작용속에서 이 문제들은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리차드 포스터’의 「기도」中 22쪽~23쪽에서-
말많은 연인
연인이 여러 달에 걸쳐 몇 차례고 거듭 구애를 했건만, 번번이 야멸차게 퇴짜만 맞아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윽고 애인이 수그러들었다 – 어느 때 어느 곳으로 만나러 오라며.
그 때 그 곳에서 연인은 마침내 애인 곁에 앉게 되었다. 그러자 그는 호주머니에서 편지를 한 무더기 꺼내 놓았다. 지난 몇 달 동안 썼던 연서들로서, 자기가 느끼는 괴로움을 털어놓고 사랑과 결합의 기쁨을 맛보고 싶은 불타는 욕망을 표현하는 내용들이었다. 연인은 그것을 애인에게 읽어 주기 시작했다. 시간은 흘러만 가건만, 여전히 그는 읽고 읽고 또 읽고만 있는 것이었다. 결국 여자가 말했다.
“참, 별 바보 같은 남자 다 보겠네. 이 편지는 그러니까 모두가 당신이 절 갈망하고 있다는 그런 얘기 아녜요? 그런데 보세요. 여기 당신 곁에 제가 앉았잖아요. 그런데도 당신은 줄곧 그 멍청한 편지나 읽고 있으니, 대체 어찌 된 것이냐 말예요!”
열렬한 신자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여기 네 곁에 내가 있지 않으냐. 그런데도, 너는 줄곧 머리로 나에 관하여 궁리나 하고, 혀로 나에 관하여 얘기나 하며, 책으로 나에 관하여 읽기만 하는구나. 언제면 고요해져 나를 맛보려느냐.
-종교박람회(속뜩 그윽한 이야기모음)中에서, 엔소니드 멜로-
전승에 의하면 요한 사도가 에베소 교회의 감독으로 있을 때 비둘기를 키우는 취미가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한 장로가 사냥을 다녀오는 길에 요한의 집을 지나다가 그가 새를 데리고 노는 것을 보았다.
그 장로는 요한 사도에게 그런 하찮은 일로 시간을 보내서야 되겠냐고 했다. 그 때 요한은 그 사냥꾼 장로의 활을 보면서 활줄이 늘어져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장로는 “네, 사냥을 하지 않을 때는 활줄을 늘 이렇게 느슨하게 해 놓습니다.만일 항상 팽팽한 채 두게 되면 탄력성을 잃어 사냥할 때 실수를 하게 됩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때 요한 사도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금 마음의 활을 느슨하게 하는 중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리의 화살을 더 잘 쏘아 맞추기 위해서입니다.”
– 오인숙,「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 규장문화사. 1995. –

이제서야 알겠군요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이 한 번은 성지 순례를 갔었는데, 어느날 오후 ‘게네사렛’호수에 도착하였다. 그 호수가에는 여러 척의 배가 있었는데 그 배의 주인은 아랍사람이었다. 마크 트웨인이 그 배 주인에게 다가가 배삯이 얼마냐고 물었다. 아랍 주인은 10달러라고 대답하였다. 그랬더니 마크 트웨인이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하는말 “뭐라고? 10달러라고? 그리스도께서 왜 호수 위를 걸어가셨는지 이제야 알겠군!”
– 송길원목사, “여보, 오늘은 모요일이에요”, 도서출판 하나, 1994. –

탐험가가 고향으로 돌아오자 사람들은 신바람이 나서 아마존에 관하여 샅샅이 알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가 거기서 기막히게 아름다운 꽃을 보았을 때나 한밤에 숲 속의 소리를 들었을 때에 가슴에 용솟음치던, 그 때의 그 느낌을 어찌 말로 다 옮길 수 있으랴. 혹은 야수의 위협을 알아차렸을 적, 혹은 변덕스런 물살을 가로질러 쪽배를 저어 갈 적에 마음 졸이던 그 절박감을 무슨 재주로 전달할 수 있으랴.

“몸소 찾아가 보시오들. 이 경우야말로 ‘백 번 들음이 한 번 봄만 못하다’는 경우지요.” 그러고는 아무튼 길잡이 삼아 아마존 지도를 한 장 그려 주었다.

