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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집사’직(διακονος)의 기원

집사, 장로, 감독직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예루살렘교회에서 시작된 ‘장로’ 직

마가의 다락방에서 120명으로 시작된 예루살렘 교회가 어떤 형태의 조직과 직분제를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 사도행전은 오순절 사건 이후, 믿는자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으며, 날마다 모이고, 떡을 떼면서, 그 수가 점점 늘어났다’고 전하고 있다.(행2:42-47) 따라서 그렇게 자라가고 있는 ‘모임체’를 이끌어갈 지도체계나 직분의 필요성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처음에는 ‘12사도’들이 단독으로 예루살렘 교회를 이끌고 교인들의 신앙생활을 지도하는 ‘리더쉽’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그 사도들을 도와 일할 ‘일곱’명의 봉사자들이 선출 되었다. 하지만 그 ‘일곱’은 ‘임시적’인 직분이었지 항구적인 교회 직분으로 정착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후에 그 ‘일곱’중에 하나인 빌립이 사마리아 등에서 활동한 것을 보면, 스데반의 순교 후에 그 ‘일곱’직분은 흩어지거나 해산된 것으로 본다.

헌데 사도들은 예루살렘에 항상 머물러 있을 수 만은 없었다. 그들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예수께로부터 받은 천국복음 전파였으므로, 사도들은 항상 여러 지방으로 흩어져 나갔다. 자연히 교회에 정착하여 교회를 다스릴 고정된 ‘직분’이 필요했다. 그래서 예루살렘교회는 당시 이스라엘 커뮤니티에 있었던 ‘장로’제를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모든 유대인들의 커뮤니티에는 ‘장로들의 회’가 있었다.

회당에서 장로들은 예배 인도자는 아니지만, 행정 및 재판과 체벌권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당시 예루살렘에 있었던 산헤드린 공회는 의장인 대제사장을 제외하고 70명의 장로들로 구성이 되었다. 그것은 모세의 ‘70인 장로’(민 11;16-25, 출24:1)전통에 그 유래가 있다. 물론 형태나 기능에서는 같지 않지만,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일부 유대 커뮤니티의 제도를 따른 것은 자연스런 일일 것이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장로제가 언제 시작이 되었는지, 또한 어떤 절차로 ‘장로’를 세웠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아마 처음에는, 이스라엘 사회에서 흔히 그랬듯이, 교회에서도 연령과 신앙이 높고, 존경받는 ‘연장자’를 장로라는 호칭으로 부르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것은 처음에는 유대사회에 흔히 있었던 제비뽑기나 무슨 선출 과정을 통해서 임직된 직분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사도행전 및 바울의 서신에서, 그것이 정확한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AD 40년대에 교회의 행정적인 일을 담당하고,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는 임무를 가진 ‘장로’ 직분이 예루살렘교회에서 시작된 것은 분명하다. 예루살렘교회에서는 장로들에게 목회적 책임은 없었던 것 같다.

바울이 회심 후, 처음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AD 37-40경) 거기에는 ‘사도’들만 있었고 ‘장로’란 직분은 존재하지 않았다(행9:26-30, 갈1:18-19). 그런데 그 후 안디옥 교회가 구제금을 모금하여 보낼 때, 바나바와 바울이 그 구제금을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들에게 전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행11:29-30). 바울의 마지막 예루살렘 방문 때에도(행21:17) 야고보와 ‘장로’들이 등장하고 있다.

초기 예루살렘교회의 조직 운영 체계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단서 하나를 사도행전 15장에서 찾을 수 있다. 안디옥 교회에서 이방인신자들의 할례문제로 논쟁이 발생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울과 바나바 등을 모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에 보냈을 때, 거기 ‘사도와 장로’들이 있어서 그들의 영접을 받았다. 곧 이어 ‘사도와 장로’들로 구성된 ‘교회 총회’가 공식적으로 모여, 토론 끝에 해결책을 결정했다.(행15:1-21). 이것은 기독교 역사상 최초에 있었던 ‘공의회’(Council)였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을 보면 예루살렘교회에서, 그때 교회운영에 있어 어떤 중요한 사안이 생겼을 때, 사도와 장로들이 함께 모여 의론하며 결정을 하는 ‘협의체’ 혹은 ‘자문회의’ 같은 것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 회의에서 야고보가 의장의 위치에 있었는데 물론 그도 ‘장로’였을 것이다. 그때 예루살렘교회는 사도들에 의해 세워진 모교회로서, 사도들과 장로들의 지도아래, 다른 지방의 신생교회들을 지도하고 지원하는 ‘우위적’ 위치에 있었음이 분명하다(행8:14, 11:22, 15:22등 참조).