사람들은 그 지도를 붙들고 늘어졌다. 그것을 액자에다 넣어 마을 회관 벽에 걸었고, 제각기 사본을 떠 가기도 했다.사본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아마존 전문가로 자처했다. 아마존 강의 이 굽이와 저 소용돌이는 어디이고, 이곳 너비와 저곳 깊이는 얼마이며, 급류는 어디 있고 폭포는 어디 있는지, 아닌게 아니라 어느 것 한 가진들 모른다는게 있던가.
텀험가는 지도를 그려 준 일을 평생 내내 후회했다 – 아무것도 그려 주지 말았던들 차라리 나았을 것을.

– 앤소니 드 멜로, 종교박람회(속뜻 그윽한 이야기 모음),
분도출판사 1993 –

인도에서 선교사 메리 리드는 문둥병 환자의 불쌍한 운명을 잊을 수가 없어서 비참한 생각에 시달리고 있었다. 당시 문둥병 환자를 구제하는 방도는 무엇 하나 실시되고 있지 않았다. 마침내 그녀 자신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에 걸리게 되었다. 고원 주둔지의 병원에서 치료하였으나 효과는 없었다. 이윽고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여전히 병명을 알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손가락 하나가 감각을 잃고, 얼굴에 반점 하나가 생기더니 아무리 해도 사라지지 않았다. 드디어 의사가 그 질병의 정체를 알아냈다. 그 여자 자신이 문둥병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이 사실이 본인에게 알려졌다. 그때의 메리 리드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리드는 무릎을 꿇고 자신을 문둥병 환자가 되게 하신 일을 하나님께 감사했다. 그 때문에 마음을 아프게하여 왔던 문둥병환자들과 이제야말로 함께 생활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메리 리드는 인도로 되돌아갔다. 그로부터 몇 해 동안, 저신도 환자로서 문둥병 환자들 사이에서 일하고, 그들에게 건강과 희망을 주는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리드는 재난이라고 생각되는 일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그 불행 속에서 무한한 기회를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불행하고 불운한 일이 우리에게도 닥칠 것이다-아니 벌써 닥쳐 와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재앙이라고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 재앙이라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해야겠다. 만사가 유익이 되도록 해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모든 일은 우리에게 있어 기회인 것이다.
– 향기있는 사람, 생명의 삶 편집 (그리드인의 365일, 윌리엄 바클레이) –

폴란드의 유명한 피아니스트 파데르브스키는 첫 레슨을 받고 나서 선생으로부터 “네 손은 조막손이니 아예 그만두는 게 좋겠다.”라는 말을 들었다.
불후의 테너가수 카루소도 처음 노래를 부르고 나서 ‘구멍 뚫린 문풍지에서 나는 목소리’란 혹평을 들었다.
월트 디즈니가 처음 만화원고를 들고 신문사를 찾았을 때 ‘수준 이하’라는 말을 들으며 거절당했다.
자동차왕 포드는 첫 자동차를 만든 후 후진 기어를 안 달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인생을 망치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좌절이다.

행복은 가정에서 출발
퀴리 부처가 순수한 라듐을 제조할 때까지는 4년의 세월이 걸렸다. 퀴리는 차고 같은 실험실에서 연구를 계속했다.
그러나 과학자이기에 앞서 아이를 키우고 가사를 돌보는 주부로서의 역할을 잊은 적이 없었다. 남편 피에르 퀴리의 애정은 그녀가 이 두 가지 일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힘이 됐다.
그녀는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좋은 남편을 만나서 행복해요.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 주신 겁니다.”
가정은 행복한 삶의 출발점이다.
– ‘가슴에 담는 짧은 이야기’ 겨자씨, 김상길, 국민일보사, 1996. –