이와같이 예루살렘교회에 시작된 장로직분은, 그 후에 나타나게 되는 바울의 이방교회에서의 장로 직분 같은 목회자는 아니었다. 유대인 회당에서와 같이 교회 운영에 중요한 사항등을 협의하고 결정하는 책임을 지고 있었던 것 같다.

헌데 사도행전은 ‘일곱 사역자’ 선출 과정을 자세히 기록하면서, ‘장로’에 대한 선출이나 역할, 기능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또 ‘일곱’의 이름이나, 혹은 여러 사역자들의 이름들이 거론되면서도, 장로 직에 있던 사람의 이름은 전혀 없다. 이런 점을 유추해 본다면, 예루살렘교회에서의 장로직은 어떤 행정적 ‘파워’를 가진 교회의 ‘공식적인 직분’이 아니고, 다만 그때 교회 안에 있던 ‘어르신’들을 그렇게 부른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렇지만 그들이 교회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중요 위치에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예루살렘교회에서, 야고보와 관련하여,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우리는 찾아볼 필요가 있다. 즉 야고보의 교회 내에서의 특별한 위치이다. 갈라디아서에 언급된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 기사가 누가의 기록(사도행전)어느 부분과 일치되는지는 논란이 많고, 또 서로 모순되는 부분들이 있지만, 바울 자신이 ‘내가 여러분에게 쓰는 이 말은 하나님 앞에서 절대로 거짓말이 아닙니다’(갈 1:20)라고 말한 것처럼, 바울의 보고에 신빙성을 둔다면, 예루살렘교회에서 야고보는 예수의 형제로서 특별한 위치에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갈라디아서가 말하는, 첫 번 방문 때 바울은 다른 사도들은 보지 못하고 베드로와 야고보만 만났다고 말하고 있다(갈1:18-19).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바울이 야고보를 ‘사도’와 같은 반열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갈라디아서에 기록된 ‘14년 후’(갈 2:1), 두 번째로 보이는 예루살렘

방문 보고에서, 바울은 예루살렘교회의 ‘유명한자들’ 및 ‘교회의 기둥’으로, 야고보, 게바, 요한을 언급하고 있다(갈2:6-9). 특히 그 ‘기둥’ 명단 순서에서 야고보를 제일 첫 번째 자리에 두고 있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사도들은 때때로 순회전도차 외부로 나가는 일이 많았으므로 야고보가 항상 예루살렘에 머물면서 교회를 지키는 실제적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노릇을 한 것임이 틀림없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야고보 당시에는 아직 ‘감독’이란 직분이 등장하지 않았고, 그래서 야고보는 ‘감독’이라 불린 적은 없지만, 그의 예루살렘교회에서의 ‘수위적’(primus inter pares)위치나 직무를 보면, 그는 그 당시, 하나의 예루살렘 지역 ‘주재감독’(Resident Bishop)같은 역할을 했다고 볼 수도 있다.

바울의 선교교회에서의 ‘장로’(πρεσβυτερος) 직분

스스로 이방인의 사도로 자처하는(갈2:8) 바울은 열정적으로 각 지역에 다니며 교회들을 세워 나갔다. 자연히 그 공동체들을 이끌어 갈 지도자들이 요구되었다. 그래서 바울은 우선 그가 세운 교회들을 위해, 각 교회에 장로들을 택하여 세웠다.(행14:23)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누가의 기록이 사실이라고 하면, 바울이 선교 여행시 처음 장로들을 임명했는데, 과연 새로 시작한 지역의 개체 교회내에 자도자적 위치에서 ‘사역’을 담당할만한 일꾼들이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선교 현지에서 발탁하여 임명한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교회에 있었던 장로들을 초청해 와서 임명했을 것이란 주장도 있다.