미국 코넬 대학교의 실험실에서 있었던 예화를 하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개구리 한 마리를 차가운 물이 담긴 큰 비이커에 넣었습니다. 비이커 밑에는 분젠등을 놓고 1초에 화씨 0.017도씩 데워지도록 불꽃을 아주 작게 놓았습니다. 온도가 서서히 높아지기 때문에 개구리는 온도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비이커에서 뛰어올라 안전한 곳으로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구리는 태평스럽게 앉아 있었습니다.
온도는 0.017.도씩 올라 가는데 개구리는 여전히 제자리에서 빠져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두 시간 반쯤 지난 뒤 개구리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개구리는 뜨거운 물에 푹 삶아져서 죽어 있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죽은 것입니다.
자기가 죽어가는 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가 그대로 삶아진 것입니다.
다윗이 바로 이와 같은 개구리의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안일한 궁정의 환경이라는 비이커 속에서 정욕의 불이 0.017도씩 서서히 다윗을 데우기 시작했지만. 그는 자기가 얼마나 위험한 처지에 놓여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방심하고 있다가 자기도 모르게 당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편안할 때일수록 더 기도해야 합니다. 더 바짝 말씀 가까이 다가앉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행복한 여건을 그 분의 이름을 높이는 일에 사용해야 합니다. 이런 열망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면 비록 당신 안에 어떤 육체의 정욕이 도사리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가 발악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절대로 주어지지 아니할 것입니다.

인간관계에 대한 십계명을 소개한다.
1. 사람들을 환영하라. 환영의 말을 하는 것만큼 사람들을 좋게 하는 것은 없다.
2. 사람들을 웃음으로 대하라. 찡그리는 데는 72개의 근육이 필요하지만 웃는 데는 14개의 근육만 있으면 된다.
3. 사람들을 그 이름으로 부르라. 가장 감미로운 음악은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다.
4. 친절하게, 그리고 도움이 되도록 하라.
5. 성심껏 대하라.
6. 진정으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라. 하려고만 한다면 모든 사람을 좋아할 수 있다.
7. 칭찬에 관대하라. 비판은 조심스럽게 하라.
8. 다른 이들의 감정을 잘 고려하라. 그리하면 고맙게 생각할 것이다.
9. 다른 사람의 견해에 대해 신중하라. 논쟁에는 세가지 면이 있다. 너의 것, 다른 친구의 것, 그리고 올바른 것.
10. 봉사는 기민하게 하라.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은 우리가 남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 가슴에 담는 짧은 이야기, 「 겨 자 씨 」, 김상길, 국민일보사 –

시애틀의 물리 치료사인 스탄 느웰 박사는 일주일에 하루는 진료를 하지 않고 특별히 성경 공부와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허브 스테들러 씨는 수년전부터 자신의 시간을 쪼개어 교회 건물의 보수, 관리 및 그 밖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도맡아 해오고 있습니다.
바우만 씨 부부는 오래 전부터 그들의 집을 젊은이들을 위한 성경공부 장소로 사용해 오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이웃 사람들에게 복음 전해 함께 성경 공부를 하고 도움이 필요한 노약자들을 돕거나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에게 상담을 해 주는 일 등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은 이 일을 위해 부속 건물을 따로 더 지었습니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 그들은 다른 좋은 일들을 포기했습니다.
우리는 여가를 이용해 쉰다거나 책을 읽는다거나 유익한 텔레비젼 프로그램을 시청한다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내는 것에 대해 무조건 죄책감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이렇게 보내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문제는 여가 시간의 몇 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강압적인 스파르타식 훈련이나 자학적인 생활 양식에 따르는 상금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는 균형과 초점이 있어야 합니다.
* 기쁨으로 산다 -생명의 삶 편집- 도서출판 두란노 *

오래전 존스 홉킨스 대학의 한 교수는 한 그룹의 대학원생들을 빈민굴에 보내어, 12세에서 16세의 소년 200명을 대상으로 그들의 경력과 환경을 조사하여 그들이 장차 건전한 삶을 살 확률을 예측해 보도록 했습니다. 사회적인 통계들을 조사하고 그 소년들과 대화도 나누고,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많은 자료를 수집한 후, 이 학생들은 그 소년들 중 90%가 교도소 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25년 후, 또 다른 대학원생들 그룹이 그 빈민굴에 가서 그 예측의 정확성을 알아보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소년들 – 지금은 어른이 되었지만 – 중에는 아직도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고,먼 곳으로 이사를 간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학생들은 애초의 200명중 180명을 만나 볼 수 있었는데, 그들 중의 단지4명만이 교도소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범죄의 온상에서 자라난 이 사람들이 그토록 훌륭한 기록을 낼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이었습니까? 조사하러 간 학생들은 그들로부터 수십 차례나 “그 빈민굴에는 한 선생님이 계셨는데…”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들이 조사를 더 해본 결과, 그 소년들의 75%가 어떤 부인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조사원들은 은퇴한 교사들을 위한 숙소에 살고 있는 그 부인을 만나서, 그렇게 많은 빈민굴 소년들에게 어떻게 그토록 큰 영향을 끼쳤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이 부인이 어떻게 했기에 그 소년들은 그녀를 잊을 수 없었을까요? 부인은 “아니오, 저는 아무것도 한 게 없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시절을 곰곰히 회상해 보더니, 혼잣말로 “난 그 소년들을 사랑했었지…”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 정직․도덕 그리고 양심, 제리 화이트 –

내가 다른 나라 말을 완전히 익히고 그 나라 사람처럼 얘기할 수 있어도,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익히지 못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졸업증서와 학위증을 받고 모든 현대적 기술을 배웠다 하더라도, 주님의 사려 깊은 사랑을 받지 못하면 나는 아무석도 아니요, 내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과 당당히 싸워 이기고 그들을 조롱할 수 있어도, 주님의 호소하는 목소리를 듣지 못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강한 신념과 위대한 이상, 그리고 거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땀 흘리고 피 흘리고 울며 기도하고 애원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갖지 못했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요, 다른 이에게 옷과 돈을 준다고 하더라도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품지 못한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
내가 모든 계획을 포기하고 집과 친구를 떠나 전도사업에 몸을 바친다 하더라도, 하루하루 번거로움과 전도사업에 대한 경멸을 참지 못하고 이기적인 인간이 되어 버려서, 일상 생활의 권리와 여가와 사소한 계획을 포기할 만한 사랑을 갖지 못한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요, 그러면 내게서 미덕이 사라지는 것이라.
내가 모든 아픔과 질병을 치료한다고 하더라도, 친절한 주님의 사랑에 굶주려 상처받은 마음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어떤 기사를 쓰거나 책을 출판해서 갈채를 받는다고 해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뜻을 그의 사랑의 말로 전달할 수 없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
– 신앙 다이제스트 –

1888년, 한 유명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다이나마이트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다이나마이트를 제조해서 일약 당대의 명사가 되었습니다. 많은 돈을 벌고 사람들의 관심과 촉망을 받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 언제나 하던 버릇처럼 신문을 펴 든 순간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자기가 죽었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죽음을 알리는 신문 기사를 읽는다면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요? 그 신문 기사는 이렇게 씌여 있었습니다. “세계 최초로 다이나마이트를 발명한 유명한 알프렛트 노벨이 죽다.” 이 기사를 읽은 그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실 자기 동생이 죽었는데 기자들이 혼돈하여 그가 죽은 것으로 보도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사망 기사 앞에서 노벨은 강한 도전을 받았습니다. ‘내가 수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폭탄을 만들어서 재물과 명성을 얻었지만 결국 내 인생의 마지막이 이렇게 끝나고 마는 것은 아닐까?’ “많은 사람들은 한꺼번에 죽일 수 있는 폭탄을 만든 제조업자가 드디어 죽다.”
그는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훗날 하나님과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재산을 쓰기로 결심합니다. 그것이 저 유명한 알프렛트 노벨의 노벨 평화상이 시작된 이유입니다. 애써 돈을 벌기는 하지만 무엇을 위해, 어떻게 써야 할지 알지 못하는, 철저하게 자기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 혹시 나 자신은 아닐까요?
– 생명의 삶 편집부 –

1. 다섯손톱 가운데 가장 잘 자라는 것은 어느 것일까요?
1) 엄지 2) 검지 3) 중지 4) 약지 5) 소지
2. 다음중 감기에 가장 걸리기 힘든 곳은?
1) 적도 바로 밑의 마을 2) 온대의 산 속 마을 3) 남극

3. 잘 때 자세가 몸 상태를 나타낸다. 몸 상태가 가장 좋은 자세는?
1) 대(大)자 모양 2) 태아처럼 둥근 경우
3) 팔을 몸에 붙인 시체 모양의 자세

4. 적의 습격을 받으면 머리를 집어넣는 거북이, 어떻게 머리가 그 좁은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1) 뼈를 S자형으로 굽혀서 들어간다.
2) 접는 우산처럼 부피가 작아져서 들어간다.
3) 등껍질 안의 공간이 넓어진다.