하지만 누가의 보고에서 회중이 함께 ‘금식과 기도하며’ 장로들을 선택한 것을 보면, 바울이 세운 지역, 개 교회의 신자들 가운데서 신실한 사람들을 택하여 세운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들의 임무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그때 바울의 교회에서 장로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은 없다. 하지만 신약에서 장로에 관련하여 언급된 내용들을 볼 때, 바울의 선교교회에서는, 장로들이 새로 세워진 신앙 공동체를 이끌며 말씀 사역 등 일종의 ‘목회적 사역’을 한 것으로 본다(행20:27-32, 딤전5:17-18, 딛1:5 등 참조).

그런데 바울의 편지들에는, 목회서신(2)을 제외하고 10개 서신에서, ‘장로’(πρεσβυτερος)에 대한 언급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그의 선교초기에는 바울이 각교회에 장로들을 정규적으로 임명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누가의 제3차 바울 전도 여행 기록(AD 약 54-58년경)에 의하면 그때 이미 에베소에 여러 명의 ‘장로’ 사역자들이 존재해 있었던 것을 보면(행20:17), 바울은 선교지마다 교회를 조직하고 장로들을 세웠음이 확실하다.

바울의 서신에서 장로라는 직분명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도(10개 서신), 장로직을 암시하는 내용들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예를 들어, 그의 편지들에서, ‘함께 수고하는 사람들에게 순종하라’(고전16:16), 혹은 “여러분을 지도하고 훈계하는 이들을 극진히 존경하라”(살전 5:12-13)고 말한 그 대상은 그때 교회를 지도하고 있던 장로들이었음에 틀림없다. 직분과 은사를 열거한 곳에서도 ‘관리하는 일’(administration, 고후12:28), ‘지도하는 일’(leadership, 롬12:8)의 은사는, 장로와 관련된 업무를 지칭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택규목사 글)

공식 직분 명으로 ‘집사’(διακονος)직이 신약에 등장하는 것은(빌1:1을 제외하고) 목회서신에서다. ‘집사’의 히랍어 διακονος 의 본래 의미는 종, 일꾼, 섬기는 자(servant), 조수, 협조자(helper)등이다. 신약 초기교회에서는 공식 직분으로 ‘집사’가 있지는 않았다. 하나 사도행전 6장에 나오는 예루살렘교회의 ‘일곱 봉사자’들은, 비록 그들을 집사라고 부르지는 않았어도, 교회 역사상 최초의 ‘집사’들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면 그들의 주요 임무가 사도들을 도와 ‘구제’하는 일을 했었기 때문이다. (주.1)

바울의 선교교회에서도 처음에는 집사직분이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교회 내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병자들을 돕고 구제하는 일을 담당했던 ‘봉사자’들이 있었다. (주.2)

이 διακονος가 ‘집사’ 직 용어와 관련되어 처음 등장하는 곳은 로마서 16:1에서 바울이 뵈뵈의 호칭으로 사용한 것이다. 여기서 사용되어진 ‘διακονος’가 교회의 ‘집사’직분을 말하는 것일까? (주.3)

이 단어가 바울의 초기 교회에서 ‘직분’명으로 나타난 경우는 없다. 사도행전이나 바울서신(빌립보서 1:1절과 목회서신을 제외하고) 어디에도 직분으로 언급된 곳은 없다. 한데 바울은 자신을 ‘사역자’ 혹은 ‘일꾼’이라고 부를때 때때로 이 ‘διακονος’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고전 3:5, 고후3:6; 6:4, 11: 23, 골1:23,25, 엡3:7 등)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해서도 이 용어를 사용했다.(롬15:8, 갈 2:17)