5. 어떤 두꺼비가 무심코 벌을 삼켰다. 그런데 벌이 두꺼비 몸 속에서 난폭하게움직인다. 그후 두꺼비는 어떻게 할까?
1) 평온하게 소화시킨다.
2) 물을 벌떡 벌떡 마신다.
3) 밥통째로 한꺼번에 토해낸다.

– 고정관념을 깨자 어, 그래? 이종주,김경훈 편저, 새로운 사람들 –

6. 충치의 원인인 세균「스트렙토코카스 뮤턴스」는 다른사람에게 전염될까?
1) 전염된다. 2) 전염 안된다. 3) 아직 해명되지 않았다.
7. 우주복을 입지않고 우주공간으로 나가면 어떤 일이 생길까?
1) 혈액이 언다. 2) 혈액이 끓어 오른다. 3) 코피가 난다.

8. 다음중 실제로 존재하는 개미는?
1) 식량을 다른 곳에서 빼앗아 오는 개미
2) 식량을 재배하는 개미 3) 개미를 먹는 개미

9. 배의 혀에 대한 설명중 맞는 것은?
1) 입을 다문 상태에서도 혀를 낼 수 있다.
2) 냄새를 맡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3) 혀만 다른 곳보다 체온이 높다.

5. 공격해오는 사자의 공격의욕을 꺾는 방법은?
1) 개다래 나무(자생 덩굴성 식물)를 준다.
2) 가만히 숨을 멈추고 죽은체 한다.
3) 뭔가로 움직이면서 재롱을 부린다.

– 고정관념을 깨자 어, 그래? 이종주,김경훈 편저, 새로운 사람들 –

11. 광할한 대지 위에 놓아두어도 말은 두 마리가 있으면 반드시 자기의 코 쪽에 상대의 꼬리가 오도록 한다. 왜 그럴까?
12. 침이 없어도 맛을 느낄 수 있을까?
13. 꿀은 썩지 않을까?
14. 복어 한 마리의 독은 몇 사람이나 죽일 수 있을까?
15. 키스로 사마귀가 옮을까?
16. 머리카락과 눈썹은 같은 속도로 자란다. 그런데 왜 눈썹은 머리카락처럼 길지 않은 것일까?

11. 말은 꼬리를 휘둘러 자기뿐만 아니라 상대편 머리의 파리나 벌레들을 쫒아주기 위해 그렇게 한다. 그러나 추울 때에는 거꾸로 얼굴을 맞댄다. 서로의 내뱉는 숨으로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다.
12. 혀는 침없이는 맛을 느끼지 못한다. 마른 혀에는 소금이나 설탕을 올려 놓아도 전혀 맛을 느끼지 못한다. 즉 우리의 혀는 침을 통해서만 맛을 본다. 힘든 일을 끝마치거나 운동경기를 마치고 혀가 바짝 말랐을 때 어떤 음식을 입에 대도 맛을 못 느끼는 것은 이 때문이다.
13. 꿀은 썩지 않는다. 꿀은 살아 있기 때문이다. 이집트 왕 바로의 무덤에서 나온 5천년 전의 꿀도 아직 제 맛 그대로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이 신비한 음식에는 철, 구리, 망간, 규소, 염화칼륨, 나트륨, 인, 마그네슘 등이 가득 들어 있어 그야말로 영양덩어리다.
14. 복어의 독은 무색 무취이고 아무리 강한 열에도 없어지지 않는다. 복어의 독성분은 테트로도톡신으로 청산가리의 13배나 강한 독성을 가졌고, 0.5mg으로 50kg의 사람을 죽일 수 있다. 독이 많은 복어 한 마리는 사람 30명을 죽일 수 있다.
15. 옮는다. 피부과 의사들은 사마귀가 있는 사람과는 키스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사마귀의 원인은 전명성이 강한 바이러스로 키스로 옮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16. 머리카락의 수명이 6년인데 반해 눈썹은 평균 6개월이다. 눈썹도 머리카락과 같은 속도로 자라지만 6개월마다 빠지므로 길게 자랄 시간이 없다.
– 고정관념을 깨자 어, 그래? 이종주,김경훈 편저, 새로운 사람들 –