아볼로(고전 3:5), 두기고(엡6:21), 에바브라(골1:7), 디모데(살전3:2, 딤전4:6) 그리고 심지어 사탄의 사자에게도(고후 11:15), 정부 관리를 지칭할 때도 이 단어를 썼다.(롬16:1) 따라서 바울이 뵈뵈를 교회의 ‘diakonos’라고 부른 것은 교회의 공식 직분으로 호칭했다기보다 일반적으로 교회를 ‘섬기는 자’ 혹은 ‘일꾼’으로 말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빌1:1에 나타나는 ‘집사’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미 말한대로 빌립보서가 쓰여질 연대(약 53-4년경)에는 교회에 아직 ‘집사’라는 공식 직분이 있지 않았다고 본다. 그리고 그 연대에 쓰여진 바울의 다른 어떤 서신에도 ‘감독과 집사’라는 직분명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면 왜 빌립보서에는 ‘집사’들이 ‘수신인’으로 등장하는 것일까?

빌립보서는 특별히 바울에게 물질적으로 많은 성원을 한 교회이다.(빌4:15-18). 한데 그런 물질적 후원의 업무를 직접적으로 당당했던 ‘봉사자’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업무를 맡은 봉사자를 나중에 공식적 직분으로 ‘집사’라고 했으므로, 그 임무를 감당했던 봉사자들과 그것을 감독했던 장로들에게 감사하는 의미에서 ‘수신자’ 리스트에 특별히 ‘감독과 집사’를 추가한 것으로 해석할수 있다. 따라서 빌 1:1의 ‘집사’직 언급은, 후대에 쓰여졌다고 주장되는 목회서신과 비슷한 시기의 어떤 편집자에 의한 편집의 산물이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목회서신에는 좀 발전된 교회 직분제가 나타난다. 장로와 함께 감독, 집사가 공식 직제명으로 등장된다.(딤전 3:8-13) 특히 집사를 선택할 때의 ‘자격’에 대한 상세한 언급을 한 후, ‘시험’을 통해서(딤전3:10) 자격자를 골라 임직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교회 직제가 제도화되었음을 보여준다. 빌1:1절에서처럼, ‘감독’ 직분 다음에 ‘집사’직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 것도 유의할 일이다. 이것은 후에 등장하게 되는 교회 위계제도(hierarchy)의 원시적 모형으로 볼수도 있다. 집사들은 ‘장로-감독’의 직무를 도와서, 혹은 그들의 지도 아래서 구제 등 교회 행정, 관리, 재정에 관계된 일을 맡아 봉사하는 업무를 담당했을 것이다.(주.4)

하지만, 이것을 가리켜, 신약교회 시대에 이미 교회 내에 상하 위계질서 같은 ‘계급’적인 직분제도가 있었다고 말할수는 없다. 신약교회에서는 오늘날과 같은 ‘성직자’제도나 ‘평신도’라는 개념은 없었다. 누구나 받은 은사에 따라 봉사하였다. 따라서 장로직이나 집사직이 상하적 ‘계급’ 직책이 아니고, 교회 일을 서로 나누어서 수행하던 일종의 ‘업무분담’ 같은 형식으로 보아야 한다. 집사직을 받은 사람이 어느 일정 기간 지나서 장로가 되는 것 같은(마치 계급이 올라가는것 같은) 제도는 없었다.

신약교회의 특정 직분들 – 은사(χαρισμα)적인 사역자들-

바울 서신에서 직분 혹은 사역에 관한 리스트가, 특히 성령의 은사와 연결하여, 언급된 부분이 세 곳에서 발견된다.(고전12:8-11, 롬12:6-8, 엡4:11-12) 우선 50년대 중반에 쓰여젔을 것으로 보이는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 보면 먼저 세가지 직분명이 분명하게 언급되어 있다. ‘사도’와 ‘예언자’와 ‘교사’이다. 그것도 ‘첫째’, ‘둘째’, ‘세째’로 순서를 정했다.(고전12:28-30) 물론 그것이 꼭 어떤 위계질서나 서열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직분들의 ‘중요성’의 순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예언자’(προφητης)는 대체로 ‘사도’ 다음으로 나타난다. 에베소서의 사역자 리스트에서도 사도 다음이다.(엡4:11), 바울이 직접 세우지 않았고, 또 그 당시 아직 그가 방문해 보지 않아, 그 교회의 상황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을 로마교회에 보낸 편지에서의 은사 리스트에는 제일 먼저 언급 되어 있다.(롬12:6) 이와 같이 바울의 교회에서 ‘예언자’의 사역은 사도 다음으로 비중 있는 위치에 있었다. 안디옥교회에서는 바울과 바나바도 ‘예언자’로 불렸었다.(행 13:1).

바울의 교회에서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어떤 사역을 했는지 또 그 예언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특히 예언의 은사를 행하는 성도들이 많았던 고린도교회(행19:5-7) 성도들에게 바울이 권면한 교훈들을 보면, 예언은 예배시에 사용된 것 같으며(고전11:4-5, 14:28-31), 방언 같은 은사와는 달리 무아지경이나 황홀경이 아닌 ‘똑똑한 의식’으로 전달되었다.(고전 14:19) 그 내용은 영감에 찬 교훈, 훈계, 위로, 격려, 권면 및 때로는 ‘질책’등으로써, 결과적으로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한 목적이 내포돼 있었다.(고전 14:3-5, 12, 22-25, 26 참조) 그래서 바울은 방언보다 예언을 더 중요한 은사로 말하기도 했다.(고전14:4-5, 19)

예언은 성령의 직접적인 ‘계시’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전12:26-31) 고린도교회의 예를 보면, 예배 참석자중 누구든지 ‘계시’를 받은 사람이 예언을 말했다.(고전 14:30) 여기에서 문제되는 것은 ‘거짓 예언’을 말하거나 성령의 은사를 남용 내지 오용하는 자들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폐해가 이미 초대교회에서 있었다. 그래서 영에 대한 ‘분별’ 은사가 강조되기도 한 것이다.(고전 12:10, 롬12:2, 빌1:9-10, I요4:1) 사도들의 시대가 지난 후, ‘사도, 예언자, 교사’의 순위를 자랑했던 ‘예언자’는 점차 사라지게 되고,(주. 5) ‘예언’은 성서 내에 있는 예언으로 국한하게 되었다.(주.6)

세 번째 은사직분은 ‘교사’(διδασκαλος)인데, 교사가 바울의 선교교회에서 어떤 성격의 직분이었는지를 정의하기도 쉽지 않다. 예수께서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교사’(선생)(διδασκαλος)라고 하였으며(마23:8, 26:18, 요13:13 등) 항상 이 칭호로 불려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 칭호는 이스라엘 뿐 아니라 모든 사회에서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거나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다 적용되는 것이다. 따라서 바울의 교회에서도 ‘가르치는 자(롬12:7), ‘지혜와 지식의 말씀’(고전 12:8)으로 교인들에게 교훈을 주는 사역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된다. 교사들은 기독교 진리의 해설자, 교육자, 전달자, 양육자들이었다.

한데 바울의 편지에서 ‘교사’는 때때로 ‘예언자’와 결부되어 나오기도 한다.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교회에서 ‘예언자와 교사’로 불렸다.(행13:1등) 그것은 예언자나 교사가 다같이 당시 교회에서 사도와 함께 중요한 사역자임과 동시에 또한 다 같은 말씀의 사역자들이기 때문일것이다. 하지만 예언자들은 대체로 ‘순회’적 사역을 했으나 ‘교사’는 개체교회의 고정된 사역자들이었다.