가 상 작 전
군대에 새로 들어온 병사가 훈련을 받고 있었다. 적으로 변장한 병사가 실탄이 들어있지 않은 총으로 겨냥하고는 땅땅땅……..하며 입으로 총소리를 냈지만 신병은 그냥 도망쳤다.
「이봐, 총을 맞았으면 쓰러져야지.」
「무슨 소리, 나는 탱크야.」
다음날 훈련이 다시 시작되었다. 산악훈련 가운데 건너게 된 다리에는 다음과 같은 팻말이 붙여져 있었다.
「이 다리는 폭파된 다리임」
그러나 훈련 중에 폭파된 이 다리를 태연히 건너가는 신병이 있었다. 장교가 노발대발하여 신병을 불러 세웠다. 신병이 들고 있는 깃발에는 이렇게 씌여 있었다.
「잠수 중」
가족의 건강
몸에 이상을 느낀 한 사나이가 의사에게 진찰을 받고 소변을 받아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는 곧 큰 술병에 가득 오줌을 가져왔다.
「검사에는 이렇게 많은 소변이 필요없어요. 하지만 이왕 가져왔으니 그대로 해 봅시다.」
검진결과 아무 이상이 없자, 사나이는 재빨리 가족에게 전화를 걸었다.
「모두 건강하다니 마음 놓으라고.」
– 짤막한 탈무드, 마빈 토게이어, 기독태인문화사 –

유태인의 장례
유태인들의 장례식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에 구별이 없고, 학자와 무식한 사람을 구별하지 않고 똑같은 관과 옷을 입혀 행한다. 인간들의 지위나 부귀 영화에 따라 장례식이 달라지는 경우는 없다. 이들은 인간 평등을 존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배당에서 같은 모습, 같은 모자를 쓰고 함께 모여 앉아 기도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현인이 되기 위한 7가지 조건
1. 현명한 사람 앞에서는 침묵을 지킨다.
2. 상대의 말을 중간에서 끊지 않는다.
3. 대답을 침착하게 한다.
4. 항상 핵심만 뽑아 질문하고, 대답을 조리있게 한다.
5. 먼저 해야할 것과 나중에 할 것을 구분해 한다.
6. 모든 것은 스스로 솔직하게 인정한다.
7. 진실은 망설이지 않고 인정한다.
– 짤막한 탈무드, 마빈 토게이어, 기독태인문화사 –

치사한 귀신
「랍비님, 제 아내를 살려 주십시오. 아무래도 가망이 없어 보임니다.」 「랍비는 잠시 기도를 한 후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안심하시오. 내가 사신(死神)을 야단치고 칼을 빼앗았으니까.」 랍비를 찾아온 사나이는 랍비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그런데 며칠 뒤 다시 찾아와 비통한 얼굴로 말하는 것이었다. 「랍비님, 제 아내는 결국 죽었습니다.」이 말에 랍비는 얼굴 가득히 분노의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치사한 귀신 같으니. 내가 칼을 빼앗았더니 결국 맨손으로 죽였군.」

도움이 되는 6가지
1. 남들이 모두 옷을 입고 있을 때에는 벌거숭이가 되지 말라.
2. 남들이 모두 벌거숭이일 때는 옷을 입지 말라.
3. 남들이 모두 앉아 있을 때에는 서 있지 말라.
4. 남들이 모두 서 있을 때에는 앉아 있지 말라.
5. 남들이 모두 울고 있을 때에는 웃지 말라.
6. 남들이 모두 웃고 있을 때에는 울고 있지 말라.

– 짤막한 탈무드, 마빈 토게이어, 기독태인문화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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