‘교사와 ‘목사’가 함께 나오는 경우도 있다.(엡4:11) ‘목사’(ποιμην)라는 단어는 신약에서 대부분 ‘목자’로 번역되지만, 사역과 관련해서는 에베소서에 단 한번 ‘목사’(pastor)’ 나오는데, 어떤 직분이었는지는 역시 분명치 않다. 하지만 목사와 교사가 함께 나오는 것을 보면 그것은 동일한 직분의 명칭으로 생각된다. ‘교사’는 순회하는 자가 아니고 개체교회에 정착해 있으면서 가르치고, 때로는 교인들을 돌보는 일을 하기도 했을 것임으로 ‘목사’(pastpr)로 호칭되기도 했을 것이다. 바울 당시의 교회에서는 직분제도가 완전히 정착이 되어 있지도 않았고, 사역의 업무구분이 확실하게 이루어져 있지도 않았던 때 임으로 그것은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바울의 교회에서 당시 ‘목사’라는 직분이 따로 있었다는 어떤 근거도 신약이나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에베소서의 ‘은사’적 사역자 리스트에 ‘전도자(ευαγγελιστης)가 있다. 그들은 그 이름 그대로 전도하는 자들이다. 그런데 사도들도 전도자였다. 다른 점은 사도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한 증언자들이고, ‘전도자’들은 부활하신 주를 보지는 못했지만, 사도들의 전한 말씀을 받아서 전파한 제2차 증언자들이다. 신약에 ‘전도자’라는 호칭이 개인적 이름에 직접 연결되어 있는 사람이 두명 나오는데 그것은 빌립(행21:8) 과 디모데(딤후4:5)의 경우이다.

지금까지 예루살렘의 초기교회, 바울의 선교교회에 있었던 교회의‘직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한데 그것을 현대교회의 ‘직분’ 개념과 연결해서 이해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 당시 초대교회 내에는 ‘직분’이란 것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정착되어 있지 않았다. 공식적인 직제 구조가 조직화 되거나 통일되어 있지도 않았다. 누구나 받은 ‘은사’대로 ‘사역’에 동참하였다. 그러기 때문에 직분의 명칭이나 성격도 분명치 않으며, 따라서 교회마다 비공식적인 명칭들이 여러 가지로 표현되어 있었다고 본다. 그래서 수고하는 자들, 돕는 자들, 동반자들, 섬기는 자들, 사자들, 일꾼들 같은 명칭들이 각 교회에서 쓰여 지기도 했다.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에는 사도, 선지자, 전도자, 목사와 교사 등의 ‘직분’명 으로 보이는 칭호들이 나열되어 있으나(엡4:11), 다른 교회에서는 ‘전도자’나 ‘목사’같은 직분 명칭은 등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런 명칭들이 꼭 제도화된 직분명이라기 보다 그때 활동하고 있던 성도들의 ‘사역’ 내용이나 ‘활동’의 성격 같은 것이라고 해석해야 될 것이다. 그래서 안디옥교회 같은 데서는 바울과 바나바를 ‘선지자와 교사’라고 부르기도 했던 것이다.(행13:1)

(김택규목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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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행6:2절의 ‘음식 베푸는 일’에서 사용된 히랍어 διακονειν τραπεζαις는 ‘식탁에서 섬기는 것을 의미 한다.

2) 롬12:7의 은사 리스트에서 ‘섬기는 일’은 διακονια 이다. ‘구제하는 자’도 나온다. 고전 12:28절의 은사 리스트에는 ‘도와주는 것’(αντιλημφις)이 있다. 모두 ‘집사’직분에 해당되는 말이다.

3) 롬 16:1의 ‘διακονος’를, 한글 성경은 모두 ‘일꾼’으로 번역하고 있고 ‘집사’로 주를 달고 있다. 영어성경은 대체로 servant 로 번역하고, deacon 또는 deaconess 의 주를 달고 있으나, NRSV등은 deacon으로 번역하고 ‘minister’의 주를 달기도 했다.

4) 딤전3:9-10에, 집사의 자격으로, ‘부정한 이득을 탐내지 않을 것’, ’깨끗한 양심‘을 강조한 것을 보면, 그들의 업무가 교회의 재정이나 구제 등 물질에 관계된 일을 수행한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5.)디디케(Didache)에 의하면(11:7) 2세기 중반까지도 예언자의 활동이 있었다.

6.)디다케, 순교자 저스틴, 유세비우스 등은 모두 거짓 예언자 문제를 다루고 있다. 특히 몬타누스주의(2세기)가 사도들로부터 내려온 전승과 다른, 새로운 예언적 통찰을 주장하자, 교회는 ‘예언’에 대해서, 성서에 있는 예언만 참된 예언임을 강조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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